가즈 나이트 – 331화
리오는 상대방의 얼굴을 잡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 순간 리오의 얼굴은 황당함에 굳어지고 말았고, 그는 상대방 몸 위에 있는 자신의 몸을 즉시 떼며 낮게 말했다.
“아니, 도대체 뭐 했어요 레이씨!”
“‥아, 리오씨이시군요‥.”
레이는 자신을 습격(?)한 괴한이 리오인 것을 확인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대답했다.
“거실에서 리오씨를 계속 기다리다가‥갑자기 촛불이 꺼지는 바람에 밖에 나가서 리오씨를 기다리려고‥.”
리오는 가만히 레이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후우‥그냥 주무시지요‥. 깜짝 놀랐잖아요, 12 신장인 줄 알고. 근데 다친 데는 없나요?”
리오는 레이를 일으켜주며 물었고 레이는 자신의 옷을 털며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리오씨.”
리오는 레이 덕분에 좀 이상한 사건을 겪긴 했어도 집 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리오조차 짚고 넘어가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회 3일째.
그날은 오후에 리오와 바이론의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리오와 바이론, 린스만이 귀빈석에 있었다. 린스는 약간 붉어진 눈을 한 상태로 하품을 연발하였고 두 시간째 계속 그녀가 하품만 하자 리오는 결국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어제 잠을 못 주무셨나요?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으응‥이상한 꿈을 연속으로 꾸는 바람에‥.”
린스는 결국 뒤의 긴 의자에 누워버렸고 리오는 피식 웃으며 계속되는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때, 린스가 선뜻 꿈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우웅‥글쎄, 그 꿈에서 리오가 나오지 뭐야? 지금하고 똑같은 모습으로 말이지. 하지만 그 꿈에서 난 한 열다섯으로 보이는 이상한 마법사 꼬마랑 같이 있었고, 리오는 수도사 복장을 한 검은 머리의 여자랑 같이 있었어. 으‥그 빌어먹을 지크 녀석도 같이 나왔다니까‥. 참 재미있는 꿈이었는데, 꿈의 마지막이 더럽게 이상했어.”
린스는 현재 리오의 뒤쪽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리오는 표정을 굳힌 채 린스에게 물었다. 물론 말투는 평상시처럼 하고‥.
“‥마지막이 어땠는데요?”
린스는 잠 때문에 희미한 의식 속에서 계속 말했다.
“응‥한 마법사 차림의 여자가‥이상한 펜던트를 들고 도망가려는데‥내가 칼로 그 여자를 찌르고‥응‥다음은 기억 안 나, 잘래‥.”
린스는 곧 깊이 잠이 들었고, 바이론은 전음을 이용해서 리오에게 말했다.
「‥이 공주가 그 애였나?」
「그래‥오늘 들으니 확실하군. 하지만‥너무 시간이 흘러가 버렸어‥.」
“‥크큭, 하긴 그렇지‥.”
바이론은 전음이 아니고 그냥 웃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경기를 위해 아래로 내려갔는데 리오는 말없이 내려간 바이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지크보다 더 이상한 녀석‥.”
곧 경기가 끝났고, 바이론은 천천히 경기장 위에 올라섰다. 공교롭게도, 바이론의 이번 상대는 12 신장, [물의 다이]였다.
“오‥12 신장‥크흐흐흐흣‥.”
바이론은 잘 됐다는 듯 웃으며 자신의 혀로 다크 팔시온의 표면을 핥았고, 바이론의 그런 광기 어린 모습을 본 다이는 인상을 쓰고 중얼거렸다.
“‥별로 깔끔하지 못한 녀석 같군‥.”
시작 종이 울리자마자, 바이론은 크게 웃으며 다이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고, 무턱대고 돌진하는 바이론을 본 다이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교차하기 시작했다.
“후‥뭐 대단한 녀석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그냥 미친 녀석이었군. 물귀신을 만들어 주지‥.”
다이는 교차하던 손을 멈추고 바이론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경기장 바닥에 조그만 구멍이 뚫리더니 거기에서 물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그 물은 바이론의 몸을 휘감았고 바이론은 거대한 물방울 안에 갇히는 형상이 되어버렸다. 다이는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고, 관중들은 다이의 놀라운 기술에 숨을 죽였다.
마침 응원을 온 루이체는 다이의 그 기술을 보고 흠칫 놀라며 옆에 앉은 레이와 노엘에게 속삭였다.
“언니들, 12 신장이에요!”
그 말에 노엘은 안경을 떨어뜨릴 정도로 기겁을 했고 레이 역시 놀라며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지금 물방울에 갇히신 저분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아요?”
그러나 루이체는 바이론이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리오나 지크보다 오히려 더‥.
“지,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요? 호호홋‥.”
그렇게 얼버무린 루이체는 조용히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아직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리고 있던 다이는 다시 바이론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자아, 물방울이라도 내 말은 들릴 거다 광인. 오‥물속에서도 강한 모양이지? 아직 몸부림을 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말이야. 널 죽이고 싶지만 우리 대장님이 가즈 나이트 이외의 적은 죽이지 말라고 해서‥.”
말을 하던 다이는 순간 말끝을 흐렸다. 바이론이 물방울 안에 갇힌 채 자신을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웃음을 멈춘 바이론은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 입을 움직였다. 다이는 듣지 못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있었다.
“너, 너도 가즈 나이트‥? 설마 네가 공국의 수만 대군을 혼자 처리했다는 그 녀석‥!!”
다이가 바이론의 말을 알아들은 순간, 바이론의 거대한 근육질이 꿈틀거렸고 그의 몸에선 검은색의 투기가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이론의 몸을 감싼 물방울은 순식간에 기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바이론은 간단히 물방울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바이론은 자신의 손등에 묻은 물을 핥으며 다이에게 중얼거렸다.
“크크 섬‥운이 좋게도 몸에 좋은 광천(鑛泉)이군‥크하하하하하핫–!!! 대가는 죽음이다–!!!!”
바이론의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오던 흑색 투기는 곧 폭발하듯 분출했고 바이론은 광소를 하며 다이에게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한 다이는 몸을 피하려 했으나 바이론의 왼팔이 더 빨랐다. 왼팔로 다이의 머리를 감싸 자신의 몸에 바짝 붙인 바이론은 즉시 오른손에 든 다크 팔시온으로 다이의 복부를 수차례 찍어 올리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다이의 복부와 관통된 등에선 피 대신 무색 투명의 체액이 흘러나왔다.
푸욱–! 푸욱–!
살이 뚫리는 기괴한 소리와 바이론의 잔인한 행동에 심판도 인상을 찡그렸고 관중들 역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 레이는 넓은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저, 정말 사악한 분이시군요. 하지만‥저것은 순수한 악함이에요. 제가 뭐라고 따질 수 없는‥.”
루이체는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하지, 괜히 어둠의 가즈 나이트인가‥?’
다이의 복부에 수차례 난도질을 한 바이론은 다이를 경기장 바닥에 멀리 내던져버렸고, 쓰러진 다이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쿠후후‥아직 이 정도가 아닐 텐데? 배에 펑크 몇 개 났다고 죽이면 12 신장이 아니지. 저번 녀석처럼 머리를 날리는 건 예외지만‥푸하하하하하하핫–!!!!!”
바이론의 광소를 들은 다이는 복부를 감싸지도 않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에 관중들은 더더욱 놀라워했다.
“저, 저 사람 좀 봐! 분명히 칼에 배가 뚫렸다고, 근데 멀쩡히 일어서잖아!!!”
“이, 인간이 아니다! 괴물이다!!!”
가만히 서 있던 다이는 곧 피식 웃었고, 그의 복부 상처는 말끔히 재생되어졌다. 그리고 곧 다이의 몸은 어디선가 뿜어진 물기둥에 휩싸였고 물기둥이 사라지자 나타난 것은 본래 다이의 모습, 파란색 갑옷을 걸친 12 신장의 모습이었다.
「널 없애주마 쓰레기 녀석‥!!!」
다이가 그렇게 나오자, 관중석에 앉아있던 12 신장들은 각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워닐이 힘을 다 하라고 했을 땐 모습을 바꾸지 않은 상태로 힘을 다 하라는 것이었는데 다이는 워닐의 말을 잊은 듯 모습마저 바꾸어버린 것이었다. 복면을 한 워닐은 노기에 찬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저 어리석은‥! 프라와 똑같은 꼴이 되고 싶나‥!!!”
워닐이 화가 난 것을 느낀 12 신장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경기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이런 반응은 워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주었던 것이었다.
다이는 자신의 힘을 최대로 방출했고, 경기장 밑을 흐르고 있는 듯한 물이 경기장 바닥을 뚫고 뿜어져 올라와 길게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 물은 점차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더니, 곧 몸이 긴 수룡의 모습으로 변하여 다이의 몸을 휘감았다. 다이는 그 수룡을 어루만지며 바이론에게 말했다.
「자아‥살려달라고 빌어봐라‥!!」
바이론은 잠깐 놀란 얼굴을 했다가, 곧 비웃기 시작하며 다이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크크크크 섬‥!! 건방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