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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41화


“‥미안하다, 클루토‥.”

공작의 저택에 돌아온 리오는 자신의 방 베란다에 기대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저어‥계십니까?”

리오의 방 문이 열려 있길래 실례를 무릅쓰고 방 안에 들어온 레이는 베란다에 있는 리오를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자신이 지금까지 본 리오의 모습 중 가장 그늘진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노을이 지는 태양을 앞에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리오의 모습은 어두워 보이기만 했다.

“‥레이양인가요‥훗.”

리오는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리듯 말했고, 레이는 리오가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고개를 돌려 레이를 바라보고 쓸쓸히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레이는 그것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리오씨.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제가 위로해 드린다고 풀어질 일은 아닌 듯 생각됩니다. 리오씨의 말, 잘 알겠습니다.”

레이는 방을 나서며 문을 살며시 닫았다. 그녀가 나가자 리오는 다시 하늘을 돌아보며 깊은 한숨만을 쉬었다.

“리오군? 리오군, 일어나요 어서.”

리오는 희미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떠보았다. 공작의 맏며느리가 리오를 손수 깨우고 있었다. 리오는 깜짝 놀라며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새벽 두 시가 아닌 오후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엇, 이런‥?”

어제저녁 10시에 잠이 든 후 16시간 동안 계속 잠을 잤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공작의 맏며느리가 방 안에 들어와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깊이‥. 리오는 헝클어진 머리를 풀며 공작의 맏며느리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늦잠을 자다니‥.”

“아니에요, 저도 리오씨가 이렇게까지 늦잠을 잘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요? 호홋‥어서 내려와요, 점심은 먹어야죠.”

그녀가 나가자, 리오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어 보았다. 혼미해져 있던 정신이 좀 들었을 때, 그는 창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이 16강 경기인가‥?”

그의 말대로, 16강 경기는 진행되고 있었다. 리오의 덕으로 16강에 올라간 케톤은 손쉽게 상대를 물리치고 첫 경기의 승리를 장식했고, 그레이와 하롯 역시 각각 승리를 거두었다. 지금 현재는 세 번째 경기인 이름 모를 검사 둘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크는 어제처럼 린스의 옆에 앉아 이젠 지겹다는 얼굴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바이론은 구석에서 조용히 다크 팔시온을 닦고 있었다. 오늘은 귀빈석 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노엘은 물론이고 레이, 그레이 공작, 하롯, 레이필 현자, 루이체, 마키 등등‥그래서 린스의 얼굴도 어제보다는 밝은 편이었다.

예전부터 바이론을 유심히 지켜봐 오던 그레이 공작은 오래간만에 바이론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아, 바이론‥오늘은 몸이 어떤가? 어제는 부상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공작의 따뜻한 말에, 바이론의 반응은 이러했다.

“‥무슨 상관인가 노인장, 크크크크팰‥.”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반응에 공작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할 말이 별로 없어 심심해 하던 린스는 옆에 앉아있는 지크를 팔꿈치로 툭 건들며 물었다.

“어이, 파란 머리 언니는 어디 있어?”

지크는 별 생각 없이 턱을 괸 채 그 질문에 대답했다.

“아, 그 애요? 신계로 올라갔잖‥응?”

지크는 순간 깜짝 놀라며 린스를 바라보았고 린스는 지크의 대답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어 인상만 팍 쓰고 있었다.

“너랑 같이 다녔던 파란 머리 언니 말이야, 이름이 프‥뭐였던 여자! 이상한 얘기를 하네‥?”

지크는 당황하며 그 대답에 회피를 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공주님과는 수도에서 처음 만났잖아요!!”

“응? 그랬나? 이상하네‥?”

린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경기장에 시선을 돌렸고 지크는 따가운 마키의 눈초리를 피하느라 진땀을 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대화를 들은 그레이와 레이필, 노엘의 얼굴은 순간 어두워졌다. 바이론은 다크 팔시온을 집어넣으며 킥킥 웃기 시작했다.

“크팰‥왜 그러시나 세분? 뭐 찔리는 거라도 있나 보지? 크크크크팰‥.”

“뭣‥!”

공작은 그 말에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바이론을 노려보았고, 바이론은 사악한 미소를 띄운 채 계속 얘기했다.

“허‥뭐 괜찮아, 미망인 하나를 만들고 싶다면 당신 몸 가는 대로 해. 나야 좋지, 또 한 생명을 꺼뜨릴 수 있으니까, 크하하하하핫‥!!!”

가만히 서있기만 하던 공작은 말없이 돌아앉으며 바이론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네, 내가 실수했네.”

바이론은 키득키득 웃을 뿐이었다.

사실 이 정도의 상황이 되면 지크가 먼저 일어서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지크도 이번엔 바이론의 말 뒤에 숨겨진 뜻을 알 수 있었기에 나서지 않았다.

‘‥공작님과 안경 선생, 마법 할멈이 이 애의 기억과 무슨 연관이 있었나‥? 맞아, 그러고 보니 내가 저번에 물어봐서 똑같은 대답을 한 사람도 저 셋이었어. 음‥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는 게 좋겠지. 지금은 상황이 아니야.’

계속 이상한 분위기가 흐르는 귀빈석에 활기를 넣은 것은 어떤 경기 관계자였다. 노크를 하고 안에 들어온 그는 인사를 한 후 지크를 보며 말했다.

“지크씨? 다음 경기를 준비해주십시오. 그리고 미리미리 좀 나와 주세요. 실례했습니다.”

경기 관계자가 문을 닫고 나가자, 지크는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쳇, 혼자 말 다하고 가네‥. 그럼 다녀올게요.”

막 나가려던 지크에게, 바이론이 짧게 말을 던졌다.

“‥지크, 어제처럼 실수하지 마라. 크크크크팰‥.”

지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흥, 걱정 말아라 빈혈 사나이, 오늘은 깨끗이 없애버릴 테니까. 헤헤헤헷‥!”

지크가 문을 닫고 쏜살같이 내려가자, 루이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이론을 닮아가네? 큰일이야‥.’

장외에서 몸을 풀던 지크는 반대편 장외에 무언가 빠른 물체가 나타난 것을 보고 시선을 슬쩍 돌려보았다. 반대편 장외엔 황색 옷을 입은 한 사나이가 도끼를 들고 몸을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커스인가‥?’

지크는 코웃음을 치며 계속 몸을 풀었다. 곧 시간이 되어 경기장 위로 올라간 지크는 도끼를 든 채 몸을 빠르게 움직이던 사나이가 마치 야수와도 같이 생긴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몸을 웅크린 채 지크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주인은 어디 갔니?”

순간 그 사나이는 벌컥 일어서며 노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버릇없는 녀석!! 네가 감히 나 [야수의 켈거]를 희롱하겠다는 거냐!!”

약간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음음, 미안해. 네가 그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어. 네 주인에게 대신 사과할게, 이러면 됐지?”

12 신장 중에서도 가장 성질이 난폭하기로 유명한 켈거가 지크의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켈거는 종이 울리기도 전에 지크에게 자신의 도끼를 휘둘렀고 지크는 쉽게 그 도끼를 피한 후 심판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종 쳐요 아저씨, 헤헷‥.”

곧바로 종은 울렸고, 지크는 다시 한번 켈거의 도끼를 피한 뒤 그의 뒤로 돌아가 팔꿈치로 그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파아악–!!

공격을 받은 켈거는 앞으로 쭉 날아가 버렸고 지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날아가던 켈거의 몸이 둥글게 말리더니 별로 충격을 받지 않은 듯 가볍게 경기장 위에 착지를 하는 것이었다. 지크는 자신의 팔꿈치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재미있는걸? 충격에서 피하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날리다니, 애완동물이 이 정도니 네 주인은 더 대단한 사람 같구나?”

“이, 이 녀석이 계속!! 네 입을 틀어막아주마!!!!”

켈거의 눈에선 순간 불똥이 튀었고, 지크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켈거를 더욱 흥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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