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5화
“마법을? …그래, 넌 엘프족이니까 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땅의 마법인 다이아 로드를 사용할 수 있니?”
이리프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죄송해요. 어머니에게 주문이 있다는 건 들었지만 그동안에 주문을 연습할 시간이 없었어요. 주문어를 몰라요.”
슈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우물우물거리다가 그녀의 아마색 머리를 한번 긁은 후 이리프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이랬다는 거 리오에게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이리프는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예? 무슨…”
슈는 그녀의 손을 합장한 후에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리프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슈가 지금 외우고 있는 주문은 엘프어로 된 정령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모로 보아서 슈는 귀도 인간처럼 작았고 눈이 푸른색도 아니었다.
“어, 어떻게…?”
“땅의 원소들이여… 집결해서 우리들을 전기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세요… 다이아 로드!”
슈의 주문에 따라서 고압 전류가 흐르던 통로는 투명하고 단단한 물질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리프와 티퍼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 진짜네?”
슈는 약간 피곤한 표정으로 이리프에게 재 다짐을 받았다.
“알았지? 리오뿐만 아니고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줘선 안 돼. 알았지?”
이리프는 어찌되었든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어서였다. 셋은 그대로 통로를 통과해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들이 지나가자 투명한 물질들은 곧 사라져갔다.
또다시 길을 가던 슈는 갑자기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다시 일행들을 멈추게 하고는 좌우를 살피기 시작했다.
“또 왜 그래요?”
슈의 얼굴은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슈도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불안감이 엄습해옴을 느끼고 있었다.
“…… 공기가 흐르지 않고 있어.”
슈가 그 말을 마치자마자 앞뒤의 통로가 두꺼운 석문으로 닫히기 시작했다.
“역시!!”
슈는 특유의 스피드를 이용해서 앞쪽의 석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서는 힘껏 석문을 양손으로 받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에서는 뛰어난 점이 없는 그녀로서는 괴로운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이리프를 향해서 소리쳤다.
“어서! 석순 주문을!!”
다행히도 이리프는 석순 주문을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양손을 합장한 후 주문을 다급하게 외우기 시작했다.
“땅의 정령 노움이여, 잠시만 그대의 힘을 빌려주세요……”
주문을 마치자마자 기둥의 바로 아래쪽에선 두 개의 돌기둥이 솟아올랐다. 정령의 힘을 빌린 것이어서 올라오는 힘은 대단했다. 돌기둥이 슈의 힘을 덜어주자 슈는 팔의 힘을 풀고서 이리프와 티퍼에게 손짓을 했다. 티퍼와 이리프는 받치고 있는 돌기둥의 사이로 서둘러 빠져나갔다. 그들이 빠져나가자 슈도 뒤따라 빠져나갔다.
“휴우… 큰일 날 뻔했어…”
슈는 왼쪽 팔에 무리가 간 듯 오른손으로 팔을 주무르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곳 말이지 보통 도적의 소굴 같지가 않아. 너무나 완벽한 함정 시설들이란 말이야.”
이리프와 티퍼도 그 말에는 동감이었다. 사실 이곳은 도적들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들의 두목인 하사바만이 왕실에서 출동한 토벌대가 왔을 때만 이곳을 사용하고 있었다. 언제 이 비밀통로가 만들어졌는지, 왜 만들어졌는지는 하사바만이 알고 있었다.
“음… 할 수 없지. 자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기나 하자.”
슈와 다른 두 명은 직선으로 뚫려있는 복도를 계속해서 달렸다. 점점 앞으로 갈수록 함정이 있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철문이다, 이제 다 온 거야!”
티퍼는 흥분한 듯 슈보다 앞으로 뛰어나가 철문의 자물쇠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 뒤에서 슈가 위험을 느낀 듯 티퍼에게 소리를 질렀다.
“티퍼! 잠깐만 기다려!! 그것은…”
그러나 티퍼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자물쇠에 손을 댔다. 순간 티퍼는 비명을 지르며 문에서 튕겨져 날아갔다.
“으아악! 어떻게 된 거야!!!”
티퍼는 슈와 이리프를 몸으로 떠밀며 바닥에 쓰러졌다. 둘도 티퍼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으으… 어떻게 된 거야?!”
이리프는 자물쇠를 쓰러진 상태에서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티퍼는 행운아일 거라고 확신했다. 티퍼가 언제나 끼고 있던 두터운 가죽 장갑은 자물쇠에 들러붙어 이상한 냄새를 뿜어내며 녹아가고 있었다.
구우우우우….
가죽 장갑이 다 녹아내리자 자물쇠에선 이상한 형상이 나타났다. 푸른색의 연기 같기도 한 그 물체는 짐승의 형상으로 변하며 그들에게 큰 입을 쫙 벌려댔다. 슈는 자신의 전투 나이프 두 개를 동시에 꺼내 들며 이리프와 티퍼의 앞을 막아섰다.
“눈을 가려!!”
슈는 둘에게 소리치며 자신도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푸른 짐승의 입에선 황록색의 빛 덩이가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푸우웅-!!
빛 덩이와 슈의 나이프는 충돌하며 엄청난 폭음 소리를 냈다. 보통 전투 나이프였다면 버틴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만 슈의 나이프는 드워프의 세공품이었고 약간의 기도 실려있어서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설마… 문지기 [보르가스]?!”
슈는 온몸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몬스터는 보통 상대가 아니었다. 루아스 대륙의 고대 전설에 나오는 지옥의 문지기 괴수였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
보르가스는 두 눈을 붉은색으로 번뜩이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슈는 나이프를 잡은 두 손에 힘을 가했다.
“…… 리오가 반드시 와주겠지.”
마지막 남은 도적은 앞쪽에서 다가오는 존재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으아아-ㄱ!! 넌 악마야!!”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며 리오에게 공격을 개시했다.
“어리석은 녀석.”
필살의 결의가 담긴 공격은 허무하게도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그는 힘이 빠진 듯이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무기도 놓았다.
“음? 일찍 포기하는군.”
리오는 그 도적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 도적은 양팔을 벌리며 리오에게 외쳤다.
“자! 어서 나도 동료들처럼 힘줄을 잘라라!! 어서, 이 악마야!!!”
리오는 귀가 멍멍하다는 듯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그 도적에게 말했다.
“난 힘줄을 자른 적이 없는데… 쇼크로 잠시 팔다리를 움직이게 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도적은 고개를 들며 놀란 눈으로 리오에게 물었다.
“뭐! 그게 사실이냐!”
리오는 검을 집어넣으면서 도적에게 말을 했다.
“난 죽이면 죽였지 폐인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럼 아저씨는 잠시 쉬라구.”
리오는 수도로 도적의 목을 후려쳤다. 도적은 아무런 저항 없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 이 세상은 착한 사람들만의 세상이 아니지. 나쁜 사람들도 있어야 재미가 있다구…”
리오는 혼자 중얼거리며 저택의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앗!!”
슈는 굉장한 스피드로 두 개의 나이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보르가스도 빠르게 이동하면서 슈의 공격을 피하며 반격을 하고 있었다.
“이리프! 뇌격계 주문이나 그 비슷한 것이라도!!”
보르가스는 사실 고대어 마법으로 만들어진 마법 생물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를 소멸시키려면 고급의 마법 무기 또는 마법검 기술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슈에게는 두 가지 기술 중 아는 것은 마법검 하나뿐이었다. 그렇지만 마법검은 주문을 외우려면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슈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양동 작전이었다.
“크읏!!”
보르가스는 두꺼운 앞다리로 슈에게 강타를 날렸다. 슈는 왼손에 들려있는 나이프를 이용해서 그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었다. 리오의 것 이상의 충격이 팔에 가해졌다. 하지만 슈는 지체하지 않고 보르가스의 가슴에 오른손의 나이프로 일격을 가하였다. 보르가스는 약간의 마력이 있는 슈의 나이프 때문인지 몸을 부르르 떨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우워어어-!!”
그사이 이리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뇌격계 마법 중 가장 강한 스파이가를 외워두고 있었다.
“이때야! 마법을 써!!”
슈는 보르가스를 잡아두려고 온 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리프는 슈가 다칠까 두려워서 마법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슈… 슈가 다친다면 어떻게 해요!!”
“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쓰란 말이야!!”
이리프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선 모았던 주문을 힘껏 개방하였다.
“제발..!! 4급, 스파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