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65화
제네럴 블립 사 한국 지사 건물 최상층 80층엔 지사 사장과 그에게 보고하고 있는 선글라스의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약간 긴장된 얼굴로 사장에게 보고를 계속했다.
“사장님, 운전수 김의 보고에 의하면 그 건달들과 클리너들, 그리고 전투 로봇 BX-03을 쓰러뜨린 자는 인간이긴 하나 인간이 아니라고‥.”
쾅!!
그 순간, 사장은 책상을 내리쳤고 남자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장은 거칠게 시가를 물고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흥, 인간인데 인간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20세기 TV 프로에 나오는 슈퍼맨이라도 이 한국에 돌아다닌단 말인가? 허, 참‥!”
남자는 말이 없었다. 결국 보고는 끝난 셈이어서 그는 인사를 한 후 사장실 밖으로 나갔다. 사장은 투덜거리며 시가의 재를 털었다.
“흥, 어디서 실수한 걸 유치한 변명으로 막으려 하다니‥티타늄 장갑의 로봇을 칼로 자르는 사람? 하,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건가? 이 21세기에 누가 칼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쿠우우우우우웅–!!!!!!
순간, 건물에 진동과 함께 유리창이 박살 나는 폭음이 들려왔고, 사장은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카펫에 떨어진 시가는 카펫을 조금 태우고 말았고 사장은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가를 주워 일어섰다. 옷매무새를 정리한 사장은 시가의 불을 끄고서 다른 시가를 꺼내 들었다.
“쳇, 어디서 가스라도 폭발했나?”
자리에 앉은 사장은 그래도 약간 궁금은 했는지 닫아 두었던 창문의 셔터를 올려보았다. 남쪽도, 서쪽도 이상이 없었다. 북쪽도 마찬가지였다. 사장은 역시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면서 뒤로 의자를 돌려보았다.
“…….”
사장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TV의 리모컨을 두드려 보았다. 그러나 동쪽 창문에 나타난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곧 사장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버렸고 드래곤은 머리로 유리창을 받아 깬 후 안으로 머리를 불쑥 들이밀었다.
“으, 으아아–!!!”
사장은 도망치듯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안으로 몸을 숨겼다. 조금 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사장이시라면 품위는 지키셔야지요. 어이, 일어나 보시겠소?”
순간 사장의 뚱뚱한 몸은 공중으로 붕 들렸고, 그의 시야엔 붉은 장발을 위로 묶어 내린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사장을 소파에 던졌고 사장은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청년–리오는 팔짱을 낀 채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음‥별로 반갑진 않군요. 그건 그렇고 아침에 무슨 보고 들은 것 없었나요? 어떤 부부를 쫓던 건달들과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수수께끼의 깡패에게 맞아 임무를 실패했다는 것 말입니다. 아, 완구 두 개가 박살 났다는 보고도 있었겠군요. 믿지 않으셨겠지만‥그렇죠?”
리오가 웃으며 묻자, 사장은 리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치듯 말했다.
“그, 그렇다면 네가, 아니 당신이 그 슈퍼맨!?”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감탄하듯 말했다.
“호오‥슈퍼맨까지 자리가 올라갔군요. 영광인데요? 그건 그렇고‥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사장님.”
리오는 니켈제 고급 재떨이를 손으로 잡은 후 힘을 가하며 계속 말했다.
“당신들이 쫓고 있는 그 가족 말입니다. 사망 처리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리오가 그렇게 말하자, 사장은 순간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 그건 안 돼!! 아, 아니 안됩니다!! 그러다가 회장님에게 발각이 되면‥!”
리오는 손에 잡고 있던 니켈 재떨이를 손가락으로 간단히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뭐, 그건 제가 알 바 아니죠. 하지만 지사 사장 정도 되는 당신이라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생각하는데요‥? 제가 너무 과대평가한 것입니까?”
사장은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재떨이를 보고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아닙니다, 해 보겠습니다!!”
리오는 그래도 만족스럽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이칼의 어깨에 다시 올라탄 후 사장에게 말했다.
“음‥‘해 보겠습니다’라‥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하시겠다는 것으로 듣겠습니다. 아, 저희들이 간 후 제 뒤로 보이는 건물 유리창에 반사된 이 건물을 좀 봐 주세요. 그렇게 해주시면 아마 그들의 일에 대해 하시겠다는 의무감이 생길 것입니다. 자, 그럼 나중에 불미스러운 일로 볼 기회가 없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시길.”
바이칼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날갯짓을 하며 어디론가 사라졌고, 사장은 곧 깨진 유리창으로 들이치는 바람을 피해 리오의 말대로 앞 건물 유리창에 반사된 회사 건물을 바라보았다.
“‥히, 히이익–!?”
80층짜리 검은 건물의 넓은 표면엔 동북아시아에서 쓴다는 한자가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강렬히, 그리고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저, 저 글자는‥!?”
반사가 된 탓에 반대로 보여 처음엔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정신이 돌아오자 알 수 있었다. 그 글자를 본 사장은 급히 몸을 움직여 클리너들이 있는 사무실에 구내 전화를 연결했다.
한강 14번 대교 근처 편의점.
점심 시간이 다 끝난 탓에 손님이 없자 아르바이트 학생 중 남자 몇 명은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얼굴에 여드름이 약간 있는 여학생은 지루한 얼굴로 TV 뉴스를 보고 있었다. 곧 뉴스 속보가 들어오자 그 학생은 그리 크지 않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여 보았다.
「속보입니다, 제네럴 블립 한국 지사 건물에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범인은‥음!? 아, 죄송합니다.」
뉴스 앵커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방송을 멈추고 자신에게 급히 건네진 서류를 천천히 다시 읽어 보았다. 여학생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웃기는 일도 다 있네‥?”
앵커는 곧 정색을 하며 다시 속보를 전하기 시작했다.
「시청자 여러분 대단히 죄송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네럴 블립 한국 지사 건물에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범인은‥검으로 건물 표면에 ‘살’자를 커다랗게 새긴 후 어디론가 날아갔다 합니다. 현장 기자를 연결하겠습니다. 박 기자?」
그 속보를 들은 여학생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누가 유리창에 색연필로 낙서한 것 가지고 그러나‥? 어머!?”
그 앵커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80층의 거대한 제네럴 블립 지사의 건물엔 한문으로 [殺]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여학생은 모자를 벗고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딸랑–
편의점의 수동문이 열리자 맑은 벨 소리와 함께 손님이 들어왔다. 여학생은 아르바이트라 해도 정성껏 미소를 지으며 그 손님에게 인사를 했다. 보기 드문 훌륭한 직업 의식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머?”
그 손님은 짙은 회색의 두터운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굉장히 미남이었기에 그냥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표정을 본 손님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음‥죄송하지만 여기에 세계 전도가 있습니까?”
그 손님의 키는 생각보다 컸다. 기지개를 켜며 서서히 일어선 남학생들도 그 손님을 보고 놀랄 정도였다. 여학생은 약간 두터운 책자로 된 관광용 세계 전도를 손님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여기 있습니다만‥저어, 가장행렬 하세요?”
그 손님은 자신의 붉은 장발을 긁적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음음‥글쎄요? 후훗‥아, 감사합니다. 얼마인가요?”
“만 원인데요.”
그 손님은 약간 비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지갑도 아닌 가죽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주고 말했다.
“음음‥생각보다 비싸군요. 그럼 수고하십시오.”
그 손님은 지도 책자를 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그 손님을 계속 보던 안의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순간 굳어버렸다. 그 손님이 어느새 편의점 밖에 웅크리고 있는 드래곤의 등에 올라탄 후 바람을 일으키며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남학생들은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곧바로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기 시작했고 여학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TV를 바라보았다. 그리고선 조용히 중얼거렸다.
“‥생각하지 말자, 피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