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37화


“위험했어, 보초 도적들이 한 사람만 많았어도 너희들을 구할 수가 없었을 거야.”

“리오가 어떻게 여기로…?”

슈는 신기하다는 듯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와 보니 철문 하나는 돌로 막혀있고, 또 하나는 열려 있더라고, 그래서 열린 길을 택했을 뿐이야.”

리오는 말을 마친 후 동료들에게 일어서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러나 세 명은 한 발자국도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함정에서 내용물들을 몽땅 토해낸 탓도 있었지만 긴장감 때문에 피로가 더더욱 가중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녹초가 따로 없었다.

“어이고… 아무래도 나 혼자서만 가야겠는데?”

차라리 리오에겐 그 편이 더 나았다. 원체 단체 행동이란 걸 좋아하지 않았으며 전투를 하면서 ‘걱정’이란 잡념을 가질 필요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슈와 이리프가 벽을 짚고서라도 일어서려고 해서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럴 순 없어요! 전 꼭 하사바를 만나야만 해요!!”

이리프의 모습은 리오에겐 애처롭기까지 했다. 리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옆구리에 매달린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으휴… 귀찮아. 자, 그러면 이거라도 먹어봐.”

주머니에서 나온 리오의 손에는 작고 까만 병 세 개가 들려있었다. 리오는 곧 그것을 동료들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건 포션이야. 슈는 아마 알고 있을 걸? 어쨌든 이걸 마시면 몸이 상쾌해질 거야. 피로도 가시고 힘도 솟아나고… 비싼 건데, 제기랄.”

세 명은 포션을 리오에게 받자마자 병의 마개를 열고서 단숨에 들이켰다. 몇 번 마신 일이 있는 슈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이리프와 티퍼는 코를 막고 겨우 마실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리오는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훗.”

포션을 마신 세 명은 리오의 말대로 몸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효능이 매우 좋다고 느끼면서 이리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티퍼도 신기하다는 듯 팔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자, 그럼 가자구.”

리오와 일행들은 복도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 보니 횃불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들은 볼 수가 있었다.

“… 트랩이군.”

리오가 말을 마치자마자 강한 바람에 의해서 횃불이 모조리 꺼져 나갔다. 그리고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리오를 제외한 일행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무쇠 덩어리들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였다.

“… 이리프, 윌 오 위스프를 불러내 주겠니?”

빛의 정령인 윌 오 위스프를 불러내는 건 엘프족에겐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이리프는 양손을 모으고 엘프어로 빛의 정령을 불러내었다.

“좋아, 그럼 정령을 앞으로 전진시켜봐.”

이리프는 리오의 말에 따라 정령을 트랩이 가득한 복도로 보내었다. 정령이 가는 주위는 밝았으므로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복도는 정령이 겨우 통과할만한 공간을 제외하고는 몽땅 부비트랩으로 가득했다.

“이럴 수가…! 저런 복도를 어떻게 통과하죠?”

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리를 치자 리오는 팔짱을 끼고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리오는 이리프에게 정령을 보내주라는 말을 했다. 이리프가 정령을 보내자 주위는 다시 암흑으로 변해갔다.

“좋아, 모두들 뒤로 물러서.”

리오의 말에 따라 모두는 뒤로 두세 발자국 물러섰다.

“아무래도 체중에 의해서 감지되는 특수한 트랩인 것 같아. 아무리 나라도 정상적으로 지나가는 것은 무리겠지… 방법은 단 하나.”

리오는 양손을 살짝 굽히고 자신의 앞쪽으로 팔을 쭉 뻗으면서 모았다. 그리고서 몸 안의 기를 손안에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아지랑이가 리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놀란 눈으로 리오를 바라보았다.

“흐읍!”

기합성이 들리고 리오의 양손에선 흰색의 오오라가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폭음이 비상 통로 전체를 뒤흔들었고 그 충격은 약간 떨어진 도적단의 본거지까지 전해졌다.


엄청난 진동에 놀란 하사바는 앞쪽으로 넘어지면서 바닥을 굴렀다. 진동이 멎자 하사바는 일어서며 부하들을 다급히 불렀다.

“이봐!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이 진동과 폭발음은 뭐야!”

그의 부하들도 혼비백산한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고만 있었다. 참을성이 없는 하사바는 부하 중 한 명의 멱살을 잡고서 소리쳤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니까!!”

“그, 그게 말입니다 두목…”

하사바의 부하가 겁먹은 표정으로 말을 이으려 하자마자 둘의 오른쪽 위에 위치하고 있던 벽이 또 한 번 폭음 소리를 내면서 폭발을 했다.

“우아악-!!”

하사바는 쏟아지는 파편을 피하면서 멀찌감치 떨어졌고 그의 부하도 어디론가 도망쳤다. 벽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으며 거기에선 자욱한 먼지가 구름같이 나오고 있었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하사바는 놀란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먼지가 조금 걷히자 구멍에선 사람의 그림자들이 몇 움직이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제기랄, 비밀통로라고 했으면서 구멍을 안 만들면 어쩌겠다는 거야?”

먼지를 해치면서 한 사람이 벽으로부터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매우 불만이 쌓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에 이어서 아마색의 단발머리를 한 미녀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세, 세상에… 설마 그 트랩들을 다 지나치고 왔단 말이냐?”

하사바는 머리를 쥐어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를 본 붉은 머리의 사나이 – 리오는 씨익 웃으며 하사바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아니, 다 부숴버리고 왔지. 어이-! 티퍼, 이리프! 어서 내려와!”

리오는 우물거리며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티퍼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슈는 그를 가볍게 받아서 내려주었다.

그를 본 하사바의 표정은 금세 분노로 뒤엉켰고 티퍼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이 녀석!! 2년 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게 누군데 지금에 와서 날 이따위로 배반하다니-!! 그래, 그렇다면 그 더러운 다크 엘프도 있겠군! 어서 나와봐!!”

그의 목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듯 이리프는 가볍게 바닥으로 내려왔다. 하사바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 분노와 의아함이 뒤섞인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너…! 다크 엘프가 아니었나?!”

이리프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하사바를 노려보았다.

“당연히 아니었죠. 이 모습으로 당신에게 접근했으면 제대로 있을 수가 없었을 거 아니에요?”

리오는 팔짱을 끼면서 하사바에게 협박을 시작했다.

“자아, 1대 4다. 부하들도 이미 도망친 것 같으니까.”

하사바는 리오의 말을 듣고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하!! 1대 4라고? 웃기는군, 도적단의 대 두목인 내가 이 정도 상황에 준비를 안 했을 것 같나!”

하사바는 자신의 휘어진 검을 뽑으면서 소리쳤다.

“자, 나오너라!! 지(地)의 마신 코볼트!!”

그의 외침에 따라서 넓찍한 지하 공간의 바닥에선 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개의 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형체를 갖추며 두 다리로 바닥에 서기 시작했다.

“어라? 저 털보가 지령 소환을 할 줄 알다니?”

리오는 의외라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반면에 슈는 경계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자신의 등에 장비된 전투 나이프에 손을 가져가며 짐승 – 코볼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삼십 마리는 될 것 같았다.

“… 숫자가 많은데요…?”

슈는 리오에게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리오는 자세도 갖추지 않은 채 팔짱만 끼고 서 있었다.

“… 뭐해요 리오?”

슈는 리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흠칫 놀라 뒤로 주춤거렸다. 리오의 얼굴은 지금껏 한 번밖에 보지 못한 진지함이 어려 있었다.

“리오…?”

리오는 팔을 풀며 슈에게 말했다.

“내 상대가 오고 있어. 아직 오려면 몇 분 남아있으니까 속전속결로 저 코볼트를 쓰러뜨려야만 해, 알겠지?”

“당신의 상대요?”

슈는 새삼 놀랐다. 이 사나이의 상대를 할 사람은 지금껏 한 명밖에 보질 못했던 슈였다. 그런대 적으로서 이 사나이의 상대가 또 있다니…

“이리프, 티퍼. 싸울 수는 있겠지?”

둘은 자신이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코볼트란 존재는 그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집단으로 공격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약간은 위험한 상황일지도 몰랐다.

“크르르르르…”

코볼트들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리오들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반면에 하사바는 뒤에 있는 비밀방을 향해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조, 좋아! 그대로 공격해라!! 물어뜯어버렷!!!”

그의 명령에 따라서 코볼트들은 거세게 공격을 개시했다.

“하아앗!!”

슈는 기합성과 함께 위에서 덤벼오는 코볼트의 허리를 두 동강 내며 이리프와 티퍼를 엄호해주었다. 이리프와 티퍼도 단도를 빼어들며 코볼트들과 대결을 펼치기 시작했다. 2년 동안 도적단에서 있었던 솜씨인지 그들의 실력도 보통은 넘었다.

“간다!”

리오는 오른손으로 달려드는 코볼트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약간의 힘을 가하자 코볼트의 몸은 삽시간에 불덩이로 변하여 갔다. 인체 발화술(人輒 發火術)이었다. 그러나 코볼트들은 자신의 동료가 불덩이로 변하는 걸 보고서도 거리낌 없이 리오에게 공격을 가해왔다. 리오는 인상을 쓰면서 오른손을 디바이너의 자루로 옮겼다. 그리고 코볼트 한 마리의 공격이 리오의 복부에 꽂히는 찰나.

“진공 회류참-!!”

디바이너는 칼집에서 몸을 옮기며 보라색의 검광을 진공 회오리에 실었다. 그와 동시에 공중에는 코볼트들의 신체 일부분과 녹색의 피보라가 퍼져 나갔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