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72화
“아, 아뇨. 농담입니다. 부탁이니 저에 대한 일은 그냥 넘어가 주세요. 더는 아실 생각은 하시지 않는 것이‥.”
리오가 계속 그렇게 넘어가려고만 하자 티베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 채 리오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리오 씨에 대한 사항을 왜 제가 그냥 넘어가도 되는지 이유를 들어도 될까요? 있다면 더는 묻지 않을게요.”
리오는 그 질문을 듣고 활짝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당연히, 전 당신을 구해드렸으니까요. 대가는 별로 바라진 않지만‥저에 대한 것을 묻지 않는 것으로 대가를 치르시면 될 것 같군요.”
티베는 아차 싶었다. 3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리오가 자신을 구해 주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할 말이 없어진 티베는 자신의 작은 가방을 탁자 끝에 놓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빨리 나오세요, 식사 준비가 다 됐으니까요.”
방문을 닫은 티베는 옷을 벗으며 분함에 치를 떨었다. 괜히 말을 잘못하는 바람에 더는 리오에 대해 물어볼 건수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에잇, 차라리 ‘난 악마예요’라고 대답하면 속이라도 시원하지‥!!”
입고 있던 외출복을 옷걸이에 걸고 트레이닝복을 막 입으려 하던 티베는 순간 등 뒤에서 싸늘함을 느끼게 되었다. 창문이 열렸나 싶어 뒤를 돌아본 티베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붉은색 피부에 보라색 턱시도를 입고 있는 뿔이 달린 사람, 즉 진짜 악마가 창문을 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인간의 여자는 언제 봐도 보기가 좋지. 그렇지만 임무상 오늘은 데려가기만 해야 할 것 같군. 소리지를 테면 질러 보시오 아가씨. 마법으로 이 방에서 나가는 소리는 다 차단이 되니까 그 드래곤도 당신을 구해줄 수는 없을 거요. 후후‥.」
티베는 재빨리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돌려 보았으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악마는 웃으며 천천히 티베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핫‥내 얘기가 농담인 줄 알았나 보군요 아가씨. 그 문은 마법의 자물쇠로 잠겨져 있습니다. 아무나 열 수 없어요. 아가씨도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듯한데 한번 디스펠 주문을 써 보시죠. 그동안 전 당신을 데려가겠습니다.」
티베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으나 더는 갈 곳은 없었다. 악마는 눈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서서히 다가왔다.
철컥–
그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힐린이 무표정으로 들어왔고 악마와 티베는 깜짝 놀라며 힐린을 바라보았다.
“티베, 안 나오고 뭐 하니‥어멋!? 다, 당신은 마 귀족 네그!?”
힐린은 기겁을 하며 당황해했으나 더 당황한 건 네그였다. 자신의 봉쇄 주문을 보통 사람이 가볍게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네그는 급히 티베를 잡으려고 몸을 날렸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힐린의 뒤에서 리오가 머리를 긁적이며 귀찮다는 얼굴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음‥TV에서 나타났던 악마를 직접 보니 영광이네. 그건 그렇고 지금은 식사 시간이니 다음에 와 줘. 미안하게 되었군 친구.”
네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티베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네그의 팔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네그는 슬쩍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의 눈에선 푸른색의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리오는 씨익 웃으며 다시 말했다.
“내 말투가 농담조일 때 도망가는 게 좋아, 내 본색을 드러내게 하지 말고 빨리 꺼져.”
「으, 으윽‥! 넌 보통 인간이 아니구나!! 좋아, 다음에 오라면 다시 와 주지!!」
네그는 자신의 붉은 날개를 펴고 창문 밖으로 사라졌고 리오는 피식 웃으며 티베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속옷만 입고 있는 상태였던 티베는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가!! 이 치한–!!”
“오, 이런.”
리오는 재빨리 방에서 나갔고 힐린은 즉시 티베를 안아주며 그녀의 상태를 묻기 시작했다.
“다친 곳은 없니? 무서웠지?”
티베는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힐린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트레이닝복을 건네주었다.
악마까지 봐 버린 티베에게 음식을 먹으라는 주문은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실 바이칼도 음식을 차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힐린과 넬, 바이칼은 편의점에서 사 온 인스턴트 식품으로 저녁을 넘겨야만 했다.
리오는 모두가 모인 거실에서 간단히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집이 두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는 것은 솔직히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사정상 집을 아무렇게나 옮길 수도, 떠돌아다닐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리오는 팔짱을 낀 채 일어서서 티베에게 물었다.
“흠‥도대체 왜 제네럴 블립에서 티베 양을 노리는 것일까요? ‥티베 양 혹시 돈이라도 횡령했나요?”
티베는 인상을 찡그리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이봐요 이봐요‥!”
“물론 농담이에요. 음‥예상이긴 하지만 아마 티베 양이 사용하는 마법 때문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마법 이상의 살상 능력을 지닌 무기는 이 세계에도 많은데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흐음. 어쨌든 그들이 티베 씨를 언제 어디서고 노리게 되었으니 경호를 좀 해야 하겠습니다. 티베 양은 좀 불편하시더라도 참아 주세요. 하지만 저와 바이칼은 저녁 말고는 경호를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넬이‥수고를 해 줘야 할 것 같군요. 넬, 괜찮겠니?”
그러자 넬은 멋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글쎄요‥? 솔직히 자신은 없는데‥.”
리오는 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티베 양이 널 굶기거나 때리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티베는 또다시 리오를 힐끔 바라보았고 넬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하는 데까지 해 볼게요!”
“좋아, 그럼 이제 문제는 저녁입니다. 밤에 어떤 괴물들이 티베 양을 노리고 습격할지 모르지요. 아까와 같이 고급 악마들이 나타나면 아무리 넬이 BSP 차기 대원이라 해도 막기는 힘들지요. 마법에 대해선 모르니까요. 불가피하게 저 아니면 바이칼이 티베 양 곁에 있어야 하는데‥.”
순간 바이칼은 리오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중얼거렸다.
“‥날 승용으로 쓰는 영광으로 만족하는 게 좋아. 더는 친구 운운하면 재미없어.”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티베에게 말했다.
“‥라고 하니 어쩔 수 없군요. 밤엔 제가 티베 양과 함께 지내는 수밖에‥.”
그러자 티베는 노발대발하며 일어나 리오에게 소리쳤다.
“그, 그게 무슨 저돌적인 말이에요!!! 당신 처음부터 이런 걸 노리고 저에게 붙은 것 아니에요? 맞아! 예전에 공원에서 절 구해준 듯한 할아버지도 리오 씨죠!! 이건 자신을 멋지게 보인 후 날 어쩌려고 한 계획이야!!!”
그러자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노인으로 변장은 할 수 있어도 아직까지 노인 모습을 한 채 티베 양을 만난 일은 없어요. 공원이라뇨? 처음 듣는‥.”
티베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고개만 숙이고 있지 리오는 한숨을 가볍게 쉬며 말했다.
“음‥뭐, 좋아요. 솔직히 말이 안 되는 경호 방법이긴 하죠. 제가 사과드립니다. 사실 아까와 같이 고급 악마들만 온다면 어쩔 수 없는 방법이지만 그런 녀석들이 계속 온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넬을 경호로 붙이는 건 허락해 주실 수 있죠?”
“아‥. 알았어요. 그럼 잘 부탁해 넬.”
넬은 티베와 악수를 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히힛, 걱정 마세요. BSP의 명예를 걸고 지켜 드릴게요.”
11시경, 티베는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뒤척일 뿐이었다. 아까 거실에서 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리오가 그렇게 나오자 약간 미안한 감도 들었다. 사실 본 지 3일밖에 안 되는 자신을 지킨다며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리오에게 그녀는 빵 하나라도 사 준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특별 경호를 냉정히 거절했으니 미안한 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혹시 또 모르잖아!”
‘하지만‥그는 대가 없이 거대 조직 블랙 프라임을 상대로 홀로 싸우는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기사인데‥.’
“아아, 아니야, 마음이 약해져선 안 돼!”
그녀는 혼자 갈등을 겪으며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가 0시가 되어서야 희미하게나마 잠이 들 수 있었다.
콰앙–!!
순간,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바람 소리 또한 강하게 들려왔다. 티베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고 실눈을 뜨며 주위를 확인했다.
“‥뭐야, 바람이잖아.”
그녀는 슬그머니 일어나 창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나 잠글 수는 없었다. 문고리가 이상하게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티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뒤로 돌아섰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뒤를 강타했다. 바람 소리가 마치 아까 본 그 악마의 웃음소리와도 같게 느껴졌다.
소파에 누워 세계 지도를 계속 훑어보던 리오는 티베의 방에서 덜컹 소리가 나자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창문이 열렸군. 깨지 않고 푹 주무셔야 할 텐데‥또 닫아 준다고 들어가면 이번엔 쫓아낼 테고. 후훗‥잠 못 자는 건 그녀의 팔자겠지.”
리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시 지도를 훑어 보았다.
끼이익–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티베가 흰색 베개와 분홍색 이불을 들고 자신의 방에서 거실로 조용히 나왔다. 리오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른 곳에서 주무시게요?”
티베는 머리를 긁적인 후 탁자를 중심으로 양쪽에 위치한 리오의 반대편 소파에 앉아 이불을 두르며 말했다.
“‥오늘은 그냥 거실에서 자는 게 편할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