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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8화


진공파에 산산이 갈려버린 코볼트들은 곧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리오는 거침없이 코볼트들을 베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그 광경을 봤다면 누가 악인인지 분간을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으… 으으윽!!”

하사바는 코볼트들이 쓰러지는 것을 뒤로하고서 비밀의 방을 향해서 달려갔다.

“어엇…?”

슈는 코볼트와 한창 전투 중에 하사바가 뒤쪽의 벽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그녀는 달려드는 코볼트 두 마리의 머리를 자신의 두꺼운 나이프로 날려버리며 하사바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중에 자신의 나이프 하나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별일 아니라 생각하며 자신도 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티퍼와 이리프는 나머지 코볼트들을 정리하며 리오에게 접근했다. 코볼트는 남김없이 사라졌으나 리오는 디바이너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 이리프, 티퍼.”

리오는 이리프와 티퍼를 불렀다.

“하사바는 너희들이 좀 처리해 주겠니? 아무래도 내 상대가 온 것 같아…”

리오는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둘에게 부탁했다. 우두둑 소리가 어깨에서 들려왔다.

“예… 그럼 힘…”

이리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오는 그녀와 티퍼를 안고서 다른 곳으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그들이 있었던 장소의 천정이 뚫리며 붕괴되었다. 티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빛줄기가 내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그림자와 그 안에서 빛나는 두 개의 붉은 광점이 보였다. 이리프는 서서히 일어서는 리오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얼굴엔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리오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설마 했더니, 넌 마장기사 요우시크?!”

빛줄기 속에서 꿈틀대던 그림자는 서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칠흑 같은 검은색의 갑주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검푸른색의 망토, 그 안에서 붉은색의 오오라를 발산하고 있는 대검 – 로제바인(1부 15편 참조). 그 모습은 백 년 전 마황제 가스트란의 오른팔이라 불리던 마장 기사 요우시크의 모습이었다.

“…… 리오 스나이퍼…… 별로 반갑진 않군 그래……”

갑옷색과 같은 흑색의 투구 속의 붉은 눈이 더더욱 빛을 더했다.

“훗… 나도 마찬가지다.”

리오는 자신의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튕긴 후에 씨익 웃으며 일어섰다.

“자, 가봐라.”

리오는 이리프와 티퍼에게 가라는 손짓을 했다. 둘은 하사바가 자주 들락거렸던 비밀통로를 향해 뛰었다.

“자, 그럼… 흐읏!!”

순간적인 요우시크의 기습에 리오는 방어를 하긴 했으나 뒤로 쫙 밀려나가고 말았다. 굉장한 힘이었다. 리오도 질세라 요우시크에게 접근하여 디바이너로 일격을 가하였다. 잔상이 남을 정도의 빠른 공격이었다. 그러나 요우시크는 중장갑을 입고 있는 것과는 달리 리오의 빠른 공격을 간단하게 피해냈다.

“어엇?!”

요우시크는 리오의 얼굴을 움켜쥐고 천정으로 날아올랐다.

쿠우웅!

그는 리오를 앞세운 상태로 벽에 충돌했다. 요우시크의 장갑을 타고 붉은색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요우시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위쪽으로 향하였다.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한 벽들은 간단히 뚫어져 버렸고 둘은 상층을 파면서 위쪽으로 올라갔다. 석질 파편들이 요우시크가 만들어낸 구멍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리프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 그만해요!!”

“누나!!”

이리프는 티퍼가 소리치며 그녀의 팔을 잡자 놀란 눈으로 티퍼를 바라보았다.

“저 정도로 저 녀석이 죽을 것 같아! 우리들이랑 약속했으니 죽지 않을 거 아니야!! 그가 말한 대로 우리는 하사바나 혼내주면 돼!!”

“티퍼…”

이리프는 멍하니 생각하다가 씁쓸히 미소를 지으며 티퍼의 머리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래… 맞아. 리오는 꼭 이길 거야.”

이리프는 다시 단검을 들은 손에 힘을 넣으며 비밀통로로 향하였다.


“이 자식-!!”

리오는 요우시크의 어깨를 힘껏 강타했다. 기가 실린 공격이어서 갑옷의 타격점이 부스러지고 요우시크는 다시 본거지 바닥으로 추락했다. 리오는 다시 뒤로 왼손을 돌린 후에 기탄을 쏘았다. 뚫리다가 만 벽들이 완전히 뚫렸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리오는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밖에서 승부다!!”

리오는 아대로 자신의 입술을 훔치며 밖으로 날아올랐다. 갈색의 아대엔 검붉은색의 선혈이 약간 묻어있었다.

저택의 건물을 뚫으며 공중으로 날아오른 리오는 기를 모으며 요우시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리오의 몸에서 푸른색의 오오라가 거칠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왜 안 나오지……?”

리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좌우를 살펴보았다.

“…… 뒤!!”

리오는 디바이너를 자신의 뒤편으로 휘둘렀다. 챙하는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리오의 예상대로 요우시크의 검은 모습은 살기를 감춘 채 리오를 향해 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리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꽤 강해졌군, 요우시크…”

요우시크는 나지막히 웃으며 응답했다.

“… 훗… 칭찬이라 들어주진 않겠다……”

둘은 곧 떨어져서 상대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기의 싸움도 만만치 않았다.

“… 훗…”

리오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었다. 요우시크의 모습이 잠시 떨렸기 때문이다.

“잔상검(殘像劍)!!”

그의 느낌대로 로제바인의 붉은 빛은 리오의 가슴 쪽을 통과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지만 리오의 가슴엔 충격이 전해져 왔다. 음속을 상회하는 충격파 때문이었다.

“이 녀석!”

리오는 눈을 감고서 요우시크의 기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첫 번째 공격은 잘 피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요우시크의 음성에 리오는 급히 뒤로 돌았다. 아주 가까이 요우시크가 있었다.

“넌 백 년 전에도 이 기술을 간파하지 못했어…… 언제까지고 간파하지 못할 것이지만……”

“크윽…!”

리오는 분노에 떨면서도 함부로 공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빈틈이 생겨 치명타를 입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 자, 그럼 다시…”

리오는 눈을 부릅뜨고 요우시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시 그의 모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사바는 그의 육중한 몸을 나무 의자에 맡기며 한숨을 쉬었다.

“타르자가 약속을 지킬 줄도 아는군… 빌어먹을 마녀 같으니라고…”

하사바는 투덜대며 자신의 비밀방을 둘러보았다. 마법에 의해서 통로가 위장되어 있는 비밀방은 하사바가 지금까지 비축한 보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곳에 숨어있으면 모를 줄 알았나?”

하사바는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날카로운 음성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누… 누구냐!”

위장된 벽을 뚫고서 슈의 호리호리한 모습이 나타나자 하사바는 코웃음을 치면서 일어섰다.

“쳇, 난 또 누구라고. 자, 덤빌 테면 덤벼봐라.”

하사바는 자신의 보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커다란 도끼를 꺼내며 자세를 취했다. 그의 입가에는 조소가 흐르고 있었다.

“흥, 그 말에 책임져야 해.”

슈는 언제나처럼 빠르게 하사바를 향해서 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양손에 들린 그녀의 나이프가 하사바의 앞에서 호선을 그려나갔다.

“어억?!”

하사바는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도끼는 몇 조각으로 나뉘어지며 땅으로 떨어졌다.

슈는 하사바의 목에 검을 들이대며 말했다.

“자, 죽고 싶지 않다면 ‘이노’가 어디 있는지 말하는 게 좋을 거야.”

하사바는 식은땀을 흘리며 한쪽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하얀색의 꽃 몇 송이가 파란색의 줄무늬가 그려진 병 속에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 ‘이노’?”

슈는 하사바의 목에서 나이프를 떼면서 천천히 그 꽃을 향해 다가갔다. 하사바는 슈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슈는 꽃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꽃잎이 마치 빛을 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사바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옆에 있던 금괴 하나를 슈에게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멍청한 것! 넌 실전 경험이 별로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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