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84화
바이칼은 최대 속력으로 리오를 태우고 미국의 대도시, 뉴욕으로 향하고 있었다. 리오가 분노한 나머지 제너럴 블릭의 본사를 부수겠다고 한 탓이었다. 리오의 눈은 아직도 붉게 빛나고 있었다.
“몇 명이나‥무고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죽은 거야!! 이 녀석들, 절대로 용서 못해!!!”
바이칼은 계속 날아가다가 저 멀리 미국과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자, 날던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했다. 바이칼이 가지 않자 리오는 화를 내며 바이칼에게 소리쳤다.
“이봐!! 계속 가라고!!! 저 녀석들을 없애지 않으면 죽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어!!!”
그러자, 바이칼은 리오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오래간만에 보는군. 네가 분노에 휩싸인 모습은 말이야. 넌 그렇게 분노를 터뜨릴 때마다 바이론 이상으로 폭주를 하지. 내가 계속 갔으면 넌 아마 저 뉴욕을 [오메가 선샤인]이나 1급 마법 [플레어]로 날려 버렸을걸? 그렇게 되면 넌 진짜로 악마 녀석들과 똑같이 되는 거야. 바보짓 하지 말고 오늘은 돌아가자.」
“‥치잇, 바보 녀석!!!”
그러자 리오는 들을 것 없다는 듯 바이칼의 등에서 몸을 날려 혼자 뉴욕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이칼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후 그를 뒤에서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리오는 바이칼에게 소리치며 몸을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거 놔!!! 어서 놓으라고!!!!”
그러자, 바이칼은 리오를 던지듯 놓아 주었고, 리오는 약간 인상을 쓴 채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반면 바이칼은 무표정인 채 말했다.
“그럼 가라. 저 도시를 날려 버리라고. 제너럴 블릭의 본사와 함께 말이야.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너 때문에 죽은 사람은 저 뉴욕 시민들로 끝나지 않을걸. 저번에 우리가 구해준 그 기자의 말을 듣지 못했나? 블랙 프라임은 제너럴 블릭의 지원만 받는 것이 아니야. 주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제너럴 블릭, 그리고 다수의 국가와 거대 기업들이 블랙 프라임을 지원한다. 제너럴 블릭의 본사를 없애면 다음으로 지원을 많이 하는 기업이나 나라의 힘을 빌어 블랙 프라임은 유럽, 아니 세계 어느 나라에 보복을 가할 것이 뻔해. 네가 알고 막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리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리오의 눈과 기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자 바이칼은 다시 드래곤으로 변한 뒤 말했다.
「돌아가서 말하자, 이번 일은 생각보다 스케일이 큰 것 같으니까.」
리오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바이칼은 재촉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리오가 자신의 등에 다시 타자 고개를 저으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사과할게 바이칼. 천천히 돌아가자.”
리오는 그대로 집에 돌아갈 때까지 침울한 분위기로 일관하였다. 그에 대해 바이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통 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그들은 600여 년 가까이 만나온 친구 사이였다. 특히 바이칼은 리오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멀찍이 사라진 후, 그 자리에 마 귀족 크라주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는 불만이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흠‥네그가 괜히 당한 건 아니군. 하긴, 네그 정도의 마족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속공을 가한다는 것 자체가 강하다는 말이지만‥. 그나저나 아깝군, 재미있는 광경을 놓친 것 같아. 자아‥저 녀석에 대한 대책이나 좀 강구해 볼까? 시간은 많이 남은 것 같으니까‥.」
크라주는 미소와 함께 다시금 어디론가 사라졌다.
“와앗! 어서 와요!”
“음‥잘 있었어?”
집에 도착한 리오는 문을 열자마자 넬이 자신을 환한 미소로 반겨주자,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넬의 어깨를 토닥였다. 리오가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자, 넬은 인상을 쓰며 또다시 따지려고 했으나 리오의 뒤에 있던 바이칼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소리를 내자 넬은 머리를 긁으며 다시 소파에 앉아 버렸다. 리오도 역시 소파에 앉았다. 그러나 여느 때와는 다르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넬은 속이 답답했지만 얼음 덩이라 생각하던 바이칼이 말하지 말라고 손가락을 입에 대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본 직후 무슨 심각한 일이 있었구나 생각하며 당분간 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TV 좀 켜 줄래? 음악 전문 채널로‥.”
“예!? 아, 알았어요.”
리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부탁하자, 넬은 약간 놀란 듯 황급히 TV를 켰다. TV의 프로그램은 엠펠러가 말한 그대로 변한 것이 없었다. 주말이어서 쇼와 오락 프로그램 위주의 방송이 각 채널마다 나오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던 넬의 손가락은 어느덧 리오가 부탁한 음악 채널에 맞춰졌다. 넬은 소리를 크게 한 후 슬그머니 부엌으로 사라졌고, 리오는 말없이 TV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가요를 듣기 시작했다.
부엌에선 세이아가 열심히 채소들을 다듬고 있었다. 리오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 이상으로 대단한 솜씨라 넬은 생각하고 있었다. 넬이 부엌 문가에 우두커니 서 있자 세이아는 웃으며 앉으라는 말을 했다.
“음? 넬이구나, 서있지 말고 옆에 와서 앉아. 그런데, 리오 씨는 오셨니?”
넬은 그 질문에 인상을 팍 찡그리며 의자에 앉은 후 투덜대듯 말하기 시작했다.
“오긴 왔는데요, 이상해요. 오자마자 정신병 환자처럼 소파에 걸터앉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고‥.”
넬은 의자에 앉은 채 리오가 하던 모습 그대로 흉내를 내며 계속 말을 이었다.
“‥TV 좀 켜 줄래? 음악 전문 채널로‥그러고선 그 머리 긴 동양 여가수 노래 듣고 있어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재미없게‥!”
세이아는 리오가 왜 그러는지 약간이나마 알 것 같았다. 아침에 스위스에서 벌어졌던 참극을 리오는 직접 보았을 것이 확실했고, 거기에서 온 마음의 고통이 그를 잠시나마 변하게 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세이아 역시 내색하지 않으며 넬에게 말했다.
“후훗‥오늘은 좀 피곤하신가 보지. 너도 리오 씨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잖아. 오늘만은 이해하자, 응?”
“흠‥그렇게 하죠.”
넬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아는 사용 방법을 몰라 상당히 고생했던 냉장고에서 차가운 음료를 꺼내 넬에게 따라준 후 자신도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비번이라 오늘은 집에서 푹 쉬고 있던 티베는 자신의 방에서 낮잠을 실컷 잔 후 사방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다듬으며 비틀비틀 거실로 나왔다. 거실은 TV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때문에 시끄러운 편이었다. TV 앞 소파에 리오가 진지한 얼굴로 앉아서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 티베는 인상을 찡그리며 리오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톡톡 두드린 후 말했다.
“하아암‥. 좀 조용히 좀 들어요, 아니면 이어폰을 끼고 TV를 보시거나. 잠이 다 깼잖아요.”
티베가 평상시와 같이 잠에서 덜 깬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살짝 투덜대자, 리오는 멍하니 그녀를 돌아보았다. 리오가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티베는 얼굴을 매만지며 그에게 물었다.
“음? 얼굴에 뭐 묻었어요?”
그러자, 리오는 피식 웃은 뒤 팔을 뻗어 티베의 뒷머리카락을 만져주며 말했다.
“후훗‥꼭 사자 갈기 같잖아요. 숙녀님 머리가 이러면 안 되죠.”
그러자 티베는 리오의 손이 닿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혀를 살짝 내밀고 투덜대듯 말했다.
“흥, 어때요, 보는 사람도 없을 텐데. 하지만 뭐 단정한 머리가 보고 싶으시다면 감아 드리죠.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TV 소리 좀 줄여요.”
리오는 다시 TV 쪽으로 눈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알겠습니다.”
티베가 욕실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지켜본 바이칼은 리오의 옆으로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좀 기분이 나아졌나.”
리오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그건 그렇고 아까 전에 나에게 할 말이 있다 했잖아, 그거나 말해 보시지.”
그러자, 바이칼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리오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 전에 TV 소리 좀 줄여.”
리오는 어깨를 으쓱인 후 TV를 껐다. 바이칼은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리오에게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아무래도 여신들은 표면상 드러난 존재인 듯하지 않나?”
리오는 움찔하며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음? 무슨 소리지?”
“‥마 귀족들은 괜한 일로 인간계에 나타나거나 하지 않아. 너도 알잖아, 그 녀석들은 대부분 인간계의 지배 따위엔 관심이 없다는 것. 그 녀석들은 인간들 또는 다른 지적인 생물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길 뿐이잖아. 그런데 이번엔 그렇지 않아. 저쪽 세계에서 나타났던 그 두 종류의 로봇들이 이 세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너나 나조차 사용할 수 없는 [이빌 게이트]를 통해서 말이야.”
그러자 리오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이칼에게 물었다.
“하지만‥저번 세계에선 마 귀족과 만난 일이 없었는데‥?”
바이칼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흥, 넌 기억력이 빵점이구나. 너는 물론 만나지 않았지. 하지만, 그쪽 세계에서 싸운 일이 있는 사람이 있어. 바로 저기.”
바이칼이 고개를 까딱이며 리오의 뒤쪽을 가리키자, 리오는 의아한 눈으로 뒤를 바라보았다. 둘이 자신을 바라보자,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막 나오던 티베는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어? 뭘 봐요 징그럽게‥!”
리오는 수긍이 간다는 듯 티베에게 시선을 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군. 하지만 왜 내가 있었을 땐 마족들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바이칼은 짧게 숨을 내쉬며 리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흥, 거기까지 알면 난 신룡이다.」
둘이 계속 쑥덕대는 모습을 보던 티베는 인상을 찡그린 채 부엌으로 가며 중얼거렸다. 평상시와는 달리 둘이 너무나도 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저 둘‥.”
티베가 부엌에 들어서자, 음료를 홀짝홀짝 마시던 넬이 환히 웃으며 그녀를 반겨주었고 세이아도 웃으며 반겨주었다.
“와아–잘 잤어요 누나?”
“그런데‥표정이 왜 그러세요?”
티베는 넬이 마시던 음료를 다른 컵에 따라 마신 후 아직 젖어 있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거실에 있는 두 슈퍼맨들이 좀 이상해서요, 오늘은 둘이서만 궁시렁대더군요. 불쾌하게 사람을 끔 힐끔 바라보면서‥. 도대체 무슨 꿍꿍이들이지?”
그 말을 들은 넬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티베에게 물었다.
“에? 지금은 또 얘기를 해요? 하, 참‥웃기는 형들이네? 리오 형은 방금 전만 해도 죽을 상으로 TV 음악이나 듣고 있었는데‥?”
“그래? 음‥이거 본색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 설마 미남의 탈을 쓴 늑대‥?”
“맞아요 맞아요, 원래 목표가 둘이었는데 넷으로 불어나니까 누굴 목표로 정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회의를 하는 것이 분명해요!”
“그래 그래, 너도 열다섯이니까 목표에 들어갔을 수도 있어!”
넬과 티베 둘이 점점 이상한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하자 세이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악의가 있어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얏!”
감자를 다듬다가 그만 칼에 손가락을 벤 세이아는 상처 부위를 급히 입에 가져갔다. 회의를 하던 티베와 넬은 세이아의 짧은 비명을 듣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앗, 괜찮아요 넬 누나? 그러니까 그런 건 기계로 하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세이아는 빨던 상처 부위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처가 지금은 없는 것이었다. 피도 분명히 났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머?”
세이아가 별 이상이 없는 그녀의 손가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넬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런 이런‥제발 농담 좀 재미있게 하세요, 행동으로 하시지 말고‥.”
세이아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넬과 티베에게 미안하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상처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밤, 리오는 세이아 덕분에 티베가 자신의 방에서 자게 되자 며칠째 혼자 밤을 보내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이칼 녀석, 오늘은 오래간만에 말이 많았군. 그건 그렇고‥내일 부터는 그 녀석들이 어떻게 나올까, 예전과는 다르게 나올 것 같은데‥. 어쨌든 언젠가는 갚아주지, 스위스 국민들의 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