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9화
슈는 하사바의 말을 듣고 재빨리 방어 자세를 취하려고 했으나 하사바가 던진 금괴의 속도가 더 빨랐다. 금괴는 슈의 등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정확히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슈는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아앗…!”
슈는 다시 일어서려고 애를 썼으나 다리와 팔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척추에 주어진 강한 충격 때문이었다. 하사바는 소리 내어 웃은 후 대검을 집어들고 슈에게 다가왔다.
“후후훗… 아마 움직이지 못할 거다. 스승님께 배웠던 급소라는 부분을 명중시켰으니 말이야.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칼을 들이대지 못할 걸? 등골도 나갔으니. 하하하하하!!”
그의 말대로인지 온몸이 그녀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슈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하사바는 그녀의 가녀린 목에 두터운 대검을 들이댔다.
“아까운 여자야… 하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는 취미에 안 맞거든. 그럼 죽어라!!”
하사바는 검을 높이 치켜올렸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한칼에 슈의 머리를 날릴 기세였다.
“리… 리오…”
슈는 눈을 감았다. 아마도 리오를 앞에 두고 수정상으로 변해가는 레나 왕녀의 기분도 이러했을 거라고 슈는 생각했다. 그녀가 눈을 다시 뜬 것은 어디선가 익히 들었던 야수의 울음소리가 비밀방 안에 울려 퍼질 때였다.
“으윽…!”
요우시크의 잔상을 눈앞에 둔 리오는 가만히 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요우시크의 실체는 음속 이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시각으로는 전혀 판별할 수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잔상검의 위력이었다.
움직이지... 않는가...
요우시크는 리오와의 거리를 천천히 좁혀나가고 있었다. 확실하게 리오의 등에 일격을 가할 참이었다.
좋아... 눈치채지 못한 너의 잘못이다...
리오의 바로 뒤쪽으로 접근한 요우시크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로제바인을 리오의 허리에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신음소리를 낸 것은 요우시크였다.
“……!!”
로제바인에 의해서 허리를 절단당한 리오는 아무 상처도 없이 그대로 공중에 떠 있었다.
“…… 잔상!!”
그리고 요우시크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리오에게 헛점을 크게 노출시킨 상황이었다.
“잔상을 너만 쓸 줄 알았더냐!!”
콰직-!
리오는 양손을 깍지 낀 상태로 요우시크의 등판을 거세게 강타했다. 등의 갑주 부분에서 파편을 날리며 요우시크는 지상으로 강하게 추락했다. 폭음 소리가 지축을 진동시켰고 흙덩이가 공중에 날리었다.
“지상에서 승부를 내주마!!”
땅으로 가볍게 착지한 리오는 아직도 먼지가 자욱한 추락 지점을 향해서 손짓했다.
“나오라고, 넌 백 년 전에도 이런 걸 맞고 죽지 않았잖아.”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먼지 속에서 요우시크의 검은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후훗… 잔재주는 너에게 통하지 않겠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요우시크는 양손바닥을 폈다. 그러자 손바닥 위로 검은색의 빛을 발하는 구체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말해두지만 이건 잔상검 같은 잔재주가 아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음,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은데?”
요우시크는 살짝 코웃음을 쳤다. 그사이 구체는 거의 완성된 듯했다.
“… 이건 염체(念輒)라는 것이다.”
리오는 자세를 취하며 요우시크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지… 아주 재미있을 거야.”
말을 마친 요우시크의 손에서 두 개의 염체 덩어리는 살아있는 날짐승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검은색의 광선을 뿜어내며 리오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리오는 빠르게 몸을 움직이면서 염체의 공격을 피하였다. 하지만 요우시크의 공격까지는 피하기가 힘들었다. 망토와 머리카락의 끝부분이 검기에 휘말려 공중에서 떠돌았다. 3 대 1의 상황이었다.
“잔재주는 늘었구나!!”
리오는 소리는 쳐댔지만 쉽사리 공격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염체들이 움직임을 철저히 봉쇄한 탓이었다. 어디 한군데 잘려나가거나 관통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굉장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피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리 리오라고 해도 요우시크를 이기는 것은 무리였다.
하사바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에는 전혀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 쓰여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보, 보르가스! 어떻게 네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마법의 자물쇠 안에 봉인되어 자신을 위해 통로를 지켜주던 마수가 갑자기 자신을 향해서 송곳니를 세우고 으르렁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크우우우우…!”
보르가스는 한껏 자세를 웅크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이… 이 녀석!!”
궁지에 몰려버린 하사바는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 보르가스에게 달려들었다. 보르가스는 하사바의 느린 공격을 간단히 피하면서 하사바의 오른쪽 어깨를 자신의 두터운 앞다리로 내리쳤다. 하사바의 입에선 으윽 하는 신음 소리가 났고 그의 오른팔은 힘없이 흔들거렸다. 어깨뼈가 부서진 것이다. 보르가스는 재차 하사바의 다리를 강타했다. 왼쪽 다리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쓰러진 하사바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 죽음이 눈앞에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보르가스는 그 종족들의 본성대로 오른쪽 앞발을 하사바의 등에 올려놓았다. 전사들이 괴수를 쓰러뜨리고 자랑스럽게 다리를 괴수의 배에 올려놓는 것과 같았다.
“그만해! 제발 그만해!!”
보르가스는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한 소년과 엘프족의 소녀가 단검을 들고 서 있었다.
“이제 됐잖아! 하사바는 더 이상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구, 그러니 그의 목숨은 살려줘!”
티퍼는 2년 동안 이래도 저래도 정이 들어서였는지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부러져 쓰러진 하사바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그것은 이리프도 마찬가지였다.
보르가스는 앞발을 내려놓고 쓰러져있는 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슈의 애완견인 양 그녀의 옆에서 조용히 웅크렸다. 티퍼는 어째서 보르가스가 저렇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자신들에겐 전의가 없는 것이 확실해서 안심이 되었다. 이리프는 쓰러져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하사바에게 다가갔다.
“하사바… 당신을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은 저희들과의 약속을 어겼어요. 2년 동안이나…”
하사바는 얼굴을 바닥에 묻으며 거칠게 내뱉었다.
“쳇! 그딴 말을 하느니 꽃이나 빨리 가져가! 그렇지 않으면 혼쭐이 날 거야!!”
“예?”
이리프는 그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이미 도적단들은 도망친지가 오래였고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뿐이었다.
“후후후… 그 빌어먹을 마녀는 내가 진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날 죽이겠지… 이 나라의 왕을 죽인 것처럼.”
티퍼와 이리프는 깜짝 놀랐다. 멀쩡한 가이라스 왕국의 국왕이 죽었다니…
“뭐라고요!? 다시, 다시 말해봐요!”
“이 세계에 전해오는 전설을 모르느냐… <세 왕과 한 남자, 두 여자가 죽으면 마황제의 두 번째 꿈은 깨진다>…”
이리프는 엘프족 사이에서도 그런 전설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별 신경은 쓰지 않은 스쳐간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사바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갑자기 기억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는군… 흐흐흐…”
그 말이 끝나자 하사바의 그림자에서 하얀색으로 빛나는 것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손과 흡사했지만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 손은 하사바의 사지를 잡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마치 지옥에 끌려 들어가는 영혼의 모습과도 같았다.
“어서!! 너희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날 죽여줘!! 산 채로 영원한 고통을 당할 순 없단 말이야! 어서!!”
하사바의 마지막 진심 어린 부탁이었다. 하지만 차마 사람을 실제로 죽여본 일이 없는 둘이었다. 이미 하사바의 몸은 반이 끌려들어간 상태였다.
“보르가스… 부탁해.”
이리프는 슈의 옆에 앉아있는 보르가스에게 양손을 모으고 부탁했다. 보르가스와 이리프의 눈이 마주치자 보르가스는 일어나 하사바가 떨어뜨린 대검을 입으로 문 후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그리고는 힘차게 하사바를 향해서 대검을 내던졌다. 날아오는 대검을 바라보며 하사바는 언제나 일그러져 있던 자신의 얼굴을 폈다. 입술은 가볍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