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96화
지크는 6일째 카루펠과 단둘이 길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카루펠이 가는 곳으로 갈 뿐‥.
날씨가 흐린 편이어서 지크는 별 생각 없이 카루펠의 등에 누워 풀을 씹으며 흐린 하늘을 감상했다. 그는 사실 화창한 날은 좋아하지 않는다. 적당히 구름이 낀 날을 좋아한다. 활동하기엔 적절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구름을 좋아했다. 그런 탓인지 13세까지 가장 좋아하는 군것질감은 솜사탕이었다.
얼마간 그렇게 있었을까, 지크는 똑바로 앉은 후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그것도 4일간‥ 나라 하나가 빼앗긴 상태인데도 빼앗은 나라의 군대도, 저항하자는 움직임도 없었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군. 역시 정치엔 관심을 안 두는 게 나아. 자, 카루펠. 저기 나무 아래에서 쉬어가자. 너도 피곤할 테니‥.”
나무 그루터기 아래에 앉아 카루펠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던 지크는 부럽다는 눈으로 카루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넌 먹을 풀이라도 천지에 널려서 좋겠구나. 4일째 물만 마시고 사니 머리가 핑핑 도네‥. 후우‥ 어째 뱀 한 마리도 안 지나가지‥?”
지크는 배를 쓰다듬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카루펠은 아무 소리 없이 주위의 풀을 뜯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푹 주저앉아 쉰 지 반 시간, 배고픔과 피로에 지친 지크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웅‥ 이러면 곤란한데‥ 쳇, 모르겠다‥.”
결국 지크는 양 팔로 팔베개를 한 채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잠에 빠져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4일 동안 한잠도 자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고, 물만으로 끼니를 때웠으며, 평상시보다 배에 달하는 긴장감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는 자신의 전방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속으로는 단잠에서 깬 탓에 짜증이 났지만 겉으로는 잠자는 척하며 기척으로만 상대방의 행동에 주목했다.
사박사박‥
기척은 살금살금 풀을 밟으며 카루펠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카루펠은 반응이 없었다. 웬만한 사람에겐 거친 반응을 보이는 카루펠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지크는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한걸‥? 전문 말 도둑인가 보군. 카루펠 녀석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자신의 기척을 변화할 수 있는 고수이기도 한 것 같아. 근데 정말 이상하네, 무슨 기가 이렇게 깨끗하지?’
지크는 눈을 살짝 떠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기척의 주인공은 약 14세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지크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 싶었으나 그 아이가 카루펠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그냥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아니야, 관람료로 먹을 것을 받아내는 것이 어떨까‥?’
아이는 카루펠의 검은 모피를 만지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지크는 지금의 한가로운 분위기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몇 가지 배부른 희망 사항까지 생기고 말았다. 저 아이가 아는 아이였으면, 전쟁 중이 아니었으면, 그리고 배 좀 채웠으면‥.
아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무 그루터기 밑에 누워 있는 지크를 보고 깜짝 놀라며 그 아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머, 주인이 있었구나‥?”
‘이봐, 이봐!!’
지크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으나, 아이의 다음 반응이 매우 궁금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이는 카루펠과 논 지 얼마 안 되어 무언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는지 아이가 걸어왔던 방향을 돌아보았다. 지크 역시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몇 개의 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대위님! 저기 저쪽에서 A급 마력 반응이 검출되고 있습니다!! 아, 저기입니다! 저 아이입니다!!”
군인으로 보이는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육중한 군화 발 소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크는 일어서려 했으나 계속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잡아라! 아, 저기 그루터기에 누워 있는 건달은 어떤가?”
“마력 반응‥ 형편 없습니다! 데려갈 가치가 없습니다!!”
지크는 속으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저, 저 녀석들이‥!!’
지크는 계속 눈을 감은 채 아이가 잡히기 직전에 멋지게 구해줄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판단을 뒤집어엎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친다! 발포해 버려!! 죽이지만 않으면 돼!!!”
철컥–
지크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분명 자신의 세계에서 대량 보급화되어 있는 N–27 자동 소총의 탄환 장전 소리였다. 지크는 눈을 번쩍 뜨고 아이에게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그, 그만둬–!!”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지크의 목소리에 놀란 군인은 그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총의 조준을 흐트리고 말았고, 엉겁결에 발사된 소총의 탄환은 원래 조준되었던 아이의 다리가 아닌, 아이의 몸에 직격으로 맞고 말았다. 아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고, 지크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멍하니 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제, 젠장할‥! 빌어먹을!!! 이 거지 같은 세계에 왜 갑자기 총이 등장하는 거야!!
지크는 아이에게 발포를 한 몇 명의 군인들보다, 시각적으로 확인을 하지 않고 아이를 어떻게 구해줄까 생각만 하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지크는 급히 아이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탄환은 아이의 복부와 심장을 관통하고 뒤로 튀어나간 상태였다. 살아는 있었지만 전혀 살 가능성이 없었다. 분명 탄환은 아이의 복부와 심장을 파고들면서 주위의 내장 기관을 자체에 걸린 회전력으로 휘감았을 것이었다.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지크는 그 갈색 머리 여자아이의 손을 잡으며 몸을 떨었다.
“미, 미안해‥! 내가‥ 내가 멍청한 생각만 안 했어도‥!!!”
잘 자던 지크가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들에게 소리치고 총에 맞은 아이에게 다가가 몸을 떨고 있자, 검은 옷으로 몸을 덮은 군인들의 상관으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이 자식들, 뭐하는 거냐!! 쏴 버려! A급 마법 사용자를 잃는 것보다 목격자를 놓치는 것이 더 큰일이다!!! 없애 버려!!!”
그 외침에 정신을 차린 군인들은 모두 지크에게 총구를 돌렸고, 곧 방아쇠에 손을 가져갔다.
파지직–
순간, 지크의 몸에 푸른 스파크가 잠시 번쩍이자 군인들과 그의 상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크를 바라보았다. 곧, 지크의 몸 전체엔 엄청난 양의 스파크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지크는 천천히 뒤로 돌아섰고, 파랗게 빛나는 그의 눈을 본 군인들은 질린 듯이 뒤로 걸음을 떼었다. 그것은 상관도 마찬가지였다.
“용서 못해‥! 너희들이 아니야, 나를 말이야!!”
그때, 겁에 질리다 못한 한 병사가 지크를 향해 총을 난사했고, 지크는 손바닥을 편 후 앞으로 뻗은 상태로 기를 집중했다.
부웅–
이상한 소리와 함께 앞으로 펴진 지크의 손바닥에선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체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피잉–피잉–피잉–!
수십 발에 달하는 탄환들은 그 구체 안에서 멈춰 버렸고, 지크는 그 구체를 조용히 거두며 무명도에 손을 가져갔다.
“외식, 진공역장(眞空逆掌)‥!! 그리고 끝은 아니야–!!!”
기전력을 몸에 두른 채 함께 군인들이 있는 곳을 향해 음속이 넘는 스피드로 돌진한 지크는 이를 악물며 무명도를 뽑았다. 은청색의 검광이 낮인데도 불구하고 군인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번뜩였고, 2초도 되지 않아 지크는 무명도를 넣은 후 뒤로 뛰어오르며 중얼거렸다.
“사백십사식– 난설(四百十四式–亂雪)‥!!”
푸웃–!!!
진공파에 고깃덩이가 잘리는 처참한 음과 함께, 군인들은 모조리 온몸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오직 한 사람, 대위만이 그 시체들 속에서 따뜻한 피를 맞은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아, 아아아‥!?”
거의 충격 상태가 되어 버린 대위는 지크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뒤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시체에 걸려 넘어졌고 더욱 피 범벅이 된 대위를 지크가 들어 올리며 살기를 띤 얼굴로 물었다.
“‥왜 저 아이를 납치하려 했는지 바른대로 말해 주겠어? 내가 다시 살인 충동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대위는 완전히 겁에 질린 상태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은‥! 마력이 있는 사람들을 생포해 오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어서‥!!”
“너희 상부가 누구야!!”
지크는 현재 완전 흥분 상태였다. 대위도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바른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브, 블랙 프라임의 총수님께서 특별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악마들의 힘을 빌어 만들어졌다는 데몬 게이트를 통해 이 세계로 들어왔고‥!!”
지크는 가만히 대위의 눈을 바라보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멀리 날려 버렸다. 대위는 허겁지겁 자신들이 왔던 곳을 향해 내달렸고 지크는 한숨을 후우 쉬며 아이가 쓰러진 곳으로 다시 가 보았다. 그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그 아이를 보기가 무서웠다. 너무나도 미안했다. 아이가 누워있는 장소로 한 발자국 걸어갈 때마다 지크의 표정은 점점 흐려졌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