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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97화


지크는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 소녀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혹시나 해서 혈을 짚어보기 위해 그러는 것이었지만 대기도 전에 그의 마음은 그에게 쓸데없는 짓이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하지만 난 냉정하지 못해‥.”

그는 자신의 차가운 마음에게 말하며 소녀의 혈을 짚어 보았다.

“‥?”

지크는 혈을 짚은 손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본 후 다시 소녀의 혈을 짚어 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자신의 혈을 잘못 짚은 것도 아니었다. 지크는 으악 소리를 내며 소녀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그럴 리가, 분명 관통당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는데‥!! 세, 세상에 상처까지‥!?”

소녀의 맥박은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상처도 점점 아물고 있었다. 심장도 물론 뛰고 있었다. 가즈 나이트로 개조된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회복력이라 지크는 생각해 보았다.

사실, 가즈 나이트들은 무방비 상태라면 죽기가 쉬웠다. 심장에 타격을 입어도, 머리에 관통상 이상의 타격을 입어도 죽는다. 단, 급소 이외의 부분, 즉 팔이나 다리 등 간단한 부분은 잘려도 며칠이면 깨끗이 재생이 된다. 하지만 이 소녀는 내장이 뒤틀리고 심장이 관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깨끗이 재생된 것이었다. 게다가, 잠시 후 의식까지 회복하는 것이었다.

“‥아‥?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소녀는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지크에게 소리를 쳤고, 지크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야말로 어떻게‥ 아, 아니 관두자. 나중에 묻는 게 내 머리를 위해서도 좋겠어. 네 마을은 어디니!”

지크는 소녀를 한 팔로 번쩍 안아 올린 후 카루펠의 등을 향해 뛰었다. 지크가 등에 올라타자마자 카루펠은 질주하기 시작했고 소녀는 너무나 급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당황해 하며 자신의 마을 위치를 말해 주었다.

“저, 저쪽이에요! 근데 왜요?”

소녀는 지크의 허리를 꽉 안은 채 그에게 물었고, 지크는 당연하다는 듯 소녀에게 소리쳤다.

“아까 그 시꺼먼 옷 입은 녀석들이 널 총으로 드르륵 쏜 거 기억 안 나! 네 마을이 위험하다구!!”

그러자, 소녀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지크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그럼‥!! 마을 사람들도‥ 제이아 언니도 위험해요!!! 어떡해‥ 어떡해요!!!”

소녀의 울음이 섞인 목소리를 들은 지크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에게 물었다.

“언니라는 사람‥ 미인이니?”

“‥네?”

“흐, 흘려 버려!! 빨리 가자 카루펠!!!!”

지크는 약간 불그스레 변한 얼굴을 돌리며 카루펠을 더욱 재촉했고, 카루펠은 보통 때 이상의 스피드로 소녀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질주했다.


숲을 비집고 나온 지크와 소녀의 눈에 비친 것은, 언덕 아래로 보이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선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물론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솟아오르는 연기가 아니었다. 마을의 대부분이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지크는 이를 악물며 그 참상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입을 벌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 흐흑‥! 촌장님!!! 제이아 언니–!!!!!”

소녀의 절규 속에서 지크는 더는 총소리가 마을에서 들려오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수수께끼의 군대는 철수한 듯했다. 그는 생존자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생존자는 없었다.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참혹한 시체로 변해 마을에서 뒹굴고 있었다. 소녀의 말을 들어본 지크는 죽은 사람도 상당수였지만 없어진 사람도 상당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생존자 확인을 한 지크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확인 사살도 당해 있었다. 소녀는 카루펠의 등에 엎드린 채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필요 없는 사람은‥ 그저 핏덩이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빌어먹을 녀석들‥!!”

지크는 그 수수께끼의 군대에 대해 분노에 떨며 흐릿한 하늘을 올려본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어쩐지‥ 오늘과 같은 흐릿한 하늘이 싫어질 것만 같았다.


밤이 되어서야 지크의 시체 처리 작업은 완료되었다. 혼자서 하긴 했지만 자신의 근육에 오는 피로보다 앉아 있는 카루펠의 옆에 앉아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의 마음이 더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는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았다. 시체들과 마을에 있던 땔감, 기름을 모두 섞어 한데 모아둔 지크는 주먹에서 기전력을 살짝 뿜어 기름에 불을 당겼다. 불은 매우 크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크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인 그 소녀를 안고 카루펠의 등에 올라탔다. 카루펠은 천천히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크는 자신의 앞에 앉은 소녀를 측은한 얼굴로 살짝 안아주며 말했다.

“‥네 언니‥ 꼭 찾게 될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말아.”

“‥어떻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죠‥?”

지크는 소녀가 그렇게 말하자, 깊은 곳을 찔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 소녀를 바라보았고, 소녀는 인상을 찡그린 채 울분을 지크에게 토하기 시작했다.

“오빠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그렇게 간단히 슬퍼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하지만 저에겐 15년 동안 정들었던 사람들이라고요!!! 그렇게 간단히 잊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요!!!”

지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녀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사실, 자신이 소녀에게 한 말은 매우 사치스러운 격려일 뿐이었다. 소녀는 지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흐흑‥!! 이제, 이제 전 어떡해요–!!!!! 으아아아아아앙–!!!!!!”

지크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소녀의 등을 토닥거릴 수도 없었다.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차라리 바이론 녀석처럼 미치거나, 휀 녀석처럼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얼음덩이가 되었다면 좋을 텐데‥ 젠장‥.’

그런 복잡한 심정의 두 사람을 태우고, 카루펠은 계속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해와 달이 뜨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동쪽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카루펠의 등에 똑바로 앉은 채 자고 있던 지크는 서서히 눈을 떴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한 상황에서 잤다는 것이 자신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자고 난 뒤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듯했다. 소녀는 자신의 품에 누워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열다섯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얼굴은 애 티를 벗지 못하였지만 어쨌든 여자처럼 보이긴 했다. 하지만 19세 이하의 여자는 관심조차 없는 지크였기에 이렇다 할 느낌은 없었다.

지크는 밤새도록 자신과 소녀를 등에 태운 채 걸어온 카루펠을 만져주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넌 말이긴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녀석이구나. 널 만난 건 정말 행운이야. 하지만 너랑 그리 오래 같이 있진 못할 것 같아‥.”

지크의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카루펠은 귀를 쫑긋거렸다. 하지만 지크는 그런 것엔 무감각하게 계속 말을 이었다.

“널 우리 집에 데려가면 우리 어머니하고 옆집 사람들이 뭐라 그럴 것 같거든‥. 단독주택이라 강아지나 고양이는 키울 수 있지만 말은 좀 그래. 게다가 네가 보통 커야지‥. 그리고 그쪽 세계의 풀들은 그리 맛이 없어.”

“‥헤헷, 말도 안 돼‥.”

그런 말을 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크는 자신의 앞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움찔하며 밑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품에서 자고 있던 그 소녀가 어느새 일어나 어제와는 달리 웃고 있었다. 지크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소녀에게 물었다. 어제 일은 잊은 듯이‥.

“응? 너무하잖아,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구.”

소녀는 지크가 자연스럽게 나오자, 미안한 듯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죄송해요, 어제 제가 심한 말을 해서‥.”

그러자,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내가 너라도 그 상황에선 그랬을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러면 몸에도 안 좋아지니까. 여자는 자기를 보호해 주는 남자를 위해서라도 몸을 건강하게 해야 해. 물론 몸매에도 신경 쓰면 더 좋고‥ 헤헷.”

지크가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다시 킥킥 웃으며 지크에게 물었다.

“어머, 전 지켜주는 사람이 없는데요‥? 모두‥.”

“응? 그, 그러니까‥.”

지크는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할 멋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리오처럼 사탕발림에 강하지 못한 지크였다. 지크는 결국 얼굴을 붉히며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꼬마 숙녀에겐 관심 없지만‥ 내가 지켜주지. 황송하게 여겨야 해!”

그러자 그 소녀는 약간 자존심이 상한 듯한 얼굴로 지크에게 말했다.

“꼬, 꼬마 숙녀라뇨! 이래 봬도 열다섯이라구요! 숙녀란 말은 기분 좋지만 꼬마란 말은‥!”

지크는 떫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젖내 나는 꼬마보다는 괜찮은 표현이라구‥. 지켜준다고 했으니까 넘어가 주렴 제발. 으흠?”

지크가 빙긋 웃으며 짙은 눈썹을 움직이자, 그 소녀는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아, 오빠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네요? 이름이 뭐예요?”

“‥‘성함’이라고 하면 좀 어때서‥. 내 이름은 지크, 지크·스나이퍼라고 해.”

“‥스나이퍼? 어떤 분이랑 성이 똑같은 것 같은데‥ 아, 제 이름은 [라이아]예요. 라이아·드리스. 잘 부탁해요 지크 오빠.”

지크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헷, 좋–아. 아, 마을이다! 어서 가자 카루펠!!! 하하하하핫!!!!”

둘을 태운 카루펠은 지크의 외침에 반응하며 재빨리 멀리 보이는 마을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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