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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0화


쉴 새 없이 염체와 요우시크의 공격을 피해오던 리오의 체력도 떨어져 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전법이어서 더더욱 그랬지만 요우시크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서였다. 리오는 아대로 땀을 닦을 여유도 없었다. 이마의 땀이 눈썹을 타고서 눈가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당하고 만다.

리오는 디바이너를 힘껏 휘둘러 염체 하나를 없애 보았으나 요우시크의 손에서 다시 하나의 염체가 생성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끝이 없었다.

“윽!”

순간 리오에겐 절대 절명의 순간이 닥쳐왔다. 왼쪽 눈에 땀방울이 들어간 것이었다. 느낌만으로 염체의 공격을 피하려고 했으나 워낙 순간적인 일이라서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였다. 염체의 광선은 리오의 왼쪽 아대를 스쳐 지나갔고 지나간 자리엔 붉게 타버린 살이 보였다. 리오는 몸을 뒤로 힘껏 날려서 요우시크의 공격을 잠시간 피할 시간을 만들었다. 요우시크도 지친 듯 공격이 빗나가자 그 자리에서 염체와 자신의 공격을 멈추었다.

“으윽… 꽤 강해졌군, 요우시크. 운동 좀 했나?”

리오는 땀을 닦은 후 왼쪽 팔뚝을 만져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리오의 말투는 전혀 변해있질 않았다.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일까…

“… 그 더러운 입은 변하지 않는군…”

투구에서 빛나는 요우시크의 붉은 눈이 더더욱 붉게 빛이 났다. 요우시크도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

리오는 멍하니 왼팔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회심의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좋아, 다시 덤벼봐. 이번에는 확실하게 승부를 내줄 테니…”

리오는 요우시크를 향해서 손가락을 굽혀 보였다. 곧이어 요우시크의 염체들이 성난 듯 공격을 개시했고 리오는 요우시크를 향해서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슈를 보르가스에게 업힌 이리프와 티퍼는 도적단의 본거지를 무사히 빠져나왔다. 꽃 이노를 무사히 구해올 수 있었지만 둘의 마음속엔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하사바가 마지막에 남긴 가이라스 왕실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리프… 하사바가 한 말이 진짜일까?”

이리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하사바의 표정은 진지했어. 거짓이 없었다고.”

“어쨌든 무사히 꽃을 구해올 수 있어서 다행이야. 2년간이긴 했지만… 우리 아버지와 이리프의 어머니도 건강해지시겠지?”

이리프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이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일행은 밝은 빛을 맞으며 저택의 밖에 나올 수 있었다. 마치 며칠이 지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리프와 티퍼는 기분이 좋았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자신들에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리오와 요우시크의 대결이 막판에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우시크는 무대포로 밀고 들어오는 리오의 행동에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아까전에 공격을 피했던 것과는 달리 디바이너를 이용하여 염체의 공격을 철저히 튕겨내고 있었다. 코앞까지 리오가 다가오자 요우시크는 급히 염체들의 조종을 멈추고 검을 잡았다. 요우시크의 조종에서 벗어난 염체들은 오직 공격만을 하기 시작했다. 염체들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약간의 빈틈을 보이게 된 리오에게 요우시크의 로제바인이 춤을 추었다.

“… 나의 승리다!!”

요우시크는 수직으로 로제바인을 휘둘렀다. 그 순간적인 상황에 이리프와 티퍼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신경만이 리오의 위험을 알릴 뿐이었다.

푸욱-!!

살이 잘리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리오와 요우시크의 주위에 선혈이 튀었다. 그러나 요우시크의 붉은 눈은 굳어져 있었다.

로제바인은 리오의 왼쪽 팔뚝에 절반가량 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리오의 붉은 피가 검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지만 리오의 표정에선 고통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넌 백 년 전에도 그 소리를 했었지…”

리오는 디바이너를 오른손에 잡고 하늘 높이 쳐들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승리다!”

리오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디바이너로 요우시크의 어깨를 내리쳤다.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요우시크의 갑옷이 통째로 잘려나갔고 요우시크는 신음소리 없이 쓰러졌다. 요우시크의 염체들도 불이 꺼지듯 공기 중에서 사라졌고 로제바인도 더 이상 붉은빛을 띄우지 않았다.

“힘들군 힘들어… 아이구.”

리오는 한숨을 쉬면서 왼팔에 박힌 로제바인을 뽑았다. 힘줄이 잘려나간 듯 왼손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있었다. 이리프와 티퍼는 곧바로 리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신기한 듯 리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 뭘 봐?”

“어떻게… 왼팔이 잘려나가지 않았죠? 돌도 그냥 자르던 사람이던데…”

리오는 팔뚝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응… 뼈에 걸렸어.”

그 말을 들은 이리프와 티퍼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슈의 일이 생각난 듯 저쪽에서 가만히 서 있는 보르가스를 불렀다.

“아, 그리고 슈가 이상해요.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요.”

“몸을?”

리오는 천천히 다가오는 보르가스를 바라보았다.

“어, 너희들 재주도 좋구나. 보르가스를 굴복시키다니…”

보르가스는 슈를 리오의 곁에 가만히 눕혔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인 후 슈의 팔목을 살짝 잡고 진맥을 하기 시작했다.

“음… 심각한 걸? 척추가 탈골되었어.”

척추가 탈골되었다는 말을 들은 이리프의 눈이 커졌다. 그쪽에 약간은 지식이 있어서였다.

“그렇다면… 슈는 이대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데?”

리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둘을 안심시켰다.

“아냐,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접골시키면 괜찮을 거야. 하지만 신경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몇 주간은 침대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거야.”

말은 쉬웠다. 그러나 손목 뼈도 아닌 척추를 다시 접골시킨다는 건 보통 의술이 아닌 다음에야 수술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수술을?!”

리오는 한숨을 쉬며 이리프의 입을 막았다.

“훗, 기공술로 처리가 된다고. 걱정하지 마.”

리오는 슈를 엎드리게 한 후 오른쪽 손바닥을 그녀의 등에 가져갔다.

“잠시만 참으라고… 아참, 느낌이 없지.”

리오의 손바닥에서 푸른색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곧 슈의 척추에선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여태껏 무표정으로 누워있던 슈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아야…! 아프잖아요!!”

슈의 몸이 다시 움직임과 동시에 요우시크의 시체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두터운 투구에 두 개의 붉은빛이 다시 감돌기 시작했다.

... 역시 두려운 존재군... 리오 스나이퍼... 백 년 전보다 강해진 것 같아...

요우시크의 눈길은 리오에서 이리프에게로 바뀌어졌다.

그건 그렇고 저 엘프 소녀... 내 눈이 맞다면 아마 <엔션티드 엘프>일 것 같은데... 좋아, 황제께서 좋아하시겠어. 기회를 노리자.

리오는 보르가스의 푸른 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좋아,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거라. 좀 쉬라고.”

보르가스는 고개를 끄덕인 후 연기로 화하며 슈의 한쪽 나이프로 스며들어갔다.

“이, 이게 어떻게…?”

슈는 보르가스가 들어간 나이프를 만져보며 신기해했다.

“슈가 보르가스를 그 검으로 제압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들어가는 거야. 다른 사람이 제압하지 않는 한 영구적으로 슈의 하인 노릇을 해줄걸? 그리 약한 편도 아니니 좋지 뭐.”

리오는 티퍼와 함께 임시 들것을 만들고 슈를 거기에 눕혔다.

“임시라서 약간 흔들리긴 할 거야. 하지만 참으라고.”

리오는 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슈는 고개를 끄덕인 후 가만히 눈을 감았다.

“… 흠… 복잡하군…”

리오는 자신의 머리를 세차게 흔든 후 한숨을 쉬어 보았다. 이럭저럭 도적단의 일은 정리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타르자 이하 육마왕들이 행동을 다시금 개시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백 년 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군… 제기랄.”

리오는 낮게 중얼거리며 도시를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석양이 저택을 앞에 두고 서서히 지는 모습이 다른 때처럼 보기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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