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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1화


이리프와 티퍼를 퍼니오드의 밖으로 배웅해준 리오는 슈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갔다. 여행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병원에 들어서자 모험에 실패하고 부상까지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기운이 빠지거나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리오는 혀를 차면서 슈가 쉬고 있는 병실의 문을 열었다. 슈는 누운 채로 천정만 쳐다보고 있었다.

“슈, 등은 좀 어때?”

리오는 슈가 누워있는 침대의 옆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슈에게 물었다. 슈는 일어나려고 했으나 가만히 있으라는 리오의 말에 다시 똑바로 누웠다.

“음… 약간 아프긴 하지만 괜찮아요. 그런데 어쩐 일로…”

리오는 약간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으며 낮게 말했다.

“음… 잠시 동안만 나 혼자서 여행을 할까 해서 말이야. 물론 도망치려는 건 아니라구, 태라트님을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슈는 리오가 그 말을 할 것 같아서였는지 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요. 그래야 국왕 폐하도 마음이 한결 편해지실 거에요. 그리고 레나님도 수정상에서…”

“그런 말은 그만해. 내가 지금 나만의 목적을 위해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

리오는 엄숙한 표정으로 슈를 보면서 말했다.

“슈는 아직 무리하면 안 돼. 만약에 그랬다가는 죽을 때까지 전신 불구가 될 거야. 적어도 한 달간은 이렇게 있는 것이 좋아.”

“…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속을 썩히고. 그럼 여기서 기다릴게요.”

리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다리라는 말도 한 적이 없다구. 한 달 후에 말이야…”

리오는 말을 하면서 품속에 있던 대륙의 지도를 꺼내었다.

“여기 이 도시 보이지? 야룬다라는 곳이야. 여기서 만나자구.”

“그럼 리오는 한 달 동안 뭘 할 거예요?”

리오는 슈에게 귓속말을 했다.

“음, 어제 슈가 말했지? 지금의 가이라스 왕은 진짜가 아니라고. 그걸 좀 알아보려고 말이야. 게다가 중간에 태라트 님이 목격되었다는 곳도 있고 말이지. 수도로 가볼 예정이야.”

“그래요…”

슈는 이 남자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고집 불통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를 붙잡고 싶은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건투를 빌겠어요, 리오.”

리오는 고맙다는 듯 그녀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 그럼 한 달 후에 보자구.”

리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한 후 병실의 문을 나섰다. 그가 나서자 슈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바보 같은 남자…”

중얼거리는 그녀의 양 볼에는 반짝이는 것이 흘러내렸다.


리오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나서 짐을 가지러 자신이 묵고 있던 여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과 모험가들의 패기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 어, 왼팔이 회복되었네.”

리오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움직이지 않던 왼손에 힘을 주었다. 거뜬히 움직여주었다. 아대도 깨끗이 수리된 상태였다.

“… 이제 이런 내 육체에도 신물이 나는군… 벌써 750여 년이나 살아와서 그런가…?”

가즈 나이트로서 공간을 이동하며 악을 징벌해오기도 하고, 때로는 선과도 싸워온 그도 이제는 지쳤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져본 것도 500년이나 된 리오였다. 자신의 감정에 들어있는 사랑이란 공백을 느낄 때마다 생각하는 일이었다.

“훗, 쓸데없는 소리. 이런 생각을 계속 가지면 주신께서도 화를 내실 거야, 아마.”

리오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손에 무엇인가 날카로운 것이 잡혔다. 그는 그것을 조용히 꺼내어 보았다. 유리같이 투명한 에메랄드빛의 수정 조각 – 레나의 옷자락이었다.

“쳇… 다시는 레나란 이름의 여자를 잃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 몇 개월 전인데… 벌써 이 꼴이니 원.”

한탄하듯 중얼대며 리오는 수정 조각을 햇빛에 비추어 보았다. 에메랄드빛이 얼굴에 비쳐왔다.

“아마… 이 색이 아니었으면 당신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을 거야, 아마…”

리오는 생각했다. 허리까지 오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진 해맑은 미소의 여인… 레나를 두 번째로 보았을 때의 일이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상황에서 약간 화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깨우던 그녀에게 잠시간 착각을 했던 자신의 모습이 생생하게 비춰졌다. 자신의 무엇이 그리도 좋았는지 언제나 자신을 걱정해주었으나 오히려 걱정을 만들어준 그녀. 레나를 생각하며 리오는 웃음을 지었다.

“… 약속은 꼭 지킬 거야.”

잠시 옛일을 회상하던 리오는 부둣가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빨간 갑옷을 입은 소녀와 마법 사용 고깔모자를 쓰고 남색 외투를 입은 소년이 선원들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저 녀석들……?!”


“리카! 그러니까 돈은 내고 타자고 했잖아!!”

클루토는 앞서가는 금발의 땋은 머리 소녀, 리카에게 외쳤다.

“너만 아니었으면 걸리지도 않았어, 바보야!!”

있는 힘껏 배에서 뛰어내려 도시로 들어가려던 둘은 힘 좋은 선원들에게 멀리 가지 못하고 결국엔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이 녀석들! 감히 우리 배에 무임승차를 하다니, 간이 크구나!!”

머리에 헝겊을 두른 우락부락한 얼굴의 선원이 리카를 붙잡고 소리쳤다. 리카는 허공에 매달려서 손발을 휘저어 보았지만 도저히 도망칠 수 없었다.

“이거 놔! 너희들 우리에게 이랬다가 리오에게 걸리면 한 방에 끝이라구!!”

클루토는 선원에게 간청을 하였다. 확실히 리카와는 상반된 존재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예요, 그러니 제발…”

선원들은 큰 소리로 얼버무렸다. 그런 말은 많이 들어봤다는 표정이었다.

“웃기지 마! 돈을 내기 전에는 절대 못 가!!”

한창 그들이 입씨름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선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이, 아이들에게 너무 심한 거 아니요?”

선원은 뒤를 돌아다 보았다. 자신보다 약간 큰 키의 사나이였다.

“뭐야, 당신도 이 녀석들과 한패거리야?”

리오는 선원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눈살을 찌푸렸다.

“흠… 한패라면 한패죠, 친구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투라 생각한 리카와 클루토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앞에 나타난 사나이는 자신들의 영원한 구세주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리오!”

클루토는 리오의 이름을 부르며 기뻐했다. 설마 이렇게 리오를 빨리 만나리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던 터여서 더욱 그러했다.

“들어보니 이 아이들이 무임승차를 했다는데… 요금이 얼마요? 내가 내줄 테니.”

리오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선원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더니 황당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이 나라 돈인 ‘자르’로 해서 1,200만 주시오. 아니면 이 아이들을 팔아버릴 테니까. 어서 주시오.”

그 말을 들은 리카는 길길이 뛰었다. 자르로 1,200만이란 돈은 10명의 사람들이 대륙 간을 20번 왕복할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인 것이었다. 리오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꺼낸 선원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후훗… 농담이 지나치시군. 봐줘서 80자르면 어떻소?”

선원은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고통이 어깨를 엄습해 와서였다.

“아… 아아아…!!”

선원은 입만 벌리고 고통을 호소할 뿐이었다. 그러나 리오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는 못하였다.

“아, 허락을 안 하시는 것 같네…?”

결국 선원의 어깨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울리자 동료 선원들은 리오를 말리기 시작했다.

“미, 미안하오! 그냥 농담일 뿐이었다구!! 자, 자, 40자르만 받지, 어떤가!”

리오는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선원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선원은 흐느적거리며 동료의 부축을 받아 배로 향했다.

“자, 여기 40자르 있소.”

리오에게 돈을 건네받은 선원들은 곧바로 자기들의 배를 향해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갔다. 리카와 클루토는 팔짝팔짝 뛰면서 고마움과 반가움을 표시했다.

“리오! 이렇게 사람이 반가워 본 적은 난생처음이어요!!”

하지만 더욱 반가움을 표시한 것은 리카였다. 리오의 가슴에 뛰어들며 울기 시작했다. 리오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중얼댔다.

“얘네들이 한 달 못 봤다고 이상해졌네…?”

반강제로 리카를 떼어놓은 리오는 그들과 함께 주점으로 향했다. 리오가 앞에서 한바탕 활극을 벌였던 그 주점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머, 기사님이시네?”

주점의 소녀는 활짝 웃으며 리오를 반겨주었다. 클루토는 잠시간 그 소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소녀가 머리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하자 그도 얼굴을 붉히며 목례를 했다.

“빨리 안 와!!”

리카는 여전히 염치없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과하는 건 클루토인 것도 여전했다. 셋은 의자에 앉아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카와 클루토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 이야기를 듣고서 리오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 왕께서… 유폐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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