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12화
“늦다니요, 뭐가요 오빠?”
“응? 으응‥.”
지크의 뒤에 탄 라이아가 물어오자,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다가 카루펠의 등에서 내리며 로드 덕에게 말했다.
“어이, 할아버지. 저 먼저 가볼 테니 천천히 따라오세요. 그리고 카루펠, 라이아를 좀 부탁한다. 말 모양으로 말고 사람 모양으로.”
지크의 말을 들은 카루펠은 희미한 빛과 함께 작아지는가 싶더니 곧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검은 장발에 키가 큰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라이아를 등에 업은 상태로 지크의 앞에 무릎을 굽혔다.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 라이아님은 제가 목숨을 걸고‥.”
그러나, 지크는 카루펠의 얘기도 듣지 않고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오른 지점을 향해 지면 위를 마치 새가 날듯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카루펠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지크가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때, 카루펠의 등에 업혀 있던 라이아가 카루펠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내려줘요, 지크 오빠가 꼭 업고 있으라는 말은 안 했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라이아님.”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테크는 인상을 구기며 배가 아픈 듯 투덜대기 시작했다.
“젠장, 나도 저런 전천후 말이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도 봐주고‥.”
순간, 로드 덕의 지팡이의 끝이 테크의 복부를 강타했고 테크는 욱 소리를 내며 로드 덕을 바라보았다. 로드 덕은 인상을 쓴 채 테크를 꾸짖기 시작했다.
“지금이 부러워할 때냐? 어서 우리도 가봐야지!! 아까 솟은 불기둥은 어림잡아 지름이 400미터 가까이는 되었단 말이야, 그런 불기둥이 솟을 정도면 애들 불장난으로 설명될 일은 아닐 테니 우리가 나서야지. 자자, 다른 사람들도 빨리 움직여!”
테크는 복부를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투덜대었고, 아슈탈, 리마 등은 로드 덕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바신은 조금 전에 돌아온 레디와 함께 신경을 곤두세우고 노엘의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이론도, 슈렌도, 방금 전에 급히 나간 이오스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였다.
“흐음‥왜 돌아오지 않지? 설마 여신 셋이 다 나타난 건‥?”
사바신이 팔봉신 영룡으로 바닥을 툭툭 내리치며 중얼거리자, 레디가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맞아, 그럴지도 몰라. 그렇다면 우리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 순간, 노엘의 집 문이 벌컥 열렸고 사바신과 레디는 각자의 무기를 들고 문을 연 괴한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집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당하지 않을 것 같은 강대함을 발휘하던 바이론이 왼팔이 날아간 채 만신창이가 되어 문을 열고 서 있는 것이었다.
“세, 세상에! 괜찮으세요 바이론 경!!”
상처를 입은 바이론에게 제일 먼저 달려간 사람은 다름 아닌 레프리컨트 여왕이었다. 린스와 미네아, 베르니카, 노엘 등 왕실과 관련된 사람들은 여왕의 의외의 반응에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모두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레프리컨트 여왕이 아직 나이가 31세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이론은 눈을 움찔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온 레프리컨트 여왕을 손으로 살짝 밀고서 말했다.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게 좋아 여왕 마마. 내 피가 옷에 튈 테니까‥.”
여왕은 무슨 소리인가 궁금해하며 뒤로 몸을 움직였다. 그녀가 뒤로 물러서자 바이론은 끊어진 왼팔에 힘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왼쪽 가슴, 목, 어깨 등에 굵은 힘줄이 무수히 솟아 올랐고 그 모습은 린스로 하여금 저절로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푸웃–!!
순간, 무언가 바이론의 왼팔 단면 부위에서 튀어나왔다. 검붉은 근육 덩어리였다. 오른팔과 비슷한 길이로 뻗어 나온 그 근육 덩어리는 회색 연기와 함께 점차 팔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피부 역시 재생되어갔다. 연기가 걷히고 나서, 바이론은 완전히 회복된 자신의 팔을 움직여 보았다. 관절마다 뚜둑거리는 뼈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바이론의 왼팔이 재생되는 모습을 본 린스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노엘을 향해 중얼거렸다.
“‥예상대로 괴물이었어‥.”
이윽고, 바이론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팔을 주무르며 모두에게 말했다.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어졌다.”
그 말에, 사바신과 레디는 깜짝 놀라며 바이론에게 소리쳤다.
“뭐라고!! 무슨 소리야 바이론!!!”
“무슨 소리긴 무슨 소리냐, 일이 반쯤은 망했다는 말이다. 추가로 더 이상 이오스님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어졌다. 이오스님은 우리들을 살리시려고 스스로 저들에게 몸을 던지셨으니까.”
사바신, 레디를 비롯한 일행의 분위기는 곧바로 무거워졌다. 이제 그들이 기댈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이론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동방으로 간다. 어차피 저들은 오늘 우리를 완전히 마무리 지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저들이 힘을 다시 비축하는 사이 우리는 동방에 있는 <신벌의 기둥>을 단 하나라도 지켜야 해. 동방이란 곳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곳보다는 낫겠지. 그런 곳이라면 귀찮은 짐도 맡겨두고 활동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순간 린스가 발끈하며 바이론을 향해 소리쳤다.
“지, 짐이라니 무슨 소리야!!”
그러자, 바이론은 킥킥 웃으며 말했다.
“‥크크팰‥아니 다행이군. 사실 이번 일은 누구를 보호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특히 공주 너와 여왕 마마는 더하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저 신장들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해. 아니, 그보다 더할지도‥. 크크크크‥.”
바이론의 말은 옳은 것이었다. 사실 가즈 나이트를 빼고서 신장 한 명과 대결하려면 일행이 엄청난 희생을 당할 것이 뻔했다. 린스는 분함에 몸을 떨었고, 노엘은 한숨을 쉬며 린스를 다독거려 주기 시작했다. 그때, 여왕이 일행의 앞에 서며 말했다.
“‥바이론 경의 말이 맞습니다. 사실 지금 가즈 나이트를 제외한 우리들은 짐이 될 뿐이에요. 짐이 되었다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이 먼 트립톤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 이분들께 고마워해야 해요. 린스, 내 말을 알겠니?”
“….”
린스는 말이 없었다. 그러자 여왕은 조용히 린스의 앞에 다가와 린스를 안아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남의 나라가 되어 버린 레프리컨트 왕국 여왕으로서가 아니라, 양 엄마이긴 하지만 네 엄마로서 부탁하는 말이란다. 린스야‥.”
그 말에, 린스는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안고 있는 여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엄마‥?”
“그럼 그럼, 양 어머니도 얼마나 좋은 분이 많은데. 헤헤헷‥.”
순간 열린 문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코 밑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씨익 웃고 있는 지크의 모습이 슈렌과 함께 눈에 들어왔다.
“지크!”
지크의 모습을 본 순간 미네아와 마키, 루이체가 동시에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지크는 양 주먹을 불끈 쥐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오‥아직 내 인기가 식지 않았군, 헤헤헷‥역시 나에게도 광명이 있는 것인가? 하하하핫‥욱!”
순간, 무언가가 지크의 뒷머리를 강타했고, 지크가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리자 그에게 길을 막혀 있던 슈렌이 별 표정 없이 들어오며 바이론에게 말했다.
“여신과 신장들은 모두 사라졌다. 우리가 확인하고 오는 길이야. 이오스님도 역시‥그리고 그 이외의 적은 없어.”
그 말을 들은 바이론은 다시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 말대로 아직 희망이란 것은 있을지도 모른다. 이오스님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해주신 것이 있으니까.”
바이론은 자신의 은회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오스가 마지막으로 만져주었던 부분이었다. 그러자, 그쪽에서 밝은 광체가 튀어나왔고, 그 광체는 점점 커지며 희미한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이오스의 잔영이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저를 믿어주신 여러분께 할 말은 이것뿐이군요. 하지만‥제가 끌려갔다 해도 여러분은 희망을 잃지 마세요. 태양이 뜨는 곳‥동방으로 계속 가 주십시오. 밤이 끝날 때가 가까이 오면 여명이 있는 법. 저의 아이인 여명을, 여러분 마음속의 여명을 찾아보세요. 모두‥힘을 내시길‥.」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빛덩이는 점차로 사라져 갔다. 지크는 뒷머리가 아직도 아픈 듯 손으로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여명을 찾으라고?”
바이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며칠 후‥로드 덕 등과 합류하여 식구가 늘어난 일행은 한 명, 아니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동방으로 가는 상선에 몸을 실었다. 서방 대륙에 남은 사람은 지크. 그리고 카루펠이었다. 한사코 자신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라이아 때문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꼭 보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에 지크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다시피 하며 라이아를 겨우 떼어 놓을 수 있었다. 그가 남게 된 이유는 서방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 ‘여명’ 때문이었다. 그가 자처하기도 했지만‥.
텅 빈 노엘의 집에 혼자 남게 된 지크는 소파에 누우며 한숨을 쉬어 보았다. 약간의 먼지 냄새가 나긴 했지만 홀가분하기도 했다.
“‥괜히 다 보냈나‥마키 녀석이나 루이체라도 남겨둘걸‥에이, 어차피 벌어진 일, 시간이 해결하겠지 뭐‥.”
슈렌은 까마득히 멀어져 이젠 보이지 않게 된 서방 대륙 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는 과연 신이라는 존재 없이 자신들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후우‥.”
슈렌은 실로 오래간만에 한숨을 쉬어 보았다. 그때, 그의 코에 익숙한 향기가 풍겨왔다. 커피의 향이었다. 슈렌은 루이체겠지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음? 너는‥?”
자신에게 커피를 타 준 사람은 루이체가 아니고 지크가 자신에게 특별히 떠맡겨 버린 라이아라는 아이였다. 라이아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슈렌을 향해 힘겹게 커피잔을 올린 채 말했다.
“히힛‥드세요, 커피 타는 것은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이니까요.”
“….”
슈렌은 말없이 커피잔을 받아 든 후 살짝 맛을 보았다. 자신에게 루이체가 타다 주는 그 맛과 똑같았기에 슈렌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맙구나. 루이체에게 배운 거니‥?”
라이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예, 사실은요. 헤헷‥. 그 언니가 배에서 내리면서 슈렌 오빠한테 커피를 그렇게 타다 드리면 좋아하실 거라고 그랬거든요.”
“…!!”
슈렌은 커피잔을 든 채 서방 대륙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배를 돌리기엔 늦었고, 자신 혼자만이 그쪽으로 날아갈 처지도 못 되었다. 슈렌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커피를 살짝 들이켰다.
“‥지크가 알아서 하겠지‥.”
슈렌의 옆에 다소곳이 선 라이아는 순간 또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혼잣말을 했다.
“아 참, 마키인가 하는 오빠도 루이체 언니랑 같이 내렸는데‥?”
“…!!!”
슈렌은 다시 한번 급히 서방 대륙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다시 커피를 들이켰다.
“‥불쌍한 녀석‥.”
“예? 누가요?”
“‥아냐. 아무것도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