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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14화


지크가 움직이려는 찰나, 어디선가 날아온 연막탄이 터지며 지크와 넬이 있는 공원 중앙을 연기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살기에 의해 움직이려던 지크는 그 연막탄의 냄새를 맡고 순간 정신을 차렸고, 그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무명도는 공명을 멈추며 예전과 같은 파란색을 띠었다.

“‥화학 연막이 아니야, 중국식의 화약 연막‥그렇다면 린 챠오!!”

냄새를 계속 맡던 지크는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인 얼굴로 그렇게 소리쳤고, 그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자욱한 연기를 뚫고 한 명이 천천히 지크와 넬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무표정에, 긴 적갈색 머리를 위로 묶어 내린 큰 키의 글래머 타입 여성이었다. 그녀의 어깨 견착 장갑엔 BSP라는 글자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조각되어 있었다. 중국계 한국 지부 BSP 대원이자 지크의 동료인 린 챠오였다.

“한 달 동안 어디 가고 뭐했지?”

오래간만에 지크를 보자마자 그녀가 내뱉은 말은 이것이었다. 원래대로 정신이 돌아온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헤헷‥바쁜 일이 있어서‥그런데, 넌 잡혀가지 않은 거야?”

“저런 바보들에게 잡혀갈 정도면 BSP를 하지도 않았어. 옆의 꼬마 아가씨는 누구지? 설마 너에게 납치당한 민간인?”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넬을 슬쩍 챠오에게 밀었고, 넬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듯 활짝 웃으며 명랑하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네! 저는 BSP 미국 지부 사관학교 생도인 15세 넬·에렉트! 잘 부탁드립니다!!”

“‥어서 빠져나가자고, 바보.”

챠오는 넬의 자기소개를 듣는 둥 마는 둥 넘기며 지크에게 말했고, 지크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척을 최대한으로 지운 채 공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같이 빠져나가면서, 넬은 자신의 말을 약간 무시한 듯한 느낌을 주는 키 180cm 정도의 이 린 챠오라는 여자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매우 궁금해졌다. 물론 BSP겠지만‥.

적외선 장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블랙 프라임 병사들은 결국 셋이 빠져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였고, 연기가 대충 빠진 뒤 셋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병사들은 상관으로부터 내려질 문책에 시름 어린 한숨을 쉬며 천천히 본부로 돌아갔다.

멀찌감치 빠져나간 셋은 편의점으로 들어가 숨을 돌렸다. 편의점에 들어가자마자 린 챠오는 등에 멘 작은 가방에서 옷가지를 꺼내며 화장실로 향했고, 지크는 전해질 스포츠 음료 세 개를 사서 하나는 넬에게, 하나는 자신의 옆자리에 놓은 후 자신도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넬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지크에게 물어왔다.

“선배, 저 린 챠오라는 선배 어떤 사람이에요? 지크 선배가 꽤 반가워하는 것 보니 대단한 여자 같은데‥.”

그 말에, 지크는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음료 캔을 탁자에 놓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나이는 올해로 20세‥챠오가 16세 때 내가 그녀에게 실수를 한 가지 했지. 그걸 앙갚음하기 위해 BSP가 되었고, 중국인이면서 한국 지부로 온 특이한 녀석이야. 키하고 몸을 봐서 대충 알겠지만, 여자면서도 근접 전투 능력이 BSP 중 나 다음이지. 물론 차이는 많이 나지만, 헤헤헷‥. 중국인이니까 중국 무술의 달인인 건 당연한 일이고‥그 외엔 별로 대단한 건 없어. 음‥가슴이 큰 거도 들어가나?”

“‥시끄러워 바보.”

지크는 움찔하며 자신의 옆쪽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온 린 챠오가 지크의 옆에 앉아 음료를 들고 있었다. 짙은 눈썹에 초롱초롱한 검은색 눈동자, 그리고 흑갈색의 긴 머리까지는 정말 동양적인 미인이었지만,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와 큰 키는 같은 여자인 넬에게도 위협적이었다.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챠오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하하‥신경 쓰진 마 챠오. 그건 그렇고, 수배령인가 체포령인가 하는 빌어먹을 것이 전 세계에 내려졌다는데, 어떻게 걸리지 않고 이 프랑스까지 올 수 있었어?”

챠오는 대답 없이 음료를 들이킬 뿐이었다. 무안해진 지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넬에게 돌렸다.

“얜 원래 이래, 이해해 주렴 넬.”

“예? 예‥.”

그때, 음료수를 다 마신 챠오가 입을 열었다.

“뭘 먹고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즉시 답변을 바라다니,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군 바보. 어쨌든 대답은 해 줄게. BSP가 해체된 직후, 부장님께서 우리를 소집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어. 세계의 암흑 조직 블랙 프라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이야. 그들이 UN의 고위 관직까지 마수를 뻗은 것 같으니 각자 국내 내지는 해외로 흩어지라는 말도 하셨지. 결국 우리는 해산이 되었어. 케빈은 고향인 호주로, 헤이그 선배는 외동딸과 함께 한국 내 어디론가로 여행을 떠나셨고, 리진은 집에 그냥 있겠다고 했고, 루이는 역시 고향인 미국으로 갔어. 난 보다시피 세계 여행을 하고 있고. 하지만 사이키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해산된 지 얼마 후 BSP 체포령이 내려졌고, 동료들의 그 이후 소식은 몰라. 처크 부장님이 구속되셨다는 확실한 정보 말고는‥.”

그 말에, 지크는 인상을 구기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 챠오에게 물었다.

“처크 할아버지가 구속을!?”

챠오는 별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TV에도 나왔지. 어디에 수감되셨는지는 나도 몰라.”

“젠장, 망할 녀석들‥!!!”

처크·켄트 부장은 지크의 양어머니인 레니의 삼촌이었다. 그러므로 지크에겐 할아버지뻘이 되는 양 친척이었다. 앞에 ‘양’자가 붙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의 일이어서 지크는 당연히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런 지크의 모습을 보며, 챠오는

“‥처크 부장님께서 세계 여행을 떠난다는 나의 말을 들으셨을 때, 만약이라도 널 만나면 이걸 전해주라고 하셨어.”

“‥할아버지가?”

챠오는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려 반투명 비닐봉투에 들어있는 어떤 물건을 꺼내었다. 그것을 건네받은 지크는 즉시 비닐봉투에서 그 물건을 꺼내었다. 특수 합금 제질에, 반달형으로 둥글게 휘어진, 표면에 <LAST RADIANCE>라 양각으로 새겨진 옷 장식용의 손바닥만 한 메탈 플레이트였다.

“어쨌든 널 만났으니 다행이군. 자, 난 이제 볼일이 없으니 이만 가겠어.”

챠오는 곧 일어섰고, 지크는 왠일인지 간다는 챠오를 배웅하거나 붙잡을 생각은 않고 그녀에게 건네받은 메탈 플레이트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챠오는 더 이상 말없이 편의점의 자동문을 거쳐 거리로 나갔다. 편의점이 점점 멀어지고,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챠오는 뒤를 돌아보며 쓸쓸히 중얼거렸다.

“‥부장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뜻이야‥. 그럼 안녕‥.”

그렇게 말을 바람에 흘리며 챠오는 골목을 돌았다. 그 순간, 그녀는 숨이 멎어오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제네럴 블릭의 최신형 전투 로봇인 BX-03 다섯 대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챠오는 내색하지 않고 그대로 뒤를 돌아 오던 길을 다시 거슬러가기 시작했다. 로봇에겐 오다가 마는 사람은 표적이 아니었다. 그녀가 내심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병사 중 한 명이라도 보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꽤 오래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챠오는 안심을 하며 한숨을 쉬어 보았다.

“이봐! 거기 가는 키 큰 여자!! 잠깐 이리 올 수 있겠나!!”

“…!”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그리 귀여워해 주지 않았다. 병사의 목소리를 들은 챠오는 조심스레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었다. 주머니 속에 숨겨진 전투용 너클을 손에 착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후 그녀는 뒤로 돌아섰다. 다행히도 병사 네 명이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100인 대련 최단 기록 세계 3위 보유자인 그녀에겐 총을 든 네 명이란 누워서 떡 먹기였다.

“무슨 일이시죠?”

그녀의 물음에 병사들은 음흉한 웃음을 띄우며 서서히 접근해 왔다. 별 중요한 뜻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이 아님을 안 챠오는 화도 났었지만 솔직히 안심이 되었다.

“아니, 별것 아니고‥우리하고 시간 좀 내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응? 우린 외로운 병사들이라고‥.”

“그래 그래‥히히히힛.”

챠오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쪽에 골목이 있음을 확인한 챠오는 빙긋 웃으며 그 골목을 병사들에게 가리켰다.

“‥어때요, 저쪽은요.”

그러자, 병사들은 단숨에 OK를 하며 챠오와 함께 그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깊숙이 들어간 챠오는 뒤로 돌아서며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벌써 상의를 벗는 병사도 있었다. 챠오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자, 시작해 볼까 바보들?”

“바, 바보들?”

퍼직–!!

챠오의 입에서 갑자기 나온 거친 말에 당황한 병사 중 한 명이 챠오의 손에 면상을 잡힌 채 머리를 좌측 벽에 찍히듯 충돌당했고, 그 병사는 이내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너, 너!? 보통 여자가 아니구나!!”

동료가 일순간 그렇게 당한 것에 병사들은 정신을 차리며 총에 손을 가져갔으나 전 BSP 중 두 번째의 접근전 전투 능력을 지닌 린 챠오의 앞에선 무의미한 것이었다.

“헙–!”

몸과 거의 일직선에 가깝게 올라가는 챠오의 유연한 하이킥이 두 번째 병사의 턱을 강타했고, 병사는 총을 장전하지도 못한 채 턱뼈가 부러지며 동료의 머리를 넘어 뒤로 나가떨어졌다. 당황한 두 명의 병사는 총끝을 챠오를 향해 올렸으나, 챠오의 쌍 장타가 그들의 손가락보다 더 빨랐다. 각각 복부에 기력이 실린 장파를 맞은 병사 두 명은 항문과 입에서 피를 뿜으며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완전한 내장 파열이었다.

“‥바이오 버그들보다 싱겁군.”

손에 장착한 특수 소재의 너클을 뺀 챠오는 즉사한 병사들의 시체를 넘어 서서히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그 순간, 유압 모터 소리와 함께 골목의 앞을 거대한 무언가가 가로막았다. BX-03이었다. 그 전투 로봇은 챠오를 포착한 뒤 전자음의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군관 살해죄‥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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