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2화
“뿐만이 아니고… 칠호장 분들과 이름난 신하 분들도 모조리 감옥에 갇히셨어요. 그분들을 구출하고 영주들을 몰아내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모두 무산되고 저희들만 간신히… 정말 죄송합니다.”
리오는 가만히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씁쓸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군. 그래, 바이칼 녀석은 어찌 됐니?”
리카는 손목에 턱을 괸 상태로 덤덤히 말했다.
“음. 레나 언니가 없어진 날부터 보이지 않았어. 다른 곳으로 떠난 것 같아.”
리오는 바이칼이 없어졌다는 말에 눈을 감았다.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드래고니스로 갔겠지… 그럼 수정상이 된 레나님을 찾은 사람은 없었니?”
클루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도요. 누군가가 가져간 것이 틀림없어요. 하지만 영주들의 손에서 파괴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요.”
그들의 대화는 소녀가 주문받은 음료수를 가져오자 잠시 멈추었다. 그 소녀는 가면서 리오에게 한 번 더 인사를 하였다. 클루토는 부러운 듯 리오를 쳐다보았다.
“음… 귀여운 소녀야. 그렇지 않니, 클루토?”
갑자기 기습 공격을 받은 클루토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 그게 저…”
“너, 열여섯 살이라고 했지? 그러면 나이도 맞겠는데? 저 애 말이야 한 열네 살에서 열다섯 살로 보이니까.”
클루토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리카의 눈초리가 따가워서였다.
“그, 그런데요, 슈 장군님은 어떻게 되셨어요?”
“으음… 척추에 부상을 당해서 한 달 동안 움직이면 안 돼. 그래서 병원에 떼어놓고 나만 혼자 수도에 가려는데 우연히 너희들을 만난 거라고. 아, 도중에 너희들 또래의 소년 한 명과 엘프 한 명을 도와주었지, 그리고 굉장한 이야기를 들었어.”
굉장한 이야기란 말에 클루토와 리카의 눈은 커졌다. 리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정말 굉장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어서였다.
“클루토, 너 이 전설에 대해서 알고 있니? <세 왕과 한 남자, 두 여자가 죽으면 마황제의 꿈은 깨진다> 말이야.”
클루토는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 스승님께 들어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200년 전의 전설이니 관심은 갖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과 관련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이 가이라스 왕국의 국왕이 진짜가 아니라는 말을 들어서 말이야. 만약에 가이라스 왕이 죽었다면 그 전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해서…”
클루토는 심각한 표정으로 리오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도 그렇겠군요… 현재의 가이라스 국왕이 가짜라면 그것도 큰일 중에 하나겠고요.”
“왜?”
현재 이 세계를 나누어 통치하고 있는 말스왕국, 가이라스 왕국, 그리고 로하가스 제국의 세력 범위는 제국이 5, 그리고 말스 왕국과 가이라스 왕국이 각각 2와 3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스 왕국과 가이라스 왕국은 거의 영구 동맹을 이루고 있어서 세력비는 5 대 5라고 보아도 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가이라스나 말스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동맹을 파기한다면 언제나 세력 확장을 노리고 있는 제국에게 커다란 기회가 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클루토의 친절한 설명을 들은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일이었군… 생각보다 더.”
리오는 아무래도 자신의 진짜 임무보다 더 큰 임무가 생긴 것만 같았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마치… 커다란 함정에 빠진 느낌이에요.”
“두 개의 일이 한꺼번에 진행되어가고 있거나 한 가지 일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리오는 자신의 앞에 놓인 우유를 들이킨 후 말을 이었다.
“백 년 전 이 세계를 멸망에서 구해낸 말스 1세와 그의 동료의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니?”
리오의 물음에 리카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봐, 그건 말스 왕국의 학원에선 교과서나 다름없는 역사책이야. 그런데 그건 왜?”
“쓰여있는 대로 그 당시에도 네 개의 왕국이 제국의 계략에 의해 분열되어 혼란한 시기였다. 그때 하리튼에 살고 있던 소년 말스 1세가 어떤 사나이의 도움으로 가스트란 제국의 황제를 물리치기 위해서 반란군을 조직하여 수많은 전투 끝에 황제를 없애는 데 성공했지, 마지막 부분이 책마다 다르게 나오긴 하지만.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똑같아. 아직 분열되지 않은 것 빼고는 말이야.”
“그렇다면 리오는 지금의 혼란이 무엇인가에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리오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제국의 침략 외에 더 큰 무엇인가가 있다. 거의 확실해.”
그러나 리카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연이겠지, 설마 가스트란 황제가 다시 부활하기라도 하겠어?”
우유를 다 마신 리오는 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걸 확인해 봐야지. 자, 마저 마시고 출발하자.”
주점을 나선 리오 일행은 긴 여행에 앞서 준비를 갖추기 위해 상점으로 향하였다. 워낙에 모험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물건을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치료약에 피로 회복제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포션은 이 대륙에선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중에 하나였고, 갖가지 독약과 마비 회복약도 여행자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물건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단단히 장비한 리오 일행은 슈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인사를 했다. 리카와 클루토를 본 슈는 안심된 표정이었다.
모든 것을 마친 리오 일행은 시끄러운 도시 퍼니오드를 천천히 나섰다.
“어디로 갈 거야, 꺽다리?”
리오는 지도를 꺼내 들며 손가락으로 지도의 중심에서 벗어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디파스란 작은 마을이야. 아마 여기서 이틀 정도는 걸어야 할 것 같아.”
“그래요…?”
클루토는 남쪽으로 보이는 바다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운이 없으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감상은 리카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봐, 멍하니 뭐 하는 거야, 클루토. 그러니까 멍청이란 말을 듣는 거라고.”
클루토는 머리를 흔들면서 리오와 리카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그러면서 리카를 잠시 잠깐 쏘아보았다. 날 멍청이라 부르는 사람은 너 혼자일 뿐이야, 말괄량이… 하지만 전혀 악의는 없는 클루토만의 생각이었다.
2장 – 2
분명히 시간적으로는 낮이 확실했다. 하지만 로하가스 제국 영토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부하바자 성은 언제나 두꺼운 구름에 의해 밤과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 성벽은 벽돌 안의 철 성분으로 인하여 예전에는 회색을 띠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현재에는 공기 중에 포함된 수분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철이 산화되어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성벽에 피가 발라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성의 주인이 좋아하는 색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 성의 주인은 화사하게 꾸며진 침대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는 도중에도 그녀는 여전히 강대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타르자의 가느다란 눈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흑색 유리 구슬이 놓여있는 탁자 앞에 앉았다. 유리 구슬은 마력이 깃들여진 음색으로 주인을 부르고 있었다. 타르자는 손으로 가볍게 그 구슬을 쓰다듬었다.
“뭔가, 나의 수면을 방해할 정도의 큰일인가?”
타르자는 표독스러운 눈초리로 구슬 안에 비춰진 검은 갑옷의 사나이를 쏘아보았다.
“훗, 아마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올 걸? 당신이라면 알겠지… 엘프 사이에서 천만 분에 하나꼴로 태어나는 <엔션티드 엘프>에 관해서 말이야.”
타르자는 손을 움직이지 않고 술병을 잔에 기울이며 말했다. 매우 우습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걸 모르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겠나, 요우시크. 그런데 왜?”
요우시크는 투구 속에서 빛나는 자신의 붉은 눈을 더더욱 붉게 비추며 말했다.
“그 엔션티드 엘프가 나에게 있다.”
타르자는 순간 여유 있게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공중에서 술을 따르던 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요우시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간단히 얻었다. 그 망할 놈의 리오 녀석 때문에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엘프들의 저항이 약간 있었긴 했지만 괜찮았어. 영원히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으니까.”
타르자는 싸늘한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후… 로제바인에게 먹이를 듬뿍 주었겠군.”
“엘프들의 피는 고급이라 남김없이 빨더군, 후하하하…”
요우시크가 웃으며 몸을 들썩대자 갑옷 사이에서 투기가 흘러나왔다. 검은색의 마투기였다.
“좋아 좋아… 그 엘프만 있으면 카오스 에너지를 더더욱 빨리 모을 수 있을 거야. 그럴수록 가스트란님의 부활도 빨라지겠지. 내가 곧 그곳으로 가겠다, 기다리고 있어. 설마 사기를 치는 건 아니겠지, 요우시크?”
요우시크는 다시 웃었다.
“하하하하하…!! 너나 온다면서 오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해라.”
“알았어, 그럼 조금 후 보자, 요우시크.”
타르자는 다시 구슬을 매만졌다. 구슬은 원래대로 검은색을 띠게 되었다.
“엔션티드 엘프라, 정말 우리로선 행운이군. 호호호… 기대하고 있어라, 가즈 나이트 리오 스나이퍼. 너에게 100년 전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줄 테니 말이야…”
타르자의 몸 주위에 붉은색의 오오라가 피어올랐고 곧 그녀의 옷은 붉은색의 마법 사용 수의로 바뀌었다.
“자아… 가봐야겠지…?”
타르자는 양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공간 이동의 주문이었다. 주문이 끝나자마자 타르자의 모습은 오오라의 잔형을 남긴 채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