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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3화


“엣취-!!”

이틀간의 노숙으로 인해 리카는 고약한 감기에 걸려 있었다. 리카는 리오에게 약을 만들어달라고 때를 썼지만 리오에겐 그런 재주는 없었다. 클루토도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지만 병에 대해선 걸려본 경험밖에 없었기 때문에 몸조리나 잘하라는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럴수록 리카의 감기는 더더욱 심해져만 갔다.

“거봐, 입이 곱지 못하니까 그런 거라구. 우리는 안 걸렸는데 너만 걸렸잖아.”

리오가 놀리는 투로 말하자 리카는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그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리오에게 덤비기 시작했다.

“뭐라고!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멍청이 꺽다리야!!”

클루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리카를 말렸다.

“… 그건 사실이잖아.”

“뭐야!”

리카는 클루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화살의 방향을 클루토에게로 돌렸다. 그들의 실랑이를 웃으면서 지켜보던 리오의 표정이 바뀐 것은 클루토가 쓰러지기 바로 전이었다. 리오는 둘의 입을 커다란 손으로 막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조용히! 뭔가 지나간다.”

바둥거리던 리카도 바뀐 리오의 표정을 보고서 숨을 죽였다.

리오는 왼손에 묻은 리카의 콧물을 닦으며 조용히 수풀로 들어갔다. 리카와 클루토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리라고 말해두었다. 리오는 수풀 속에서 시력을 확대시켰다. 밤에도 짐승처럼 환하게 볼 수 있는 다기능의 눈이었다.

그의 눈에는 사람의 몸에 돼지의 머리를 하고 있는 오크족 군대의 행렬이 들어왔다. 검과 도끼 등의 무기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걸로 보아 어딘가를 약탈하려는 심산인 듯했다. 원래 종족성이 호전적이기에 이상할 것은 없었다.

“지켜봐야겠군. 돌아가자.”

리오는 바람 소리를 내면서 리카와 클루토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리오는 리카와 클루토에게 돌아오자마자 망토를 벗어 클루토에게 부탁했다. 클루토는 리오의 망토가 꽤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들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한 시간 후에 디파스로 와라. 알았지?”

리오는 허리께에 매달고 있던 디바이너를 등에 단단히 착용했다. 망토를 벗은 리오의 차림은 반팔에 갈색으로 된 가벼운 옷이었다. 드러난 리오의 우람한 팔 근육에 리카는 감탄하는 듯 입을 벌렸다. 만지면 터질 듯은 아니었지만 검술가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정도의 근육이었다. 리오는 아대를 감싸고 있는 가죽 끈을 단단히 동여매며 말했다.

“자, 난 먼저 디파스로 가겠다. 내가 시키는 대로 여기서 기다려, 알았지?”

둘은 고개를 끄덕였고 리오는 바람같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리카는 클루토가 들고있는 리오의 망토를 보았다. 굉장히 따뜻할 것 같았다.

“클루토. 들고 있기 힘들지 않니?”


리오는 나뭇가지를 밟으며 몇 분 전에 지나간 오크족들을 뒤따라갔다. 그러나 숲속에서 발견한 오크족이라고는 길목을 지키는 단 두 마리뿐이었다. 리오는 그들이 있는 나무 바로 위를 향해 가볍게 뛰었다. 오크족 두 명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둔한 종족인데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으로 나뭇잎들이 소리를 내었기 때문에 눈치채기도 힘들었다.

“훗!”

리오는 왼쪽의 오크족에게 바람같이 뛰어들며 등을 강타했다. 타격을 입은 오크족의 등에선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오크족은 이내 움직이지 못하였다. 오른쪽의 오크족은 동료가 당하여 쓰러질 때쯤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리오가 그 오크족의 등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리오는 오크족의 목을 팔로 조이며 몇 가지를 물었다.

“허튼짓을 해도 상관없고 말을 안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면 이 세상과는 영영 이별이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오크족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너희들은 어디로 가는 길이었나?”

오크족은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디, 디파스…!”

“왜?”

“사, 사람, 사람들의 마을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는 게 우, 우리의 임무…!”

“임무?”

워낙 오크족들이 가끔씩 마을에 나타나 난동을 부리는 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명령에 의해서 마을을 약탈한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임무라니…

“좋아, 누가 시켰나?”

“……”

오크족은 그 질문만은 대답 못하겠다는 행동을 취했다.

“호오… 생각이 잘 안 나는 모양인데?”

리오는 씨익 웃으며 오크족의 목을 휘감은 팔에 힘을 가했다. 오크족의 갈색 피부가 색을 더하기 시작했고 오크족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생각나나?”

오크족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오크족이 말할 수 있게 팔에 힘을 뺐다.

“가, 가이라스 왕국의 신하…!”

“진짜인가?”

거짓말을 잘하는 오크족이었기에 리오는 다시 한번 물었다. 오크족의 대답은 같았다. 리오는 오크족을 풀어주었다.

“좋아, 가거라. 그리고 아직 오지 못한 친구들이 있으면 오지 말라고 전해. 위험할 테니까.”

오크족은 두터운 목을 아픈 듯이 쓰다듬으며 숲속으로 사라졌다. 리오는 쓰러져있는 오크족의 시신을 숲속으로 던진 후 디파스 마을을 향해 힘껏 달렸다. 마을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15분쯤 달리던 리오는 언덕 너머에서 연기가 솟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내가… 늦은 건가?”

언덕의 정상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밑의 광경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오크족들은 무차별로 사람들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 도망치는 젊은 여자들도 잡아다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었다. 마을의 3분의 1은 이미 잿더미가 된 상태였다.

“이… 이럴 수가!!”

리오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지켜보고 있을 리오는 아니었다.

“으윽… 이 자식들!!”

리오는 디바이너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마을을 향해 맹렬히 뛰었다. 마치 초원을 달리는 붉은 갈기의 숫사자와 같았다.

“없애버리겠다!!”


오크족들은 갑자기 나타난 검투사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친구를 아직 불타지 않은 마을 쪽으로 보내고 나서 오크족과 홀로 싸우고 있었다. 오크족의 공격이 그 청년의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그 청년의 얼굴에 튀었고 청년은 거칠게 내뱉었다.

“으윽… 빌어먹을!!”

그 청년의 다리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체력의 소모가 너무나도 심했고 연기에 의해 산소의 공급도 충분히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숫적으로 너무나 불리한 싸움이었다.

“우워어-!!”

청년의 등 뒤로 접근한 오크족은 그 청년의 등을 들고 있던 곤봉으로 거세게 후려쳤다. 청년은 결국 힘없이 쓰러졌고 오크족들은 그 청년을 완전히 포위했다. 그러다 한 마리의 오크족이 이상한 느낌을 받고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푸앗!

살과 뼈가 분리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오크족의 육체는 땅으로 무너졌다. 동료의 피를 뒤집어쓴 오크족은 어디선가 나타난 불청객을 주시했다.

“자식-!!”

리오는 거세게 왼쪽 주먹으로 옆에 있는 오크족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 오크족은 계란이 터지듯 찢어지며 공중으로 날았다. 순간 오크족들은 자기들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직시하게 되었다. 칼과 도끼 등의 무기는 무의식적으로 생명을 일초라도 더 연장시키기 위해 휘두르는 것일 뿐이었다.

그 청년의 주위에 있던 오크족들의 숨이 멈추는 것은 잠깐이었다. 리오의 모습과 전투 방식은 이제껏 사람들에게 보여진 것과 매우 다른 것이었다. 잔악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행동이었다. 시체가 제대로 된 오크족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오크족들의 머릿속에는 약탈이란 단어가 사라졌다. 그저 목숨을 위해 도망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약탈한 사람들과 물건들도 모조리 버리고 도망쳤다.

“크… 으윽…!!”

리오는 피에 젖은 디바이너를 땅에 꽂았다. 침통한 표정이었다.

“… 또다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간다니… 도대체 왜… 백 년 전과 다를 바가 없잖아…!!”

리오는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가와도 리오는 그 상태로 계속 있었다. 그가 일어서게 된 것은 클루토와 리카가 왔을 때였다. 둘은 갑작스러운 분노에 의해 충격을 받은 리오의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다.

“리… 리오?”

클루토는 리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래도 리오는 반응이 없었다. 리카는 리오의 망토를 걸친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 미안하구나.”

리오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디바이너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칼집에 넣었다.

“잠시 정신이 혼란했어. 옛날에 비슷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리오는 여유 있게 옷을 털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클루토가 느끼기엔 아직도 뭔가가 이상한 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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