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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32화


오후 여섯 시.

오른쪽 뺨에 반창고를 붙인 채 다시 시내를 돌아다니던 지크는 잠시 쉬기 위해 인도 끝에 선 길다란 주차 관리기에 몸을 기대고 아직 내용물이 많이 들어있는 콜라 캔을 이빨로 문 채 어제의 일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 훨씬 줄어든 크기, 초고속 이동을 할 때마다 들리는 이상한 소리. 생물을 능가하는 유연성과 탄력. 잠시간이긴 하지만 무중력 상태를 만들어 내는 능력.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인 거대 늑대였다.

‘젠장, 왜 그딴 괴물이 하필 지금 설치고 돌아다니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이일 저일로 바쁜데. 엇, 가만‥만약에‥.’

속으로 계속 불만을 토하던 지크에게 순간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늑대 녀석이 블랙 프라임에서 장난으로 만든 실험용 생체 병기라면‥잘하면 더한 괴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니야? 진짜라면 이건 베를린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닌데?’

“흐우‥.”

지크가 콜라 캔을 입에 문 채 계속 한숨만을 연발하자,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지크는 그런 시선을 느끼고 있지 못했다.

“어머, 어디 가니 쿠키–! 돌아와!!”

그때,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지크의 정신을 다시 돌아오게 했고 지크는 콜라 캔을 입에 문 채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검푸른색의 큰 개가 줄이 풀린 채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듯 지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지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콜라 캔을 주차 관리기 위에 올려놓고 그 개의 앞을 가로막았다.

“욧, 애완동물이 도망가면 애완을 못 받지. 안 그‥.”

지크가 앞을 가로막은 순간, 달려오던 그 개는 순간 멈춰 서며 지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개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지크는 하던 말을 멈추고 개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 녀석‥!?”

행인들은 달려가던 개와 주차기에 기대어 서 있던 건달 사이에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자 숨을 죽이며 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갑자기 도망가면 어떡해 쿠키!! 아, 쿠키를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개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사이에 끼어들며 감사를 표하자, 지크는 얼른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살짝 흔들어 주었다.

“아, 아니야. 귀여운 숙녀님에겐 당연히 해줘야지, 헤헤헷. 그건 그렇고‥그 개의 이름이 쿠키니?”

아이는 개의 목덜미를 만져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과자를 하도 좋아해서 저하고 제 친구들이 쿠키라고 이름을 붙여줬어요. 만난지는 얼마 안 되었는데 지금은 제일 친한 친구예요. 아, 늦어서 이만 가봐야 하겠네요, 안녕히 가세요.”

아이가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한 후 개와 함께 가던 길을 다시 가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크는 피식 웃으며 아이를 불러 세웠다.

“아, 잠깐 얘야! 아버지 성함 좀 알 수 있겠니? 혹시 아는 분 따님이 아닐까 해서 그러는데‥.”

그러자, 아이는 다시 뒤를 돌아보며 선뜻 대답해 주었다.

“그래요? 저희 아빠 성함은 <마르틴·가르웨이>랍니다. 아시는 사이세요?”

아이의 물음에, 지크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아니구나, 처음 들어보는 성함이야. 미안하다 얘야, 잘 가거라.”

“예, 안녕히 가세요.”

아이는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고, 개는 아이와 함께 가며 조용히 지크를 돌아보았다. 지크는 보라는 듯 주먹을 꼭 쥐며 중얼거렸다.

“헤헷‥리턴 매치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군. 이번엔 필히 박살을 내 주지‥!”


밤 11시. 지크는 나갈 준비를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예전부터 그랬다. 상대하기 어려운 녀석을 만날 때마다 그는 장갑을 죄며 즐거워했다. 사물에서부터 급수가 높은 바이오 버그, 전투 로봇에 이르기까지 그가 전투에 대한 본능적인 즐거움을 느낄 땐 어김없이 쓰러져 갔다. 지크 자신은 별로 느끼고 있지 못했지만,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동료들은 지크가 전투를 즐기는 그런 모습에 대해 내심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 동료 중 한 명인 리진은 약간 걱정이 되는 얼굴로 지크에게 다가와 충고하듯 말을 건넸다.

“지크, 괜찮겠어? 이번엔 상대가 좋지 않은 것 같은데‥게다가 너도 몸에 상처를 입긴 한 상태잖아. 위치도 알았으니 나중에 찾아가는 것이‥.”

그러자, 지크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헤헹, 그 늑대 녀석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내가 오늘 밤 찾아간다는 것을 말이야. 만약 안 가면 내가 피하는 것과 다름없지. 내가 지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알잖아. 그리고, 지금은 어제의 부상 때문에 질 이유도 없어.”

지크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같이 그를 지켜보던 헤이그가 짧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럼 펜릴을 없앤다고 치고, 그 녀석을 잠시간이라도 진짜 애완견처럼 기르던 아이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네 말을 들어보니 서로 꽤 친한 것 같던데 말이야. 애라서 빨리 잊혀진다고는 하겠지만‥.”

그 말에, 장갑을 죄던 지크의 손은 멈추고 말았다. 자신만만하던 그의 얼굴에도 그늘이 지고 말았다. 이성과 인정엔 약한 지크의 모습이었다.

“‥그럼 선배님은 방법이 있으신가요?”

지크의 질문에, 헤이그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자네보다 25년이나 더 산 나지만 그 질문엔 대답하기가 그렇군. 예수님이시라면 어떤 대답을 하셨을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헤이그는 고민에 빠질 때마다 그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창밖을 바라보던 지크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씁쓸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예수라는 분은 옛날에 믿음과 인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셨다고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헤헷‥방법이 생각났어요.”

그러자, 헤이그와 그의 딸 엘렌, 그리고 리진은 의외라는 듯 지크를 바라보았다. 사실 지크가 자신들에게 먼저 방법을 말하는 적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

지크와 동갑이면서도 대학에서 판단력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엘렌은 지크가 말한 것을 가만히 생각하다가 흠칫 놀라며 지크에게 소리쳤다.

“지, 지크‥설마‥?!”

엘렌이 자신의 생각을 약간이라도 예상했다 느낀 지크는 즉시 손으로 루즈가 짙게 발라진 그녀의 입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딸에 대한 일이라면 물불을 마다하는 헤이그라도 지금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크는 예전처럼 밝게 웃으며 말했다.

“헤헷,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구.”

그 짧은 말을 끝으로, 지크는 무명도를 다시 허리에 묶고 집을 나섰다. 한참을 걸어가던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약도가 그려진 종이 쪽지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자아‥방해꾼도 없겠다, 화끈하게 놀아 볼까? 헤헤헷‥.”

지크의 모습은 절전 때문에 칠흑으로 변해버린 도심의 어둠 속으로 계속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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