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35화
멀린이라는 이름에 헤이그의 얼굴은 퍼렇게 질렸고, 사정을 모르는 다른 셋은 헤이그의 이상한 반응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의를 벗고 있는 지크는 왼손으로 오른팔 근육을 주무르며 헤이그에게 물었다.
“선배님, 이 할아버지 아세요? 설마 유명한 악당?”
“응? 아, 아니야‥.”
그러자, 헤이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상은 말하지도 않았다. 노인은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난 러시아의 생체 병기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오. 「베히모스 프로젝트」라 불리는 국가의 1급 기밀 작업을 맡았는데‥그 베히모스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 창조물이 바로 「펜릴」이오.” (프로토타입, Prototype: 이 글에선 원형이란 뜻)
그 말에, 지크는 움찔하며 멀린에게 소리치듯 물었다.
“그, 그럼 할아버지가 바로 저 괴물단지를 만들었다는 소리예요?”
멀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소 젊은이. 지금 말하지만, 베히모스 프로젝트는 원래 러시아 BSP에서 바이오 버그의 원형질인 일명 <MOTHER>라 불리는 존재를 찾아 없애기 위해 짠 것이었다오. 그래서 그쪽 분야에 대해서 이름이 높았던 일본의 후지바라·와카루 박사와 나, 두 명 중 한 명을 팀장으로 초청을 하려 했다오. 그러나 와카루 박사는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다는 설이 있어 내가 팀장이 되었다오. 물론 뽑히지 못한 와카루 박사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모른다오. 어쨌든‥펜릴이 완성되고 최고의 생물 병기가 될 베히모스가 완성될 무렵, 프로젝트는 자금 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취소가 되었고, 완성된 펜릴은 수면 프로그램이 가동된 채 핀란드 BSP의 비밀 기지에 보내졌다오. 베히모스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고‥.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어째서 저 펜릴이 엉망으로 변한 명령 프로그램을 가지고 이 베를린에 나타났는지 이해가 안 가는구려. 그러나 내가 프로그램을 복원해서 잠시 산에 숨어 있으라고 시한부 명령 프로그램을 주입했기 때문에 다시 날뛸 일은 없을 것이오. 이제부터는 쿠키라는 평범한 개로 살아갈 것이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지크는 이제 펜릴과 싸울 일이 없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거대 괴물과는 잘 싸우지 못하는 그로서는 다행이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멀린은 얘기를 이었다.
“‥펜릴을 저 지경으로 만들 정도라면 당신들은 BSP가 확실하겠구려. 이 세상에서 그럴 일을 할 사람들은 BSP뿐이니까. 독일 지부 BSP들이오?”
리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들은 한국 지부 BSP입니다. 제 옆에 있는 여자만 그냥 민간인이지요.”
“아‥그랬구려. 좋소‥오늘 내가 해줄 말은 끝났다오.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해줄 수 있는 말이 더 많아질 것이라오. 물론 그리 즐거운 얘기는 아니겠지만‥. 그럼 금발의 청년만 좀 남아주고, 다른 사람들은 가주겠소? 단 둘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노인의 그 말에, 헤이그를 비롯한 세 명은 노인에게 인사를 한 후 지크에게 리진의 친척집으로 오라는 말을 남기며 다시 불이 꺼져가는 길을 향해 사라져 갔다. 그들이 간 것을 확인한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노인에게 물었다.
“자, 하실 말씀 하세요 이제. 그런데 말씀하실 것이라는 게 도대체‥?”
「‥이 방법으로 말하세 젊은이.」
노인이 입을 움직이지 않고 자신에게 말을 건네자, 지크는 순간 정색을 하며 노인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당신 진짜 보통 노인이 아닌 것 같은데‥누구지?」
지크의 물음에, 노인은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멀린이라고 소개했잖나. 흠‥그럼 자네가 누군지 알아맞혀 볼까? 몸의 기를 전류로 바꾸는 것을 보니‥바람의 가즈 나이트 같구먼. 이름은 지크·스나이퍼, 맞나?」
피잉–
무명도의 차가운 칼날이 멀린의 목에 와닿았다. 지크는 그 상태로 멀린에게 물었다.
「‥어째서 내 진짜 직업하고 이름을 아는지 좀 듣고 싶은데 할아범‥으흠?」
멀린은 자신의 긴 수염 앞에 칼날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이래 뵈도 난 천년 이상을 이 세계에서 산 존재라네. 신의 가호를 받아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말이지. 하긴, 자네는 마법이란 개념과는 가장 동떨어진 존재니 나를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다른 건 둘째 치고,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 자네와 같은 가즈 나이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부탁하는 것일세.」
지크는 약간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명도를 거두었다. 멀린은 한숨을 쉬며 지크를 바라보았다.
「아까 말했던 베히모스‥다른 BSP들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그랬네만, 사실 베히모스는 완성이 되어 있다네. 펜릴은 내가 300년의 시간을 투자하여 만든 것이지만, 펜릴을 모체로 한 베히모스는 700년의 시간을 투자한 내 생애 최대의 역작이자 최강의 생체 병기지. 펜릴의 능력은 자네 친구인 용제의 직속 부대 전룡단의 단장들과 비슷하지만, 베히모스의 능력은 용제 아래의 4대 용왕과 맞먹거나 그 이상이라네.」
지크는 순간 멍한 얼굴로 멀린을 바라보았다. 그럴 것이, 사실 용제, 즉 바이칼이 인간의 모습일 때의 힘은 리오나 바이론, 휀과 맞먹었고, 원래 모습인 드래곤의 형태로 변했을 때의 힘은 혹성이라는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아래 4대 용왕의 힘 역시 숫자로 친다면 천문학적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 그런 괴물을 왜!!」
멀린은 자신의 하얀 장발을 쓰다듬으며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지크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의 괴물이라야 <MOTHER>를 쓰러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네.」
그 말에, 지크는 결국 팔짱을 낄 뿐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독에는 그보다 더한 독을 써야 한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멀린은 계속 말했다.
「베히모스가 펜릴처럼 발견되어 난동을 부릴지는 의문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막을 수 있는 것은 가즈 나이트인 자네들뿐이라네. 만약 날뛴다면 꼭 막아주게나.」
그러자, 지크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거부하고 나섰다.
「싫어요 싫어!! 그 개 한 마리도 처리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보다 더한 괴물을 상대하라고요? 죄송하지만 사양하죠!」
「하하핫, 어렵진 않을 것이네. 나도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지크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멀린은 자신의 품 안에서 펜릴에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계산기형 컴퓨터를 내주며 말했다.
「이걸 베히모스가 있는 5km 안에서 작동시키게. 베히모스의 인공 두뇌와 그 안에 들어있는 커맨드 시스템에 로그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니까 말일세. 당연히 움직임을 멈출 수도 있고, 자폭도 시킬 수 있지. 설명서는 안에 첨부되어 있다네. 그 설명서대로 하면 될 거야.」
그러자, 지크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핫!! 좋아요 좋아!!! 역시 세상 오래 살아본 할아버지 다우시군요!!!”
지크가 쾌히 응하며 컴퓨터를 받아들자, 멀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주의할 점은 만약 작동을 잘못 시키는 날엔 더욱 더 폭주를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네. 그것만 주의하면 된다네. 자‥이제 그럼 난 가보겠네. 지금 찾고 있는 분이 있어서 말일세.”
지크는 손바닥만 한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으며 멀린에게 물었다.
“예? 누군데요?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멀린은 천천히 밤길을 걸어가며 말했다.
“그렇진 않지만‥내가 모셨던 그분과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려고‥하하하핫‥나중에 또 보세‥.”
“알았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멀린의 뒤에서, 지크는 빙긋 웃은 채 손을 계속 흔들어 주었다. 멀린이 사라지자, 지크는 배가 고픈 듯 복부를 쓰다듬으며 밤길을 혼자 걷기 시작했다. 상의를 벗은 상태라 그는 약간 쌀쌀한 감을 느꼈는지 손으로 몸을 가끔씩 비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