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5화
루오바이더 수도원의 장 수녀인 키세레는 솜과 약병들을 들고 다른 수녀들과 함께 병실로 향하고 있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장 수녀가 된 키세레는 이 수도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원장의 눈에 들어온 여자였다. 원장은 그녀의 모습에서 풍기는 성스러움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일화도 전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매사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어서 남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리고 깨끗한 것을 이상스럽게 중요시해서 그녀를 도와주는 수도사와 수녀들의 진땀을 뺄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마법의 솜씨와 치료술만큼은 다른 지방의 의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굉장한 것이었다. 가이라스 왕국에서도 그녀를 수도로 초청한 적이 있지만 환자가 더 급하다는 말 한마디로 명예를 저버리는 일면도 가지고 있었다.
키세레는 잠들어있는 환자들을 의식해 조용히 문을 열고 병실에 들어섰다.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 중 깨어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표정을 되도록이면 밝게 하려고 노력했다. 몇 명의 환자들의 상태를 지켜본 키세레는 수녀들에게 치료의 지시를 내리고 다른 환자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으음? 저 남색 옷을 입고 있는 소년은 누구죠?”
그녀는 리카의 곁에서 같이 잠든 클루토를 가리키며 옆의 수녀에게 물었다.
“아, 저 소년은 어제 키세레님께서 데리고 오신 소녀의 친구인 듯합니다.”
“그래요…?”
키세레는 클루토에게 다가와 그를 바라보았다. 약간 허름해진 옷에 의지한 채 잠든 클루토의 모습을 본 키세레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수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거의 웃음을 보이지 않던 키세레가 처음 보는 소년을 보고서 웃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포 좀 가져다줄래요? 이 소년이 추울 것 같아서요.”
수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포를 키세레에게 가져다주었다. 모포를 받은 키세레는 손수 모포를 클루토에게 덮어주었다.
“이야아…”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본 한 남자 환자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차갑게만 느껴졌던 그녀가 이제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역시… 미인은 미인이야.”
일을 끝마친 수녀들은 키세레에게 보고를 했다.
“아, 다 했나요? 그러면 먼저 가보세요. 전 좀 더 환자들을 살피겠어요.”
“예?”
일을 마치면 바로바로 나가던 키세레였는데 오늘은 좀 이상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수녀들은 공손히 인사한 후 병실을 나섰다.
“후우…”
키세레는 클루토의 옆에 앉아서 견습 마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후 중얼거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 티퍼… 살아있을까…?”
클루토는 몸을 움찔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어느새인가 모포가 자신의 몸에 덮여져 있었다.
“누구지…?”
클루토는 모포를 덮어준 누군가에게 감사를 마음속으로 표시한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이 꽤나 지난 것 같았다. 엎드려서 잔 탓인지 등이 꽤나 뻐근했다. 기지개를 한껏 켠 클루토는 아직도 자고있는 리카를 바라보았다.
“굉장하군 정말… 어, 이건 또 뭐지?”
클루토는 창문 밖에서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클루토는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키세레란 수녀는 어디 있나! 내보내지 않으면 여기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겠다!!”
갑옷 차림의 바짝 마른 남자는 모여있는 수도사와 수녀들에게 검을 뽑아 들이대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의 부하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수도원의 입구를 막은 채 서 있었다. 원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을 보고서 당황해했다.
“이, 이게 무슨 짓들입니까! 이건 레호아스 신에 대한 모독입니다!!”
비쩍 마른 남자는 원장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신이고 뭐고! 우리들은 가이라스 폐하의 명령을 받았을 뿐이다! 어서 그 요망한 계집을 내놓으란 말이다, 안 그러면 전원을 반역죄로 처형시킬 거다!!”
그 사나이는 거칠게 원장을 밀었고 원장은 뒤로 밀려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억지가 어디있소! 게다가 키세레 수녀님이 요망하다니요!!”
남자는 일어서지 못한 원장에게 다가와 그의 가슴을 발로 짓눌렀다. 원장은 괴로워하며 숨을 헐떡거렸다.
“그렇게도 죽고 싶나, 앙? 우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가이라스 왕국의 정예 부대, <템플 나이트>란 말이다!! 건방진 노인 같으니라고…”
템플 나이트란 이름을 들은 원장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가이라스 왕국의 정예 기사단 중 하나인 템플 나이트가 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원장이었다.
“테, 템플 나이트… 어떻게 템플 나이트가…?!”
남자는 원장에게서 다리를 치운 후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자, 다섯을 세겠다!! 그때 동안 나오지 않으면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는다!! 하나!”
그는 손가락을 꼽으며 뒤에 있는 기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기사들은 각자의 검을 뽑아들기 시작했다.
“둘!”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이미 포위된 상태였기에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셋!”
남자가 셋을 셀 무렵, 수도원에선 키세레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밖으로 뛰어나왔다. 원장과 수녀들, 그리고 수도사들은 그녀를 말렸지만 이미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여기에요! 여기란 말이에요!! 어떻게 가이라스 왕국의 템플 나이트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죠?”
남자는 키세레를 보고서 손을 내렸다. 그러자 밖에 있던 기사들은 검을 거두었다.
“우리는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다! 자, 순순히 나와서 포박을 받아라!”
“그만둬!!”
남자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남색 옷을 입은 한 소년이 분노가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저 꼬마는!”
클루토는 오른손에 스파크 주문을 넣은 채 템플 나이트들에게 소리쳤다.
“기사라는 사람들이 목적도 밝히지 않고 사람을 잡아가는 게 어디 있어요! 목적을 밝혀요! 그리고 당신도 검을 거둬요!!”
남자는 클루토의 행동이 당돌함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했다.
“건방진… 감히 우리들을 방해할 셈이냐!”
클루토는 당당하게 말했다.
“약한 자를 돕는 것이 남자의 진정한 할 일이라고 제 친구에게 배웠어요! 이건 방해가 아닙니다!!”
남자는 분노에 얼굴을 붉히며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이봐! 저 꼬마 녀석을 내 발밑에 가져다 놔라! 그리고 저 여자를 빼고는 모조리 죽여버려라!!”
기사들은 다시 검을 빼들고 수도원의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냥 놔둘 것 같아!!”
클루토는 손에 넣어진 스파크 주문을 기사들에게 뿜어냈다. 앞열의 기사 세 명이 몸을 떨면서 쓰러졌고 뒷열의 몇 명도 그들에게 걸려 넘어졌다. 클루토는 계속 주문을 넣으며 기사들과 맞섰다.
“저, 저 녀석 어떻게 주문을 저렇게 빨리 사용할 수 있지?!”
전음 주문법을 모르는 그 남자는 이를 갈며 계속 지켜보았다.
“하지만 스파크 따위의 주문에 템플 나이트들은 쓰러지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기사들은 쓰러졌다가도 바로 일어서는 것이었다. 클루토는 모르고 있었지만 템플 나이트들의 갑옷엔 마법 방어력을 높여주는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6급 이하의 주문엔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이다.
“… 하아앗!!”
클루토는 양손으로 커다란 호선을 그렸고 그의 손을 따라서 불꽃덩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5급 주문 파이라만이었다.
“받아라앗!!”
기사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방패로 클루토가 던진 주문을 방어했다. 하지만 마법의 불꽃은 돌에도 붙어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불꽃에 휩싸이게 되었다.
클루토는 다시 한번 주문을 사용하려고 호선을 그렸다. 그러나 팔이 더 이상 움직여주지가 않았다. 정신력을 극한으로 소모한 탓이었다.
“아… 안 돼…!”
클루토의 그 모습을 본 키세레는 양손을 모으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일명, 성직자의 공격 마법이라 불리우는 갓스펠(참고: 노래가 아님)이었다. 그녀의 주위로 흰색의 빛이 감돌더니 곧 화살처럼 기사들의 몸에 박히기 시작했다. 갓스펠은 악마들에겐 쥐약이지만 사람들에겐 충격만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빛을 맞은 기사들은 땅바닥으로 픽픽 쓰러졌다. 그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크윽…! 어쩔 수 없지, 죽여도 좋다는 폐하의 지시니까!!”
남자는 자신의 투구를 쓴 후 키세레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기도력을 집중시키던 키세레는 전혀 무방비 상태였다.
“아, 안 돼…!!”
클루토는 마지막으로 호선을 완성시키려고 했으나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가 않았다. 이것은 클루토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받아라, 가이라스의 적!!”
남자는 자신의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의 앞에 서있는 키세레는 기도문을 읊으며 마음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