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53화
“잠깐–!!!!!”
그때, 기가 실린 듯한 엄청난 목소리가 성 안에 울려 퍼졌고, 슈렌을 향한 박수는 순간 멎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빠른 그림자 하나가 대련장 중앙을 향해 질주해 갔다. 그 그림자는 슈렌과 두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고, 왕과 왕비를 향해 손을 모으며 무릎을 꿇었다.
“신, 지곡류(止哭流) 16대 당수 어중천(御重泉), 마마께 문안 인사를 여쭙습니다! 소인이 갑자기 어전에 나타난 점, 깊이 사죄드리옵니다!!!”
청운은 갑자기 나타나 왕에게 인사를 올리고 있는 어중천을 보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중천 저 사람이 왜 갑자기‥?”
정식 군인을 제외하고 유파의 당수이면서 정계에서도 활약하는 무인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들이 벼슬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은 유파의 크기와 유파의 실력이 왕이 인정할 만큼 상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어중천은 정계 안에 있는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만큼 특출한 무술 실력과 재능을 겸비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동방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너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외국인과의 마찰에 대한 것엔 이성을 쉽게 잃는다는 단점도 있었다.
왕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어중천에게 물었다.
“중천, 경은 어인 일로 대련장에 나오셨소?”
어중천은 손을 앞으로 모아 내밀며 대답했다.
“서방에서 온 기사들에게 동방 대국의 정예부대인 적사자대가 단 2합만에 무참히 쓰러진 것 때문입니다!! 한 명도 아니고, 30명이나 말입니다! 그런고로, 저 서방 젊은이에게 다시 한번 대련을 청할까 해서 소인이 나온 것입니다. 마마께선 윤허하여 주십시오!!”
“좋소!! 어중천, 그대가 동방 대국의 자존심을 세워주시길 바라오!!”
이 말을 한 것은 왕이 아닌 왕비였다. 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어버렸고 어중천은 허리를 굽히며 왕과 왕비에게 감사를 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 어중천, 반드시 적사자대를 비롯한 동방 무술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겠습니다!!!”
“‥후우.”
슈렌은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고 라이아는 걱정이 된다는 얼굴로 슈렌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또 다른 그림자 하나가 관중석 뒤에서 솟아올랐고 그 모습을 본 레디는 얼굴을 감싸며 머리를 숙여 버렸다. 옷에서부터 머리카락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를 한 가즈 나이트, 사바신이었다.
“흥, 너무 비겁하지 않소 아저씨? 슈렌은 지금 30명과 싸우느라 비실비실한데 그런 사람에게 쉴 시간도 주지 않고 싸우자는 것은 좀 그렇겠지. 어이 마마! 저 어중천이라는 아저씨와는 제가 붙어보겠습니다!!”
왕은 이상하게도 재미가 붙은 듯 고개를 끄덕여 사바신의 청을 들어주었고, 슈렌은 라이아와 함께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하며 사바신에게 말했다.
“‥잘해봐.”
기절한 적사자대를 끌어내는 동안, 사바신은 자신의 흑색 코트를 벗어 던진 후 허리에 묶여 있던 긴 황색 띠를 뽑아 머리에 묶으며 어중천을 바라보았고, 어중천 역시 자신의 관복을 벗어 하인에게 주며 사바신을 바라보았다.
대련장이 정리됨과 동시에 둘은 대련장 중앙에 섰고, 사바신은 자신의 주먹을 풀며 30대 후반의 어중천에게 소리쳤다.
“좋아, 좋아! 실전 무술이 뭔지 아저씨에게 확실히 가르쳐 드리지!!!”
“흥,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동방 대국의 자존심이 담긴 지곡류의 권(拳)으로 너의 코를 뭉개주마!!! 각오(覺吾)!!!”
곧, 징 소리와 함께 둘의 대결은 시작되었고 처음의 공격은 어중천이 시작하였다. 당수라는 이름답게, 어중천의 움직임은 적사자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중천은 자세도 잡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사바신을 향해 전광석화와 같은 권을 날렸고 사바신은 방어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서 그 공격을 모조리 몸으로 받아 내었다.
“뭐야!!! 저딴 게 무슨 가즈 나이트야!!!! 집어치워!!!!!”
꽤 오랫동안 사바신이 얻어맞자 린스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고 노엘은 이마를 감싼 채 몸을 숙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아‥공주님 제발‥.’
“종(宗)!! 관음타(觀音打)!!!”
퍼어억–!!!
수십 차례 무서운 공격을 사바신에게 퍼부은 어중천은 결정타인 듯한 공격을 사바신의 명치에 날렸다. 순간, 장내는 조용해졌고 어중천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사바신을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수십 차례의 공격에다 결정타까지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사바신은 한 치도 물러선 흔적이 없었다. 게다가 고통스러운 표정은커녕 피식 웃고 있는 것이었다.
“크하하핫!!!! 이 사바신님께 그런 공격이 통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퍼억!!!
사바신은 완전히 빈틈투성이가 되어버린 어중천의 면상으로 손을 잡은 후 바닥에 후려쳤고 어중천은 두부에 큰 타격을 입으며 대련장 한계선까지 주르륵 밀려나가고 말았다. 어중천은 밀려나간 상태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속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사실은 입으로 외치고 싶었으나 충격이 하도 큰 탓에 입이 움직여 주지 않아 속으로 외치는 것이었다.
‘무, 무슨 맷집이‥!! 설마 저 나이에 금강불괴를 극한까지‥!?’
“헤헷‥저 아저씨, 더 이상 자존심 어쩌고 하는 헛소리는 지껄이지 못하겠지?”
사바신은 입가에 약간 나온 피를 자신의 굵은 팔뚝으로 닦으며 피식 웃어 보였고, 린스 등의 일행은 사바신이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기에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레디는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는 말이 쓰여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사바신은‥가즈 나이트 중 최고의 물리적 힘과 선천적인 맷집을 타고난 녀석이죠.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근성’이에요. 예전에 처음 가즈 나이트가 되었을 때 맘에 안 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천사장 벨제뷰트에게 싸움을 건 황당한 녀석이기도 했죠. 그때, 몸의 뼈라는 뼈에 모조리 금이 가고 오른쪽 다리와 왼팔의 근육이 끊긴 상태에서도 승부 근성 하나만으로 버텨 결국엔 벨제뷰트가 싸움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였어요. 머리가 너무 나빠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베르니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레디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당신들 신의 사자 맞아요?”
충격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어중천은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취한 후 공격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보통으로는 사바신에게 충격조차 주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어중천의 몸에선 공력이 상승함에 따라 바람과 같은 기운이 일기 시작했고 이번만큼은 사바신도 자세를 취하며 어중천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청운은 알고 있었다. 현재 어중천이 시도하려는 공격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그는 즉시 어중천과 사바신의 일직선상에 있는 관중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이보시오!!! 남서쪽 관중들은 모두 피하시오!!! 병사들은 무엇을 하느냐, 어서 저분들의 대피를 돕거라!!!!”
어중천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자신의 연타 공격이 통하지 않은 것을 안 어중천은 일격필살의 공격만이 사바신에게 충격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 세 마리의 몸을 일격에 관통했다 전설에 전해지는 지곡류의 최고 기술이다‥! 위력상 성의 일부가 부서지겠지만 대문파의 당수가 젊은 애송이에게 당했다는 얘기가 서방에 퍼져 망신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받아 보아라!!!!”
다리를 꼬고 앉아 사바신과 어중천의 대련을 덤덤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슈렌은 새로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낮게 중얼거렸다.
“‥그쪽 사람들이 신경이나 쓸까‥.”
사바신은 왼팔 하나로 방어 자세를 취한 채 어중천의 공격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역시 기를 끌어올린 상태였지만 왼팔에만, 그것도 약간 집중한 상태였다. 잘못하면 반탄력에 의한 위력의 반동으로 어중천의 몸이 터져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쳇, 이 사바신님은 인간성도 너무 좋은 것 같군, 크하하하핫!!!!”
그 말을 들은 레디는 시녀들이 가져다준 다과를 먹으며 중얼거렸다.
“얼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