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54화
“어중천!! 이 사람아 제발 기를 중지하게!!!!”
청운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어중천은 흠칫 놀라며 자신을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노 선인을 바라보았다.
“처, 청운 선사님‥!!”
“지금 이것은 사정상 벌어지는 대련일세!! 살기를 사용하는 전투가 아니란 말이야! 무술 대국이라 불리는 우리 동방의 자존심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네가 지금 그 기술을 사용하면 자존심을 지키기는커녕 자칫하면 살인만을 위한 권을 쓴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네!!! 자네의 문파인 지곡류도 권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정통 문파가 아닌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야!!!!”
그러자, 어중천의 눈은 망설임에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어중천의 공력도 점차 하강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느낀 사바신은 씁쓸한 얼굴로 자세를 풀며 중얼거렸다.
“‥쳇, 흥이 깨지는군. 오래간만에 싸움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윽고, 왕이 일어서며 대련장에 있는 둘을 향해 말했다.
“자, 됐소. 행무판관 어중천은 그만 멈추고 귀가해 쉬길 바라오. 그리고 서방에서 건너온 청년도 짐이 마련해 준 곳으로 가 일행과 함께 여장을 풀길 바라오. 모두 들어라! 대련으로 부상을 입은 적사자대는 어의들이 잘 치료해 주고, 금일의 호투(好鬪)가 벌어진 대련장을 잘 정리하거라!!”
등등의 명을 왕이 지시하는 동안, 옆에 앉아 있던 왕비의 얼굴은 봉선 뒤에 일그러져 있었다. 슈렌은 궁인들이 자신과 일행을 숙소로 안내할 때 잠깐 왕비 쪽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돌리며 다시 숙소로 향했다.
※
“어떻게든 갈 방법이 없겠습니까, 신이시여.”
휀의 질문에, 차원계를 담당하고 있는 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해 주었다.
“음‥힘으로 뚫고 들어갈 방도는 자네 정도라도 무리일 것 같네. 플렉시온을 이용한다 해도 결계의 구조상 좀 힘들어. 밖에서 들어오는 압력을 결계의 전 방향으로 퍼뜨리기 때문에 그렇다네. 덧붙이자면‥이 정도의 결계는 중급 투신 정도의 힘을 가진 신 세 명 이상이 힘을 모아야 가능하다네. 그래서,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가 안과 밖에서 동시에 9980만 6700억 크로의 힘으로 한 지점을 강타해야 하네. 말은 쉽지만 쉬운 건 결코 아니야.”
신계에서 쓰는 크로라는 단위는 인간계에서 쓰는 단위 메가 와트와 맞먹는 단위였다. 그러나 휀은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차가운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 정도라면‥기력을 최대로 모은 제 [광황포]와 바이론의 [다크포스] 정도라면 가능하겠군요. 두 기술 각각의 파워는 결계가 깨지는 파워의 4분의 1 밖에 안되지만 속성이 빛과 어둠, 완전히 상반된 두 기술의 충돌 시 생기는 반발력 때문에 충분히‥가능할 겁니다.”
그러자, 차원신은 깜짝 놀라며 휀에게 물었다.
“아니, 그렇다고 쳐도 그 순간적인 충돌의 타이밍은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게다가 휀 자네와 바이론은 한 차원 안에 같이 있지를 못하잖아?”
“잠시‥라면 가능합니다.”
휀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러자, 차원신은 한숨을 내쉬며 자수정으로 만든 자신의 의자 위에 걸터앉고 천천히 말했다.
“훗‥의외군. 휀·라디언트라는 최고의 가즈 나이트도 동료들 걱정을 하긴 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야. 뭐,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악신 계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탓입니다. 아무래도 7인의 악마왕 내지는 그 이하의 실력을 가진‥악마 대공 정도? 그 정도 녀석들도 개입한 것 같습니다. 주신께서 자세히 말씀해 주시진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차원신은 조용히 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알겠네. 원(愿) 차원계로의 통행을 허용하지. 실패하지 말게.”
※
“자, 편하게 쉬십시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궁녀가 일행에게 숙소를 배치해 준 뒤 인사를 하자, 슈렌이 살짝 손을 올리며 궁녀에게 말했다.
“‥방 하나만 더 부탁합니다.”
그러자, 궁녀는 의아한 눈으로 슈렌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 방은 한 분에 하나씩 드린 것으로 압니다만‥?”
그 순간, 일행의 뒤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크크‥이거 섭한데? 하긴, 궁녀들하고 같이 방을 써도 상관없으니까, 크하하하하하하하핫‥.”
일행들 사이를 비집고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는 회색 피부의 거대한 남자를 본 그 궁녀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빌 듯 말했다.
“이, 이 방입니다!! 열쇠를 가지고 올 테니 진정하세요 손님!!!”
그러자, 바이론은 궁녀가 가리킨 방 앞에 선 후 문고리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열쇠?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핫–!!!!!”
퍼직–!!!
웃음과 함께 바이론은 방문을 뜯고 안으로 들어갔고, 궁녀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바이론이 들어간 방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 슈렌이 그녀에게 다가와 고개를 살짝 굽히며 말했다.
“‥빠른 시일 내로 저희들이 수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곧 이어 궁녀는 물러갔고, 일행들은 각자의 방 안으로 들어가 각자의 방식으로 피로를 풀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잠을 자는 것이었지만 슈렌과 사바신만은 달랐다. 방 안에서 맨손 운동으로 몸을 푼 후에야 둘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태자 마마, 련희 공주님께서 뵙고자 오셨습니다.”
그렇게 좋진 않은 표정으로 어의에게 침을 맞고 있던 태자는 레이가 왔다는 말을 듣고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오오, 그런가!!! 어서 들라 하시게!!!”
곧, 붉고 화려한 옷을 입은 레이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고, 문가에 앉으며 자신의 오빠인 카이슈에게 큰 절을 올리며 말했다.
“련희(戀喜), 태자 마마께 인사 올립니다.”
그러자, 카이슈는 엎드린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다! 거의 1년 만에 만났는데 태자 마마라니!! 예전처럼 오라버니라 불러다오 련희야. 하하하핫‥욱!!”
“오라버니!”
순간, 카이슈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말을 멈추었고 레이는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카이슈는 스스로 입의 피를 닦으며 앉으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아, 아니다‥가까이 올 필요는 없다. 하루에 두세 번 피를 토하는 것은 예사니까. 게다가 1년 만에 입어보는 기린포(麒麟袍: 동방 왕족의 공주급 여성이 입는 옷)에 내 피를 묻힐 수는 없지 않느냐.”
레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다시 자리에 정좌를 했다. 카이슈는 한숨을 쉬며 레이에게 물었다.
“그래‥서방에서 공부를 한 것은 어땠느냐? 보모는 너나 가희(加喜)가 1년 만에 어른이 돼서 왔다고 기뻐하던데‥아, 그리고 너에겐 아는 남자가 생긴 듯하다고 사족(蛇足)을 달더구나. 하하하핫‥. 그런데 정말이냐? 연애에 관한 한 보모의 말은 틀린 일이 없었는데‥.”
레이는 아무 말 없이 희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카이슈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하긴, 네 나이도 동방에선 노처녀라고 불릴 20이 다 되었으니까. 다 가희가 널 위해서 그러다가 시집을 못 가긴 했지만‥음, 네가 아는 그 남자는 어떤 인물이더냐? 이 오라버니와 힘을 겨룰 수 있을 정도의 남자는 기본이라고 네가 어렸을 때부터 말했는데‥.”
“예‥그분은‥.”
그때, 어둑어둑해지던 창문 밖으로 병사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큰일났다!!!! 마귀가 습격해 온다!!!!!”
그 목소리는 슈렌 등이 있는 귀빈관까지 들려왔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몸을 풀고 있던 슈렌은 눈을 번쩍 뜨며 중얼거렸다.
“‥성격이 급한 녀석들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