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58화
“아앗, 슈렌 공자‥!”
“얘들아, 슈렌 공자님이셔‥!!”
다음날 아침, 성 안을 돌아다니던 궁녀들은 나무 그늘이 있는 성벽에 기대어 앉아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는 슈렌의 모습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고, 슈렌은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으로는 계속 이른 아침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신주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지 않겠다니‥게다가 성 안에 적과 내통자가 있다는 것은 꽤 심각한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동방의 왕인 청성제는 슈렌 일행에게 동방에 단 두 개뿐인 신주가 있는 장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고, 어젯밤 조커 나이트와 만난 레디가 성 안에 내통자가 있다는 말까지 해서 슈렌의 마음은 꽤 복잡한 상태였다.
그때,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던 노엘의 눈에 슈렌의 모습이 들어왔고, 노엘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슈렌에게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무슨 고민이 있으신가요 슈렌 씨?”
그러자, 슈렌은 노엘을 잠깐 올려다본 후 조용히 대답했다.
“예.”
그러자, 노엘은 순간 당황했으나 슈렌이 별 이상 없이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슈렌과 마주 서 있는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그때, 슈렌이 가만히 노엘을 바라보았고 노엘은 다시금 깜짝 놀라며 자신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아니 저에게 뭐 묻은 것이라도 있나요?”
“‥지금 동방의 계절은 송충이라 불리는 애벌레가 많을 때입니다.”
슈렌의 말을 들은 노엘은 순간 기겁을 하며 자신의 왼쪽 어깨를 바라보았고, 슈렌의 말대로 그녀의 어깨엔 털이 수북한 애벌레 한 마리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히, 히야앗–!!!!”
“‥그대로 계십시오.”
순간, 슈렌이 노엘에게 다가와 그녀의 양쪽 어깨에 달라붙은 송충이들을 털어주었고, 구원 아닌 구원을 받은 노엘은 슈렌의 별 표정 없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슈렌은 다시 그늘에 앉으며 노엘에게 말했다.
“‥그 나무에 계속 앉아 계실 겁니까.”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노엘은 즉시 일어나 슈렌의 옆 벽에 기대어 섰고, 슈렌은 약간 앞으로 나온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노엘에게 물었다.
“‥린스 공주님은요.”
“예? 아‥미네아님과 함께 계시는데요‥?”
“‥그렇군요.”
그 후에 슈렌은 말이 없었다. 옆에 있기가 무안해진 노엘은 슈렌에게 아무 말이나 물어보기 시작했다.
“저어‥가지고 계시는 창은 특별해 보이는데‥어디에서 얻으셨나요?”
그러자, 슈렌은 옆에 놓여있는 그룬가르드를 흘끔 본 후 대답해 주었다.
“‥화염의 신, 아그바릴께서 가지고 계시던 두 개의 창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제가 가진 그룬가르드, 다른 하나는 [이그니스]‥신계 8대 창 중 하나지요.”
자신이 모르는 신기한 내용이어서, 근성이 발동된 노엘은 안경 안의 눈을 반짝거리며 슈렌에게 계속 물어왔다.
“신계 8대 창이라고요? 어떤 것들이 있는데요 슈렌 씨?”
‘‥이런‥.’
슈렌은 머리를 긁적인 후 다시금 대답해 주기 시작했다.
“신계 8대 창‥홀리 랜스, 그룬가르드, 이그니스, 멜·자벨린, 발코르누, 게이볼그, 궁그닐, 그리고‥제우스라는 고신이 사용한 뇌창(雷槍) 지노그. 이렇게 여덟 개가 신계 8대 창입니다.”
슈렌의 대답을 들은 노엘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모으며 기뻐했다.
“예에〜그렇군요! 그럼 창 말고 검들은 어떤 것이‥어멋, 슈렌 씨! 기다리세요!!!”
바이론은 궁 내에 있는 온천에서 기분 좋게 몸을 풀고 있었다. 사실 어제의 공로자는 그였다. 북쪽 문을 습격하려던 1000여 명의 야만족들을 혼자서 막아낸 것이었다. 그 덕분에 그가 앉아 있던 욕조의 온천수는 핏빛으로 변했지만, 바이론에겐 별로 걸리적거릴 상황이 아니었다. 몸에 묻은 피를 모두 닦아낸 바이론은 수건으로 몸을 닦은 후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온천장을 나선 바이론은 때마침 여성용 온천장에서 나오는 린스 등과 마주칠 수 있었고, 머리에 수건을 감은 채 미네아와 같이 웃으며 나오던 린스의 얼굴은 순간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바이론은 킥킥 웃으며 린스에게 말을 건넸다.
“크크큭‥이곳 물은 좋군요 공주‥그렇게 생각 안 하시오? 크크크크크큭‥.”
린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바이론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미네아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 매우 좋았어요 바이론 씨. 그런데‥어젯밤에 전투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러자, 바이론은 눈썹을 씰룩거리며 킥킥 웃기 시작했다.
“‥쥐 몇 마리가 성문 근처에서 얼씬거렸지요, 크크크크큭‥좀 큰 쥐여서 병사 몇 명이 다쳤다고 하더군요‥크크큭.”
그러자, 미네아는 그렇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군요. 그럼 저희들은 이만‥청성제를 뵙기로 약속이 되어 있거든요. 계속 수고해 주세요 바이론 씨.”
“크크큭‥크하하하하하하핫–!!!!!”
바이론은 우습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갔고, 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네아를 향해 감탄하듯 말했다.
“휘유‥이모는 역시 대단해‥.”
“응? 뭐가?”
“‥아니에요 이모님‥.”
레디는 방 안에서 정좌를 한 채 눈을 감고 몸의 기를 빠르게 돌리고 있었다. 수련 방법 중 하나였는데, 특성상 그가 기를 돌리면 공기 중의 물방울들이 구슬처럼 뭉쳐 레디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때문에 햇빛이 좋은 곳에서 그 수련을 하면 웬만한 장식품보다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레디는 장식품이 아니었고, 그 역시 이 수련을 할 때 빛이 비춰지면 어떻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그 수련을 빛이 비쳐 내리지 않는 곳에서 하게 된다.
똑똑–
“‥네, 들어오십시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자, 레디는 별로 경계를 하지 않고 들어오라는 말을 했고, 방 밖에 있던 베르니카는 머리를 긁적이며 레디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뭐하는 거예요?”
베르니카의 질문에, 레디는 피식 웃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네에‥수련의 일종이랍니다. 기를 높이는 수련이지요.”
그러자, 베르니카는 턱을 쓰다듬으며 미심쩍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보기엔 서커스 마술사가 하는 수련 같은데요?”
“네‥하핫, 그런 말 자주 듣지요. 그건 그렇고‥그때 저 때문에 다치신 눈은 아직도 안대로 가리고 다니시나요?”
레디의 말에, 베르니카는 안대로 가린 왼쪽 눈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디 씨 잘못은 아니었어요. 제가 칼을 허술하게 잡아서 그런 것이죠. 그리고 제 칼에 의해 난 상처고요. 뭐, 상처 있다고 별로 걸릴 것은 없어요.”
그러자, 레디는 정좌를 한 상태로 붕 뜬 채 베르니카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여성에게 얼굴에 난 상처는 다른 곳에 난 상처보다 비중이 큰 법입니다. 장래 문제도 그렇고요. 음‥그 정도 상처라면 제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레디의 말을 들은 베르니카는 고개를 저으며 쓸쓸히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이 상처 덕분에 검술이라는 것에 뭔지 약간은 깨달았으니까요. 그리고, 얼굴에 상처가 있다고 해서 지금까지는 불편한 것 느낀 때는 없었어요.”
그러자, 레디는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네에‥하긴요. 짚신도 짝이 있다고‥문제는 없겠죠.”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레디는 다시금 공중에 뜬 채 뒤로 돌아섰고, 그 모습을 두 번이나 본 베르니카는 인상을 찡그린 채 밖으로 나가며 레디에게 말했다.
“‥그렇게 돌지 말아요. 유령 같아요.”
“네.”
베르니카는 레디의 방문을 닫은 후 자신의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는 레디의 방을 향해 달려가는 사바신과 마주쳤고, 사바신이 무턱대고 달려가는 바람에 베르니카는 그만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베르니카는 당연히 화를 내며 사바신에게 소리쳤다.
“앞 좀 똑바로 보고 달려요!! 하여튼 이상한 사람들만 모인 집단이라니까!!!”
사바신에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레디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안에 대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헤이, 손님들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