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8화
“병이 아니라고요?”
키세레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리오를 쳐다보며 물었다. 자신이 보기엔 병이 확실해서였다.
“그래요. 역사서를 찾아보고 만약에 지금 일어나는 상황과 같은 항목이 있다면 아래로 내려와요.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테니, 알았죠?”
리오는 말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갔다. 키세레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반점과 열이 나는 현상을 병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키세레는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도서실의 문을 열었다. 두껍게 쌓인 먼지를 털어가며 역사서 보관장을 찾아낸 키세레는 100년 전의 기록이 담긴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찾아낸 100년 전 역사서의 부제목을 키세레는 나지막이 읽어보았다.
“… 마황제… 가스트란의 장?”
그녀는 책의 차례를 펴고 리오가 말했던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려가던 키세레의 손은 곧 한 지점에서 멈추게 되었다.
「바무다란다 지방… 비극의 열병」
떨리는 손으로 그곳을 찾아 넘겨본 키세레는 천천히 그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 … 자마 비스타… 그 악마의 이름을 바무바란다 사람들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악마는 친절과 자비가 넘치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악마는 미소를 띄우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다. 순진한 아이들은 그 사탕을 맛있게 받아먹었고 남은 사탕을 친한 친구들에게 또 주었다. 심지어는 부모들이 사탕을 받아 몸이 아픈 아이에게 먹여주기도 하였다. 마을의 아이들이 남김없이 사탕을 받아먹자 악마는 다시 온다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일이 있은 지 몇일 후, 아이들은 쓰러지기 시작했다. 푸른 반점과 심한 열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업고 병원과 수도원으로 달렸지만 허사였다. 일주일이 지난 후 아이들의 열과 반점은 사라졌다. 그러나 부모들은 깨어난 아이들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열과 반점이 사라진 자신들의 아이들은 검은 날개와 푸른 눈, 그리고 곤충의 몸을 가진 악마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세레는 숨이 막혀왔다. 리오가 말한 그대로 그것은 병이 아닌 악마의 저주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 밑줄을 계속해서 내리 읽었다.
『… 도망치는 부모들 앞에 이국땅에서 온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부모들의 오열과 슬픔을 듣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 사람들은 백방으로 사탕을 나눠준 악마를 찾아 나섰다. 결국에 사람들은 악마를 찾아내고야 말았고 그들은 단 하루 만에 그 악마를 쳐부수고 그 악마가 가지고 있던 사탕, 악마의 알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린다. 그들의 활약으로 아이들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사탕의 맛에 혼을 빼앗겨 버린 한 아이가 마지막 사탕을 가진 채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사라졌다 한다…』
키세레는 그 책을 덮자마자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자신도 말로만 들었던 악마의 실체화가 이웃 마을에서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고심하고 있는 원장에게 달려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은 키세레가 그렇게 다급한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약간 놀라기도 했고 무슨 일인지도 궁금해했다.
“원장님, 큰일입니다! 이 아이들은…!!”
원장은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듯 양손을 펼쳐 아래로 살짝 내려보였다.
“자, 자…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하세요, 키세레 장 수녀. 아이들이 어떻다는 건 알아내었소?”
키세레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이야기했다.
“부모님들에게 몇일 전에 누군가가 마을로 찾아와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그 밖에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는지 여쭤봐 주시겠어요, 네?”
원장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아이들과 부모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자 망토를 챙겨입은 리오와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고 있는 클루토가 키세레에게 다가왔다. 키세레는 리오에게 다가와 이상한 눈으로 리오를 쳐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리오는 말을 하려다 키세레가 먼저 말하자 팔짱을 다시 끼며 말했다.
“내 말이 맞죠? 병이 아니라는 거.”
키세레는 리오의 그 말에 개의치 않고 계속 질문 공세를 폈다.
“어떻게 백년 전의 일을 당신이 소상하게 아느냔 말이에요! 그것도 마치 경험해 본 사람처럼.”
리오는 머리를 긁으며 어떻게 대답할까 망설였다. 클루토는 갑자기 키세레의 말이 많아진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서 있었다. 리오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말 그대로 전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해 봤습니다.”
키세레는 설마 하며 서 있었지만 리오가 직접 털어놓자 그녀의 안색은 삽시간에 변하였다. 리오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 다음 말을 계속 이었다.
“오해하진 말아요. 8년 전에 우리 마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푸른색의 반점과 심한 열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죠. 13세 미만의 아이들일 겁니다. 갑자기 그런 일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했죠. 그러다가 촌장님께서 우연히도 그 원인을 알아내셔서 몇 일을 고생한 끝에 결국 그 악마를 처단할 수 있었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리오는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거짓말을 하는 데는 능통해 있었다. 그의 표정 연기와 어투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키세레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사과를 했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죄송합니다.”
리오는 손을 내저으며 웃어보였다.
“아니에요. 마음에 둘 것까진 없어요.”
조금 후 원장이 문을 열고서 키세레에게 약간 굳은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들은 말들을 전해주었다.
“당신의 말이 맞더군요. 3일쯤 전 검은색의 광대 차림을 한 사나이가 마을에 와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었다고 했습니다.”
키세레는 리오를 돌아다 보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요?”
“궁극적으로 할 일은 그 사나이를 찾는 것입니다. 그 일은 8년 전에 아저씨들을 따라가 봐서 자신이 있어요.”
리오는 자신 있게 말하며 가슴 앞에서 오른손을 불끈 쥐어 보였다. 클루토는 자신의 고깔모자를 매만지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왠지 리오가 신이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키세레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떠나야 하겠어요.”
앞으로 가려는 그녀를 막아서며 리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약간 험한 지역이 될 텐데 그런 긴 차림으론 어림도 없어요. 좀 더 편안한 복장을 입어야 할 걸요?”
키세레를 비롯한 수녀들이 입고 있는 복장은 굉장히 긴 치마와 상의였다. 그런 차림으론 여행을 떠나는 건 괜찮을지도 모르나 험한 지역을 다닌다는 것은 간편한 차림의 동료들에게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다.
“하, 하지만 수녀들에겐 그런 복장이…”
리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클루토의 등을 두드렸다.
“그래요… 그렇다면 할 수 없죠, 우리끼리 갈게요. 자, 가자 클루토.”
“아, 알았어요! 갈아입을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키세레는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 이유를 리오는 알 턱이 없었다. 원장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 생각이 맞군요, 리오 씨.”
“예?”
원장은 과거를 회상하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키세레 수녀의 수녀로서의 자질은 제가 지금까지 만난 어떤 수녀보다 월등하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진심으로 수녀가 되려고 이곳에 찾아온 것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5년 전의 일입니다… 가벼운 복장에 소검을 착용한 한 아가씨가 이 수도원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왔답니다. 그리고서는 다짜고짜 절 붙들며 자신을 수녀로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이 수도원에서 수녀가 되려면 여성으로서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답니다. 결혼도 금지되고 말이죠. 하지만 제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랬답니다. 마치 사랑을 받지 못한 한 마리의 백조와 같았죠. 그래서 전 그녀에게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식으로 수녀의 자격을 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녀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리오는 부탁이라는 말에 약간 피하려는 눈초리를 보였다.
“아, 그녀와 결혼하라는 것 빼고는… 그래요, 들어드리지요.”
원장은 웃어보였다. 사실 말하려는 부탁이 그것이어서였다. 원장은 말을 돌려서 다시 부탁을 했다.
“예. 제 부탁이란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를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애정 결핍증의 치료를 부탁하는 것이라 생각해주십시오.”
리오는 클루토의 눈치를 보았다. 클루토는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겉으로 클루토에게 웃어보였지만 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좀 거절 좀 해봐라… 멍청아…!’
고심하고 있는 리오의 앞에 옷을 갈아입은 키세레가 뛰어왔다. 바지에 굉장히 가벼운 점퍼(비슷하게 생긴)를 입고 있는 활동적인 의상이었다. 수녀용 모자도 벗은 모습이어서 그녀의 검은 머릿결이 아래로 길게 땋아 내려 있는 것이 리오의 눈에 들어왔다. 레나를 만났을 때… 그때 이상의 이상한 감정이 그의 가슴에 솟아올랐다. 하지만 무슨 감정인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자, 됐나요?”
키세레는 양팔을 가볍게 펼쳐 보이며 말했다. 보통의 여성들보다 약간은 큰 편인 그녀였기에 더욱 활동적으로 보였다. 클루토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그 정도면. 자, 이제 갑시다. 시간이 없어요, 수녀님.”
키세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장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클루토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도 모자를 쓰며 준비를 했다. 리오는 양팔을 가볍게 돌려보았다.
“원장님, 그럼…”
원장은 양손을 모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예에… 레호아스 님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