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80화
“‥루이체, 잠깐 오빠랑 얘기 좀 할래?”
리오는 문에 기댄 채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복도에서 그의 말을 받아줄 사람은 없었다. 리오는 약간 그렇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니야‥우선 화를 풀어 놔야 말을 할 것 같은데‥이렇게 나오면 좀 곤란해‥음음‥.”
리오가 계속 복도에서 연습 아닌 연습을 하고 있을 무렵, 루이체는 침대에 앉아 아무 말 없이 TV쇼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키와 프시케는 루이체의 기분이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아는지 옆에서 자고 있는 시에만을 돌볼 뿐이었다.
드르륵–
그때, 창 쪽의 큰 유리문이 갑자기 열렸고 바이칼은 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여자만 넷이 있는 방 안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들어왔고, 마키와 프시케는 깜짝 놀라며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바이칼은 둘을 보지도 않고 루이체에게 직접적으로 말했다.
“‥한 대 맞았다고 아직 삐져 있는 거냐? 흠‥리오 앞에서 쓸데없는 아양만 떨더니 잘 됐군.”
순간, 루이체는 발끈하며 바이칼을 바라보았고, 바이칼은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린 채 계속 중얼거렸다.
“하긴, 오빠라고 부른지 80년 조금 더 되었는데 그 녀석에 대해 알 리가 없지. 당연한 얘기를 길게 끌었군‥.”
루이체는 바이칼이 계속 그렇게 나오자 인상을 찡그린 채 나지막이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얘기 하는 저의가 뭐죠?”
“저의? 저의라‥. 이 용제를 우습게 봐도 한참 우습게 보는군. ‥넌 리오 녀석이 가끔 가다 미쳐 어제처럼 싸운다고 생각하나?”
그러자, 루이체는 아무 말 없이 바이칼을 바라보았고, 바이칼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계속 말했다.
“어제 리오 녀석이 누구 때문에 열이 나서 다녔는지 모르는가보군‥하긴, 보통 때도 머리가 나빴으니‥. 그 녀석은 며칠 전 그 여자와 싸우면서 몇백 년 전의 본성을 좀 드러낼 뻔했지‥그러다가 다시 자제를 했는데 네가 바보같이 얻어맞고 쓰러지는 바람에 결국 폭발해 버린 거다. 나도 안 보이는 상황인데 네가 아무리 징징 울어봤자 그때 그 녀석 눈엔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지. 넌 네 오빠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같이 놀러 다녔어‥애송이처럼 상황 판단도 못하고‥. 녀석은 가즈 나이트. 어떤 이유든지 파괴와 살육을 해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운명이 결정된 녀석이다.”
“…!”
루이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마키와 프시케는 그저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바이칼은 팔짱을 낀 채 가볍게 한숨을 쉬며 차갑게 말했다.
“주신이 무슨 이유로 널 의형제에 끼워줬는지는 모르겠지만‥내가 보기에 넌 가즈 나이트의 동생이 될 자격이 없어. 자격만 없으면 좋겠지‥짐 덩이일 뿐이야.”
루이체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아무도 반박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지금 현재 자신들이 바이칼과 리오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됐어.”
그때, 리오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쓸쓸한 미소를 지은 채 중얼거렸고, 바이칼은 천정을 바라보며 의자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리오는 한숨을 쉰 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루이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짐 덩이일 뿐이겠지‥.”
리오의 그 말에, 루이체의 어깨는 움찔거렸다. 리오는 곧 루이체의 작은 어깨를 손으로 짚으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도움이 될 물건이 들어 있는 짐 덩이는 언제든지 환영이야.”
“‥오빠‥.”
그러자, 루이체는 천천히 리오를 올려다보았고, 리오는 루이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난 분명히 믿고 있고, 지금까지 경험해 왔다. 동료는 분명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 난 언제나 사람들과 같이 다니지. 힘의 차이는 많이 나겠지만, 나를 믿고, 꼭 나를 돕는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에 그렇지. 게다가 루이체, 너는 동료이자 나의 가족이잖니.”
결국, 루이체는 울음을 터뜨렸고 리오는 수건으로 루이체의 눈물을 닦아주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바이칼은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시에를 흘끔 본 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쳇, 난 악역인가‥.”
조금 후, 밀린 식사를 마친 루이체는 리오와 바이칼에게 자신이 이 차원으로 오기 전 벌어진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 예전에 지크에게 들었던 것과 많이 일치했지만, 추가된 것이 있다면 바로 라이아라는 아이의 얘기였다.
“‥그랬군, 지크의 말에 따르면 라이아가 꽤 높은 마력을 잠재하고 있었고‥그 덕분에 잡혀가려다가 지크에게 구출‥결국 지크와 함께 트립톤 항구까지 같이 갔고 그 도중에 지크는 그 아이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나 성격상 그냥 넘어가고 맘‥바보 녀석‥. 그리고 세이아 씨 역시 큰 마력을 잠재하고 있어서 이곳으로 납치됨‥그러다가 탈출‥나에게 구조됨‥. 지크 녀석이 말한 것‥새벽의 자식 여명‥어떻게 낳으셨는지는 모르지만 둘은 말 그대로 이오스님의 두 딸‥.”
바이칼이 마시던 주스를 놓으며 이어서 말했다.
“이오스 신은 잡혀갔지만‥약간 꺼림칙한 기분 때문에 그 린라우라는 악마 대공은 둘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될 테고‥결국엔 한 명을 잡았다고 해야 하나‥?”
“‥그렇겠지.”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생각을 한 후 모두에게 말했다.
“‥좋아, 이 세계는 블랙 프라임에게 넘겨주자.”
“뭐, 뭐라고 오빠!!”
그러자, 루이체와 프시케는 깜짝 놀라며 리오를 바라보았고, 아직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마키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리오는 빙긋 웃으며 계속 말했다.
“물론 잠깐 동안‥대신, 악마들에겐 절대 넘겨줄 수 없어. 오늘부로 모두 프랑스로 간다.”
※
집에 돌아와 젖은 옷을 말리던 지크는 세이아가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호기심에 그는 세이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앗, 세이아 씨 오늘 무슨 즐거운 일 있으세요? 오늘은 상당히 즐겁게 요리를 하시네요?”
그러자, 세이아는 요리를 하느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미소를 지은 채 대답해 주었다.
“음‥예. 이상하게도‥누군가 오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냥 기분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즐겁네요.”
“네에‥.”
지크는 과연 세이아라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꿍얼댔다.
‘가만‥바이론 녀석이 아직 안 왔는데‥? 에이‥설마‥.’
지크는 혼자 킥킥 웃기 시작했고, 샤워를 마치고 추리닝 차림으로 나온 티베는 지크가 웃는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찡그린 채 그에게 물었다.
“아니 뭐야‥그렇게 혼자 부수고 다녔으면서 뭐가 그리 기분이 좋아?”
그러자, 지크는 자신의 앞에 앉아 TV라는 물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케톤을 가리키며 말했다.
“헤헹‥남 걱정 마시고 동생하고 얘기나 하시지? 간만에 조용한 시간이 돌아왔는데 말이야.”
조용한 시간.
침묵의 그것과는 다른 시간.
누군가의 숭고한 「혼」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간.
「혼」을 불태워야만 가까스로 얻을 수 있는 시간.
그들의 혼은 이제 불꽃을 피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