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85화
푸른색의 빛줄기‥.
동쪽에서부터 엄청난 두께의 푸른색 빛이 바다를 가르며,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수면을 증발시키며 날아오고 있었다. 엄청난 스피드와 굵기를 지닌 빛이었기에 앙그나와 카에의 리니어 모터로도 피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앙그나와 카에는 곧 둘의 몸을 합친 것보다 더 두꺼운 푸른색의 빛에 휩싸였고, 희미하게나마 둘이 빛 안에서 밀리는 모습이 보인 후 주위는 두 번째 플레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아까 물속에서 한 바퀴를 돌았던 여객선이 다시 피해를 입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폭발이 대충 걷힌 후, 열기에 의해 데워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다에선 곧 물에 흠뻑 젖은 붉은 머리의 사나이가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서서히 올라왔다. 멀리서 오는 빛을 보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든 리오였다.
“‥나쁜 녀석‥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여기서 지금까지의 일을 앙갚음을 하는 거냐‥으으윽‥.”
그 말을 들었는지, 동쪽으로부터 리오를 향해 바이칼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고, 원래의 크기로 변해 원거리에서 브레스 공격을 가했던 바이칼은 다시 크기를 적당히 줄이며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리오에게 말했다.
「이 몸에게 구원을 받은 소감이 어떤가. 당연히 황송하겠지만‥.」
그러자, 리오는 바닷물을 손으로 휘휘 저으며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목욕하기엔 알맞게 데웠군‥그건 그렇고 그 두 괴물 단지는 어떻게 됐지?”
바이칼은 입으로 리오의 망토 자락을 잡아 그를 자신의 등 위로 옮긴 후 서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며 대답했다.
「이 몸이 알 바 아니야.」
그 말을 들은 리오는 바이칼의 등 위에 엎어진 채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푸훗, 저주나 받아라 정신 연령 미달자 녀석‥.”
리오를 태운 바이칼은 얼마 후 그 해역에서 사라졌다. 얼마 후, 바다 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직경 20m의 거대한 구체 세포질 두 개였다. 그 세포질들은 공중에 붕 떠올랐고, 곧 외벽이 터지며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베히모스들 이었다.
“‥넷은 어떻게 했지?”
리오는 여전히 바이칼의 등 위에 엎어진 채 물었고, 바이칼은 초고속으로 나는 상태로 리오에게 대답했다.
「바다에 버리고 왔지.」
바이칼의 대답에 리오는 잠시 굳어졌고, 한숨을 푸우 쉬며 중얼거렸다.
“‥더 웃기는 얘기는 모르니?”
바이칼 자신도 아까 자신이 한 말엔 무안을 느꼈는지 머리를 갸웃갸웃 거린 후 대답해 주었다.
「‥지나가는 여객선에 놓고 왔지. 육지에 거의 다다른 여객선이었으니 지금은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리오는 엎드린 채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워진 목소리로 바이칼에게 말했다.
“후‥착한 녀석‥. 피곤하니 등 좀 계속 빌려줘. 어떤 침대보다 편한데‥후훗.”
아무 말 없이 날아가던 바이칼은 무엇이 또 마음에 걸렸는지 인상을 찡그린 채 뒤를 흘끔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에 대한 죄 값은 꼭 받을 거다‥!」
※
지크는 저녁 식탁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넬도, 티베도 마찬가지였다. 챠오만이 별말 없이 조용히 식사를 할 뿐이었다. 자신도 식사를 하기 위해 수프와 식기를 식탁에 놓고 의자에 앉은 세이아는 셋이 나이프와 포크만을 잡은 채 아무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자 깜짝 놀라며 대표격인 지크에게 물었다.
“저, 저어‥음식에 잘못된 것이라도 있나요?”
그러자, 지크는 약간 얼이 나간 표정으로 세이아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뇨, 아주 멋진 식사예요.”
지크의 알 수 없는 대답을 들은 세이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려 보였다.
“네? 그런데 왜 식사를 안 하시나요?”
“평상시에 나오는 고기 빵 식사보다 너무 고급이거든요. 그 식사도 다음 식사가 기다려질 정도로 맛있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듣도 보도 못한 스테이크에다가‥무슨 요리 경진 대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호화스런 음료에다가‥일곱 색이 나는 계란찜? 그리고 기타 등등‥게다가 중요한 건 이 정도 분량이면 회색 분자까지 와도 다 못 먹을 텐데요‥내일 요리까지 다 하신 건가요?”
“아, 저‥그건‥.”
세이아는 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 조용히 식사를 하던 챠오가 지크에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히 먹기만 하면 말이 많군. 음식이 너무 많다느니, 사치스럽다느니 일방적으로 말하는 매너는 또 뭐야.”
그러자, 지크는 발끈하며 억지 미소를 지은 채 챠오에게 말했다.
“호오‥그러시는 챠오 양께선 감사히 먹을 요리를 만들 줄 아시나?”
순간, 챠오는 정곡을 찔린 듯 얼굴이 붉어진 채 지크를 쏘아보았고,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기세가 오른 듯 계속 말을 이었다.
“헤헷‥하긴 뭐, 소시지에 칼집 내서 프라이팬에 구운 것도 요리는 요리지. 쿠쿠쿡‥그걸 숙소 집들이할 때 자랑스럽게 내놓는 모습은 정말 예뻤어요 챠오 양. 너무 인상적이어서 아직까지도 그 맛이 잊히지 않는군.”
“그, 그건 술안주용이었어!!”
“헤에‥그러십니까? 그럼 같이 나온 갈색으로 곱게 탄 밥은 뭐였지? 통조림 참치는? 후후후후‥저번에 수리검을 던진 복수다.”
결국, 챠오는 아무 말 못 하고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지크 역시 식기를 들며 세이아에게 말했다.
“흠‥하도 놀라워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니 실례되었다면 용서해 주세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지크의 말에 따라 넬과 티베도 크게 말한 후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런 셋의 모습을 본 세이아는 슬며시 웃어 보였다.
“크크큭‥희희낙락하며 식사를 하시는군‥.”
그때, 주방 근처에서 집안 사람들은 다 알아들을 만한 웃음소리가 흘렀고, 지크는 인상을 구기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젠장‥밥맛없는 회색 분자가 돌아왔군‥. 어이, 식사 안 해!!”
파앙–!!!
그러자, 대답 대신에 베란다에선 술병의 목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베란다에서 홀로 [보드카]라는 술을 병째 들이켜던 바이론은 묵묵히 밤하늘에 뜬 달을 올려다보았다. 초승달이었다. 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킨 바이론은 입으로 술기운을 내뿜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후우‥크크큭, 달빛이 약하군‥. 두 번째로 좋아하는 빛인데 말이야‥크크크크큭.”
그러자, 베란다 창문의 유리를 닦고 있던 카루펠이 바이론을 슬쩍 바라보며 감히 물었다.
“그럼‥제일 좋아하시는 빛은 무엇입니까?”
바이론은 고개를 숙인 후 광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대답하듯 중얼거렸다.
“‥어둠을 쉬게 해주는 빛‥크크크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