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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9화


리오와 클루토, 그리고 키세레는 어느덧 습지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끓어오르는 타르의 지독한 냄새가 키세레와 클루토의 코를 자극했다. 리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둘의 뒤에 서서 소풍을 온 표정으로 태연하게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리오에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수도원을 나설 때 키세레가 쓰고 나온 원통형의 커다란 모자였다. 디자인이나 색깔이 리오의 성격과는 전혀 맞지가 않았다. 그 모자를 보면서 걷고 있는 리오의 마음은 괴로울 정도였다. 하지만 클루토는 귀엽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모자를 쓴 그녀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했다. 물론 키세레의 표정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리오는 고개를 숙이며 앞에 가는 둘에게 말했다.

“어이, 이제부터 조심해야 해요. 습지대엔 괴물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나하고 거리를 좁혀서 걸어요, 왜 멀찍이 떨어져서… 위험하게 시리.”

키세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걸었고 클루토는 알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계속 걷고 있던 일행들은 해골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지대에 들어섰다. 키세레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클루토는 인상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굉장한 숫자의 유골들이었다.

“으음… 무슨 군대였나 봐요. 이렇게 집단으로 타르 연못에 빠져 죽은 걸 보니 말이에요.”

리오는 클루토의 말을 듣고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빠져 죽었다고? 넌 역시 순진해 클루토. 존경스러울 정도로 말이야.”

클루토는 리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가 가질 않았다. 리오는 웃음을 그치고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이봐, 이봐! 네크로만사 주제에 머리 쓰려고 노력했는데, 타르 연못에 빠진 사람들이 저렇게 멀쩡한 유골의 상태로 다시 떠오르는 거 봤나?”

순간 클루토와 키세레는 뒤로 주춤거렸다. 유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원하게 뚫린 눈구멍에서는 붉은 광채들이 번쩍거렸고 각자 곤봉과 검들을 집어 들며 일어서고 있었다. 이른바 스켈레톤들이었다.

“내가 실수했군… 후후후, 인정해주지. 역시 리오 스나이퍼야…”

짙은 안개 속에서 사람의 형체가 아른거렸다. 리오는 똑바로 그것을 응시했다.

“훗, 내 이름을 알다니, 건방진 녀석… 자. 너의 목적이나 밝혀라. 가이라스 왕국의 부하냐, 아니면 제국의 부하냐?”

그림자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얘기해주지. 만난다면 말이야…”

리오는 코웃음을 쳤다.

“그 이야기는 수십 번 들어왔다. 훗…”

스켈레톤들은 천천히 일행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목적이 확실히 정해진 모양이었다. 키세레와 클루토는 각자의 방식대로 손을 모으고 주문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리오가 손짓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여기서 힘 빼지 말아. 아까 그 녀석의 목적은 그거니까 말이야. 주문을 취소하고 나만 보고 있으라고. 그리고 키세레는 2인용 결계를 쳐줘요, 알았죠?”

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키세레는 손의 모양을 바꾸고 결계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좋아요, 그럼 나도…”

리오는 디바이너를 빼들었다. 오랫만에 햇빛을 본 디바이너의 보라색은 눈이 부셨다. 리오는 검을 오른손에 들고서 왼손을 살짝 모으고 주문을 외웠다.

“… … 모든 것을 태워 정화시키는 불의 힘이여, 나의 검에 머물러 적을 자르며 태워라. 마법검, <화이라>…!”

리오의 왼손에서 치솟은 불길은 곧 디바이너에 옮겨붙었고, 디바이너는 마치 불의 검 「화이어 턴」이 된 듯 활활 타올랐다. 리오의 그런 모습을 본 결계 안의 키세레는 눈이 동그래졌다.

“저 사람이 마법검을? 저건 배우기도 어렵지만 가르쳐주는 사람도 거의 없는 기술인데…?”

클루토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오가 그랬어요. 자신이 어떤 기술을 쓰든지 간에 우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면 그냥 넘어 가라고요. 저도 리오랑 있어보진 못했는데요, 그 말이 곧 이해가 가더라고요. 키세레 님도 그냥 그를 지켜보시기만 하면 돼요.”

“그래…?”

키세레는 한 사나이가 이 순수한 소년의 탐구 정신을 버려놓았다고 생각하며 다시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조용히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스켈레톤들은 곧 본격적으로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는 듯 턱뼈를 움직여댔지만 함성 소리는 나지 않고 뼈끼리 마찰하는 음산한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차앗!!”

리오는 방패를 앞세우고 공격해 들어오는 스켈레톤을 공격했다. 녹이 많이 슬어버린 방패여서 그런지 디바이너의 일격을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방패와 함께 비스듬히 몸이 잘린 스켈레톤은 온몸에 불이 붙으며 땅바닥으로 쓰러져 갔다. 리오는 정면으로 떼 지어 오는 스켈레톤 부대에 돌격해 들어갔다. 만약 리오가 공격하는 존재가 기를 느낄 수 있는 생명체였다면 그 모습을 보고서 전의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사병인 스켈레톤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리오를 정확히 공격해 나갔다. 방어구가 전혀 없는 리오는 스켈레톤의 쏟아지는 공격을 피해가며 하나씩 하나씩 없애 나갔다. 그러나 스켈레톤들의 수는 너무나도 많았다. 이러다간 날이 거의 저물 것 같아 리오는 속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좌측 스켈레톤의 머리를 날려버린 그는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올랐다. 공중에 떠오르는 리오의 모습을 본 클루토와 키세레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점프를 처음 본 키세레는 더더욱 그러했다. 리오는 뜬 상태에서 검에 서려있는 마법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자아- 간다!! 염뢰낙하(炎雷落下)!!!”

리오는 검을 수직으로 세우고 지면으로 떨어졌다. 끌어올린 마법력 때문에 그의 주위엔 붉은 빛이 서렸다. 낙하 지점 주위에 있던 모든 스켈레톤들은 음속 이상의 스피드로 인한 충격파와 마법력의 폭발로 산산조각이 나며 휩쓸려 날아갔다. 충격권에 들어있지 않은 스켈레톤들은 꺼지지 않는 마법의 불꽃으로 타들어가고 있었다. 공격 한 번에 반수 이상의 스켈레톤들이 전투 불능에 빠져 들어갔다. 리오는 땅에 깊숙이 박힌 디바이너를 뽑아들며 결계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는 둘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자, 어서 뛰라고! 저 녀석들이 회복하려면 꽤 걸릴 테니까!!”

둘은 리오의 말대로 힘껏 그가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리오의 말대로 스켈레톤들은 충격파에 의한 피해가 가시지 않은 듯, 땅에 넘어져 허우적댈 뿐이었다. 리오가 있는 곳에 도착한 둘은 자신들이 와도 리오가 움직이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리오, 안 갈 거예요?”

클루토가 긴박한 표정으로 묻자 리오는 그냥 가라는 손짓만 할 뿐이었다.

“저 녀석들의 뒤처리를 해야 해. 먼저 가라구, 금방 쫓아갈 테니까.”

키세레와 클루토는 머뭇거리다 스켈레톤들이 천천히 회복되기 시작하자 있는 힘을 다해서 뛰기 시작했다. 리오는 둘이 멀찍이 뛰어가는 걸 보고서 다시 스켈레톤들에게 집중했다.

`타르 연못만 넘어가거라, 클루토…’

갑자기 리오의 눈앞에 스켈레톤 하나가 나타나 검을 내휘둘렀다. 순간적인 방심이 낳은 결과였다. 리오는 급히 몸을 틀며 공격을 피했으나 망토의 앞부분이 살짝 잘려 나갔다. 재차 공격을 시도하는 스켈레톤에게 리오는 기가 실린 주먹을 내질렀다.

빠각 – !!

리오의 정권 치기에 스켈레톤의 머리가 박살이 났고 반격을 당한 스켈레톤은 뒤로 멀찍이 날아갔다. 리오는 빠르게 몸을 뒤로 젖혔다. 다른 스켈레톤의 공격이 리오의 잔상을 베어나갔다. 리오는 곧바로 근처의 넓은 타르 연못으로 뛰었고 스켈레톤들은 리오를 뒤쫓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와라…”

리오는 타르 연못에 간간이 노출되어 있는 돌들을 밟고서 연못의 중앙에 위치한 좁은 바위에 섰다. 연못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았던 듯, 스켈레톤들은 천천히 리오를 포위하며 다가왔다. 리오에게 가까이 갈수록 스켈레톤들의 붉은 광점은 점점 커져갔다.

“좋아… 이제 편안히 잘 수 있을 거다. 어디서 죽었는지는 몰라도 이제 편안히 쉬도록 해.”

리오는 씁쓸한 눈초리로 주위의 스켈레톤들을 둘러본 후 양손에 수인을 맺고 기를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리오의 기술 중 인체 발화술의 강화판이라 할 수 있는 <기공 복멸염> (氣功 覆滅炎)이었다. 기를 모으고 있는 리오에게 스켈레톤들은 한 발 한 발 다가왔다. 질퍽한 타르가 스켈레톤의 드러난 다리뼈 사이로 흘렀다. 이윽고 최전방의 스켈레톤이 리오에게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차아아-앗!!!”

리오는 모아두었던 기염(氣炎)을 단숨에 개방했다. 폭발하는 붉은색의 빛이 타르 연못을 가득 채웠다.


한참 뛰던 클루토와 키세레는 잠시 멈춰서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넓적한 돌에 앉아 호흡을 조절하던 키세레는 리오가 싸우고 있는 습지대를 바라보았다.

“저…”

키세레는 얼른 옆에 앉아있는 마법 소년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클루토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 짐작한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클루토예요. 그리고 리오는 걱정하지 마세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니까 죽을 염려는 없어요.”

키세레는 얼굴을 붉히며 벌떡 일어났다. 클루토는 갑자기 돌변한 그녀의 태도에 흠칫 놀랐다.

“누가 그런 무식한 사람을 걱정한다고 했니! 난 그저…”

클루토는 양손을 모으고 사과를 했다.

“아, 알았다구요. 죄송해요.”

클루토는 여자에게 큰소리를 듣는 것이 자신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키세레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클루토에게 갑자기 소리지른 것에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 미안해 클루토. 갑자기 소리 질러서.”

클루토는 활짝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키세레 수녀님…”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폭음 소리에 클루토와 키세레는 몸을 움츠렸다. 열풍이 그들을 덮쳐왔고 하늘은 삽시간에 붉게 변해갔다. 클루토와 키세레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시뻘건 화염의 기둥이 탑처럼 높이 솟아 있었다. 클루토는 넓은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외쳤다.

“저쪽은… 리오가 있는 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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