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93화
“저어‥괜찮으세요 여러분?”
세이아는 약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일행의 앞에 쓰러져 있는 십여 명의 젊은이들에게 물었다. 젊은이들은 말이 없었다. 오직 피를 흘릴 뿐이었다.
그때, 세이아의 뒤에서 약간 이상한 톤으로 바뀐 루이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헤‥괜찮아요 괜찮아요‥먼저 시비 건 녀석들은 저 녀석들이니까‥.”
“그, 그래도‥.”
여자 세 명에 의해 순식간에 길거리에 뻗어버린 친구들을 멍한 모습으로 바라보던 한 청년은 자신을 향해 주먹을 풀며 천천히 다가오는 키 180가량의 여성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고, 순간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저, 저, 이러시면 안 돼요!! 저희는 그냥 놀자고 한 것뿐이라구요!!!”
퍼억–!!
그러나, 챠오의 권은 사정이 없었다. 마지막 남은 청년 역시 피를 흩뿌리며 뒤로 날아가 버렸고, 멀리 건물에 기대어 구경을 하고 있던 티베와 프시케는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저건 거짓말이야‥.”
멀리 떨어진 건물 뒤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오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
다음 날.
티베는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통증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자리엔 세이아 대신 챠오가 자고 있었고, 방 바닥에선 루이체가 흐트러진 포즈로 역시 잠에 빠져 있었다.
“‥어제 뭘 한 거지‥? 아야야‥. 어머? 열한 시네‥. 오늘 방송국은 그냥 넘기는 수밖에 없네‥. 으음‥목말라‥.”
기본적인 옷밖에 입고 있지 않던 티베는 추리닝을 대충 입으며 방을 나섰고, 거실에선 여느 때와 같이 TV에 집중한 지크의 모습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반대편 소파에 앉은 바이칼의 등 뒤에 시에가 원숭이처럼 달라붙어 있는 것이었다.
티베는 아무 말 없이 둘을 지나쳐 부엌으로 향했으나, 바이칼의 머리 위에 자신의 머리를 겹쳐 놓은 채 TV를 뚫어지게 보고 있던 시에가 갑자기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음!! 기분 이상해지는 물 냄새다!!! 시에 싫어!!”
그러자, 티베는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것을 모르고 있는 지크는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시에에게 말했다.
“물이 아니고 술이라는 거야 술. 주정뱅이에게 그 냄새가 진하게 나지. 쯔쯔쯔‥.”
티베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선 세이아가 앞치마를 두른 채 카루펠과 함께 열심히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티베가 부엌에 들어온 것을 본 세이아는 눈을 크게 뜨며 티베를 바라보았다.
“아, 일어났구나? 몸은 괜찮니? 리오 씨가 만취한 다음 날 일어날 때 머리가 좀 아플 거라고 하시던데‥.”
티베는 의자에 앉아 식탁 위에 엎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겠어‥. 그건 그렇고 물 좀 주면‥.”
곧바로, 카루펠은 티베에게 물을 건네주었고, 티베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물을 들이켰다. 목을 축인 티베는 곧 다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 어제 어떻게 들어왔니?”
세이아는 숙련된 손놀림으로 찬물에 담가두었던 양파를 칼로 빠르게 썰어가며 대답해 주었다.
“응, 리오 씨께서 다 데려다주셨어. 나 혼자서 다 데려갈 자신이 없었는데 마침 잘 된 거지. 난 넬이랑 같이 잤고‥.”
고개를 끄덕이던 티베는 순간 눈썹을 찡그리며 세이아를 돌아보았다.
“‥너 의외로 술에 강하구나‥?”
“응? 으흠‥후훗. 나도 잘 모르겠어. 아, 바이론 씨가 너 보면 건네주라고 하신 물건이 있는데‥.”
그 말에, 티베는 깜짝 놀라며 세이아에게 되물었다.
“뭐!? 아니, 그 아저씨가 왜‥?”
그사이, 리오는 옥상에서 바이론과 단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이론은 여전히 자신을 취하게 할 수 없는 술을 손에 든 채 앉아 있었고, 리오는 팔짱을 낀 채 멀리 보이는 에펠탑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리오는 한숨을 내쉰 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랬군. 그 여자는 정말 라이아였나‥. 그렇다면 세이아가 그때 왜 이 세계에서 발견되었는지 얘기가 되는군. 그럼 이제 제일 간단하고도 어려운 일이 한 가지 남은 건가?”
술을 몇 모금 들이키던 바이론은 병을 입에서 뗀 후 킥킥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두 가지 남았다 멍청이. 하나는 네가 말할 것이고‥하나는 동방이라는 곳의 신주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주를 누가 찾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거지‥. 두 자매는 최고의 방패와 최고의 무기일 뿐이거든‥크크크크. 너도 당해봤을 거다‥어른으로 변한 그 꼬마의 무서운 파워를 말이야. 내가 보기엔 휀과 나를 능가하는 수준이더군. 물론 안전 주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말이지만‥.”
리오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눈을 감으며 바이론에게 물었다.
“‥그럼 그 동방의 신주에 대한 단서는‥있긴 한가?”
“크크크‥동방에 있다는 것‥. 그거 외엔 추리를 해야 하겠지‥크크크크크. 난 머리 쓰는 일이 싫어서 이곳으로 온 것일 뿐이다. 그쪽 일은 휀 녀석에게 맡겨두었지. 그 녀석이 과연 협조적으로 나올지는 의문이지만‥크크크크큭.”
“‥휀? 그가 어떻게 왔지?”
“‥꼬마는 몰라도 된다, 크크크‥. 이제 귀찮으니 꺼져.”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돌아섰다. 그때, 웃고 있던 바이론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고, 그는 술병을 내려놓은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오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좌우로 굴리며 갑자기 느껴진 이상한 느낌을 찾던 리오는 조용히 바이론과 자신의 사이 쪽에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반겨줄 사람이 역시 없었나? 이번엔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왔는데?”
완전 무장을 한 채 어느 순간 바이론과 리오 사이에 선 갈색 머리의 여성은 독한 미소를 띄우며 리오를 향해 중얼거렸다.
“‥흥, 살려달라는 말로밖에 안 들리는군‥. 오늘은 너희들을 확실히 없애드리려고 왔지‥.”
그 말투와 얼굴을 본 리오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과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예전과 같은 순수한 표정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녀는 마족을 방불케할 정도의 화려한 채색으로 얼굴 전면을 칠한 상태였고, 몸에서 뿜어지는 기도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너‥오늘은 정말 결판을 내려고 온 건가?”
리오의 물음에,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엄청난 파괴력의 기합탄이 리오의 오른쪽을 스치고 지나가 뒤로 보이는 파리 시가지를 향해 날았다. 곧 기합탄이 떨어진
곳은 대폭발을 일으켰고 범위 안의 모든 것은 한 줌의 먼지로 변해버렸다. 리오는 오른쪽 볼에 길게 난 상처를 매만지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결심이 대단하군. 린라우가 사탕이라도 준다고 했나?”
“‥적어도 네 녀석의 농담을 듣기 위해 온 것은 아니지. 어떻게 할까, 무기를 가지고 나올 때까지 생명을 연장해 줄까?”
그녀의 말에, 리오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옥상 가운데에 고인 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필요 없어. 마침 잘 됐군‥몸의 피로를 풀려면 정리운동이 필요하니까.”
곧, 고인 물에선 흰색의 빛과 함께 한 자루의 검이 튀어나왔고, 그 검, 엑스컬리버를 잡은 리오는 바이론을 흘끔 보며 말했다.
“아래 있는 사람들을 맡아주겠어? 일대일 면담이 필요한 청소년 같아서 말이야.”
갈색 머리 여성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바이론은 곧 킥킥 웃으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 놓고 죽으시지, 리오·스나이퍼‥. 크하하하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