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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0화


거대한 불기둥은 얼마간 사그라들 기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클루토는 멍하니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볼 뿐이었다. 키세레는 리오란 사나이가 이 소년에게 이렇게 강한 존재일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키세레는 한숨을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무언가가 이쪽으로 뛰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어-이! 클루토!!”

약간 그을린 듯 검댕을 얼굴에 묻히고 있는 리오가 손을 살짝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클루토는 벌떡 일어서며 리오에게 달려갔다.

“리오! 무사했군요!”

리오는 팔을 벌리며 뛰어오는 클루토를 잡아 들어 올리며 웃어 보였다.

“이 녀석, 내가 죽을 줄 아냐? 후우… 타르가 저렇게 화력이 좋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솔직히 죽을 뻔했다구.”

리오는 망토 자락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을 계속했다. 청결을 중요시하는 키세레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녀는 리오의 말을 도중에 막으며 소리쳤다.

“이봐요, 물로 씻으면 안 되나요? 꼭 그렇게 망토로 닦아야 하겠어요?”

리오는 클루토를 놓으며 키세레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깨끗한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요. 대신에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웠죠. 거기에 첫 번째로 쓰여있는 것이 뭔지 알아요? <세수하지 말 것> 이겁니다. 마시기도 귀중한 물을 어떻게 얼굴을 닦는 데 사용하냐 이겁니다.”

키세레는 화가 치민 듯 리오의 날카로운 눈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어쨌든 좀 씻고 다니란 말이에요! 그렇게 하고서 여자들이 좋아하겠어요?”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음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하, 수녀님께서 총각 걱정을 다 해주시네요. 하여튼 감사합니다.”

“뭐라고요!!”

듣다 못한 클루토는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며 싸움을 막았다.

“왜들 그러세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이에요! 빨리 악마를 처단해야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고통을 덜어줄 것 아니에요!”

리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클루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키세레도 흥분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돌렸다.

“쳇… 미안하다 클루토.”

“… 어디로 가야 하죠, 리오 씨?”

키세레의 물음에 리오는 북동쪽을 보며 말했다.

“음… 습지대 근처의 숲에서 그 녀석들이 사니까, 아마도… 저쪽이겠군요.”

클루토와 키세레는 리오가 가리킨 숲을 바라보았다. 나무가 많이 우거진 커다란 숲이었다.

“와아… 그래서 그런지 약간 음산해 보이는군요…”

클루토는 감탄이 섞인 말투로 감상을 표했고 키세레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목적지에 다다랐으니 빨리 갑시다.”

리오를 선두로 일행은 곧 멀찍이 보이는 숲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몇 시간 후, 숲의 안쪽으로 들어선 일행은 숲의 안쪽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주위에… 호수가 있나 보군.”

리오는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말했다. 키세레는 리오가 하는 말이 얼른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걸 어떻게 알죠?”

“음… 저녁 무렵에 이 정도의 습기가 있는 바람이 숲속에서 불면 호수가 어딘가 있다는 소리에요. 알아두면 편해요.”

키세레와 클루토는 다시 한번 바람을 느껴보았다. 과연 습기가 많은 바람이었다.

“자,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여기 서부터는 진짜 조심해야 해요. 계절이 가을이라 독충의 영향은 받지 않겠지만 야수나 마수들에게 습격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으음… 그리고 지금은 특히 말이죠. 저녁이 가까워졌으니까요.”

리오는 목을 풀어보며 둘에게 경고를 해주었다. 클루토와 키세레는 주위를 둘러본 후 서로의 사이를 좁혀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 말고… 다른 이야기는 없나요?”

리오는 턱에 집게 손가락을 대고 가만히 생각하다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아, 이 대륙의 숲속에선 사람들의 재물을 노리는 도둑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자칭 의적이라고들 하는데 믿을 건 못 되죠. 하지만 괴물들에게 걸리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겁니다. 죽지는 않을 테니까요.”

키세레와 클루토에겐 더더욱 기가 빠지는 소리였다. 어찌 되었든 일행은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나무잎 사이로 붉은 노을빛이 흘러 비쳐왔다. 얼마 후 날이 거의 저물게 되자 일행은 숲의 중심쯤에 위치한 호숫가에 다다르게 되었다.

“음… 오늘은 여기서 노숙해야 되겠는데?”

리오는 주위를 둘러보며 잠을 잘 장소를 찾기 시작했고 클루토와 키세레는 마른 잎과 땔감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세 사람이 자고도 남을 만한 장소를 발견한 리오는 둘을 불러 그런대로 볼만한 노숙 장소를 찾아내었다. 중간에 불을 지핀 리오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에서 마법의 가루가 들어있는 작은 가죽 주머니 두 개를 꺼내었다. 그중에 하나는 모닥불에 약간 털어 넣었고 또 다른 하나는 잠자리 주위에 뿌렸다. 가루가 들어간 모닥불은 푸른색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뭐죠?”

리오는 주머니를 닫으며 설명해주었다.

“모닥불에 넣은 것은 여행용 필수품 중 하나예요. 넣어두면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 타오르게 되어있지요.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일종의 개인 결계라 할 수 있어요. 짐승들의 습격을 막아주죠.”

리오가 털어 넣은 가루 덕분인지 잠자리 주위는 꽤 따뜻해졌다. 클루토는 자신의 넓은 마법사 코트를 벗어 자신을 덮었고 리오는 그대로 팔베개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노숙에 익숙한 둘과는 달리 키세레는 몸을 떨며 새우잠을 자야만 했다. 리오는 눈을 뜨고서 키세레를 바라보았다.

“어이, 수녀님. 제 망토라도 드려요?”

“필요 없어요, 있으면 냄새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아요.”

“… 잘났수다.”

리오는 맘대로 하라는 듯 다시 눈을 감으며 헛기침을 했고 키세레는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겨우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리오는 슬며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을 몰아서 자는 특이 체질이니 상관은 없었다.

“후우… 별이나 세며 밤을 지새워야 하나?”

리오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은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하아앗…!”

리오는 나지막이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키세레가 몸을 심하게 떨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참나… 그러길래 망토 받으라고 할 때 받을 것이지. 그건 그렇고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리오는 키세레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있었다.

“이런, 노숙을 한 번도 안 해봤나 보군. 이거 심각한데?”

리오는 그녀를 모닥불 가까이 옮겨놓은 후 자신의 망토를 덮어주었다. 그래도 그녀의 상태엔 변화가 없었다. 치료법이라고는 골절 치료나 간단한 혈도술 뿐인 리오에겐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저혈압이면 저혈압이라고 이야기를 할 것이지, 그냥 오기로 잠을 자면 어떡해. 정말 미치는구나… 체온은 안 올라가고.”

리오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러던 도중 극한 지방의 추위를 피하는 방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 방법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외엔 거의 쓸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우선은 앉혀두고…”

리오는 그녀의 상체를 일으키며 웃옷을 벗겼다. 키세레는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만 힘없이 흔들 뿐이었다. 속옷만을 입고 있는 그녀의 상체를 받쳐두고 리오는 자신의 웃옷도 벗었다. 그리고는 몸에 기를 빠르게 돌리며 자신의 체온을 높여두었다.

“… 안돼요… 이러면…”

리오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쁜 마음은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리오는 키세레의 뒤로 돌아앉아서 그녀의 몸을 살며시 안았다.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가 리오의 두꺼운 근육에 닿았다. 클루토는 아는지 모르는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은 정말 오래간만에 당해 보는군.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데… 훗.”

리오는 눈을 감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그 극단적인(?)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키세레의 경련은 멈추게 되었다. 체온도 점차 정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휴우… 됐다. 자, 덤으로 치료까지 해볼까?”

리오는 그녀에게 옷을 다시 입혀준 후, 등의 혈도를 짚어가며 저혈압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심장의 박동이 유난히 느리다는 것을 리오는 발견할 수가 있었다.

“훗, 이래서 짜증을 잘 내는 건가. 어쨌든…”

리오는 빠르게 키세레의 혈도를 짚어나갔다. 키세레는 미리 찔러둔 혈도에 의해 계속해서 자고 있는 상태여서 치료에 방해가 될 일은 없었다.

“좋아, 마지막이다.”

리오는 키세레의 왼쪽 심혈을 기가 실린 검지로 여러 번 짚었다. 그리고 다시 맥을 짚어 보았다.

“… 정상이군. 이제 저혈압 걱정은 웬만큼 끝났어요, 수녀님.”

키세레를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눕혀둔 리오는 자신의 망토를 그녀에게 덮어주며 아까 전과 같이 나무에 기대어 별을 세기 시작했다.


음침하던 숲에도 아침은 밝아왔다. 밤에 매섭게 불던 찬바람은 거짓말같이 잔잔해졌고 상쾌한 공기가 노숙하는 세 사람에게 밀려왔다.

“… 아… 앗!!”

키세레는 소스라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한(!) 꿈을 꾸어서였다. 키세레는 양손을 모으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잡념이 많아 그런 꿈을 꾼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어째서 그 사람의 꿈을 꾼 거지?”

그녀는 망토를 뒤집어쓴 채 나무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는 리오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자리에서 일어난 키세레는 약간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풀며 호숫가로 걸어갔다. 아침마다 세면을 하는 그녀에겐 버릇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호숫가에 앉은 키세레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었다.

“정말… 좋은 곳이네?”

그녀가 감탄하며 머리카락을 물속에 담글 때 즈음, 그녀를 향해 반짝이는 물체가 나무 위에 도사리고 있었다. 활의 시위를 당기고 있는 긴 귀의 엘프족 소년은 이를 갈며 키세레를 쏘아보았다.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그 소년은 중얼거렸다.

“으윽…! 가이라스의 첩자, 내 손으로 없애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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