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12화
수십번에 걸친 낫과 창의 충돌에 의해 청성제와 여왕 등이 있는 방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만은 무사했다. 물론 슈렌의 실력에 좌우된 것이었다.
슈렌은 연속공격을 통해 조커 나이트가 빈틈이 생기는 어떠한 공격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고, 휀에게 당한 충격이 아직도 몸에 남아있는 조커 나이트는 하는 수 없이 슈렌 외엔 신경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파앙—!!!
슈렌과 조커 나이트는 다시금 창과 낫을 맞대고 대치하게 되었다. 그때, 슈렌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마기를 느끼고 사바신과 함께 급히 이곳으로 달려 오긴 했지만, 휀과의 승부를 그렇게도 원하고 있느 조커 나이트가 군말 없이 자신과 대결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슈렌은 조커 나이트의 창을 약간 밀어내며 그에게 물었다.
“…두뇌가 아직 회복이 안되었나? 어째서 휀이 있는 별궁에 가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거지?”
그러자, 조커 나이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키카카캇…상관의 명령엔 따라야 하겠지…아무리 악마라도 계급만은 엄격하니까 말이야. 아쉽지만…그 휀 녀석의 시체를 구워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군…키카카카카캇—!!!!」
“…!!!”
그 대답을 들은 슈렌은 조커 나이트를 강하게 쏘아 보았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조커 나이트에게 다시금 물었다.
“…상관이라면…린라우를 말하는 것인가?”
별궁 역시 악마들이 들이닥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별궁엔 로드 덕 등 강자라면 강자라 할 수 있는 일행들과 케이, 휀이 있었다. 휀은 가장 앞으로 나선 상태로 악마들을 플랙시온만을 이용해 간단간단히 처리하고 있었다. 그리 많은 동작을 사용하지 않는 휀의 전투 방식이기도 했지만, 등의 상처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케이는 전투를 하면서도 휀을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그의 등에 난 상처를 아는 이상 자연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악마들과 일행들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악마들은 경건히 무릎을 꿇었고, 일행들은 어디선가 밀려오는 압도적인 마력을 느낀 후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듯 했다. 역시 그 마력을 느낀 휀은 눈을 살짝 감은 후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런 뒤, 자신의 뒤에 있는 로드 덕을 돌아보며 그에게 물었다.
“…영감, [라렉스 큐어]주문을 사용할줄 아나.”
“으음!?”
휀의 질문을 들은 로드 덕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라렉스 큐어 주문은 강력한 해독작용을 가진 주문이었으나, 너무나 강력한 주문인 탓에 대상자의 몸이 잠시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있었다. 평상시라면 놀라지 않을 로드 덕이었지만, 현재는 일촉즉발의 전투상황이었기 때문에 라렉스 큐어를 사용해달라는 말은 자살을 하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로드 덕의 놀란 표정에도 불구하고, 휀의 얼굴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역시 쓸모없는 노물일 뿐이었군. 뭐, 상관없어….”
그 순간, 로드 덕을 존경한다면 존경한다고 할 수 있는 열혈한 테크의 눈에선 불똥이 튀겼고, 테크의 살의는 악마들에서 휀으로 돌려졌다. 그 순간.
“움직이면 죽는다.”
휀은 테크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크는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 휀에게 무슨 사정이 있음을 안 로드 덕은 씨익 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훗, 레프리컨트 왕국의 현자, 로드 덕을 우습게 보는구먼 젊은이!! 자아, 자네가 죽던 말던 나와는 상관 없으니 소원대로 맘껏 사용해 주지!! 으음…!!!”
데몬 게이트가 창공에 열리고, 그 안에서 엄청난 마력이 뿜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로드 덕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테크는 맘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천천히 검을 주워 들고 악마들을 향해 돌아섰다.
“자아, 받게나—!!!!”
주문을 완성한 로드 덕은 주문탄을 휀에게 집어 던졌고, 자신의 배틀코트의 마법 장벽을 없앤 휀은 그대로 그 주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휀의 몸에선 오색의 빛이 퍼져 공중으로 치솟았고, 그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휀의 입에선 검푸른 피가 뿜어졌다.
“…큭.”
피를 뿜어낸 휀은 자신의 오른팔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로드 덕은 걱정스런 얼굴로 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상당히 강력한 독에 중독되었었군. 그런데도 저렇게 움직일 수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젊은이야…. 표정이나 뭘 봐도 대충, 대강인 듯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군. 최강이라는 이름이 정말 어울리는 남자야. 하지만…아무리 저 젊은이가 가즈 나이트라고 해도 최소 2분간은 아무 동작도 할 수 없을텐데…!’
로드 덕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데몬 게이트에선 한 사나이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칠흑색의 갑옷, 그리고 그 갑옷의 연결 부위에서 밖으로 넘쳐 흐르는 마력…. 상상이 가지 않았다. 휀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사람에겐 몸이 움직이지 못할 압도감을 느꼈지만, 그에게선 몸 안에 흐르는 혈류가 멈추는 듯 한 거대한 느낌이 들었다. 공중에 살짝 뜬 채로,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휀의 앞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휀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린라우인가…? 기대 이하군.”
케이는 기가 막혔다.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보다 훨씬 강해보이는 상대에게 그런 말을 하는 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존재…악마대공 [린라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쿠후후…미안하군. 상당히 기대를 한 모양인데? 어쨌든…너라는 녀석은 특별하니 용건을 정중히 말해주지. 난 너에게도 볼일이 있지만…가장 중요한 볼일은, 이 대륙에 있는 마지막 신주를 찾기 위함이다. 물론…너도 그 기둥이 어디 있는지는 대강 알고 있겠지? 초대 가즈 나이트라는 이름이 있으니….」
휀은 여전히 무표정인채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양 팔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기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꽤 썼더군…. 물론, 나에겐 간단한 일이었다.”
둘 사이엔 그렇게 침묵이 흘렀다. 곧, 린라우는 크게 웃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쿠…크하하하하하하하—!!! 거짓말도 잘 하고 있군 휀·라디언트! 내가 그 세 여신의 힘을 얻지 못했다면 네 거짓말에 속았을 것이다. 모르고 있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말 하다니, 너라는 가즈 나이트도 그런쪽으로 머리가 돌긴 하는군…하하하하하하하핫—!!!!」
그러자, 휀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금발을 자연스레 쓸어 넘겼다. 로드 덕은 그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 쉬었고, 케이 역시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휀은 희미한 미소를 띄운채 린라우에게 물었다.
“…그게 재미있는가 보군…. 여신의 힘을 얻으면 머리속까지 유치해지나.”
그 순간, 린라우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졌고 휀은 그의 얼굴을 별로 보고싶지 않은 듯 케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서 자신의 미소를 깨끗이 지운 후 나지막히 말했다.
“와라.”
그러자, 케이는 움찔 하며 뒤로 주춤거렸다. 휀이 자신에게 오라는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휀은 여전히 감정이 없는 차가운 얼굴로 다시금 말했다.
“오지 않으면 네 동생을 죽이겠다.”
케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어쩔 수 없이 휀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분명히 농담이 아닌 어조였고, 병사들을 사정없이 날려 보내는 비정함을 본 케이로서는 레이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케이는 곧 린라우와 휀의 앞에 서게 되었다. 가만히 케이를 바라보던 휀은 눈을 지그시 감은 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케이를 가만히 끌어 안았다.
“—!! 이, 이봐요!!!”
그 상태에서, 휀은 그녀에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영혼의 기둥…. 원래 한 육체엔 두개의 영혼이 들어갈 수 없는 신의 진리. 그러나 신이 만든 기둥이었기에 그 불문율이 허용되었지. 지금까진 네 동생과 네 부모, 네 스스로가 널 보호했다.”
케이의 얼굴은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린라우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휀은 눈을 뜨며 말했다.
“…아침에 했던 말…바꾸지. 난 죽을 수 없어…내가 죽으면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또한 너도 지킬 수 없게 되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널 지켜주겠다. 나에게 맡겨줘. 내가 죽기전엔…넌 절대 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