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13화
휀의 그 말과 동시에, 케이는 레이로 변했고 휀의 몸에선 진홍색의 빛이 잠깐 뿜어져 나갔다. 스르륵 쓰러지는 레이를 가만히 눕힌 휀은 눈을 감은 후, 잠깐동안 심호흡을 하고 나서 린라우를 향해 다시금 돌아섰다.
“자, 이제 간단하다. 내가 죽으면 영혼의 기둥은 너의 것이다.”
린라우의 눈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표정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린라우는 이를 갈며 휀을 향해 중얼거렸다.
「…교활하고 영악한 놈…. 그러나…지금의 내 힘을 네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나? 신의 힘을 얻은 나를? 너와 맞먹는 존재라는 어둠의 가즈 나이트, 바이론을 쓰러뜨린 나에게? 가소롭기 그지 없군….」
그러자, 휀은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최고, 최강이라는 단어는 단 한사람에게 통하는 것…. 맞먹는 것과 최강이라는 단어는 다르지. 그리고 바이론의 팔 하나를 날렸다고 그를 쓰러뜨렸다 생각하다니…큿.”
휀은 잠깐 실소를 터뜨리다가 오른손으로 웃음을 멈추며 린라우를 향해 다시 말했다.
“…실례했군. 너무 우스워서….”
그런 와중에서, 쓰러졌던 레이가 다시 일어났고 휀은 그녀를 바라보지 않은 상태로 조용히 말했다.
“‘그것’을 줘.”
“예? …아, 네.”
레이는 즉시 소매에서 은제 십자가를 꺼내었고, 휀은 그 십자가를 양 손 사이에 포갠 후 강하게 빛을 주입하였다. 휀은 황금색으로 빛이 변한 십자가를 레이에게 돌려준 후 그녀에게 전했다.
“네 언니는 내가 맡겠다. 너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그 십자가를 가지고 슈렌 등이 있는 곳으로 가. 전해주면 그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찌꺼기’는 그 린스라는 여자아이에게 줘. 이제 가라.”
레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제궁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제궁으로부터 별궁까지의 공간은 악마들과 나찰, 수라들로 가득했다. 레이의 술법으로는 돌파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알겠습니다.”
레이는 눈을 꼭 감고 제궁쪽을 향해 달려갈 준비를 했다. 그때, 휀이 양 팔을 교차하며 말했다.
“이건 네 언니의 선물이다. [래이브 라이트].”
휀은 곧 교차했던 자신의 양 팔을 펼쳤고, 두가닥의 섬광이 악마들의 대 군단을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파아아아앙—!!!!!!!!!!!!
이윽고, 예전에 쓴 래이브 라이트보다 훨씬 큰 크기의 폭발광이 공중으로 치솟았고 그 대 폭발의 범위내에 들어 있던 악마들과 나찰, 수라들은 순식간에 먼지로 변하였다. 엄청난 숫자가 있었지만 밀집되어 있었던 탓에 악마들의 대다수는 전멸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휩쓸린 것이었다. 레이는 자신의 앞으로 크게 파여버린 성을 바라보다가 표정을 굳히며 제궁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데리고 나온 부하들의 대다수가 전멸된 것을 본 린라우는 다시 표정을 풀고 웃으며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쿠쿡…. 그래, 내가 널 우습게 봐도 한참 우습게 봤군. 그냥 조커 나이트만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뭐 좋아. 조커 나이트 말고도 좋은 부하가 한명 더 남아 있으니 말이야. 네가 여자를 보낸 제궁이라는 곳에 말이지, 후하하하하하….」
그러나, 휀은 그 말을 듣지 않은 듯 자신의 옷을 툭툭 털며 린라우에게 말했다.
“무대도 정리되었으니…이제 해보지.”
※※※
제궁쪽의 상황 역시 정리된 상태였다. 휀의 래이브 라이트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아니, 처참할 것도 없었다. 무사한 것은 궁전의 건물 뿐이었으니까. 궁전의 결계 안으로 급히 몸을 날린 사바신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한숨을 내 쉬었다. 하마터면 그도 래이브 라이트의 폭발 범위에 들어가 큰 충격을 입을뻔 했기 때문이었다.
“…휘유, 휀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자신의 기를 사용해서 래이브 라이트를 날리는 일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그때, 별궁이 있는 방향에서 누군가가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사바신은 곧바로 자신의 팔봉신 영룡을 오른팔로 들고 그쪽을 향해 뛰어 나갔고, 레이와 만난 사바신은 걱정이 되는 어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 레이 공주! 숙소쪽은 어때요?”
레이는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흐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휀 님이 저와 같이 있던 제 언니의 영혼을 대신 받으신 후, 악마대공과 일대 일로 대치하고 계시답니다. 휀 님의 말씀으로는 제 언니의 영혼이 ‘영혼의 기둥’이라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그 말을 들은 사바신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영혼의 기둥? 설마…아니, 그럴리가? 신주(神柱)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는데?”
사바신의 그 말을 들은 레이는 걱정이 되는 얼굴로 별궁쪽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그리 심각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 듯 했다. 그녀는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무엇인가를 빌기 시작했다.
“…련희야?”
그때, 사바신과 레이의 뒤에서 중년의 여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였다. 처음 만났을때 부터 그녀를 싫어하던 사바신은 별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고, 레이는 가만히 왕비를 돌아보다가 이내 그녀에게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 어마 마마…!! 가희 언니가…가희 언니가…!!”
왕비는 가만히 레이를 내려다 보다가, 곧 자신의 얼굴을 레이의 검은 머리결에 묻으며 위로하듯 중얼거렸다.
“…결국엔…. 그래, 모두 이 어미의 잘못이구나….”
돌아선채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바신은 돌바닥이 되어 버린 성의 바닥을 영룡으로 툭툭 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안아준다는 말인가…? 뭐…그럴수도 있겠지. 그런데 뭐가 결국에라는 말이지?’
그런 한편.
한참을 격돌하던 슈렌과 조커 나이트는 서로가 지치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서 큰 일격도 날리지 못하게 슈렌이 자신을 견제하며 공격을 했기 때문에 조커 나이트는 지치기보다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슈렌은 숨을 잠깐 내 뱉으며 청성제와 여왕 등에게 말했다.
“나가셔도 좋습니다. 밖은 이제 안전할겁니다.”
그 말에, 린스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 쉬었고, 청성제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이 열렸고 누군가가 숨을 급히 몰아쉬며 청성제를 찾았다.
“아, 아바 마마…!! 소자가…소자가 대령했사옵니다…!!!”
그 순간, 청성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석에 누워 안정을 취해야 할 카이슈 태자가 그 몸을 이끌고 자신에게 달려온 것이었다. 청성제는 급히 카이슈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이, 이런…!! 왜 이곳으로 온 것이냐 태자야!!! 너는 환자란 말이다 환자!!!”
서 있는 것이 겨우인 듯 한 카이슈는 곧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아바 마마…. 전 태자이기 이전에 아바 마마의 자식이옵니다…. 아바 마마께서 위험에 처하셨는데 어찌 제가 달려오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그때였다.
사바신은 자신의 뒷쪽에서 갑자기 강한 요기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영력이 움직임의 주가 되는 팔봉신 영룡도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사바신은 굳은 표정을 지은채 뒤를 흘끔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냐,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