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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14화


“무, 무슨 일인가…?”

왕비는 사바신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자 움찔하며 그에게 물었고, 아무 말 없이 뒤를 돌아보던 사바신은 이내 제궁 안쪽을 향해 달리며 왕비와 레이에게 소리쳤다.

“두사람 다 날 따라와요!! 내 머리로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당신들이 있어야 할 일 같으니까요!!!”

왕비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사바신이 느낀 요기를 역시 느낀 레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왕비의 손을 잡고 제궁 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멈추십시오 쾌성 태자!!”

순간, 큰 목소리와 함께 천정 윗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청성제의 앞에 내려섰고, 카이슈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자신과 청성제 사이에 내려선 사건정중 두령, 난영에게 소리쳤다.

“…무슨짓인가 난영, 자네 갑자기 왜 그러는가!”

난영은 아무말 없이 청성제의 가슴을 왼팔로 슬쩍 밀었고, 청성제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채 뒤로 물러섰다. 조커 나이트와 대치중인 슈렌은 안되겠다는듯 눈을 부릅뜨며 조커 나이트를 벽쪽으로 밀쳤다. 슈렌의 팔에 상상 이상의 힘이 들어가자 조커 나이트는 흠칫 놀라며 뒤로 주춤거렸고, 그 상태에서 슈렌은 여왕 등에게 소리쳤다.

“조심하십시오! 뭔가 이상합니다…!”

그런 후, 슈렌과 조커 나이트는 그 방 밖으로 전투의 무대를 옮겼다. 그 사이, 난영은 등에 맨 자신의 칼에 오른손을 가져간 후 카이슈에게 말했다.

“…제궁 호위망은 지금까지 마귀에게 돌파당한 일이 없었사옵니다. 사건정중의 방어능력 탓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제궁을 건설할때부터 선인들이 설치한 난마진(亂魔陣)에 의해 마귀들의 방향감각이 상실되어 중요 거점엔 절대로 마귀가 가지 못하게 되어 있사옵니다. 하지만, 최근 저기 뒤에 있는 마귀에 의해 제궁 호위망이 간단히 돌파당한 일이 있었사옵니다.”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지금 이 상황에 그런것을 따질 이유가 있는가!!”

카이슈는 벽에 완전히 기댄채 난영에게 소리쳤고, 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때 일 이후 전 사건정중과 제궁 난마진에 대한 점검을 계속 하였사옵니다. 그때, 왕비님께서 머무르시는 처소에 난마진을 무너뜨리는 정체불명의 옥(玉)을 발견할 수 있었사옵니다.”

그러자, 청성제는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고 카이슈는 비통한듯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닐걸세…! 어마마마께서 절대 그러실리가 없어…!!”

난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몇일 전, 가희 공주께서 손님들과 만찬을 가지신 일이 있었사옵니다. 그때, 사건정중 대대로 내려오는 암살약인 반독이 음식에 들어있었사옵니다. 그리고 목격한 궁녀들의 진술에 의하면 그날 저녁에 왕비님께서 별궁에 잠깐 오고 가셨다 하옵니다.”

말이 거기까지 나오자, 청성제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고 카이슈는 부정하려는듯 소리쳤다.

“…아니야, 어마마마께서 왜 그런 일을 하시겠나!! 자네가 잘못 안 것일세!!! 크으으윽….”

난영은 그때 뻘쭘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서 왼손으로 품속에 숨긴 작은 은수저를 들어 보였다.

“…이 수저는 왕비님의 처소에서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몰래 조사해 찾아낸 것이옵니다. 보시다시피 색이 변해있지 않은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나….”

난영은 곧바로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었고, 그 병에 든 액을 즉시 은수저에 부었다. 그러자, 은수저는 고약한 연기를 내며 시커멓게 변해 버렸고 그것을 본 카이슈의 얼굴은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난영은 끝이 검게 변한 은수저를 보란듯 높이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제가 이 수저에 뿌린 액은 그 당시 사용되었던 반독의 나머지 성분이옵니다. 왕비마마는 그 당시 가희 공주님과 손님들이 드실 음식을 이 은수저로 하나하나 직접 검사를 하셨사옵니다. …왕비님은 대왕마마나 모든 문무관이 알다시피 그리 높지 않은 신분인 상태로 국모가 되신 분…그런분이 이런 반독에 대해, 제궁 호위망에 대해, 난마진에 대해 아시리라 생각하십니까? 반독은 대왕마마께서도 모르는 독, 사건정중에서도 간부급의 인물만이 알고 있는 것이옵니다. 난마진도 마찬가지…강력한 만큼 정교하기 때문에 높은 대신들도 모르고 있는 것이옵니다. 하지만 이 세가지를 모두 알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 순간, 청성제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카이슈는 언제 비통했냐는 듯 표정을 풀며 난영을 쏘아보았다. 난영은 오른손에 잡은 칼자루를 더욱 굳게 잡으며 말했다.

“…전 쾌성 태자와 가희 공주 두분이 어렸을때 부터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암살법, 독 제조법, 격투술, 정신술법 등을 전수해 드렸습니다. 이 대륙 안에선 저 이상의 암살자가 없기 때문에 저에게 암살법을 배우신다면 암살을 당하실 확률은 희박하기 때문이었사옵니다. 저에겐 오랫동안 자식이 없다가 여식만이 둘 태어났을 뿐이어서 태자 전하를 제 친 아들과 같이 생각하며 가희 공주님보다 한층 더 깊은 것을 가르쳐 드렸사옵니다. 제 정성을 다해서…그러나 태자 전하, 왜 그런 일을 계획하셨사옵니까….”

“…훗, 멍청한….”

카이슈는 곧 벽에서 몸을 떨어뜨린 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씁쓸히 웃어보였다. 얼굴의 혈색도 언제 아팠냐는 듯 좋아졌다. 그 모습을 본 청성제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의자에 힘없이 주저 앉았다. 카이슈는 곧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모든 것이 아바마마, 어마마마 때문이다!! 친 자식이라 거짓을 말씀하시면서도, 행동은 진실되게 하셨지….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가희와 련희를 처벌하신 일은 있어도 날 처벌하신 일은 한번도 없었다 지금까지!!! 어렸을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아바마마 께서도, 어마마마 께서도…나에게 보내는 눈빛과 가희, 련희들에게 보내는 눈빛이 달랐어!! 그러면서 내가 성인식을 거친날 저녁…잘도 나에게 진실을 말씀하셨지, …기억 나십니까 아바마마!!!”

카이슈는 처절한 목소리로 청성제를 불렀다. 청성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어두운 그늘이 끼어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너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진실을 알아야 한단다…풋, 내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두분의 마음만 편하기 위해 말한것일 뿐이지 않사옵니까 아바마마!!!! 아들이…아무리 피가 반 밖에 섞이지 않은 아들이라지만 아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되어있지 않은지도 모르셨으면서…!!!! 그 일이 있은 후, 난 내 자신을 해하기 위해 전국에서 출몰하는 마귀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난 아주 강한 마귀와 만나게 되었지…. 아마 지금 밖에도 와 있을거다. 그가 그랬다, 자신을 해하는 바보같은 짓을 왜 하느냐고,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옳지 않냐고!!! 그래서…난 그에게 힘과 그의 계획을 받은 후 부상당한 것 처럼 꾸미고 성에 돌아왔다. 복수를 하기 위해!!!”

그 외침과 동시에, 카이슈의 몸에선 상당히 강력한 마력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채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난영은 조용히 자신의 두건을 벗었다. 풍파를 많이 겪은 흔적이 있는 중년의 얼굴이었다. 난영은 곧 눈을 뜨며 말했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저의 책임이옵니다. 제가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악화가 안되었을 터인데…. 대대로 이 제궁을 호위한 조상님들의 영전 앞에 설 자격이 전 없사옵니다. 소인, 목숨을 바꿔 태자 마마를 편하게 해 드리겠사옵니다….”

카이슈의 몸은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겉은 여전히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더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거의 완전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악마화가 된 카이슈의 앞에 선 난영은 여왕 등에게 뒤로 물러서라는 신호를 보낸 후, 등에 장비한 도검을 비장하게 빼어 들었다. 카이슈는 곧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끝이오…난영, 아바마마…. 지금까지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청성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죽는다 해도 아무 할 말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난영은 가라앉히고 있던 자신의 기를 최대로 폭발시키며 소리쳤다.

“여기 난영, 목숨을 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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