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18화
기습을 가했던 슈렌은 즉시 뒤로 물러섰고, 조커 나이트는 언제 비웃었냐는듯 분위기를 바꾼 후 제대로 싸울 준비를 했다. 슈렌은 자신의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조커 나이트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둘 다 지친 것 같으니 빨리 끝내지…. 난 싸움을 싫어하는 편이거든.”
그러자, 조커 나이트는 그 말을 부정하려는듯 이를 악물며 슈렌에게 빠른 속도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네녀석…의외로 날 짜증나게 만드는 녀석이로구나—!!! 죽어랏—!!!!」
파앙—!!
팔봉신 영룡으로 그 공격을 간단히 막아낸 슈렌은 조커 나이트의 낫을 강하게 밀쳐내며 짧게 중얼거렸다.
“싫어.”
조커 나이트의 낫이 뒤로 밀린 틈을 탄 슈렌은 조커 나이트의 안면을 왼손으로 잡아 시야를 가린 후, 그의 뒤로 돌아서며 영룡으로 목을 베듯 강하게 내 쳤고, 조커 나이트는 충격을 받은 부위에서 피를 뿜으며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 몸을 돌리고 말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슈렌은 조커 나이트의 안면을 영룡으로 내 쳤고, 조커 나이트의 머리가 뒤로 젖혀짐과 동시에 그의 목을 다시금 영룡으로 내리쳤다.
「컥—!!!」
완전히 중심을 잃고 추락하던 조커 나이트는 겨우 중심을 잡고 방어 태세를 취했고, 영룡 자체의 무게가 꽤 무거운 탓에 슈렌은 영룡을 어깨에 걸친 후 고개를 저었다.
“…정말 무거운데….”
목 관절이 완전히 뒤틀린 상태인 조커 나이트는 낫을 잡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자신의 목을 쳤고, 그의 목은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나며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통증은 상당했기에 조커 나이트는 분노에 몸을 떨며 슈렌을 쏘아 보았다.
「네, 네녀석…네녀석…!!!!」
“…할말 있으면 빨리 하시지…. 팔이 뻐근해졌거든….”
슈렌은 왼팔로 영룡을 든 오른팔을 주무르며 조커 나이트에게 말했고, 조커 나이트는 더이상 치욕을 당하기 싫었는지 부숴진 자신의 가면을 멀리 던져버린 후, 낫을 들고 무대포로 슈렌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낫을 마구 휘두르며….
「키아아아아앗—!!!!!」
파앙—!!!!!
순간, 다시금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슈렌이 휘두른 팔봉신 영룡이 조커 나이트의 낫 끝을 정확히 때리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곧, 조커 나이트의 낫은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내 산산조각이 나며 공중에 흩뿌려졌다. 조커 나이트는 순간 전의를 상실한듯 눈을 크게 뜨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 아니 어째서…? 다이아몬드도 자르는 내 낫이…!?」
슈렌은 왼 손가락을 든 후, 말 없이 마법진을 빠르게 그리며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팔봉신 영룡은 2000년 묵은 명왕의 사과나무로 만들어진 특제품…그 강도는 잘 제련된 오리하르콘과 맞먹지. 무게도 꽤 나가고…. 아무리 다이아몬드를 자르는 날이라도 이런것에 두번정도 정타를 받으면 남아나지 않을것…이라 생각되지 않나.”
설명을 끝낸 슈렌은 손바닥 정도 크기로 그린 마법진을 왼손에 겹친 후 조커 나이트의 안면을 잡았고, 평상시처럼 뜬듯 만듯 한 눈을 하며 말했다.
“…오늘은 어제 휀과 싸울때보다 약한 것 같군…. 제발 다시 나타나지 말길…나도 지겹다는 생각은 하거든…. 그럼…[멜튼].”
푸웅—!!!
슈렌의 왼손에선 소형급의 멜튼이 폭사되었고, 멜튼의 범위에 완전히 들어있던 조커 나이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깨끗히 사라져 갔다. 슈렌은 연기가 풀풀 나는 왼손을 턴 후 제궁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어제 레퀴엠을 맞고도 오늘 다시 나타난듯 한데…아냐, 설마….’
창문을 통해 모두가 있는 방으로 돌아온 슈렌은 영룡을 사바신에게 던져준 후, 그룬가르드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푸욱—!!!
“슈, 슈렌씨!!!”
순간, 슈렌은 몸 곳곳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고, 그 광경을 본 노엘은 기겁을 하며 회복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슈렌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사바신을 바라보았고, 사바신은 곧 알겠다는듯 그를 부축해 그룬가르드 가까이 옮겨 주었다. 슈렌은 자신의 창을 손으로 잡았고, 그룬가르드에선 곧 붉은색이 빛이 은은히 뿜어지며 슈렌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슈렌은 한숨을 길게 내 쉬며 자리에 스스로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주문을 다 외워 슈렌에게 사용하던 노엘은 사바신을 바라보았고, 사바신은 볼 줄 알았다는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해 주었다.
“…그룬가르드와 슈렌은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거든요. 그룬가르드는 슈렌의 에너지를, 슈렌은 그룬가르드의 에너지를…뭐, 대충 그렇게요. 슈렌은 지금 다 빠져버린 기를 그룬가르드를 통해 보충하고 있는 거에요. 저렇게 안하면 영영 안녕일지도 몰라요.”
청성제, 왕비와 함께 카이슈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던 레이는 슈렌이 돌아오자 넓은 옷소매로 눈물을 꼼꼼히 닦은 후 품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십자가를 꺼내어 슈렌에게 보여주었고, 그 십자가를 본 린스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 아니 그거 내…아니 리오가 준 십자가!!”
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휀이 말해준 그대로 슈렌과 린스 등, 모두에게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휀님은 케이 언니의 영혼을 스스로 받아들이신 후 현재 별궁이 있는 쪽에서 계속 전투를 하고 계실겁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이 십자가를 건네 주시며 말씀하셨지요. 이것을 슈렌님에게 보여드리면 알아서 하실거라며….”
기가 상당히 소모되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슈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에게서 그 십자가를 받아 들었고, 그는 곧 그 십자가를 다시 린스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바이론이 예전에 데몬 게이트로 이 세계를 빠져 나간걸 모두 아실겁니다. 그것처럼, 휀은 선신 계열 천사들이 사용하는 [빛의 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휀의 마음대로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휀은 이른바 [신앙심]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이론처럼 열려있는 공간을 사용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저 십자가는 신앙심의 표본입니다. 리오보다 먼저 가지고 있던 분은 상당히 신앙심이 깊었지요. 저 매개체를 이용한다면 아마…빛의 길을 통해 이 차원을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린스는 믿을 수 없다는듯 슈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서, 설마? 그 얼음 덩어리가 이런 생각을…?”
“…휀은 철저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가즈 나이트의 진정한 표본입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때…케이양…아니, 가희 공주님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련희 공주님의 진짜 쌍둥이 언니가 아닌, 이 왕실에 전해지던 영혼의 기둥일…것입니다.”
“아, 아닙니다!! 케이 언니는 저의…!!!”
레이는 슈렌의 말을 강하게 부정하려 했으나, 슈렌은 미안하다는듯 묵묵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휀에겐 잡념이란 없습니다. 휀과 바이론 이후 가즈 나이트가 된 저희들에게 중요시 되는 믿음, 의리, 인성…모두 그에겐 잡념일 뿐입니다. 휀이 가희 공주님의 영혼을 받아들인 이유는…신주, 즉 신의 기둥이 가진 자체적인 항마력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주가 가진 항마력이라면, 악마대공급의 대 악마가 가진 마투기도 문제없이 막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러자, 레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슈렌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넓은 어깨를 강하게 잡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럴리가…그럴리가 없습니다!!! 휀님은 제 언니를 지켜주신다고 하셨어요, 자신의 목숨을 바꿔서라도…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진실이 담긴, 숭고함이 담긴 말씀이셨습니다…!!!”
슈렌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가만히 레이를 바라보던 슈렌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휀은 800여년간 임무를 위해서라면 영혼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연기를 해 왔었습니다. 저도 그의 말에 속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러자, 레이는 힘 없이 손을 떨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그렇게 되면 케이 언니는…언니는…!!!”
그때, 상황을 말 없이 지켜보던 사바신은 영룡으로 바닥을 툭툭 찍으며 약간 불만감이 섞인 말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쳇, 지금 이 일은 휀의 임무가 아니잖아. 원래 나와 레디의 일이었다구. …왜 그녀석이 자발적으로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석도 한때는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거 아니야. 슈렌 네 말로는 친구도 있다고 했고…어떤 위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공주님.”
사바신은 레이를 돌아보며 그녀를 불렀고, 레이는 다시 소매로 눈물을 닦은 후 사바신쪽에 고개를 돌렸다. 사바신은 어색한듯 얼굴을 붉힌채 머리를 마구 긁어대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한번 믿어 보시죠. 내가 알기로 당신이 좋아하는…너무 이른가? 하여튼 리오라는 녀석,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석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 때문에 바이론 녀석과도 상당히 싸웠다고 해요. 한 세계의 존망이 걸린 임무가 상당히 많았거든요. 물론 비서 아주머니가 실수로 바이론과 리오의 임무를 겹쳐서 내 준 것이지만…뭐, 비유가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여튼 공주마마도 한번 자신의 느낌을 믿어 보시는게 어때요? 밑져야 본전…은 아니지만.”
레이는 말이 없었다. 레이를 제외한 방 안의 전원은 사바신을 의외라는 눈초리로 바라보았고, 사바신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채 결국 뒤로 돌아서고 말았다. 역시 사바신을 바라보던 슈렌은 레이의 작은 어깨를 손으로 두드려준 뒤,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런 것 같군요. 저도 한번 공주님의 생각을 믿어 보겠습니다. 자, 린스 공주님, 빛의 길 사용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이곳에서 같이 떠나고 싶은 사람을 선별해 주십시오.”
그러자, 린스는 큰 눈을 깜빡이며 슈렌을 바라보았다.
“으, 응? 왜, 왜 나에게…?”
“…그 매개체는 최근까지 공주님에게 가장 오랫동안 보존이 되어 왔습니다. 결국 빛의 길을 가느냐 가지 못하느냐도 공주님에게 달린 것입니다. 선택권도 공주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린스는 자신이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레프리컨트 여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더이상 너에게 짐을 지게 할 수는 없구나. 공주야, 너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같이 가거라….”
“하, 하지만…!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미네아도 여왕과 마찬가지의 의견이었다. 결국 린스는 노엘을 1차 지명했고, 곧 슈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슈렌 역시 고개를 저었다.
“…전 지금 부상을 입은 몸, 공주님께 심적 부담이 될 뿐입니다. 사바신에게….”
그러나 사바신은 이미 창문 밖으로 몸을 날린 후였다. 오직 창문 밖에서 뭉게뭉게 피어나는 담배 연기만이 그의 말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슈렌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그런 후, 린스는 청성제 등을 바라보았으나 다시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말았다. 만약 지금 그 둘을 바라본다면 큰 실례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린스는 곧 레이를 바라보았다. 레이 역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닙니다, 전 아바마마, 어마마마와 이곳에 남겠습니다. 전 이곳의….”
그러자, 린스는 말도 안된다는듯 그녀의 손을 꽉 움켜 잡으며 말했다.
“흥, 듣기 싫어. 그 휀 녀석이 왜 너를 이곳에 심부름 보냈겠어? 네 언니가 바래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 케이를 실망시킬거야?”
레이는 다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린스는 자세를 낮추어 레이와 눈을 맞춘 후,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속으로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게다가…잘만 하면 리오도 만날 수 있을거 아니야?”
“…!!”
레이는 가만히 린스를 바라보다가, 곧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 레이의 모습이 린스로서는 상당히 보기가 싫었지만….
슈렌은 곧 노엘에게 부축을 받아 일어선 후, 린스에게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 십자가를 양 손 사이에 포개신 후, 제일 가고싶은 곳을 머리에 떠올리십시오. 그런 후…그곳에 가고 싶다는 염원을 집중하시길…아무 곳이든 좋습니다. 단, 명계나 악마계, 지옥계는 빛의 길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하시길….”
그러자, 손을 모으고 가만히 생각하고 있던 린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댔다.
“…그런데 가고싶을 이유가 없잖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린스와 일행들은 곧 그 세계에서 빛과 함께 사라져 갔고, 남은 사람들은 떠난 린스들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기 시작했다. 어떤 신이 되든, 그들을 제발 무사히 지켜달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