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21화
그 후로 3일동안, 일행에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모두가 평상시와 같이 편하게 지내었기에 리오 등은 지금까지 쌓인 피로도 풀리고 기분도 상당히 좋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3일간 너무나 일이 생기지 않자 오히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남자들끼리 따로 하는 동안, 리오는 슈렌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왜 그들이 공격을 해 오지 않는걸까? 점점 불안해지는데….”
리오의 질문에, 말 없이 스프를 떠 먹던 슈렌은 숟가락을 놓은 후 리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 역시 전력의 보충이 필요하겠지…. 아니면, 우리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거나…둘중에 하나…일거야.”
슈렌의 대답에, 리오의 옆에 앉아 식사를 같이 하던 지크는 맞다는듯 포크에 통째로 꽂은 세이아의 특제 스테이크를 접시 위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12 신장들도 얼마 남지 않아 우리를 공격하기엔 쓸모 없을테고, 베히모스들도 저번에 크게 다쳤으니 당분간 쓰지 못할테고…헤헷, 아마 우리가 무서워서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겠지. 편하게 살라고 편하게….”
지크는 다시 포크를 잡은 후 신나게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고, 리오는 한숨을 가볍게 내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직 끝도 나지 않았으니 계속 경계를 늦추지 말자고. 만약 습격이라도 당한다면 우리는 몰라도 식구들이 위험해지니까.”
슈렌과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거실에 있던 린스가 리오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이봐 리오. 상황 다 끝난거야? 요즘 조용한데….”
“예? 아 예…마침 그 얘기를 하고 있던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저희들이 경계만 늦추지 않으면 공주님께선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뭐 말씀하실 것이라도…?”
리오는 린스가 우물쭈물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뭔가 느낀듯 그렇게 물어 보았고, 린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으응…별것 아니고, 식사 끝나고 잠깐 얘기좀 하자고…. 밖으로 나와줘.”
“아, 예….”
린스는 다시 거실로 향했고, 지크는 놀리는 투로 리오를 향해 중얼대기 시작했다.
“헤헤…보이느뇨? 다른 여성들의 질투어린 눈빛이?”
“음?”
지크의 그 말을 들은 리오는 주위를 둘러 보았고, 부엌에서 한참 설거지를 하고 있던 세이아는 리오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다시 앞을 돌아보고 설거지를 계속 하기 시작했다. 리오는 미안한듯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때마침 식사를 다 한 지크는 계속 미소를 지은채 리오에게 말했다.
“한명으로는 끝나지 않았는데…?”
리오는 움찔하며 거실쪽을 바라보았고, 그는 자신과 일직선 방향으로 레이가 의자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리오는 결국 실소를 터트릴 뿐이었다.
“후우…큰일이군….”
식사가 끝난 후, 리오는 곧바로 집 밖으로 나가 보았고, 그는 집의 통나무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린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린스는 그가 나오자 마자 일어서며 리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고,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린스는 방향을 리오쪽으로 돌렸고 리오는 멈춰서며 린스를 바라보았다. 린스는 곧 목에 걸고 있던 은제 십자가를 리오에게 내밀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 십자가, 원래 주인이 누구야?”
리오는 잠시 속으로 움찔 했으나, 지금 와서 ‘리카’로서의 기억을 되살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능숙히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예전에 알고 있던 어떤 친구가 준 것이죠. 이건 저번에도 말씀 드렸을텐데요….”
그러자, 린스는 순간 인상을 팍 찡그리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 해!! 모두가 이상해, 그 휀이라는 녀석은 4년 전 어쩌구 하며 이 십자가에 담긴 일을 모르고 있는 나에겐 이것이 필요 없는 물건이라면서 쇼까지 했단 말이야!! 게다가, 슈렌도 이곳에 오기 직전에 그랬어! 이 십자가의 원래 주인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휀 녀석과 슈렌이 같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이 십자가에 대해 내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담겨있다는 소리야!! 나에게 똑바로 말해줘!!!”
린스가 거기까지 나오자, 리오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낀 채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휀 녀석…쓸데없는 짓을 했군…. 어쩌지…?’
리오는 짧은 순간동안 엄청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이 이번 일이 끼어든 것도 리카를 찾기 위해서였고, 그도 처음엔 리카로서 기억을 되찾게 해 주기 위해서 상당한 생각도 해 본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리카로서 기억을 찾는다 해도 너무 늦었다라 생각이 든 탓에 지금은 사실 거의 린스로서 그녀를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이렇게 나오니 리오도 엄청난 갈등에 빠지고 말았다. 리오는 결국 린스를 다시 바라본 후 말했다.
“…으음, 예, 말씀해 드리죠.”
리오는 린스와 함께 다시 집으로 간 후, 함께 벽에 기대어 앉은 다음 긴 얘기를 시작했다. 물론 리카라는 인물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 십자가의 주인에 대해서만 얘기를 해 나갔다. 세레나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자신에게 왜 이 십자가가 전해졌는지에 대해…. 한시간 가량의 얘기 후, 리오는 본론에 들어갔다.
“…그렇게 된 다음…마지막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죠. 제가 아는 한 아이가 다른 차원으로 날려가게 된 것입니다. 아직까지…생사불명이랍니다. 그 아이는…그래요, 린스 공주님과 똑같이 생겼지요. 저도 착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휀과 슈렌도 그 아이를 보게 되었는데…휀은 착각을 한 것 같군요. 슈렌의 말은 맞는 것이지만요. 공주님이 그 아이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적겠죠. 태어났을때 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있으시니까요.”
린스는 가만히 리오를 바라볼 뿐이었다. 리오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속 린스를 바라보았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린스는 갑자기 리오의 목을 끌어 안았고, 리오는 아쉬움과 안도감이 섞인 한숨을 속으로 내 쉴 뿐이었다. 리오의 목을 끌어 안은채, 린스는 훌쩍훌쩍 울며 말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런 이유가 있었는데…정말 어린아이처럼 행동만 하고…. 정말 미안해 리오….”
리오는 괜찮다는듯 린스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말했다.
“…아니에요. 진작 이렇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그건 그렇고…그렇게 구경하고 있는게 취미인가보지?”
린스는 리오의 그 말에 순간 깜짝 놀라며 리오에게서 떨어지려 했으나 리오는 오히려 그녀를 바짝 안아 자신의 뒤로 돌린 후 아무 무기 없이 전투 자세를 취했다. 곧,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한 존재가 불쑥 튀어 나왔고, 그것을 본 린스의 표정은 공포감에서 지루함으로 변하였다. 갑자기 느껴진 강한 요기에 반응을 하듯 집 밖으로 나온 슈렌도 그 존재를 본 순간 지겹다는듯 얼굴을 찡그렸다. 슬그머니 무명도를 들고 나온 지크는 린스와 슈렌의 표정에 지겹다라는 감정이 단단히 박혀 있자 흠칫 놀라며 물었다.
“응? 표정들이 다 왜그래?”
슈렌은 한숨을 푸우 쉬며 대답하듯 중얼거렸다.
“…지겹군…인간적으로….”
가만히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그 존재, 조커 나이트는 킥킥 웃으며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키카카캇…너무 그렇게 지겨워할 필요는 없어, 너희들에게 한가지 희소식을 전해주려고 왔다. 들으면 너무 기뻐서 펄쩍펄쩍 뛸걸…키카카카캇…!!!」
슈렌은 자신의 귀를 막으며 너무 지겹다는듯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린스 역시 좋은 분위기를 망쳤다는듯 입을 씰룩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리오와 지크는 서로 어깨를 으쓱이며 조커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흠, 좋아. 하여튼 얘기나 들어보고 펄쩍펄쩍 뛰던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