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31화
라이아는 리오와 바이론까지 돌아온 것을 보고 이젠 늦었다고 생각되었는지 표정을 구기며 급히 자신이 잡아둔 세이아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지크는 놓치지 않겠다는듯 이를 악물며 라이아를 뒤쫓았다.
파악—!!
순간, 지크의 안면을 누군가의 두꺼운 손이 덮쳐왔고, 지크는 그만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크는 또다른 적이 나타난줄로 알고 다시 자세를 취했으나 그의 안면을 덮친 손의 주인은 다름아닌 바이론이었다. 지크는 순간 화를 벌컥내며 그에게 소리쳤다.
“이봐 회색분자!!!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기나…해?”
화를 내려던 지크는 그만 말 끝을 흐려버리고 말았다. 바이론의 표정이, 그야말로 광기가 사라진 순수한 살기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고 그만 몸이 움츠러든 것이었다. 바이론은 곧 세이아를 잡은 라이아쪽을 돌아보았고, 바이론의 그런 표정을 처음 본 라이아 역시 약간 움츠러든듯 뒤로 물러섰다. 다크 팔시온을 손에 거머쥔 상태인 바이론은 라이아에게 천천히 접근하며 말했다.
“…누가 시킨거냐…대답하지 않으면 죽음이다….”
그러나 라이아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대신 옆에 장비한 새벽의 검을 빼 들 뿐이었다. 바이론은 라이아에게 천천히 접근했고, 살기에 짓눌려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라이아의 목덜미를 잡으며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서 말 해!! 그 늙은 과학자 따위에게 넘어갈 네가 아니잖아!!! 어째서 이런짓을 하는거냐!!!”
“…큭….”
라이아는 검을 잡지 않은 손으로 바이론의 굵은 팔뚝을 붙잡았다. 단순히 숨이 막혀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바이론의 악력이 너무 강해 목이 부러질것 같아서였다. 그 상태에서, 라이아는 크게 숨을 들이쉰 뒤 바이론에게 소리쳤다.
“…엄마…엄마 때문이야!!! 난 잘못한게 없어, 난 엄마를 위해 이러는거라구!!!”
털썩…
그 말을 들은 바이론은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으며 라이아의 목을 잡은 손을 놓았고, 바닥에 쓰러진 라이아는 즉시 세이아를 데리고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아, 이런—!!!”
라이아의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듣고 역시 충격상태에 빠져 있던 리오는 아차 하며 라이아를 급히 뒤쫓기 시작했다.
상황은 거기서 끝이었다. 바이론은 입을 꾹 다문 상태로 멍하니 서 있었고, 지크는 갑자기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지 앞으로 스르륵 쓰러지고 말았다. 슈렌은 즉시 지크를 부축한 뒤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갑시다.”
슈렌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던 레이는 겨우 정신을 차리며 슈렌에게 살짝 물어왔다.
“저어…저분은 어떻게….”
레이의 말을 들은 슈렌은 묵묵히 바이론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냥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슈렌은 결국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레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는 곧 슈렌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폐허가 된 주택가엔 오직 바이론만이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
한편, 전속력으로 라이아들을 쫓고 있는 리오는 자신이 가는 방향이 현재 미국이라는 나라쪽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끈질기게 쫓을 뿐이었다.
리오가 계속 추격을 해 오자, 라이아는 결국 잠시 멈춰섰고 리오 역시 그녀의 앞에 멈춰섰다. 리오는 분노에 찬 눈으로 라이아를 바라보았고, 라이아는 한숨을 돌리며 리오에게 물었다.
“흐음…역시 그때 얘기는 거짓말이었군요? 제가 보기엔 저 때문에 따라오시는게 아니라 제 언니 때문에 따라오시는 것….”
“동화같은 스토리대로 따라온건 아니니 안심해. 난 지금…아니, 우리 모두는 지금 너에게 배반을 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으니까. 그리고…아까 그 말은 무슨 뜻이지? 네 어머니 때문이라니…린라우 녀석이 네 어머니를 담보로 너희 둘을 원하는건가?”
리오가 말을 끊고 노기어린 말투로 자신에게 물어오자, 라이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천천히 대답했다.
“훗…린라우는 이제 별 영향력이 없어요. 그보다 더 높은 악마왕들과 약속한 기한이 끝났기 때문에 그렇죠. 이건 뭐 아시는 내용일테고…. 아까 말했듯이…이건 순전히 제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에요.”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리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어떤 잘난 의지인지 점점 듣고 싶어지는데…? 나에게 거짓말을 할 생각 하지 마, 만약 또다시 거짓말을 한다면 그땐 널 더이상 어린아이 라이아의 기억으로 보지 않을테니까.”
그러자, 라이아는 우습다는듯 미소를 지으며 비꼬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후훗…그래요? 만약에 거짓말이라 치고…절 어떻게 할건데요? 세이아 언니 앞에서 당신의 본성이라도 드러낼건가요? 가즈 나이트의 잔악성을?”
“…!!!”
그 순간, 리오의 두 눈에선 붉은색의 광체가 돌았으나, 리오는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진정을 한 후 다시 라이아에게 말했다.
“…지크가 아까 왜 그렇게 화를 내며 너랑 맞붙었는지 이유를 알겠군. 어지간해서는 그정도로 화를 내는 녀석이 아닌데…. 아직도 그때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니? 나나 지크, 바이론이 왜 너에게 화를 내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리오의 말을 들은 라이아는 고개를 숙인 후,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절 걱정하는 마음이 안타까움으로 바뀌고, 그 안타까움이 결국 분노로 이어졌다는 것을…. 하지만, 전 지금 당신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 언니가 필요해요. 자, 더이상 절 가로막겠다면 전 당신과 싸울 수 밖에 없어요.”
라이아는 곧 새벽의 검을 뽑아 들었고, 리오는 거기에 맞춰 파라그레이드를 뽑으려다가 다시 손을 멈춘 후 최대한 자제를 하려는듯 팔짱을 끼며 라이아에게 물었다.
“…좋아, 거기까진 네 생각이라 치고…. 네 언니도 분명 인격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강제적으로 행동하는게 옳다고 생각하나?”
“…후, 어쩔 수 없죠. 당신들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는 언니가 절 순순히 따라올리 없으니까요. 하지만…언니도 ‘그 곳’에 가서 제 사정을 듣게되면 저에게 협조를 해 줄거에요.”
그런 말을 들은 리오는, 말 없이 라이아를 바라보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린 후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후…완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군…완전히 열살짜리 어린애 같이. 네가 생각하는대로 일이 다 풀릴 것 같아? 미안하지만…내가 아는 네 언니 세이아는 너처럼 이렇게 반신반인의 힘을 원하지도 않고, 자신이 반신반인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된 후에도 힘을 맘대로 쓰지 않았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때는 있었지만 절대로 원해서 그런건 아니였지. 세이아는 그날 요리를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기분 좋아할까, 자신이 어떻게 해야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동생인 네가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등등, 보통의 여자들처럼 행동하는걸 당연하다 생각하며 평범하게 지내는걸 좋아했어. 내 기억으로는 예전에 너희들을 처음 만났을때도 그녀의 바램은 오직 하나, 신의 힘을 발휘하는게 아니라 눈을 뜨는것 뿐이었어. 신으로서 각성하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해 온 사람이야. 지금 겨우 눈을 뜨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네 언니의 행복을 네 마음대로 깨버리는게 옳다고 생각해?”
리오의 그 말에, 라이아는 즉시 크게 화를 내며 리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럴지도…하지만, 저도 그러고 싶어요!! 보통의 아이들처럼 살고 싶어요!!! 다른 애들처럼 엄마와 함께 생활하고 싶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