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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32화


“그럼 지금 네가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솔직히 말을 해줘!! 혼자 이런다고 일이 해결되는건 아니란 말이야!!!”

그렇게 소리친 리오와 라이아 사이엔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라이아는 손에 든 새벽의 검을 리오에게 치켜들며 중얼거렸다.

“…역시 당신은…말로서 돌아가게 하진 못할 것 같군요. …절 원망하진 말아요.”

결국, 리오는 할 수 없다는듯 파라그레이드를 뽑아 든 후 기를 주입하여 날을 만들며 라이아에게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강제로라도 너와 세이아를 데리고 돌아가는 수 밖에…!!”

곧이어…리오는 다시금 라이아와 검을 맞대고 격렬한 전투를 시작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리오는 쓰린 구석을 감출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실제 상황이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여기서 끝장인 것이었다. 서로가 힘을 감하는바 없이 검을 휘두르는 상황이어서 주위의 대기와 바다 표면은 심하게 찢기고 흔들렸고, 라이아가 만든 특수 주박진에 갇힌채 둘의 싸움을 지켜보는 세이아의 얼굴 역시 안타까움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파앙—!!!

라이아의 강한 일격을 검으로 받은 리오는 어깨가 찡해옴을 느꼈다. 강했다. 파라그레이드가 디바이너의 무속성과는 정 반대의 유속성이라고는 하지만 특정한 속성이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빛 계열의 검중 상당히 강한 축에 드는 새벽의 검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 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엑스칼리버를 쓰면 상대하기가 매우 쉬워지지만 지금 상황상 엑스칼리버를 불러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유는, 엑스칼리버를 불러낼 수 있는 장소, 즉 수면이 해수면이어서는 절대 안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오에게도 유리한 점이 있었다. 라이아의 일격은 빠르고 강력하긴 했지만, 기술적인 면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에 기술로 승부한다면 리오가 훨씬 유리했다.

티잉!!

리오는 라이아의 공격 방향으로 그녀의 검을 강하게 튕겨내었고, 몸의 균형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라이아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근접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리오는 무릎으로 라이아의 복부를 세게 가격했고, 이어서 파라그레이드의 자루 끝으로 라이아의 등판을 내리쳤다.

“팰!!!”

리오의 일격에 라이아는 바다에 추락했고, 리오는 쉴틈없이 플레어의 마법진을 왼손에 전개하였다. 봐주는건 전혀 없었다.

“일급…플레어…!!!”

리오가 왼손으로 전개한 거대 마법진에선 진홍색의 빛이 라이아가 추락한 바다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고, 바닷속에선 곧 대 폭발이 일어나 수면 위 수백미터까지 바닷물을 밀어 올렸다. 뜨듯한 물기둥이 서서히 가라앉는 상황 속에서, 리오는 곧 바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이아의 기척은 리오가 읽을 수 없었다. 시각과 청각, 육감으로 라이아의 위치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푸웅—!!!

“하아아아아아아앗—!!!!!!!”

라이아는 리오의 예상 밖으로 그의 바로 아래에서 해수면을 뚫고 솟아 올랐고, 그 정도는 충분히 반격할 수 있는 리오는 몸을 공중으로 솟구치며 라이아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였다. 그러면서, 리오는 온 몸의 기를 빠른 속도로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지하드]를…죽지 않을 정도로만…!!”

리오의 현재 계획은 라이아를 빈사상태까지 만들어 그녀와 세이아를 데리고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라이아를 위해서나, 지금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을 위해서나 좋을 것 같아서였다.

지하드를 적당한 파워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기력이 확보된 리오는 곧 공중에서 멈추었고, 라이아가 어서 지하드의 범위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아프겠지만…참아라 라이아…!!”

리오는 파라그레이드가 장난의 수준 정도의 지하드는 견딜 수 있을거라 예상을 해 보았다. 준비는 끝났다. 라이아도 거의 범위 안에 들어온 상태였다.

「라이아…어리석은 것….」

“…!?”

그때, 리오는 자신의 모든 생체 활동이 정지한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의 음성이 그의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탓이었다. 리오는 급히 뒤를 돌아보려 했으나 그의 뒤에 나타난 그 존재의 공격이 더 빨랐다.

콰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앗…!!!!”

알 수 없는 기탄에 뒷쪽을 가격당한 리오는 뒤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중심을 잃었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리오는 그만 아무런 반격도,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뒤에 있던 존재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대한 마력을 뿜어내며 혼란상태인 리오에게 일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적당히 쉬길…리오·스나이퍼…!! 일급, [홀리]!!!!」

곧바로, 그 존재가 만들어낸 마법진에선 수천에 달하는 흰색 섬광이 리오를 향해 뿜어져 날아 들었고, 리오의 몸에선 곧 엄청난 밝기의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몸 안에 주입된 홀리의 마법이 그의 내부에서 폭발하는 것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곧이어, 플레어의 그것을 능가하는 폭발이 리오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빛이 사라진 후 만신창이가 된 리오는 공중에 떠 있는 라이아를 스치고 지나가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라이아는 리오를 공격한 그 존재와 떨어지는 리오를 말 없이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 아쉽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반면에, 주박진에 갇힌채 그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세이아는 손으로 하얗게 질린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리, 리오!!! 리오씨—!!!!!!”

리오에겐 세이아의 그 처절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어두컴컴한 대서양의 깊은 바닷속을 향해 하염없이 떨어질 뿐이었다.

끝없이…나락으로 떨어지듯….


※※※

바이칼은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레이가 끓여다준 차를 들이키고 있었다. 기력이 탕진된 지크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그의 치료를 다른이에게 맡긴 슈렌은 묵묵히 자신의 창을 엄지손가락으로 매만질 뿐이었다. 물론, 그 동안 지크의 동료들–사이키(프시케)를 제외한–이 바이칼과 슈렌에게 지크가 가즈 나이트라는 것이 무슨 소리냐며 따지고 물어왔지만 둘은 퇴짜를 놓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결국 포기한 지크의 동료들은 밖으로 나가버렸고, 미약하긴 했지만 회복주문을 지크에게 다 써버린 린스는 지친 표정으로 바이칼과 슈렌이 있는 거실에 터벅터벅 들어섰다.

“으음…다 끝났다고 신나게 놀때가 방금 전 같은데…왜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된 거지? 짜증나게시리….”

바이칼은 린스를 한번 흘끔 보았다가 다시 차를 마시는것에 전념했고, 슈렌도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다시 하던 행동을 계속 했다. 모두가 그렇게 말이 없자, 린스는 투덜거리며 슈렌이 앉은 소파의 반대쪽 소파에 길게 누워 나름대로 휴식을 취할 준비를 했다.

훌쩍훌쩍…

그때, 린스는 누군가가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인상을 잔뜩 찡그린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곧 어렵지 않게 소파 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시에를 발견할 수 있었고, 린스는 시에의 등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 보았다. 시에는 눈물 때문에 약간 붉게 충혈된 눈으로 린스를 돌아보았고, 린스는 앞으로 엎드리며 시에에게 물었다.

“…왜그래 원숭이 꼬마? 저 방에 뻗어 있는 바보 때문에 그러는거야?”

시에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고, 자신이 갑자기 바보가 된 듯 한 느낌을 받은 린스는 또다시 투덜거리며 몸을 돌려버렸다. 그때, 린스의 앞에 앉아 있던 슈렌이 길게 한숨을 쉬며 시에를 불렀다.

“…후우…. 얘야, 잠깐만…와보겠니.”

린스는 슈렌쪽으로 눈을 슬그머니 떠 보았고, 그녀는 슈렌에게 힘없이 걸어가는 시에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슈렌은 손으로 시에의 어깨를 따뜻하게 두드려주며 말했다.

“…네 가족들은…죄가 없어. 이렇게 말하긴 미안하지만…그쪽이 그들에겐 더 좋은 길인지도 몰라. 더이상…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좋지 않은 행동을 하지 못하니까…. 너마저 슬퍼한다면 하늘에 간 네 가족들이 더 슬퍼할지도 몰라….”

슈렌의 그 말을 들은 시에는 가만히 슈렌의 얼굴을 올려다 보다가, 차를 마시고 있는 바이칼쪽으로 몸을 날려 깃털처럼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슈렌에게 말했다.

“하늘에…안보이는데…. 앙그나랑 카에…안보이는데….”

“…….”

불만스러움이 가득했던 린스의 얼굴은, 시에의 그 말을 들은 직후 측은함이 담긴 얼굴로 바뀌어졌다. 자신도 더이상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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