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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33화


가만히 시에의 큰 눈을 바라보고 있던 슈렌은 묵묵히 굳어져만 있던 얼굴에 약간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지금 시에에겐 보이지 않아. 하지만…지금보다 더 크면 볼 수 있을거야.”

“…우웅….”

슈렌의 말을 들은 시에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바이칼의 어깨에서 내려와 다른 방으로 향했고, 린스는 한숨을 내 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차를 다 마신 바이칼은 시에가 올라가 있던 자신의 어깨를 툭툭 털며 슈렌에게 물었다.

“…인공 생명체는 명계에 못가지 않나…?”

이미 예전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는 슈렌은 가만히 그룬가르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는…영혼이라는 것이 없어. 신에게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지. 운명이라는 끈도 없고….”

가만히 자는척을 하며 슈렌의 말을 듣고 있던 린스는 순간 발끈하며 일어나려 했으나, 슈렌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슈렌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 해도…그 아이에게 솔직히 말을 할 용기는 나지 않아.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인간 이상의 순수한 ‘감정’이라는 것이 있는 아이니까. …더이상 슬퍼하게 해서는 곤란하겠지.”

“…흠….”

바이칼은 팔장을 끼며 고개를 수그렸다. 할 말이 없다는 뜻과도 같았지만, 동감한다는 말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그날 저녁….

바이론은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고, 리오 역시 돌아오지 않고 있어 일행들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봐, 찾으러 가야 하는거 아니야?”

린스는 걱정이 태산인 얼굴로 슈렌에게 물었고, 그가 어디 있는지 위치도 모르는 상태인 슈렌은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노엘 역시 그리 좋진 않은 표정으로 자신의 안경을 매만지며 거실에 모여 있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바이론씨는 실종되셨고…리오씨 역시 돌아오지 않고 계시고…지크씨는 일어날 기미가 안보이고…. 만약 지금 베히모스급의 괴물이 다시 습격을 한다면 정말 힘들겠군요. 현재 전투가 가능하신 분은 슈렌씨와….”

노엘은 바이칼을 흘끔 바라보았으나, 바이칼은 냉냉한 눈으로 그녀를 마주볼 뿐이어서 그녀는 헛기침을 한번 한 후 계속 말했다.

“흠, …슈렌씨 뿐이시니 더욱 그렇고요. 휀씨라도 계셨다면 편할텐데….”

“…차라리 내가 싸우지.”

그때, 바이칼이 약간 무거워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 했고, 다른 일행들은 왠일이냐는듯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바이칼은 좋아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휀이라는 존재가 싫어서 그러는 것 뿐이었다. 자신이 유일하게 이기지 못한 존재가 바로 휀이기 때문에….

똑·똑·똑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으로 다가갔다.

“…바이론 아저씬가? 누구세요?”

그러나, 문 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넬은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문고리를 돌렸고, 슈렌은 소파에 기대어 놓은 그룬가르드를 슬며시 붙잡았다.

문을 열고 밖에 있는 사람을 본 넬은 눈을 껌뻑이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넬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문 밖의 손님은 앞으로 한발자국을 내딛으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비켜.”

집 안에 들어선 손님을 본 일행들은 갑자기 숨을 죽였다. 그를 모르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바이칼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훼, 휀·라디언트…!?”

손님, 휀은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초 긴장 상태인 바이칼을 바라보며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용제…. 뭐, 좋겠지…어린애지만 너 정도의 능력이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라는 것이 될지도 모르니까.”

바이칼의 성격상으로 보자면 그런 말을 들은 상태에서 즉시 검을 뽑거나 다른 공격을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바이칼은 그저 꿍한 얼굴로 애써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것을 본, 휀이란 존재를 모르는 다른 일행들은 휀에게 이상한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린스는 분명히 저쪽 차원에 있어야 할 휀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것에 놀란듯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너, 너…!? 부, 분명히 여기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닌데 왜…???”

휀은 바이칼의 바로 옆에 위치한 소파 팔걸이에 걸터 앉아 자신의 금발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조용히 말했다.

“시끄러운건 여전하군….”

린스가 이를 가는 동안, 레이는 급히 휀에게 다가와 그녀답지 않게 급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는…언니는 어떻게 되셨죠?”

그녀의 간절함과는 달리, 휀은 레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한심하다는 듯 고개까지 흔들며 모두에게 중얼거렸다.

“…바이론 같은 녀석이 없으니 완전히 바보들만 집합한것 같군…. 너희들은 의심도 안하나. 내가 만약 진짜 휀·라디언트가 아니라면 어떤 결과가 났을까…. 음?”

그때, 휀은 갑자기 몸을 꿈틀거렸고 모두는 또다시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채 가만히 있던 휀은 다시 고개를 저은 후 레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네 언니라는 존재는 귀찮군…. 가져가.”

휀은 곧바로 레이를 향해 오른 손바닥을 뻗었고, 그의 손에선 선홍색의 빛덩이가 레이를 향해 날아갔다. 그 빛은 레이의 몸 속으로 부드럽게 빨려 들어갔고, 레이의 머리카락은 곧 진홍색으로 바뀌어졌다. 그녀는 곧장 자신의 허리 양쪽에 손을 대며 휀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다른 목소리로….

“…흥, 귀찮다고요? 어쨌든…레이나, 다른 분들이 당신을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당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필요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잖아요!”

휀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다시 실체화를 한 케이를 바라보다가, 관심없다는듯 고개를 돌리며 일어서서 슈렌에게 물었다.

“세명이 안보이는군.”

“…한명은 갑자기 사라졌고, 한명은 누워있고, 한명은 돌아오지 않았지.”

“좋군.”

둘의 간단명료한 대화에, 티베는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며 황당한듯 중얼거렸다.

“…저런 말이 통하나봐…?”

“아, 암호가 아닐까 누나…?”

휀은 집 안에 있는 동료들을 휭하니 둘러 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은 챠오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시에에게 고정되었고, 그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허무감이 깃든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형편없어…하긴, 살고 싶으면 강자에게 붙어야 하니까….”

그 순간, 모든 일행들은 인상이 일그러졌으나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휀은 곧 챠오의 앞에 섰고, 챠오는 휀을 노려보고 있으면서도 떨리는 다리를 주체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휀은 곧 손을 뻗었고, 그의 손은 눈을 질끈 감은 챠오를 지나쳐 역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시에에게 닿았다.

“…베히모스…인가.”

“—!!!”

휀은 곧바로 시에의 안면을 잡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고, 시에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휀의 눈과 표정엔 여전히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죽이는게 좋겠지만…가치도 없군. 이미 애완동물이 되어 있으니.”

휀은 곧장 시에를 내려놓았고, 챠오는 휀이 떨어뜨린 시에를 곧바로 받아들었다. 챠오의 분노어린 얼굴엔 관심이 없는듯 휀은 노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크는 어떤 방에 있나.”

노엘은 손으로 지크가 누워있는 방문을 가리켰고, 휀은 곧 그쪽을 향해 들어갔다. 그가 사라지자, 모두는 한꺼번에 한숨을 내 쉬며 그자리에 주저 앉았고, 별 변화 없이 앉아있던 바이칼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싸우는게 났다니까….”

챠오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시에를 말 없이 흔들어 달래며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1분도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된 일은 처음인 챠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아직도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켜 보았다.

방 안에 들어선 휀은 침대에 누워있는 지크를 바라보았다. 지크는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지크에게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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