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35화
노엘·메이브랜드.
7세때 레프리컨트 왕립 이공계학원에 입학, 14세때 조기 졸업장을 받음.
15세때 왕립 마법학원에 입학, 18세때 우수한 성적으로 조기 졸업.
19세때 물리학 박사 학위 취득, 1급 마법사 자격도 같은해 인정받음.
20세때 레프리컨트 여왕의 특명으로 왕궁 학사에 임명, 곧바로 왕국 공주의 개인교사를 맡음.
3년 후, 특별한 사정으로 인해 학사, 교사 자격을 뒤로 하고 수도를 떠남.
※
“…정말 떠날거야?”
베르니카는 노엘의 방문에 기댄채 조용히 짐을 싸고 있는 노엘에게 물었다. 노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의 사정을 대충…아니, 상당히 자세히 알고 있는 베르니카는 주먹을 꾹 쥐며 분노를 억누를 뿐이었다. 짐을 다 싼 노엘은 쓸쓸한 얼굴로 가방을 들고 베르니카가 서 있는 문쪽을 향해 걸어갔고, 고개숙인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베르니카는 조용히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 …세상 남자들이 다 그런건 아닐테니까….”
“…음.”
노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베르니카는 곧 문에서 비켜주었고, 노엘은 천천히 자신의 방을 나섰다.
그녀는 천천히 왕궁의 복도를 거닐었다. 시간은 새벽 다섯시…. 창문 밖 세상은 아직 짙은 파란색을 띄고 있었다.
“…공주님이 일어나시려면…아직 멀었겠지.”
그녀는 자신이 3년간 가르친 레프리컨트 왕국의 제 1 후계자이자 공주인 린스에 대한 추억을 가만히 되살려 보았다. 말괄량이긴 하지만 상당히 넓고 착한 마음을 가진 소녀…하지만 노엘은 그녀에 대해 마음속 깊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3주일 후, 노엘은 레프리컨트 왕국의 가장 큰 항구도시, 트립톤에 도착했다. 그녀가 수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인 트립톤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트립톤은 동방 대륙과의 상거래가 가장 활발한 도시였고, 그 덕분에 동방의 문화 역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서방보다 훨씬 발전한 정신 문화등을 노엘은 배우고 싶어 했고, 오직 학문을 추구하는 것만이 자신의 끔찍했던 기억을 지워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고 하나를 얻어 그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바꿔 나갔다. 그녀를 도와준 선원들은 여자 혼자서 왜 그렇게 큰 창고를 집으로 개조했냐며 궁금해했지만, 노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약 2년간을 트립톤에서 혼자 연구와 공부를 벗삼아 생활해 갔다. 그녀는 그렇게 생활하는 동안 많은 뱃사람들과 친분을 다져갔다. 집을 개조하는데 도와준 선원들을 시작으로, 그녀는 그들이 보고 들은 많은 문물들을 접하게 되었고, 성격 역시 상당히 호탕해지게 되었다. 선원들은 그녀가 힘든 일이 있으면 팔을 걷고 나서서 도와주었고, 그녀 역시 배의 개조나 수리, 항구 근처에 자주 출몰하는 괴수들을 물리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이름은 예전에 레프리컨트 왕국에서 천재라 불릴때 이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 왕국에서도 다시 노엘을 여러차례 불렀으나, 노엘은 그때마다 딱 잘라 거절을 했다. 그녀 자신의 나쁜 기억 때문에도 그랬고, 트립톤 항구가 너무나도 좋아진 탓이었다.
트립톤에서 생활한지 2년이 되어가는날, 그녀의 집에 유명한 상선단의 제독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 제독은 한 동방인 여성과 같이 그녀를 찾아왔고, 제독은 정중히 노엘에게 부탁을 했다.
“선생님, 이 아가씨는 동방에서 이쪽으로 유학을 온 레이·첸 양이라 합니다. 서방의 과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데, 마땅한 지식인을 아느냐고 물어왔고, 선생님께서도 마침 동방의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를 하신다고 들었기에 제가 직접 레이양을 선생님께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노엘은 레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방 여성을 바라보았다. 들은 나이는 19세, 그리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순수 그 자체였기에 노엘은 쾌히 허락을 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노엘의 넓은 집엔 식구 한명이 더 늘게 되었고, 노엘과 레이는 약간 말이 통하지 않긴 했지만 서로 많은 지식을 교환하게되었다. 그리고, 노엘은 레이에게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레이는 한 육체에 두개의 영혼을 가진 특히체질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사실은 소개받은 당일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녀의 그런 야인 생활은 레이가 온지 한달이 되어가는날 끝나게 되었다.
※
“음음…그래, 이건 이렇게 섞고, 이건 또 이렇게….”
노엘은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손을 떼었던 마법 실험을 하고 있었다. 벌써 두번째 실패여서 그녀의 집 내부는 연기로 자욱한 상태였다. 레이는 연기때문에 약간 콜록거리며 노엘에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시장에 가겠습니다.”
“음음…음? 아, 알았어요. 시장비는…이정도면 충분할거에요. 그럼 수고좀 해 줘요 레이양. 아, 또 저번처럼 집 잃어버리지 말아요, 그때 나도 놀랐으니까요.”
노엘의 말에, 레이는 허리를 꾸벅 굽히며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직 서방의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레이의 행동은 노엘이 보기엔 어색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 많은 말은 필요가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요. 호홋….”
“네, 잘 알겠습니다.”
레이는 곧 집을 나섰고, 노엘은 다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노엘은 유리 시험관에 든 미완성의 마법약을 손가락으로 흔들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녀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시험관을 비커쪽으로 기울였다.
“…으흠? 흐음…좋았어! 성공이야 성공!!”
치지지지지지지지직…!!!!!!
“…취소야.”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커에선 강한 불꽃이 튀어 올랐고, 노엘은 두번 실패했을때 보다 더한 반응이 나오자 결국 자리를 떠 몸을 피했다. 곧 비커는 폭음소리를 내며 폭발했고, 그녀의 집은 시커먼 연기로 가득차게 되었다.
“우웅…그래, 쉴 겸, 환기도 할 겸 나가지 뭐…콜록콜록, 또 실패했네….”
그렇게 말 하며 밖으로 나온 노엘은 정신이 없는지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꽤 독한 연기인 모양이었다. 안경까지 그을음이 묻은 탓에 그녀는 안경을 벗고 옷자락에 조용히 닦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의 귀에 친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 노엘 선생!!!”
“…?”
노엘은 자신을 부른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눈이 너무 나빠진 탓에 그녀는 흐릿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그 누군가를 피했다. 그는 곧 발을 헛디뎠는지 바닥에 엎어졌고, 노엘은 급히 안경을 쓴 후 자신의 앞에 쓰러진 사람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3년간 가르친, 레프리컨트의 공주 린스가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리, 린스 공…아니 아가씨!? 어떻게 이런 곳에!!”
그녀는 급히 린스를 일으켜 주었고, 린스는 쓰러지면서 약간 다친 자신의 코를 매만지며 노엘을 바라보다가, 곧바로 그녀에게 안기며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린스의 의외의 반응에 노엘은 크게 놀랬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린스 한사람이 아닌, 역시 친근한 얼굴인 케톤도 있다는 것에 다시한번 놀라게 되었다.
“케, 케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레프리컨트 왕국 최연소 기사 케톤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여기선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노엘….”
“…아, 알았어요. 그럼 공주님, 케톤. 제 집으로 들어오세요.”
그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간 노엘은 그들에게 수도에서 일어난 자초지종을 상세히 듣게 되었고, 모든 얘기를 들은 그녀는 놀람 반, 호기심 반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랬군요. 하지만 동맹국인 벨로크 공국의 마동왕이 왜…?”
그녀의 말에, 린스는 여전히 훌쩍거리면서도 노엘과 같이 있던 때 처럼 대답을 했다.
“…그걸 알면 노엘을 찾아오지도 않았어.”
그런 대답을 들은 노엘은 린스가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것에 한편으로 반가워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엘은 휴지를 한장 뽑아 린스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아, 그런데 공주님과 케톤 단 두사람이 왕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오신겁니까? 최근 마물들이 근처에 들끓어서 내로라하는 모험가들도 여관에서 죽치고 있을 정도인데…? 아, 물론 케톤의 실력을 의심하는건 아니지만요.”
그러자, 린스는 노엘이 건네준 휴지로 자신의 눈가에 묻은 눈물들을 다 지운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우리도 괴물 하나를 알고 있거든. <와이번>하고 다대 일로 싸워서 이기는 괴물 봤어?”
노엘은 린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와이번이라고 하면 상당히 강한 축에 드는 괴수였기 때문이었다. 노엘은 안경을 고쳐쓰며 린스의 대답을 재촉했다.
“예? 그렇다면…사람은 아닐테고…. 설마 인간계에 실체화를 할 수 있는 고위 정령이라도 아시나요?”
“응? 응…글쎄? 히힛….”
린스는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녀의 그런 행동은 노엘을 더욱 궁금증에 빠지게 만들었다.
똑—똑—똑
그때, 누군가가 집 문을 두드렸고 노엘은 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문은 열렸습니다만…?”
“아 예…실례하겠습니다. 이곳이 맞아요 아가씨?”
“예, 그렇습니다.”
노엘은 문이 열리며 낯선 남자의 목소리와 레이의 목소리가 같이 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녀는 곧 레이가 또 길을 잊어먹었구나 생각하며 한숨을 내 쉬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약 190cm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큰 키에 허름한 회색 망토를 걸친 붉은 장발의–미남이라 할 수 있는–남자를 본 노엘은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로 2년만에 느끼는 야릇한 감정이었다. 안으로 들어선 그 남자는 린스와 케톤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흐음…기다리지도 않고 갑자기 사라지시면 어떡해요.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공주님? 후훗…하지만 운이 좋게도 여기서 만나는군요.”
그의 반응에, 노엘은 깜짝 놀라며 린스를 바라보았고 린스는 장난기어린 미소를 띄운채 노엘에게 말했다.
“아까 말한 그 괴물이야.”
그러자, 그 말을 들은 그 붉은 머리의 남자는 눈을 깜박이며 린스에게 물었다.
“네? 괴물…이라니요?”
노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남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는듯 린스에게 물었다.
“…진짜로 이분이 와이번과 육탄전을 벌이셨나요? 전 도저히….”
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 남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음…하지만 나하고 케톤이 눈으로 직접 봤으니 믿을 수 밖에 없지. 자, 그럼 소개부터 할께. 리오, 이쪽은 내가 말한 노엘·메이브랜드라는 학자야. 내 개인교사이기도 했지. 아마 너보다 한살 더 많을걸? 그리고 노엘, 이쪽은 리오·스나이퍼. 자칭 떠돌이 기사라는데, 하여튼 굉장히 강해. 우리랑 펠튼 고원에서 부터 같이 와주었어.”
린스의 소개를 받은 그 남자, 리오는 곧 정중히 노엘에게 인사를 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노엘 선생님. 전 리오·스나이퍼, 공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떠돌이 기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노엘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리오를 천천히 뜯어 보았다. 린스에게 들은 그대로 자신보다 나이는 한살 더 어릴지 몰라도 상당히 인생을 경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상당히 멋지다는 생각도 들었다.
리오는 노엘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버릇인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고, 노엘은 아차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아, 실례…. 전 노엘·메이브랜드라 합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