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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36화


“…으음…!!”

리오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크게 꿈틀거렸다. 그는 눈을 조금씩 떠 보았고, 눈에 들어오는 빛의 세기를 보아 지금이 정오쯤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일어났군 리오·스나이퍼…. 후, 가즈 나이트는 이렇게 목숨이 질긴건가봐.」

“!!”

자신의 귀에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를 들은 리오는 순간 몸을 벌떡 일으켜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간편한 차림에 두툼한 모자를 쓰고 있는 한 여성이 장난기 어린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라기아?”

리오의 옆에 앉아 있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과 동료들에게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며 전투를 했던 라기아가 지금은 자신의 옆에 웃으며 앉아있는 것이었다. 라기아는 자신의 모자를 약간 올리며 리오에게 말했다.

「흐음…내이름을 기억해 주니 영광인걸? 하지만 그 눈초리는 뭐지?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게 그럴건가?」

“…뭐? 무슨 소리지?”

리오는 금방 이해가 안된다는듯 라기아에게 물었고, 그녀는 손가락으로 리오와 자신의 앞에 펼쳐진 바다를 가리키며 대답해 주었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걸 건져 올려줬지. 그땐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회복이 되더군. 어째서 천하의 가즈 나이트씨가 그런 몰골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뭐, 짐작은 가긴 하지만. 아, 당신 검은 저기 꽂아놨어. 나중에 알아서 가져가.」

라기아의 말을 들은 리오는 이마를 매만지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는 어렵지 않게 자신이 라이아와 세이아를 쫓다가 의문의 인물에게 [홀리]를 맞는것 까지 기억을 해낼 수 있었다. 리오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라기아에게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고맙군. …그런데 넌 왜 소풍온 차림으로 이곳에 있는거지? 일을 못한다고 쫓겨났나?”

리오의 질문에, 라기아는 재미있다는듯 깔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하하하핫…. 뭐, 그렇긴 해. 정확히 말을 하자면 날 이곳에 불러낸 마동왕 녀석에게 이제는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버려졌고, 그 덕분에 난 대머리 영감의 실험체가 될 뻔 하다가 간신히 도망쳐 이곳으로 온거지. 물론 천천히 오는 도중에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당신을 건져올린거고. 당신 운 정말 좋아.」

리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운이 좋은걸까’라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리오는 천천히 팔을 움직여 보았다. 홀리를 맞은 상태여서 충격은 꽤 컸지만 그래도 무리없이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리오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선 후, 파라그레이드를 뽑으며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리오의 그런 모습을 본 라기아는 섭섭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 벌써 가게? 후우…하긴 뭐, 마녀인 내 주제에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도 족한거니까. 갈테면 가라구. 난 조금 있으면 멸망할 이 세계에선 더이상 있지도 않을테니까.」

“…!?”

리오는 순간 못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며 라기아를 바라보았고, 라기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리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

라기아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리오는 한숨을 후우 내 쉬며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설마 일이 거기까지 틀어질지는 상상도 못한 리오였다. 리오는 초초한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며 라기아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시간이 얼마나 남은거지?”

「음…어디보자…내 계산이 맞다면 이제 13일 정도 남았을거야. 아아…이 세상 사람들은 참 안됐네. 하필이면 즐거운 날에 사라져가니 말이야.」

“…즐거운날?”

「이런 이런…하긴, 그동안 우리들이랑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을테니 그러는것도 무리가 아니지. 오늘이 12월 11일이니까…자, 계산해 봐.」

그녀의 대답을 들은 리오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크리스마스 이브…. 빌어먹을….”

라기아는 그런 리오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씨익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은 12월 24일 늦은 열 두시, 즉 12월 25일이 되는 순간이지. 아아〜불쌍해라. 철없는 애들은 양말을 걸어두고 산타크로스라는 가상의 할아범을 기다리겠지? 사람들은 징글벨〜징글벨 하며 즐거워할테고…호호홋, 그 표정들을 보고는 싶지만 이 세계에 있으면 나도 차원 붕괴에 휘말리니….”

리오는 곧 말 없이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라기아는 거기서 말을 멈춘 후 돌아서 리오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카루 박사는 하수인일 뿐이야. 그의 뒤에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있어. 그들의 얘기를 엿듣다가 실험체가 될 뻔 했으니 내 말은 신빙성이 있을걸? 흠…가만히 보니 이 세계를 구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그래 좋아, 나는 곧 떠날거지만 한번 응원이라는 것도 해 주지. 당신 혼자라면 모르지만, 당신 말고도 많은 강자가 이 세계에 있으니 솟아날 구멍을 뚫을 확률은 높으니까.」

가만히 서서 라기아의 말을 듣던 리오는 곧 그녀를 돌아보고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억하지. 그럼 난 가볼테니 이만….”

「으음…아! 잠깐 잠깐!!!」

라기아는 갑자기 잊었던 것이 떠오른듯 급히 리오를 불러 세웠고, 리오는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라기아는 머리에 쓰고 있는 자신의 모자를 벗은 후, 그 안에 손을 집어 넣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리오는 궁금한 얼굴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고, 라기아는 곧 모자 안에서 헝겊에 싸인 긴 물건을 거짓말처럼 꺼내어 리오에게 던져주었다. 그 물건을 받은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즉시 그 물건을 싼 헝겊을 풀어 보았고, 곧 놀란 표정으로 그 물건과 라기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잊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라기아는 모자를 다시 쓰며 말했다.

「후훗, 사실은 그거 내가 기념으로 가지려고 했는데, 지금 당신 상황을 보니까 그게 필요할 것 같아서 주는거야. 그 검 신기하던데? 주은 다음 내 방에 가만히 놔뒀을 뿐인데 얼마 안가서 다시 원상태로 달라붙더라고.」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에 들린 보라색의 검, 디바이너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여신들과의 전투에서 지하드의 무리한 남발로 결국 부러져버린 디바이너를 라기아가 회수하여 리오에게 돌려준 것이었다. 손으로 디바이너를 툭툭 쳐 강도를 확인해본 리오는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며 라기아에게 말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치고는…이르지만 어쨌든 멋진 선물이군. 다시한번 고맙다고 해야 하나?”

라기아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흠, 맘대로. 자, 그럼 나 먼저 갈테니, 평소대로 멋지게 해 봐. 그럼, 안녕.」

라기아는 곧 자신이 그린 마법진 속으로 사라져갔다. 예전에 그녀와 혈전을 벌였던 기억이 새로운 리오였지만,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리오는 다시 찾은 디바이너를 파라그레이드의 옆에 묶으며 몸을 서서히 공중으로 띄웠다.

“…13일…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모르겠군. 먼저 돌아가 보는게 좋겠지…?”

리오는 곧 빠른 속도로 동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시가 급했다. 13일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와카루 박사의 뒤에 있다는 존재는 뭘까…. 린라우가 사라진 지금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소리인가? 설마 악마왕?’

리오의 의문은 끊일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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