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45화
일행을 모두 태운 특별 비행선은 다른 비행선과는 달리 상당히 빠른 속도로 유럽 대륙을 벗어나 미국쪽으로 향했다. 창 밖을 바라보던 지크는 잘 됐다는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시에는 창문에 찰싹 달라 붙어 비행선의 밑에서 반짝이는 대서양의 경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좌석 배치가 어찌 어찌하여 휀의 옆이 된 넬은 엄습하는 심심함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휀은 그저 신문만을 보고 있을 뿐, 넬이 아무리 시선을 보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물론 넬 역시 시선을 보내고 싶어서 보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휀에게서 풍겨오는 왠지 모를 ‘어려운’ 분위기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싫었지만, 옆에 사람을 두고 아무 말 없이 머나먼 미국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더욱 힘들었다.
심심하다 못해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넬은 안쪽에 깊숙히 틀어박혀 있는 껌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럭저럭 위안이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껌을 꺼내들었다.
‘어라…두개네?’
딱 두개가 남은 껌을 본 넬은 다시금 옆에 앉은 휀을 흘끔 바라보았다. 휀은 여전히 신문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껌을 들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던 넬은 이것이 기회다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휀의 팔을 손으로 쿡쿡 찔러보았다.
“….”
그러나, 휀은 아무 반응이 없었고 넬은 한숨을 포옥 쉬며 고개를 창 밖으로 돌렸다.
“치클로 만든 군것질감은 집중력이 떨어지지….”
신문의 다음장을 넘기며 휀이 그렇게 말 하자, 넬은 고개를 푹 숙이며 역시나 하는 생각을 했다. 휀은 눈을 움직여 신문을 읽기 시작하며 그녀에게 마저 말했다.
“뒤에 있는 애완동물에게나 줘.”
휀의 말을 들은 넬은 움찔하며 뒷자리 창문에 달라 붙어있는 시에를 돌아보았다. 휀의 말 대로, 시에는 침을 꼴깍 삼키며 넬이 들고 있는 껌을 바라보고 있었고, 넬은 아차 하며 시에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아차…점심을 못먹었지. 미안해 시에야. 이거….”
“왓, 고맙다 넬, 고맙다!!”
시에는 곧바로 넬이 준 껌을 받아 예전에 지크가 먹던 것을 본 기억을 되살려 껌의 겉을 감싼 종이를 뜯고 맛있다는듯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넬 역시 껌을 씹으며 여전히 냉정한 얼굴로 신문을 읽고 있는 휀을 알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에가 점심을 못먹은 것 때문에 시에에게 껌을 주라고 한건가…? 아냐, 설마…그 때 시에를 죽이려고 했을땐 분위기가 농담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넬이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을 느꼈는지, 휀은 넬을 흘끔 내려다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삼키지 말라고 말은 했나.”
“…? 아차! 시에!!”
넬은 시에가 껌을 처음 씹어본다는 것을 번쩍 떠올리며 시에를 바라보았으나, 시에는 가슴을 두드리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상태였다. 시에는 넬을 바라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투로 말했다.
“…이상하다…맛있지만 뭔가 텁텁하다…끈적거리구…우웅….”
넬은 머리를 긁적거렸고, 지크는 자신이 마시던 음료수를 시에에게 건내주며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넬은 다시 휀을 바라보았으나, 휀은 아무 변화 없이 신문의 다음 페이지를 넘길 뿐이었다.
‘어떻게…? 시에가 껌을 처음 씹어본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넬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구우우우웅….
그 때, 객실의 뒷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탑승해있던 일행들은 휀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소리가 서서히 멈춰갈 무렵, 커튼을 열고 스튜어디스가 객실 안으로 들어왔고, 스튜어디스는 미소를 지은 채 일행에게 맑은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네, 미국행 특별 비행선에 탑승해 주신 행운의 고객들께 잠시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특별선의 목적지가 바뀌었다는 것과, 그 때문에 비행선이 잠시 공해상에 정지했다는 것입니다.”
“…으음?”
지크는 이해가 안된다는 얼굴로 스튜어디스를 바라보았고, 스튜어디스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채 일행에게 설명을 계속했다.
“저희 <제네럴 블릭>사에선 여러분이 12일 안에 아틀란티스에서 미국까지 곧바로 가실 수 없으시다는 것을 알고, 각 공항에 특별기를 배치한 뒤에 할 수 없이 비행선을 사용하실 여러분들을 저희 특별기로 모신다는 계획을 결정했습니다. 결국 포르투갈 공항에서 여러분이 발견되셨고, 저희의 계획에 여러분께선 완벽히 동조해 주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일행의 얼굴은 시에와 휀을 제외하고는 창백하게 변해버렸고, 지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그 스튜어디스에게 소리쳤다.
“이런 젠장!!! 그럼 우릴 어쩔셈이지!!!”
스튜어디스는 기다렸다는듯 차디찬 미소를 지으며 지크에게 말했다.
“네, 여러분의 목적지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방금 전 변경되었습니다. 저희는 그 장소로 여러분을 인도해 드릴 것입니다.”
“쳇, 어떤 빌어먹을 장소야!!”
지크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다시 물었고, 스튜어디스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채 짧게 중얼거렸다.
“후훗…지옥입니다. 이 기체엔 현재 5000t 분량의 특수 폭탄이 장치되어 있습니다. 손님들께서 어떻게 하시더라도, 그 폭탄은 위성으로 조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께선 수고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 이런 제기랄!!!!!”
퍼억—!!
순간, 스튜어디스에게 달려들려던 지크는 휀의 갑작스런 펀치에 복부를 맞고 몸을 움츠렸고, 휀은 들고 있던 신문을 접으며 스튜어디스에게 말했다.
“1940년산 브랜디 한잔.”
휀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오자, 일행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져 버렸고 스튜어디스는 우습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돌아섰다. 그 때, 휀의 주문이 다시 들어갔다.
“부식으로는 삭스핀(상어 지느러미 요리)을.”
말 한마디 한마디가 터져 나올때마다 일행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고, 스튜어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휀에게 말했다.
“…훗, 최후의 만찬입니까. 알겠습니다.”
“만찬이 아니고 주문이야.”
커튼 속으로 사라져가는 스튜어디스의 뒤로 휀은 그렇게 말했고, 휀의 옆에 복부를 움켜쥐고 몸을 굽히고 있던 지크는 곧바로 휀의 코트를 부여잡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녀석, 다른 사람들이 죽게 생겼는데 넌 여유있게 술하고 상어 꼬리를 먹겠다는거야!!! 네가 데려간다고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
“으, 으윽…!?”
순간, 휀에게서 뿜어진 알 수 없는 느낌에 의해 지크는 휀의 코트에서 손을 떼며 뒤로 물러섰다. 휀은 구겨진 코트깃을 매만진 후 신문을 다시 펴며 중얼거렸다.
“상어 꼬리가 아니고 상어 지느러미 요리야.”
지크는 순간 눈을 크게 부릅떴다가, 고개를 애써 다른 곳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쳇, 좋아!! 만일 일행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널 기필코 가만두지 않겠어!!!”
“뭐…좋을대로.”
휀의 허무감이 섞인 말을 들은 지크는 더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듯 자신의 좌석에 거칠게 앉으며 팔짱을 낀 채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러는 동안, 휀의 옆에 앉은 넬은 불안한 얼굴로 휀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저, 저어…설마, 여기서….”
“….”
그런대로 뜻을 알 수있는 말이었지만, 휀은 묵묵부답이었다. 넬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자신의 뒷자석들을 돌아보았다. 시에를 제외하고, 지크를 포함한 모두가 약간씩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넬은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휀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조, 좋아요! 우리들을 살려주시면 제가 키스라도 해 드릴께요!! 그러니 제발…제발 우리를…읍!?”
순간, 휀의 팔이 빠르게 넬의 몸과 어깨를 감쌌고 넬은 힘없이 휀의 곁으로 딸려갔다. 휀의 차갑게 보이면서도 깨끗한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넬은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질끈 감았고, 가만히 넬을 바라보던 휀은 다시 넬을 풀어준 후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미성년자는 관심없어.”
그 말에, 넬은 약간이라도 충격을 받았는지 눈을 다시 감으며 자신의 모자를 푹 눌러썼다. 휀의 아까 그 말을 뒤에서 들은 챠오는 약간 떫은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누가 많이 하던 말이군….’
“음? 왜 날봐?”
챠오가 자신을 바라보는 상태로 떫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본 지크는 챠오에게 그렇게 물었고, 챠오는 눈을 감으며 인상을 쓴 채 짧게 중얼거렸다.
“아니,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