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47화
“지크.”
객실의 등이 꺼지고 미등만이 희미하게 빛이 나는 취침 시간, 휀은 자신의 옆에서 편히 돌아 누워서 자고 있는 지크를 불렀고, 아직 잠이 완전히 든 상태가 아닌 지크는 고개를 슬쩍 돌리며 휀에게 물었다.
“으음…뭐가 또 불만이야….”
“이 애완 동물이 여기 있는 이유를 좀 알고 싶군.”
지크는 순간 깜짝 놀라며 휀을 바라보았고, 그는 곧 휀의 팔 밑에 바짝 붙어 잠을 곤히 자고 있는 시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크는 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결국 어깨를 으쓱인 후 대답과 동시에 자리에 누웠다.
“아직 좀 어리거든.”
“….”
휀은 아무 말 없이 지크를 바라보다가, 그냥 눈을 감고 모포를 몸 위에 덮으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다음날.
아침을 알리는 부드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시에는 긴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떴다.
“…우음?”
일어나서 맨 처음 보인 것이 모포의 안쪽이어서, 시에는 재빨리 모포 옆으로 머리를 내밀며 밖으로 나왔고, 곧 의자 등받이에 올라타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휀을 찾기 시작했다.
“음….”
결국, 시에는 휀이 눈에 보이지 않자 모포를 집어 올려 냄새를 몇번 맡은 후 기내 바닥에 내려와 코를 움찔거리며 냄새를 찾아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냄새를 쫓아가던 시에는 자동문을 지나 식당칸으로 들어섰고, 식당칸 청소를 하는 스튜어디스들은 흠칫 놀라며 시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에는 그런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냄새를 쫓았고, 결국 식당칸의 창가테이블에 홀로 앉아 여유있게 술을 음미하던 휀을 찾게 되었다.
“와! 휀이다!!”
시에는 곧 벌떡 일어서며 휀에게 달려갔고, 술을 즐기던 휀은 잠시 동작을 멈추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시에를 흘끔 바라보았다.
“….”
휀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술잔을 입에 가져갔고, 시에는 휀이 있는 테이블 위에 덥썩 올라서며 빙긋 웃어보였다.
“휀, 휀. 시에 배고프다.”
그러자, 휀은 다시 술잔을 놓고 시에를 바라보았고, 가만히 휀을 바라보던 시에는 휀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웅…기분 이상해지는 물 냄새. 바이칼이 많이 먹던 물 냄새다.”
휀은 다시 술잔을 입에 댈 뿐이었다. 시에 역시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위에 앉아 휀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볼 뿐이었다. 술이 얼마 남지 않았을때, 휀은 술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며 시에에게 말했다.
“눈에 거슬려.”
“…?”
그러자, 시에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입을 동그랗게 모으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휀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한 채 다시 시에에게 말했다.
“의자에 앉아.”
시에는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밑으로 뛰어내린 후 의자를 손수 뺀 뒤 의자위에 손발을 모두 놓은채 걸터앉았다. 결국 휀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다리를 내리고 앉아. 다리는 모으고, 손은 무릎 위에 놓도록. 그렇지 않으면 넌 영원히 애완동물일 뿐이다.”
“배고파.”
“….”
다시 말 없이 시에를 보던 휀은 눈을 감으며 손가락을 튕겼고, 그 소리를 들은 스튜어디스는 미소를 지은채 휀에게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예, 주문이 있으십니까?”
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간단한 아침 정식 1인분, 음료는 우유로. 그리고 브랜디 한잔을 더.”
스튜어디스는 주문용 노트 패드에 휀의 주문을 적은 후 곧 주방으로 향했고, 휀은 남은 술을 다 마신 후 팔짱을 끼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휀이 말한 그대로 다리를 내리고 손을 무릎위에 놓은채 가만히 앉아 있던 시에는 휀의 그런 포즈를 보고 재미있다는듯 미소를 지으며 똑같이 팔짱을 끼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곧, 휀이 주문한 식사들이 나왔고, 휀은 술을 한모금 살짝 넘긴 후 앞에 놓인 아침 정식에 시선을 둔 채 침을 흘리고 있는 시에를 보며 말했다.
“앞에 포크와 나이프가 있을거다. 나이프는 오른손에, 포크는 왼손에 잡도록.”
시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휀의 말대로 식기를 잡았고, 휀은 계속 강의를 시작했다.
“포크로 스테이크의 왼쪽 끝을 고정한 후, 나이프로 조금씩 스테이크를 자른다. 자르는 크기는 한 입에 들어갈 만큼….”
그러자, 시에는 대뜸 스테이크의 중간에 나이프를 가져갔고, 휀은 조용히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자르는 크기는 아주 작게. 그리고 먹을땐 소리를 내지 말도록.”
시에는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인 후 적당한 크기로 스테이크를 잘랐고, 곧 포크로 고정시켰던 스테이크 조각을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간후 조용히 씹어 삼켰다. 그러는 동안, 휀은 계속 강의를 이어 나갔다.
“빵을 먹을땐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작게 조각을 자른 후 먹는다. 들고 먹으면 애완 동물이다. 스프를 떠먹을땐 스프를 뜬 스푼의 옆에 입을 가져간후 역시 조용히 마시고, 스프가 얼마 남지 않았을땐 접시를 살짝 기울여 같은 방법으로 스프를 먹는다.”
시에는 약간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열심히 휀의 말 대로 식사를 했고, 휀은 시에가 그렇게 식사를 하는 동안 말 없이 자신의 술을 한모금씩 마셔갔다.
그때, 식당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곧 지크와 그밖의 일행들이 왁자지껄 안으로 들어왔다. 지크는 곧바로 패스트 푸드 카운터에 달려가 카운터에 팔꿈치를 댄 후 미소를 지은채 담당 스튜어디스에게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Hello? 햄버거 여덟개랑, 치킨 세트 세개랑, 감자랑, 핫도그 하나랑…아, 음료수는 모두 코크로! 이봐, 제대로 앉으라구!!”
주문을 하던 지크는 일행들이 테이블 주위에서 서성거리기만 하자 한심하다는듯 소리쳤고 일행들은 투덜대며 지크의 말 대로 테이블에 두팀으로 나뉘어 천천히 앉기 시작했다. 지크는 다시 스튜어디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헤헷, 이런데 처음 와보는 애들이라서요. 아, 여기도 셀프 서비스인가요?”
스튜어디스는 지크의 행동이 재미있는듯 미소를 띄운채 고개를 끄덕였다.
“예, 패스트 푸드는 모두 셀프 서비스입니다. 5분 후에 주문하신 식사들이 나오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Yeh, 고마워요 고마워요. 어라? 저건 휀이랑 시에잖아?”
테이블에 마주앉은 둘을 뒤늦게 발견한 지크는 곧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채 건들건들 그쪽으로 다가갔고, 따로 접시에 담긴 시에의 빵을 손으로 집어 입에 물며 시에의 식사 모습을 신기하다는듯 바라보았다.
“와아, 얘가 왠일이야? 휀, 설마 얘한테 협박을 한건…?”
지크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휀은 조용히 창밖에 시선을 둔 채 술을 마실 뿐이었고,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에의 옆 의자를 당겨 앉으며 시에에게 물었다.
“이야, 시에 참 대단하구나? 설마 휀이 이런거 가르쳤을 까닭은 없고…누구에게 배웠니?”
그렇게 말 하며 지크가 빵을 하나 더 집어 먹자, 시에는 지크를 바라보며 미소를 띄운채 말했다.
“앗, 애완 동물이다! 빵을 손으로 집어 먹으면 애완 동물이다 지크!!”
그 말에, 지크는 빵을 조용히 입에 넣으며 인상을 가볍게 쓴 채 휀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이러는거야?”
곧, 휀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허무감이 깃든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아직 좀 어리거든.”
그러자, 말을 잊고 휀과 시에를 번갈아 바라보던 지크는 결국 쓴 웃음을 지은채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