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48화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군.”
휀은 뉴욕 시내를 일행과 함께 거닐며 중얼거렸고, 오래간만에 고향에 온 사람처럼 두리번 거리던 지크는 휀 가까이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슈렌들보다 훨씬 일찍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은데? 으음…하긴, 본부를 먼저 부수는데 그들을 위해서라도 좋을거야. 헤헷….”
지크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계속 길을 걷던 휀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지크를 흘끔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저기가 네가 말한 제네럴 블릭의 본사인가?”
지크는 휀의 시선이 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층빌딩들 사이로 네개의 건물이 보였다. 80층의 건물 네개로 이루어진 제네럴 블릭의 본사가 이상하리만치 어둡고도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크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가 전 인류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들어야 할 건물이지.”
“…크리스마스.…이 세계에 내려온 선신의 사자 세명중 한명이 태어난 날 말이군.”
휀의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넬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휀에게 다가왔다.
“선신의 사자 세명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나 휀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때, 루이체가 가만히 서 있는 넬을 보기가 민망해졌는지 대신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들은 기억으로는…1대가 석가, 2대가 지저스 크라이스트…예수라고도 불리지. 그리고 3대 마호메트. 그들중 예수님은 출생이 특별하긴 했지만 선신계에선 모두를 동급의 사자로 쳐. 물론 지금 이 세계에선 그 뜻이 맞지 않아 서로 약간씩 대립하긴 하지만…그 주가 되는 내용은 같아.”
“아, 네….”
그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챠오나 그 밖의 일행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했다.
“저 얘기가 크게 들렸으면 아마 종교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몰라. 헤헤헷….”
그런대로 맞는 말이긴 했다. 이 세계에선 종교간의 대립으로 인한 사람들의 무의미한 전쟁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때, 휀이 지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점심 시간이다. 이쪽 지리는 네가 잘 아니 좋은곳으로 이동해봐.”
“저, 점심? 그냥 가서 치는게 좋지 않을까?”
지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채 휀에게 물었고, 휀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시간은 열흘이나 남았다. 점심 한끼 먹는다고 해서 그 열흘이 다 가진 않아.”
휀의 말에, 지크는 수긍이 간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의 앞에 선 후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자자, 오래간만에 갈비나 먹을까 모두? 넬하고 시에, 마키는 갈비 못먹어봤지?”
마침 배가 고파진 상황이었던 넬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지크에게 갈비라는 말을 들은 시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신의 가슴 밑에 손을 대 보이며 지크에게 물었다.
“갈비?”
잠시 말을 잊고 시에를 바라보던 지크는 곧 힘없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고기구이라구 고기구이. 상당히 맛있으니까 기대해도 좋아.”
“하아~고기!! 좋아 좋아!! 시에 고기 좋아해!!!”
시에는 상당히 즐거운듯 꺅꺅 거리며 지크의 어깨 위에 올라탔고, 지크는 곧 일행을 이끌고 근처에 있는 한식집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갑작스런 폭음과 함께 일행의 맞은편 도로 중앙에 무언가가 강하게 격돌했고, 휀은 곧 눈을 살짝 찌푸리며 잠시 멈춰있는 일행을 뒤로 하고 그 격돌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크는 갑자기 이런 상황이 닥친것에 혼란스러운듯 그 지점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 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우리가 온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해도 환영식이 너무 빠른데?”
그 때, 그 격돌점에서 누군가의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앗—!!!! 모두 없애버리겠다!!!!!”
그 목소리를 들은 지크의 눈은 더욱 휘둥그래졌고, 그 격돌지점으로 걸어가던 휀은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리오…스나이퍼.”
연기가 걷히며 서서히 나타난 것은, 온 몸에서 붉은색의 투기를 내 뿜으며 그 투기보다 훨씬 붉은 장발을 펄럭이고 있는 리오의 광기어린 모습이었다. 리오의 손엔 어느새 디바이너가 들려 있었고, 그는 상대를 찾고 있는 야수처럼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리, 리오!? 저, 저 빌어먹을 녀석 갑자기 왜 저러는거지?”
지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내뱉었다. 바이칼과 함께 합류장소 근처에서 놀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리오가 그런 모습을 난동을 부릴 준비를 하고 있으니 지크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루이체 역시 지크의 팔을 손으로 꽉 잡을 뿐이었다.
“지, 지크씨…큰일이 하나 더 늘었어요….”
갑자기, 뒤에서 프시케가 그렇게 말 하자 지크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자신이 가진 바이오 버그 레이더를 보여주며 지크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제네럴 블릭 본사로 부터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어요.”
“…쳇, 산넘어 산이군. 어이, 휀!!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지크의 물음에, 리오에게 계속 접근을 하던 휀은 그를 흘끔 바라보며 대답했다.
“너희들이라면 바이오 버그쯤은 막을 수 있겠지. 난 저녀석을 맡겠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인 후 레이더를 보고 반응들이 몰려오고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일행 모두에게 소리쳤다.
“좋아, 오래간만에 한번 뛰어 보자고! 저 벌레 녀석들을 화끈하게 반겨주는거다!!”
“오옷!!!”
모두는 곧바로 기다렸다는듯 자신들의 장비를 갖추며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이체는 멍하니 서서 리오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장갑을 죄며 호흡을 조절하던 지크는 곧 헛기침을 하며 루이체에게 다가갔다.
“…난 괜찮아 오빠.”
루이체의 어깨에 마악 손을 올려놓으려던 지크는 루이체의 힘없는 말에 팔을 잠시 멈추었다가 피식 웃은 후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리면서 말했다.
“알고 있어. 저 리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휀도 생각이 없는 녀석은 아닌것 같으니 한번 맡겨 보자고. 자, 우리는 방해가 안되게 무대나 정리해 주자. 오빠 부대가 가까이 다가왔으니까…!”
지크의 말을 들은 루이체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흔들어 보았다. 지크의 말 대로, 어디선가 형용하기 힘든 괴성들이 이쪽을 향해 몰려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루이체는 곧 양 주먹을 불끈 쥐며 뒤로 돌아섰다.
“알았어, 난…리오 오빠를 믿으니까!”
루이체는 그렇게 말 하며 전투준비를 마친 챠오의 옆으로 달려갔고,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천천히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갑자기 뭘 믿는다는거야….”
한편, 휀은 숨을 몰아쉬며 살기를 내 뿜고 있는 리오의 앞에 서서 그를 관찰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리오는 곧 휀을 바라보았고,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후우…뭐지? 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휀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상태로, 언제나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한채 리오에게 말했다.
“내 기억으로 넌 용제와 함께 이곳에 와야 하는것 같은데…왜 너 혼자인가.”
“상관할거 없어, 난 지금 저 건물을 박살내고 그녀석들을 없애버릴거다!! 반드시 저 녀석들의 피로 그녀석의 장례를 치룰거다, 바이칼 녀석의 장례를!!!”
리오의 말에, 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허무감이 깃든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그런가. 좋은 생각이군. 그러나…지금은 진정하는것도 좋아. 널 위해서라도.”
“크윽…무슨 소리냐 휀·라디언트!! 난 600년 이상 같이 지내온 친구를 잃었어, 너라면 진정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겠나!!!! 진정하는게 나에겐 좋은 일이라고? 헛소리 하지 마!!!”
리오의 분노어린 목소리에,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휀은 희미하게 비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난 임무에 방해되는 존재는 죽인다. 독에 비실거리는 동료나…누구처럼 분노에 휩싸여 상황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가즈 나이트나…가릴 것 없이. 죽고싶지 않으면 진정하는게 좋겠지.”
그러자, 말 없이 휀을 바라보던 리오는 또다시 분노를 터뜨리며 디바이너를 거머쥔 손에 힘을 넣었다.
“그래? 소원이라면 해 봐라!! 그 전에 내가 널 없애주마!!!!”
리오의 기가 한층 더 강해지자,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던 휀은 정색을 하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뭐…좋을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