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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5화


“뭐라고…?!”

바이퍼는 리오에게 되물었다.

“`젖 좀 먹은 것 같다’라고 했다. 맞지 않느냐?”

바이퍼는 흥분한 듯 전신의 마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핏빛으로 변해있었다.

“여기서 너의 전설은 끝이 난다. 리오 스나이퍼!!”

바이퍼의 말을 들은 리오는 자세를 취하며 바이퍼의 말을 받아쳤다.

“훗, 너의 존재는 오늘로서 책에만 남아있는 전설로 끝이 날 거다.”

푸웃!

흥분한 바이퍼의 손에서 검은빛의 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리오는 몸을 젖혀 그것을 빠르게 피하며 바이퍼 쪽으로 접근해 나갔다. 바이퍼는 오른손을 휘두르며 리오를 견제했다. 리오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피했으나 바이퍼는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어느 사이엔가 리오의 망토 깊숙이 바이퍼의 손날이 들어와 리오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이런!”

리오는 왼손에 모여있던 기를 터뜨려 바이퍼를 밀어냈고 바이퍼는 조금 떨어진 곳에 가뿐히 착지를 했다. 바이퍼는 미소를 띠우며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이 무기는 나의 신체다. 무한히 늘어나지. 저급의 악마들도 이것 비슷하게는 할 수 있다는 걸 잊었나 보구나, 후후후…”

리오는 찢어진 자신의 망토 자락을 본 후 검을 고쳐 잡았다.

“깨우쳐 줘서 고맙군, 꽤 강해 역시.”

리오는 천천히 바이퍼에게 접근해 나갔다. 바이퍼는 놓치지 않고 자신의 오른팔을 뻗었다. 무서운 속도로 오른손이 리오를 향해 뻗어나갔다.

“잔재주는 끝이다.”

푸웃!

살이 갈라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바이퍼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오른손은 마계의 저주받은 피를 뿜으며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크아아아앗―!! 네놈이!”

바이퍼는 리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리오의 모습은 아까 그 자리에 있지를 않았다. 자신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피하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타아아앗!!”

리오는 바이퍼의 머리를 잡고서 벽에 내동댕이쳤다. 바이퍼와 충돌한 벽은 크게 갈라졌고 바이퍼의 머리 위에 흙먼지가 떨어졌다. 리오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넌 상위 악마인 만큼 가즈 나이트의 특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버서커 이상으로 잔인해진다는 것.”

푸른색의 광점 두 개가 바이퍼의 눈에 들어왔고 곧이어 씨익 웃고 있는 리오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 이상의 악마가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네.. 네 녀석!!”

바이퍼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신체적인 타격이 꽤 컸다. 오른손은 바로 회복이 되었으나 아까 같지는 않았다.

“천천히 즐겨주마….”


키세레와 클루토, 그리고 머셀은 리오가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자 한숨만 쉬며 동굴의 입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리 안 나오지…? 그 아저씨 죽은 거 아니야?”

리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머셀은 농담 반, 걱정 반이 섞인 말투로 중얼댔다. 그 말을 들은 클루토는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머셀에게 말했다.

“어이, 머셀이라고 했나? 내가 아는 한 리오는 이 세상의 어떤 기사보다도 강하다구.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너도 느껴봤을 거 아니야. 함부로 그런 소리를 하지 마.”

키세레는 서로 노려보고 있는 둘을 제지하며 계속 기다려보자고 했다.

클루토는 리오의 추종자인가? 어쨌든 대단한 남자구나, 이렇게까지 한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니 말이야.

계속 기다려보던 일행의 앞에 조그마한 돌멩이가 굴러왔다. 동굴의 위쪽에서 굴러온 돌멩이였다.

투두둑.

잔 돌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땅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진동이 한층 더 심해지자 셋은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숙였다. 진동이 극에 달했을 때 동굴의 위쪽 언덕을 뚫고 무엇인가가 공중으로 치솟는 것이 보여졌다.

“크아아아악―!!”

물체로부터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그 물체가 파고 나온 구멍에서 또 다른 무엇인가가 그 물체를 향해 치솟아 올랐다.

“여기서 끝나면 섭하지!!”

리오의 목소리였다. 리오는 아직도 공중에 떠 있는 그 물체를 파리채로 치듯 공중에서 떨어뜨렸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그 물체는 처박혔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강하게 튀었고 셋은 기침을 하며 손을 휘저었다.

“콜록, 콜록! 어떻게 된 거지?”

일행이 상황 판단을 못하고 있을 때 위에서 리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세레! 녀석이 떨어진 곳에 결계를 쳐줘요! 어서요!!”

아까 전에 리오가 한 말이 떠오른 키세레는 급히 [홀리 바리어] 주문을 외워 물체가 떨어진 곳에 걸었다. 결계를 치자 안에서 다시 한번 비명 소리가 울려 퍼져왔고 셋은 귀를 막아야만 했다. 마성이 깃든 처절한 비음이었다.

“좋았어!”

리오는 일행의 바로 앞에 착지한 후 망토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자욱이 끼었던 흙먼지가 사라지고 반투명한 구체가 드러났다. 리오는 이마에 묻은 땀을 닦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잡았어요. 후후후…”

“뭘요?”

“바이퍼요.”

일행은 키세레가 쳐놓은 결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비쳤다. 악마란 존재를 처음 보는 셋은 신기함과 불안감이 섞인 눈으로 바이퍼를 보았다.

“도망치지 않을까요?”

“아까 동굴 안에서 힘을 다 빼놨으니 걱정 말아요. 저 녀석은 지금 움직일 힘도 없을 거예요. 윽…”

리오의 입에서 나지막이 신음 소리가 나자 일행은 그제서야 리오를 보았다. 망토가 약간씩 찢어지고 피부도 약간씩 긁혀 있었다. 왼쪽 팔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키세레가 치유 마법을 사용하려고 손을 내밀자 리오가 제지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 녀석이 우선이니 봉인 마법이나 사용해요.”

“무슨 소리에요! 이대로 놔두면 파상풍에 걸릴지도 모른다고요!”

키세레가 눈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소리치자 리오도 움찔했다.

“파상풍이 아무나 걸려요? 치료는 약으로도 충분하니까 걱정 말아요. 그리고 저보다 교회의 아이들이 더 급할 텐데요?”

“… 알았어요.”

키세레는 클루토와 함께 바이퍼가 갇혀있는 결계 쪽으로 다가갔다. 속안에서 아직도 꿈틀대는 바이퍼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바이퍼는 눈을 번뜩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결계의 성스러운 속성 때문에 그 마안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키세레는 손으로 거대한 십자가를 그리며 봉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음… 머셀, 손수건 있니?”

봉인 장면을 지켜보던 머셀은 자신의 품 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어 리오에게 주었다.

“피 좀 묻혀도 괜찮지? 미안하다.”

“아, 괜찮아요…?”

머셀은 봉인의 장면보다 더 신기한 것을 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가 흐르던 왼팔의 상처가 피를 닦아내자 언제 상처가 났냐는 듯 깨끗이 나아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긁힌 상처도 거의 나아 있었다.

“치유 마법을 사용할 줄 아세요?”

상처를 다 닦아낸 리오는 웃으면서 손수건을 다시 건네주었다.

“음… 비슷하게. 아, 봉인이 끝난 모양이다. 가보자.”

머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일어서는 리오를 따라 바이퍼가 봉인된 곳으로 걸어갔다.

“다 됐나요?”

“예… 하지만 누가 다시 이 봉인을 푸는 날이면 어쩌죠?”

리오는 조그만 십자가로 봉인된 바이퍼를 집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럴 걱정은 없어요. 이대로 끝이니까.”

리오는 오른손에 십자가를 움켜쥐고 기를 가했다. 푸른 불꽃이 손에서 솟아올랐고 바이퍼가 봉인된 십자가는 천천히 기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 어쩌려고…?”

키세레는 놀란 눈으로 완전히 없어지고 있는 십자가를 보았다.

“이 방법이 제가 최대한으로 녀석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일단 봉인이 되면 감각이 없어지고 잠든 상태가 되니까요.”

십자가를 완전히 없애버린 리오는 동굴 안에서 가지고 나온 바이퍼의 알을 꺼내 보았다. 알도 거의 기화가 끝나 사라진 상태였다.

“자, 이제 아이들도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을 겁니다. 본체를 완전히 없애버렸으니 말이에요.”

키세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리오는 머셀과 클루토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자, 이제 돌아가자 친구들. 아, 키세레 수녀님과 먼저 갈래? 뒷정리를 좀 해야 해서 말이야.”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키세레와 함께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간 것을 확인한 리오는 오른손을 다시 펴며 중얼거렸다.

“자, 이제 약속을 지켜라, 바이퍼.”

리오의 손에서 다시 한번 푸른 불꽃이 솟아나고 그 안에선 검은색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 형체의 안에선 붉은 광점 두 개가 나타났다.

“어쩔 수 없군… 계약은 악마의 철칙이니.”

“나를 이 땅으로 다시 부른 자는… 바로 `바만다라’이다.”

리오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 여자가 아직도 살아 있었나?”

“어쨌든 나를 부른 자는 그녀가 확실하다. 나를 불러낸 장소는 가이라스 궁전 안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 세상을 무조건 혼란에 빠뜨려라]라고만 했다. 그 이외에 내린 지시는 없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왼손으로 땅에 조그마한 펜타그램을 그렸다.

“좋아, 너도 본체가 없으니 이 물질계에서 살기는 힘들겠지. 다시 환수계로 보내주마. 네 아이들하고 밭이나 일구며 잘 살아라.”

리오의 말과 함께 펜타그램의 위로 공간의 문이 열렸다. 푸른 불꽃 안에서 바이퍼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한 가지만 묻겠다. 리오 스나이퍼.”

“뭐냐?”

“세상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악마인 나를 왜 살려두는 거지?”

리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넌 선과 악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냐?”

“뭐…?”

“마음에 들고 안 들고 일 뿐이야. 환수계에서 잘 생각해 봐.”

말을 마친 리오는 손안의 불꽃을 공간의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리오는 일행이 걸어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세상은 한 가지만으론 살 수가 없지… 반대되는 무엇이 있어야 재미가 있잖아. 후후훗…….”

낮게 중얼거리며 리오는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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