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53화
“음…하여튼 넌 몸이 허약하단 말이야.”
리오는 바이칼이 누운 침대의 구석에 걸터 앉으며 그렇게 말했고, 병석에 누운 바이칼은 아무 말없이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리오는 고개를 저으며 바이칼의 이마를 덮은 물수건을 치운 후 이마 위에 손을 가져갔다.
“음…열이 있군. 하여튼 드래곤 치고 감기에 걸리는 드래곤은 네가 처음이야.”
그러자, 바이칼은 손으로 리오의 팔을 툭 쳐낸 후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맘대로 지껄이시지.”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침대에서 일어섰고, 곧 방의 불을 미등으로 바꾼 후 방문을 열며 말했다.
“그럼 푹 잠이나 자. 버리고 가진 않을테니 안심하고, 후훗….”
리오는 곧 방을 나섰고, 바이칼은 다시 똑바로 누운 후 자신의 이마에 물수건을 덮으며 눈을 감았다.
※※※
“…여기인가 케톤.”
카루펠에 올라탄채 한 마을의 입구를 살펴보던 슈렌은 뒤에 서있는 케톤에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수도의 난민들과 그레이 공작님 일행이 맨티스 크루저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맨티스 퀸이 자리를 잡고 있던 [크로플랜]이라는 도시인데, 예전에 노엘 선생님들과 리오씨가 맨티스 퀸을 몰아내고 이 도시를 다시 평화롭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우호적인 맨티스 크루저들은 이 도시의 지하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수도에서 일이 터진 후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이 도시에서 같이 생활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음…지금은 별다른 일은 없을겁니다.”
그러나, 슈렌과 사바신의 표정은 아니올시다였다. 슈렌은 일행의 맨 뒤에 서있는 사바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안에 들어갈테니 여길 맡아줘.”
그러자, 사바신은 걱정 말라는듯 윙크를 하며 어깨에 지고 있던 팔봉신 영룡을 내렸다.
“하핫, 걱정 마시지. 지금 주위에 있는 것들이 하나라도 나오면 박살을 낼테니.”
“…그럼.”
슈렌은 그룬가르드를 감싸고 있는 헝겊을 푼 후 카루펠의 목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두드렸고, 카루펠은 곧바로 포효를 하며 마을 안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바신은 영룡으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일행에게 들으라는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음…언제였더라? 슈렌이 신계 마상전에서 우승한 것이…. 하여튼 창을 배우면서 기마술도 같이 배운탓에 말을 탄 슈렌은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것과 같죠. 말도 그리 나쁜 말 같지는 않으니 더더욱…. 아, 이런…정신이 팔려 있었네.”
사바신은 머리를 긁적인 후, 영룡으로 땅을 강하게 찍었고, 곧 지축이 울리며 주위가 짧고 강하게 흔들렸다. 그 바람에 몇몇 일행들이 넘어지기는 했으나, 넘어진 일행들은 사바신에게 따질 여유가 없었다. 지축이 울림과 동시에 근처 나무에 숨어있던 괴물들이 땅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진 탓이었다. 사바신은 영룡을 잠시 땅에 박아놓은 후, 머리에 묶은 붉은색 띠를 강하게 조르며 말했다.
“흐음…처음 보는 괴물들이긴 한데 뭐 그리 강하진 않겠군. 모두들, 정신만 차리고 기습에만 대비해요. 내가 적당~히 쓸어 놓을테니. 하하하하핫—!!!”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큰 웃음소리와 동시에, 사바신은 영룡을 들고 괴물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던 린스는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그냥 휀 녀석을 따라갈걸….”
그 사이, 괴물들에게 가까이 접근한 사바신은 팔봉신 영룡을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자, 자!!! 어디 한번 신명나게 놀아보자고 괴물 딱지들!!! 우하하하하하핫—!!!!”
퍼버벅—!!!!!
금강석보다 단단하고, 또한 그만큼 무거운 영룡의 일격에 괴물들은 추풍낙엽처럼 사방으로 날려갔다. 그런 파괴 행위도 모자랐는지, 사바신은 잠시 괴물들이 사방으로 퍼진 틈을 타 지면에 왼손을 박아 넣으며 소리쳤다.
“너희들, 볼링이라는 스포츠 알고 있나? 아주—아주 즐거운 스포츠지!!!”
우르르르릉….
순간, 사바신이 손을 박은 지면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고, 곧 지면은 위로 불쑥 솟아 올랐다. 그는 곧 왼팔을 뽑았고, 그의 왼팔과 함께, 지면에선 그야말로 집채만한 바윗덩이가 사바신의 왼팔에 이끌려 공중으로 들려졌다. 오른손엔 영룡을, 왼손엔 바윗덩이를 들고 있는 사바신의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은 등줄기가 후줄근 해지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일행은 모르는 볼링이라는 레저 스포츠를 알고 있는 티베는 얼굴을 묘히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저 정도 볼이면 스트라이크도 모자르겠군….”
곧, 사바신의 주위에 공포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괴물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고, 사바신은 기다렸다는듯 바윗덩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핫—!!!!! 이 사바신님이 너희들을 육포로 만들어주마—!!!!”
사바신은 보기에도 수십톤은 넘어 보이는 바위를 마치 망치 휘두르듯 위아래로 가볍게 휘두르며 몰려드는 괴물들을 찍어 내렸고, 그 바위 밑에 내리깔린 괴물들은 과일이 터지듯 터져나가며 땅에 납작히 달라붙었다.
아무 할일 없이 사바신의 광란을 바라보던 린스는 계속 터지며 땅에 내리깔리는 괴물들의 모습을 보고 상당히 느끼해졌는지 손수건을 입에 댄 채 고개를 다른곳으로 돌렸고, 레이와 노엘도 같은 기분인지 시선을 각각 돌렸다. 케톤은 자신의 검, 레드 노드의 자루를 문지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사바신씨에겐 배울것이 없구나…. 아니, 배울 수도 없겠지….”
한참동안의 살육을 끝낸 사바신은 싱겁다는듯 피식 웃으며 바위를 집어 던졌고, 그 바위는 땅을 울리며 던져진 숲의 일부분을 밀어버리고 말았다.
“하핫, 자아…주위의 괴물들은 적당히 처리했으니 이제 슈렌이나 기다릴까?”
한편, 마을 안에선 사바신이 물리친 괴물들과 같은 종류의 것들이 도시주민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사투를 벌이는 주민들 안엔 낯익은 노장 둘이 끼어 있었다.
“흥, 이놈의 늙은이, 보약이라도 다려 먹었나 보구나!”
“조용히 하지 못할까 노망난 영감탱이!! 난 아직 청춘이라고!!!”
레프리컨트 왕국의 전설적인 두 검사, 그레이와 하롯은 등을 맞붙인채 서로에게 그렇게 소리쳤고, 후방에서 공격 마법과 보조 마법을 사용해 주던 레이필 여사는 한심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변한게 없으시다니까…저 두사람은.”
그동안, 괴물들은 다시금 공작과 하롯에게 달려들기 시작했고, 하롯은 이를 악물며 그레이에게 소리쳤다.
“온다 늙은이!! 죽어도 책임 못진다!!!”
“네놈의 장례는 내가 치뤄줄거다 노망난 영감!!!”
“우오오오오오—!!!!!!”
두 노장의 검은 다시금 빛과 함께 괴물들을 갈랐고, 후방을 맡고 있던 젊은이들은 그 두 노장들의 화려한 검술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과연 ‘살아있는 쌍벽’이라 불릴만 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역시 노인은 노인이었다. 수십마리에 가까운 괴물들을 단 둘이서 상대하는 바람에 둘의 숨은 턱까지 차 올라 있었고, 결국 그들은 천천히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레이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으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이런…!! 리오군이라도 있었다면 훨씬 나았을텐데…하다못해 맨티스 크루저의 아이들이라도 좀 자라 있었다면…!”
그러자, 아까와 같이 등을 기댄채 숨을 돌리고 있던 하롯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흥, 내 손자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냐? 네놈도 노망기가 있구나.”
“…헛소리…!!”
둘은 다시 몰려오는 괴물들을 향해 검을 뻗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레이필은 젊었을적 둘의 모습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최고의 삼총사였던 그들의 청춘 시절, 그리고 친구인 그레이를 위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택했던 하롯.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동화처럼 눈 앞에서 지나갔다. 레이필은 다시금 정신을 집중한 후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때, 뒤에 있던 그녀의 손녀가 갑자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하, 할머니!! 할머니!!! 옆으로 비켜나세요!!!”
그러자, 레이필은 무슨 일인가 하며 마법진을 거둔 후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의 눈엔 검은색의 말에 탄 한 청년이 이쪽을 향해 질주해 오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레이필은 방해가 되지 않게 곧 옆으로 비켜났고, 순식간에 그레이와 하롯 앞에 말을 멈춘 푸른 장발의 청년은 한숨을 뿜어내 쉬며 중얼거렸다.
“…안늦었군.”
그레이와 하롯은 갑자기 나타난 지원군에 눈을 깜박일 뿐이었다.(그레이와 하롯은 슈렌을 모른다) 그 청년, 슈렌은 창을 옆구리에 낀 후, 두 노인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교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