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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59화


“후우…힘들군.”

리오는 가볍게 호흡을 조절하며 왼팔의 아대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보았다. 벌써 여섯시간…그 긴 시간동안 리오와 바이칼, 휀은 제네럴 블릭 본사의 지하층에서 오로지 전투만을 해 왔다. 물론 모두 수라와 나찰 뿐이어서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 숫자는 바이칼이 벌써 여러차례 이 건물 자체를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협박(?)을 할 정도였다. 리오 역시 솔직한 심정으론 지겨웠지만 이제 그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속으론 상당히 지겨워하고 있는 둘과는 달리, 휀은 냉정함을 잃지 않고 여유있게 적들을 처리해갔다. 그 여섯시간 동안 그가 한 말은 단 한마디 뿐이었다.

“…약하군.”

물론 그 한마디는 리오와 바이칼의 뇌리에 박힐 정도로 잔혹한 말이었다.

이윽고, 셋은 거대한 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철회색의 거대한 문…마치 영혼을 빨아들이는듯 한 음침한 분위기의 문이었다. 리오는 왼쪽 주먹으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바이칼에게 물었다.

“…이 문 뒤엔 뭐가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그러자, 바이칼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대답했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없겠지.”

둘의 대화를 들으며 그 거대한 문을 조사하던 휀은 말 없이 뒤로 돌아선 후 반대편 벽에 기대어 앉았고, 앉은 상태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대의 편한 자세를 취하며 휴식을 하기 시작했다. 리오는 그렇게 열심히 싸우던 휀이 갑자기 휴식을 취하자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 이봐 휀, 저 문 건너로 가지 않을거야?”

휀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상태로 리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쉬는게 좋을거다. 용제의 말 그대로 저 문 뒤에 아이스크림 상점이 있진 않을테니까….”

리오는 그의 말 뜻을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역시 검을 거둔 후 반대편 벽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휀과 리오가 태평히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던 바이칼은 맘에 안든다는듯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흥, 마치 시간이 남아도는 녀석들 처럼 행동을 하는군.”

바이칼의 그런 말을 들은 리오는 미소를 지은채 손짓을 하며 바이칼에게 말했다.

“걱정마, 나중에 아이스크림 사줄께.”

“….”

바이칼은 아무 말 없이 반대편 벽에 기대어 앉을 따름이었다.


“우씨…이거 너무 심한거 아니야? 엘리베이터도 고장났는데 80층짜리 건물을 다 올라가라는게 말이 돼?”

중간에 있는 직원 휴게실의 의자에 앉아있던 지크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쵸코바를 씹으며 투덜대고 있었고, 다른 동료들 역시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크가 빙 돌린 쵸코바를 씹으며…. 그때, 큰 쵸코바 하나를 다 먹은 넬은 만족한 미소를 지은채 지크에게 다가와 물었다.

“지크 선배, 하나 더 있으세요?”

그러자, 지크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넬에게 말했다.

“응? 있긴 있는데…이거 여자애가 두개 먹기엔 좀 그런데? 살찐단 말이야.”

“에에, 괜찮아요 괜찮아. 한바탕 계단을 올라가면 배가 푹 꺼질텐데요 뭐.”

지크는 하는 수 없다는듯 주머니를 뒤적거려 하나 남은 쵸코바를 건내주었고, 넬은 건내받은 쵸코바를 둘로 나누어 자신의 옆에 있는 시에와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 챠오는 빈 탄창에 예비 탄환을 하나하나 넣고 있었고, 이제 막 총기류에 대한 교습을 받고 있던 마키는 챠오가 하는 것을 직접 보고 배우는 중이었다. 모두가 휴식을 적당히 취하고 잡담까지 나누는 것을 본 지크는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모두에게 말했다.

“자, 이제 계속 탐험을 해 보자구. 대열은 아까와는 반대로 내가 앞에, 챠오가 뒤에 서는거야, 알았지?”

챠오는 자신의 총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지크를 선두로 모두는 이동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이익—!!!

순간, 프시케가 가지고 있던 바이오 레이더가 이상 반응을 일으키며 경보음을 울렸고, 지크는 지겹다는듯 머리를 긁적이며 프시케에게 물었다.

“음…어느쪽이야 프시케?”

“네, 여기서 오른쪽…13미터 부근입니다. 약 B-급 이상의 바이오 버그 내지는 그와 비슷한 생체 주파수를 가진 생물 같아요.”

B-급이라는 얘기를 들은 지크는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헷…그래? 좋아, 모두 날 따라와. 유인 작전인지도 모르니 같이 가는게 좋겠지 뭐.”

그러자, 루이체는 펄쩍 뛰며 지크의 말에 반문을 던졌다.

“자, 잠깐만 오빠!! 만약에 함정이라면 오빠 혼자서 걸려도 되잖아, 왜 모두를 끌어들이려고….”

“음? 루이체 너 머리 상당히 좋아졌구나?”

지크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루이체를 바라보며 말했고, 루이체는 깜짝 놀라며 지크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크는 루이체의 머리를 손으로 부벼주며 말했다.

“헷, 함정 맞다구. B-이상의 괴물단지라면 저 레이더보다 내가 먼저 느껴. 하지만 난 B-급의 바이오 버그가 지니고 있는 살기를 느낀 역사가 없거든? 게다가 갑자기 나타났고 말이야.”

“아….”

루이체는 이해가 간다는듯 고개를 끄덕였고, 지크는 씨익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자, 모두 이 건물에서 내려가자구. 더이상 우리가 볼 일은 없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아래층에 바이오 버그들이 약간 남아있으니 정리운동겸 쓸어버리고….”

“잠깐,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일은 뭐지?”

지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챠오는 언제나 찡그리고 있는 얼굴을 더 찡그리며 지크에게 물었고, 지크는 양 손을 활짝 벌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응, 헛수고.”

챠오는 눈 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크는 챠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다시 모두에게 말했다.

“하여튼 빨리 내려가자구. 너희들을 지상에 내려준 다음 난 바로 이 건물 지하에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자, Do it!!”

모두는 한숨을 쉬며 지크를 따라 건물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의 약간 지루한 표정과는 달리, 지크의 표정은 모두의 앞에 섰을 때와는 달리 진지하기만 했다. 예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한번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젠장…완전히 속았군…!!’


구우우우우우우우웅….

리오는 천천히 철문을 열기 시작했다. 육체적 힘은 지금의 셋 중에서 리오가 가장 강한 탓에 맡은 막노동이었다. 사람이 들어갈 만큼 문을 연 리오는 한숨을 내 쉬며 뒷사람들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고, 리오를 비롯해 휀, 바이칼은 곧 철문 뒤의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음!?”

문에 들어가자마자 리오가 느낀 것은 강한 피비릿내였다. 바이칼은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채 차가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고, 휀은 아무 표정 없이 앞쪽을 바라보았다.

“…저건…무슨 기계지?”

리오는 속으로 약간 예상을 하면서도 휀에게 자신의 눈에 띈 거대한 유리관을 가리키며 물었고, 그 유리관에 가까이 다가간 휀은 자신의 턱을 살짝 매만지며 말했다.

“…물질 분해기다. 크기를 보아하니…생물을 세포 단위로 분해하는 믹서기 같은 기계군. 저기 앞에 모범 답안도 있으니 정답이겠지.”

리오는 눈을 부릅뜨며 휀이 보고 있는 방향에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휀의 말 그대로 지금의 방 안에 길게 늘어선 유리관이 있었고, 그 유리관 안엔 인간이 되다 만 세포질과 인간의 골격들이 반쯤 쌓여 있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저 기계로 무슨 짓을 한거야!!”

리오는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어린 목소리로 소리쳤고, 바이칼은 여전히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채 조용히 서 있었다.

「아, 드디어 왔구려 청년. 헛헛헛헛….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 하기엔 좀 이른가? 허허헛….」

그때, 리오를 비롯한 일행의 귀엔 낮익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와 함께 그 방의 천정에선 작은 스크린 하나가 내려왔다. 곧, 그 스크린은 지직 소리와 함께 밝아졌고, 곧 스크린엔 한 대머리 노인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와카루 박사?”

리오는 스크린에 나온 노인의 이름을 중얼거렸고, 스크린 안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말투로 리오에게 말했다.

「호오, 내 이름을 기억해 주다니, 정말 영광이오 청년. 리오·스나이퍼라고 했던가…. 하여튼 잘 왔소이다. 이 장소는 그냥 생물만 분해하는 장소가 아니고, 연구 시설이자 나찰과 수라의 생산 공장이외다. 나찰과 수라는 기계적인 외부 구조 보다는 내부의 생물적 구조가 더 중요한 녀석들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체 조직과 예전 차원에서 구했던 거대 악마의 세포질이 필요하오. 그 두가지를 적절히 섞으면 아주 오래전에 자네에게 달라붙어 기라는 생체 에너지를 흡수한 귀염둥이들이 탄생한다오. 그 귀염둥이들을 나찰과 수라의 생물적 구조물에 삽입하면 완성품의 나찰과 수라가 탄생하는 것이외다.」

리오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나찰과 수라들이 그런 끔찍한 공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한 것이었다. 리오는 몸을 떨며 와카루에게 물었다.

“…좋아, 그렇다 치고…왜 사람들을 저런 기계적 분해방법을 사용해서 그런 악마적인 물질로 만든거지? 너무 궁금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으니 빨리 대답하는게 좋을거야…!”

한심하다는 미소를 띄운채 리오를 바라보던 와카루는 더욱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해 주었다.

「헛헛…좋소, 막이 내려갈 무렵이니 얘기해 주리다. 나찰과 수라는 최강의 대인병기요. 살아있는 생물, 더우기 인간에겐 대대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리오군도 느껴봐서 잘 알 것이오. 인간들을 저 기계에 넣고 공정을 시작할때, 난 일부러 공정의 완성 시간을 늦춘다오. 왜냐, 아주 천천히…천천히 해야 유리관 안에 들어간 인간들이 고통을 느끼며 세포 단위로 분해되기 때문이오. 그들은 인간…살고 싶어하는 욕망이 어떤 생물보다도 높다오. 그래서, 심한 고통과 함께 천천히 죽어가며 그 인간들은 공통적으로 생각을 한다오…살아있는 인간, 즉 동족들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자신은 죽어가는 이 마당에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그런 ‘사념’들이 뭉쳐진 세포들이기 때문에 나찰과 수라들은 인간들을 먹어가는 원시적인 행동까지 하며 예전에 동족이었던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여가는 것이오. 허허헛…이해가 되오?」

“…멋지군.”

그 말을 같이 듣고 있던 휀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바이칼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오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얼굴로 붉은 살기를 뿜어내며 분노를 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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