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6화
“어이, 아가씨. 좀 쉬어가면 안 돼요?”
지크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서 슈에게 간청하듯 말했다. 이틀 동안 걷기만 해서 지칠 때도 된 것이다. 슈는 허리에 손을 올려놓고 한심하다는 듯 지크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도 리오랑 다른가요? 리오는 제가 지치기 전까지 힘들다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고요. 그리고 조금만 가면 마을이 나와요. 계속 걷자고요.”
지크는 손을 가볍게 올려보이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알았습니다 대장님.”
조금 더 걷던 슈는 심심한 듯 지크에게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지크는 잘하는 게 뭐에요? 보아하니 특별히 잘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음… 도술(刀術)은 그런대로 하고, 주가 되는 것은 권격이에요.”
슈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주먹 하나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적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지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에 따라서 다르지요. 나중에 때 되면 보여줄 수도 있겠네요.”
“그럼 한 가지 더요. 당신과 리오 둘 중에 누가 더 강하죠?”
지크는 표정을 굳혔다. 그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아, 알았어요. 더 이상 그런 쪽으로 질문 안 할게요. 그럼 가족 관계라도 얘기해 줄 수 있어요?”
아까보다는 부드러운 질문이었다. 지크도 표정을 풀며 말했다.
“부모님하고 저와 리오, 그리고 여동생 하나요. 저희들하고 나이 차이가 좀 있죠.”
“형제라면서 지크는 이곳 풍토를 그렇게도 모르나요?”
“……….”
지크는 우물쭈물하다가 멀리 마을이 보이자 슈의 말을 얼버무리는 듯 소리쳤다.
“아, 마을이네요! 어서 가죠!”
슈는 한숨을 쉬면서 지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이라스의 국왕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한 노파가 교수대에 끌려가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노파의 아들을 끌고 가는 군인들도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단 세 사람… 도끼를 든 거구의 사나이와 회색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든 여성, 그리고 단단해 보이는 근육질을 가진 또 다른 사나이. 그 셋은 그 광경을 보면서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이윽고 노파의 아들이 밧줄을 목에 걸었을 때 도끼를 든 사나이가 모여있는 마을의 주민들에게 소리쳤다.
“자아! 이래도 이 마을 레지스탕스의 본거지와 주동자를 말하지 않겠나!!”
사람들은 비통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 사나이는 목에 핏줄을 세우며 더욱 소리를 높였다.
“이 녀석들! 이 자르가님이 우습게 보인다 이거지, 좋아!! 병사들, 저 녀석의 형을 집행하라!!”
병사들은 우물쭈물했다. 자신들이 보아도 이 남자에게는 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르가는 자신의 도끼를 땅에 휘둘렀다. 그의 놀라운 힘에 땅이 흔들렸고 병사들과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어서 집행하지 않고 무엇을 하나!! 이 자식들이―!!”
다혈질인 자르가는 한 병사의 머리를 자신의 거대한 손으로 쥐어 근처에 보이는 가게를 향해 내던졌다. 병사는 힘없이 가게를 향해 날아갔고 가게의 기물을 부수며 가게 깊숙이 처박히고 말았다.
“어서 형을 집행해라!!”
“안돼―!!”
노파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형은 집행이 되었다. 그 사나이는 잠시 동안 몸을 꿈틀대다가 곧 움직임이 멈추게 되었다. 주민들의 눈에는 핏발이 섰으나 아무도 앞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나오지 않다니… 끈질긴 녀석들이군! 좋아, 이 중에 있겠다. 그럼 모두 죽여주마!!”
자르가의 광기는 다른 두 사람도 말릴 수가 없었다. 반쯤 버서커인 이 사나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들의 직속 상관 뿐이었다.
그의 광기 뒤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모든 사람들은 그곳을 바라보았다. 붉은색의 신기한 윗옷과 청색의 바지를 입고 있는 한 키 큰 남자와 아마색의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크는 도끼를 들고 광기를 부리는 자르가를 보고 말했다.
“사람을 모두 죽이겠다니,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요?”
자르가는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너, 나에게 한 말이냐?”
자르가는 자신의 거대한 몸을 움직여 지크에게로 다가갔다. 족히 지크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덩치와 키였다. 자르가는 지크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감히 이 자르가님을 그런 말버릇으로 대하다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그럼 너부터 없애주마!!”
“무어라?”
자르가는 미간을 찌푸린 지크에게 자신의 도끼를 휘둘렀다. 순간 자르가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분명히 두 동강이 났을 지크가 자신의 검은색 가죽 장갑을 매만지며 자르가의 옆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느려서야 어디 써먹겠나, 덩치 씨.”
자르가는 돌아서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눈으로도 간파할 수 없었던 스피드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두 사람의 표정도 굳어져 있었다.
“너희들이 저 할머니의 아드님을 교수형 시켰나? 죄목을 한번 말해 보시지.”
자르가는 아무 말도 없이 도끼를 고쳐 잡았다. 잠시간 동안 적막이 흐르자 지크는 손을 꺾으며 자르가를 바라보았다.
“죄목이 없다… 좋아, 좋아. 오랜만에 날 화나게 하는 인종들을 만났군.”
지크는 마을 주민들을 힐끗 보았다. 모두 다 분노와 슬픔이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슈도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건방진―!”
자르가의 선공으로 지크의 첫 번째 전투가 시작이 되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도끼를 또다시 가볍게 피한 지크는 상대에게 로우킥을 선사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뒤로 쓰러졌겠지만 자르가는 약간 비틀거릴 뿐이었다. 역시 대단한 체중이었다.
“제법이군 말라깽이.”
자르가는 다시 한번 도끼를 내뻗었다. 번번이 자르가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기 바빴고 지크는 여유 있게 자르가의 육체를 천천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지크의 빠른 원 투 펀치가 자르가의 복부를 강타했고 거구의 몸은 심하게 흔들렸다. 계속 공격을 받다가 지친 자르가는 결국 도끼를 내던지고 자신도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지크는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뻗어오는 자르가의 두꺼운 주먹을 양 팔로 강하게 감쌌다.
“멍청한 녀석!”
자르가는 그대로 지크를 내던지려 했으나 팔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지크는 씨익 웃으며 팔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팔의 힘줄이 봉쇄돼서 움직이지 못할걸? 어떠한 무기보다도 빠르고 강한 인간의 육체가 어떤 것인지 뇌리에 박히게 해주마!!”
지크는 기합성과 함께 자르가의 팔을 잡고서 몸을 틀었다. 자르가의 팔뚝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사이엔가 자르가의 육체는 허공에 떠 있었다.
쿠웅!
굉장한 소리와 함께 자르가의 육체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지크는 손을 털면서 몸을 일으켰고 자르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훗, 네 목숨은 잠시 동안 연장해 주마. 이봐, 대머리와 마녀! 어서 덤비는 게 좋아. 난 아직 몸이 안 풀렸으니까 말이야!”
오른 주먹으로 왼손 바닥을 치며 지크가 소리쳤다. 슈는 자신이 정말 운이 좋은 여자라 생각했다. 상식으로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자신의 앞에선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이 남자도… 리오 이상가는 괴물인걸?
군인들과 주민들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벼댔고 노기가 어린 표정으로 지크를 바라보던 두 남녀는 지크의 도발에 응한다는 듯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대머리 근육질 사나이는 자신의 손에 은색의 너클을 끼우며 지크에게 다가왔다.
“좋아… 네 녀석의 도전에 응해주지. 내 이름은 [바그라]이다. 들어본 적이 있다면 다행이고 아니면 불행이고… 덤벼라!!”
지크도 이번에는 자세를 취하며 바그라의 앞에 섰다. 자르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투기를 이 사나이는 뿜어내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바그라란 이름을 듣고서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슈도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이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설마, 가이라스 왕국 무도가단의 부대장, [바그라 자이칸]?!”
지크는 턱을 슬쩍 슬쩍 올리며 바그라에게 오라는 신호를 했다.
“건방진… 하하하핫!!!”
“타앗!”
지크는 바그라의 돌려차기를 자세를 낮추며 피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지크에게 바그라의 또 다른 차기가 들어왔다. 2단 차기였다. 오른팔로 공격을 막아낸 지크는 반격을 개시했다. 스트레이트가 바그라의 급소를 노리고 뻗어나갔고 바그라는 쉽게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걸렸군.”
지크는 재빨리 주먹을 풀어 바그라의 팔뚝을 잡고 끌어내렸다. 그 상태에서 지크의 오른발 옆차기가 바그라의 두상을 노리고 들어왔다. 바그라는 급히 왼손으로 지크의 차기를 막아내었다. 그러나 기를 많이 담지 않아서인지 왼팔이 저려왔다.
“크읏!”
바그라는 자신의 팔을 비틀며 지크에게서 풀려났다. 지크는 다시 다리를 이용한 연속 공격으로 바그라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그라는 더 이상 밀리지 않고 되돌려 차기로 지크의 공격을 무산시켰다. 싸움은 점점 속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이 녀석, 잔재주는 여기서 끝이다!”
바그라는 지크에게 빠르게 접근해 그의 머리를 붙잡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지크는 급히 자신의 앞을 가드했다. 바그라의 무릎 차기가 지크의 두상과 가슴을 노리고 연속적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기가 어려운 기술이었다. 지크는 결국 한쪽 팔을 풀고서 왼쪽 팔 하나로 무릎 차기를 막은 후 오른손으로 바그라의 복부를 가격해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지크와 바그라는 서로 떨어져 몸에 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상대가 강했다는 듯 바그라는 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다시 간다!”
바그라는 오른손에 기를 응축하며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황색의 오오라가 바그라의 은색 너클에 둥글게 모인 것이 사람들의 눈에도 보여졌다.
“네까짓게 이런 기술도 할 수 있을까!”
지크도 자신의 오른손에 기를 모으며 대응했다.
“보여달라면 보여주지 대머리!”
지크의 푸른색 기와 바그라의 황색 기가 부딪치자 푸직 소리와 함께 근처에 있던 돌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기와 기가 부딪힐 때 생기는 폭풍이었다. 둘은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바그라의 오른쪽 너클은 파삭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너클이 네 팔을 보호해 줬구나, 대머리.”
발끈한 바그라는 주먹을 다시 휘둘러 지크를 가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아까 같은 무쇠 주먹이 아니었다.
“크읏?!”
바그라는 순간적으로 엄습해 오는 오른손의 통증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오른손의 뼈가 모조리 부서져 있었다.
“난 팔이 멀쩡하다고 했다. 후후후….”
기의 대결에선 바그라의 완전한 패배였다. 지크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의자에 다리를 꼬고서 요염하게 앉아있는 여자를 돌아보았다.
“어이, 마녀. 이제 네 차례다. 다리 풀고 어서 나와.”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청년을 본 여자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호호. 네 뒤를 봐라. 아직 너와 결판이 안 난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녀의 말 대로 지크의 뒤엔 거칠게 숨을 쉬며 도끼를 들고 있는 거구의 사나이가 다시 일어서 있었다. 얼굴은 분노와 치욕에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지크는 여유 있게 뒤돌아섰다. 자르가는 지크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자식! 네 몸을 완전히 절단 내 버리겠다! 감히 이 자르가 님에게 모욕을 주다니… 용서할 수 없어!!!”
자르가는 도끼를 한껏 위로 들어 올렸다. 그 상태에서 내리친다면 아마 같은 키의 돌고렘도 두 조각이 날 것이다. 그리고 내리치는 순간.
촤앗―!
자르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의 눈 사이로 그어진 은색의 섬광 뿐이었다.
지크의 손에는 어느 사이엔가 칼이 들려져 있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매끄러운 표면에 하단부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간단히 새겨져 있는 그 칼의 이름은.
무명도(无冥刀)―
“네 생명은 잠시 연장된 거라고 했다. 후훗….”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르가의 몸에선 피가 분출되었다. 사타구니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아니 도끼까지 정확히 수직으로 잘라진 것이다. 자르가의 거체는 양쪽으로 등분되며 땅으로 쓰러졌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본 사람들과 군인들 사이에는 구역질을 하는 자도 꽤 많았다. 슈도 눈을 손으로 가리며 그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지크는 무명도를 두어 바퀴 손에서 돌린 후 칼집에 다시 넣었다.
“자, 결단 내었다. 이제 진짜 네 차례야.”
의자에 앉아있던 여자는 일어서며 멍하니 자르가의 시체만을 바라보고 있는 바그라를 불렀다. 바그라는 바로 일어서며 그녀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의 오른손은 푸른색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손가락들은 모조리 뒤틀려진 채 퉁퉁 부어 있었다.
“결단이 났다고? 그럴리가… 호호홋, 잘 봐라 청년. 자르가는 죽지 않았다.”
지크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자르가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설마… 저 여자 이블 셔먼?”
슈가 생각한 대로 그 여성은 이블 셔먼이었다. 악마를 추종하고, 그 힘에 매료되어 악만을 추구하는 이블 셔먼의 사악한 특기 중에 하나가 지금 나오는 것이다.
“…… 일어나라 자르가, 넌 이제부터 불사신이야. 호호호호…!”
그녀의 말에 따라 반으로 갈라진 자르가의 시체는 다시 붙어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었다.
“좀비?!”
슈가 소리치자 여자는 조소하며 말했다.
“오호호홋! 단순한 좀비가 아니야. 바로 [데스 버서커]다!”
생전의 능력을 훨씬 웃도는 좀비의 강화판에 버서커 주문을 사용한 언데드 몬스터. 살아있을 때보다 두 배에 가까운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존재이다. 반응력과 반사신경도 좋아지고 더욱 중요한 것은 공포감이 없다는 것이다.
“자, 이제 떠나자 바그라. 이 마을 주민들은 자르가가 다 처리해 줄 거야. 그렇게 되면 카오스 에너지는 더 모이게 되겠지.”
순간이동 마법으로 둘은 곧 사라졌고 자르가는 살아있는 생물을 찾아 헤매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군인들도 살기 위해 뛰었다.
슈가 그 군인들 중 대장처럼 보이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군인이라면 이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해야지, 먼저 도망을 가? 사람들을 어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슈의 말을 들은 군인은 슈가 자신의 전투 나이프를 꺼내 들어 목에 겨누자 비로소 군인들에게 소리치며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지크는 자신에게 자르가를 유인시키기 위해 그의 앞으로 돌아섰다.
“이봐! 널 죽인 건 나다, 나에게 덤벼봐 덩치!!”
좀비가 되어서도 지크에 대한 기억은 있는지 자르가는 괴성을 지르며 지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반쪽이 난 도끼를 양손에 거머쥐고 휘둘러 대는 자르가에게 지크의 차기가 머리에 들어가자 자르가의 머리는 다시 두 쪽이 났다가 하나로 합해졌다. 물리적 공격에 충격을 거의 입지 않는 것이었다.
“어이, 슈! 난 이런 괴물과는 싸워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지크는 자르가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슈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좀비와의 전투 방식은 웬만한 전사나 기사라면 기본적으로 아는 것인데 강하다고 생각한 지크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좀비가 뭔지 모르나요?”
내려오는 도끼 날을 양손으로 잡아낸 상태에서 지크가 소리쳤다.
“들어는 봤어요!”
슈는 난감했다. 아까 바그라와의 전투에서 그녀가 느낀 것처럼 지크의 몸은 리오 이상으로 훌륭한 유연성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법이나 좀비와 같은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 건 처음인 사람 같았다.
도대체 어디에서 왔길래 이러지? 으음… 힌트만 주면 잘 싸울 것 같은데.
“이봐요! 좀비 같은 언데드 몬스터들은 성스러움과 불에 약해요! 나도 도와줄게요!”
불에 약하다는 말을 들은 지크는 자르가의 가슴에 강한 공격을 한 번 넣은 후 조금 떨어져서 손을 이리저리 교차시킨 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는 슈가 대신 자르가를 막기 시작했다. 자르가와 직접 대면한 슈는 자르가의 스피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다는 걸 느꼈다. 지크가 여유 있게 피하는 걸 보고 자신도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달랐다. 도끼를 한 번 피하는 데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공격은 물론 거의 할 수가 없었다.
저 남자도 역시 괴물이야….
주문을 외우고 있는 지크의 몸 주위에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맺히기 시작했다. 수인과 진언문, 리오도 가끔씩 사용하고 이 사나이의 경우엔 주가 되는 일종의 정신 마법이라 할 수 있는 공격법이다. 마법보다 비효율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단일의 적에게 있어서 그 효과는 100%, 또한 지형의 효과가 더해지면 단체의 적에게도 훌륭한 효과를 발휘한다.
“헙―”
나지막한 기함성과 함께 지크는 자르가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가 달려가는 걸 슈는 눈으로는 확인하지 못했다. 기로써 순간적으로 무언가가 지나갔다는 것뿐…
“크윽?!”
자르가는 자신의 뒤를 무언가가 잡은 것을 느끼고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은 머리뿐, 머리 아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두꺼운 허리를 양손으로 움켜쥔 지크는 계속해서 나머지 주문을 외웠다.
“… 처음이군, 같은 적을 두 번 없애기는 말이야. 어쨌든, 이제 끝났다.”
지크는 그대로 팔에 힘을 넣었다. 자르가의 거구가 조금씩 땅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땅을 향해서 이 명왕대폭멸(冥王大爆滅)을 사용하면 150m 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홀랑 타버리거든… 시험도 해볼 겸 공중에 사용해 볼까?”
지크의 가죽 장갑 사이에서 불꽃이 치솟기 시작하고 자르가의 몸은 서서히 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슈를 보고 엎드리라는 눈짓을 보낸 지크는 슈가 엎드리자 공중을 향해서 기합성을 터뜨렸다.
“갈(喝)―!!!”
파앙!
기합성과 함께 지크의 양손에선 거대한 불꽃이 솟아올랐고 자르가의 저주받은 육체는 그 안에서 뼈도 남지 않고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폭음 소리에 놀란 주민들과 군인들은 구름을 태울 듯이 솟아오른 거대한 불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아앗!”
슈는 치솟은 불꽃 때문에 생긴 대기 중의 폭풍으로 땅을 굴러야만 했다.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선 슈는 불꽃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대기가 아직까지 일그러진 것에 또한번 놀랐다.
지크는 손을 한 번 훅 분 다음 털면서 중얼거렸다.
“명계의 불꽃이다… 저주받았다고 해도 다른 걸로 환생할 수 있을 거야. 후훗….”
한 주민의 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슈에게 현재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을 들은 지크는 턱을 괴고서 친절한 아주머니가 끓여준 수프를 한 숟갈 뜨며 슈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말스 왕국은 현재 영주의 폭정으로 위기에 처해있고, 가이라스 왕국은 어제와 같은 이상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으며, 리오와 당신은 말스 왕국의 후계자인 …어쩌구 태자를 찾으러 여기까지 왔다, 이거요?”
슈는 졸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프도 제대로 뜨질 못하고 있었다.
“으음… 아무래도 리오 녀석을 만나봐야 상황을 제대로 알겠군. 아, 그리고 바이칼이란 녀석도 말스 왕국에 보였었다고요? 그놈이 웬일이지…?”
수프를 열심히 뜨며 혼자 중얼거리던 지크는 뭔가 물어볼 것이 생겼다는 듯 슈를 바라보았다.
“아, 젊은 누나… 어라?”
슈는 탁자에 쓰러져 곤히 자고 있었다. 지크는 숟가락을 놓으며 일어서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슈의 뽀얀 얼굴을 보며 지크는 미소를 지었다.
“우후∼♬ 인형 같다는 게 이런 얘기구나. 잘만 꼬셔보면… 후훗. 어쨌든 잘 주무세요 아가씨.”
지크는 집의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슈를 침대에 옮겨놓고 밖으로 나갔다.
“으음… 전에 서울의 본부에서 나오던 정화된 공기보다 훨씬 좋군. 나도 이런 데나 보내주지, 할배가 미워… 유일하게 나만 공기가 탁한 문명계로 떨어진단 말이야. 여자들도 오염된 공기 때문에 피부가 좋지 않고 말이야. 확실히 안 좋아… 하지만 TV를 볼 수 있는 게 유일한 낙이기도 하지, 게임도 할 수 있고. 으이구….”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지크는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슈가 깨기를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