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63화
“자, 유언이라면 빨리 하시지 닥터 와카루!! 시간이 없다는 것은 당신도 잘 알텐데!!!”
리오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한 소리였다. 의자에 앉아 있던 와카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지금이 24일 아침 열시니까…딱 열 네시간 남았구려. 이 세상이 멸망하는데엔 말이오. 허허허헛…. 나도 솔직히 원하던 바는 아니었지만, 높은 분께서 시키시는 바람에….”
와카루의 말을 듣던 리오는 갑자기 이상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와카루에게 물었다.
“…무슨 헛소리지? 라이아도, 저 밖에 있는 나찰과 수라라는 괴물 로봇들도 모두 당신이 저렇게 만든 것 아닌가!!”
와카루는 자신의 안경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 그렇소이다. 하지만 난 말했소. 부탁을 받은 일이라고….”
“…그럼 누구의 부탁을 받은거지?”
리오는 궁금함을 견딜 수 없었다. 저 노인의 뒤를 조종할 만큼 거대한 존재가 지금은 사라져버린 린라우 외에 또 있을줄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와카루는 양 팔을 벌리며 말했다.
“자, 리오군 말 그대로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그야말로 허심탄회하게 말하리다. 자, 나오시길….”
와카루는 경쾌하게 자신의 의자에 붙어있는 버튼을 눌렀고, 곧 천정이 열리며 두사람이 내려왔다. 리오는 둘 다 익히 본 얼굴이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리, 린라우!? 그리고…세이아!!!”
“리오씨!! 리오씨!!!!”
물론 세이아가 주동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녀는 린라우에게 포박당한 상태로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오래간만이군요. 가즈 나이트…리오·스나이퍼.」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리오는 머리속이 정지된듯한 느낌을 받고 말았다. 낮익은 목소리…바로 여신, 이오스였다.
“이, 이오스님!? 무사하셨군요!!!”
그러나, 이오스는 리오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와카루는 미소를 띄운채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오스는 그 의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와 앉았다. 그런대로 다행이라는 생각에 잠시 표정을 풀었던 리오는 순간 인상을 찡그리며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이오스에게 물었다.
“…자, 잠깐만…. 이, 이오스님께서 설마…? 그런 바보같은!?”
이오스는 옅은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동작 하나 하나는 리오에게 있어서 충격 바로 그 자체였다.
“아, 아니 어째서…이오스님께서 어째서!!!”
「…훗, 몇개월간 잘 속아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리오·스나이퍼. 그리고 제 딸들도 보호해 주셨으니 더 없이 감사할수가 없군요. 아, 우선 궁금증부터 풀어드리겠습니다. 음…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실제적인 인간들의 시간은 수만년 전이겠군요. 저와 다른 여신 세명은 이 지구의 여신인 ‘가이아’가 죽은 이후 그 자리를 매꾸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가이아는 지금 사람들이 부르는 공룡이라는 종족들을 잘못 번성시킨 죄로 주신에게 처벌을 당했죠. 그 공룡들도 주신의 심판을 받아 모두 사멸되었고요. 하지만 저를 포함한 여신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왜 이런 작은 행성에 여신들을 네명이나 배치했냐며….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전 작은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요이르, 이스말, 마그엘 등에게 우리도 곧 주신에게 처벌을 당할거라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지요. 결국 셋은 단합하여 겉으로 주신을 지지하는 저와 대결을 하기에 이르렀고, 마지막에 계획이 잘못되는 바람에 저까지 주신께 벌을 받고 말았죠. 저를 제외한 세 여신은 육체와 정신이 따로 봉쇄되는 큰 벌을 받았고, 전 가볍게 신체(神體)만을 쓸 수 없게 된 것이죠.」
“…!!!!”
리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아니, 수천년이 넘게 이 세계의 사람들은 이오스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것이었다. 악마들도, 신들도 함께…. 이오스의 얘기는 계속 되었다.
「하아…전 고민했답니다. 신벌이 풀린다 해도 다시 세 여신들과 싸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요. 적어도 두명이 모자랐으니까요. 정신도 상당부분 봉쇄된 탓에 전 최근에 와서 이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20여년 전 저는 인간의 남자를 만나 아이를 둘 낳게 되었죠. 신벌이 풀리면 그 아이들도 반신반인이 되어 상당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탓이죠. 결국 그 계획은 성공해서 세이아는 저보다 강한 정신을, 라이아는 저보다 강한 육체를 가지게 되었죠. 음…하지만 미처 생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쪽에 계신 린라우님께서 다른 여신 세명을 제거하셨기 때문이죠. 힘을 흡수하셨으니까요. 게다가 차원 결계 때문에 그 일은 신계에 까지 알려지지 않게 되었죠. 저의 일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고…. 바이론씨가 주신에게 건내받아 저에게 주신 신약 덕분에 전 신의 힘마저 완전히 찾게 되었습니다. 린라우님께서 방해자도 처리해 주셨고…. 이제 이 행성은 완전히 저의 것이 되는 순간이었죠. 당신도 아시죠? 신으로서 행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명예라는 것….」
리오는 결국 분노에 주먹을 떨기 시작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세이아와 라이아마저 사랑때문에 태어난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리오로 하여금 이오스를 더욱 용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단지 성계신이라는 명예 때문에 두명의 생명을 비극으로 만드는 것인가!! 주신님을 비롯한 모두를 바보로 만들다니…!!!!”
「후훗…. 하지만…. 당신들, 즉 가즈 나이트라는 변수가 있다는 예상은 하지 못했었지요. 제가 신벌을 받기 전엔 가즈 나이트라는 존재가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결국 일은 이 세계의 멸망으로 끝나게 되어버렸습니다. 참 아쉽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아직 신계에 지금의 일이 완벽히 보고된 일은 한번도 없으니까요. 전 표면으로 드러난 행동을 한 일이 없으니 책임 추궁은 면하겠지요. 여기서 당신들만 완벽히 제거한다면!!!! 자, 와카루 박사. 저 가즈 나이트를 처리해 주세요.」
“예, 기꺼이….”
와카루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후 린라우에게 천천히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린라우의 앞에 선 채 리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허헛…내 꿈은 오래사는 것이었소. 그래서 생명과학을 연구하게 되었고, 결국 완성한 것이 신의 육체와 가까워지는 보조 장치였소. 이름은 아마테라스…내 조국에 전해지는 ‘고사기’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외다. 몇차례의 실험 결과 지금은 100퍼센트에 가까운 완성률을 보이고 있소. 지금의 내 육체는 아마테라스를 사용한 상태이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리오군을 비롯한 다른 젊은이들을 이기기엔 역부족일 것같아서 린라우님의 몸을 잠시 빌리기로 했소. 전투력에 관해선 톱클래스의 악마와 신에 가까워진 내가 융합되면…젊은이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와카루의 등은 마치 우산이 펴지듯 넓게 펴지며 린라우를 집어 삼켰다. 곧, 와카루의 몸은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지금보다 훨씬 젊어지기 시작했고, 그 다음엔 몸이 마치 린라우의 것처럼 두꺼운 근육질로 바뀌어 졌다. 그리고 외관상의 변화가 약간 있은 후 와카루는 빙긋 웃으며 리오에게 말했다.
“후우…자, 이것에 바로 당신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외다. 나 와카루…아니, 아마테라스라 부르는 것이 좋겠지요. 후후…신을 초월한 과학의 힘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쿠우우웅—!!!!!!
“으윽…!?”
순간, 리오는 와카루에게서 뿜어지는 엄청난 기합에 검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며 자세를 낮추었다. 이번엔 농담이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이 안전주문을 풀지 않았다고 해도 이정도의 힘은 느껴본 일이 드물었다. 와카루는 여유있는 웃음을 지은채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고, 양 팔이 묶인채 이오스의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세이아는 눈물을 떨치며 리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리오씨 위험해요!!! 전 상관하지 마시고 도망치세요!!!!”
자신에게 천천히 걸어오는 와카루를 바라보던 리오는 세이아의 목소리를 듣고서 빙긋 웃으며 디바이너를 거두고 대신 엑스칼리버를 꺼내며 세이아를 향해 물었다.
“…절 아직도 모르시나요…?”
“네…?”
“…훗, 라이아가 ‘어머니를 위해’라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군요. 세이아, 다시한번 몇년 전에 제가 아무 말 없이 떠났던 것, 사과드릴 수 있을까요?”
세이아는 멍한 얼굴로 리오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리오는 곧바로 자세를 취하며 와카루에게 시선을 둔 채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요…세이아에게도, 라이아에게도…. 전 보통 생활을 해 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때도 당신들의 곁에 오래 있어줄 자신이 없었죠. 전 검과 마법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검과 마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군요.”
이오스는 아무 말 없이 리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리오의 기가 자신이 신으로 탄생한 이후 처음 느껴볼 정도로, 아니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와카루는 그것을 모르는 듯 했다.
“…당신과 라이아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어요. 그, 반신반인이라는 슬픈 운명을 내 검으로 바꿔주겠어요—!!!”
순간, 리오의 눈은 푸른색의 섬광을 내 뿜었고, 그의 이마엔 네개의 회색 무늬가 떠올랐다. 그의 몸에서 터져나가는 기의 압력에 의해 와카루는 약간 밀려 나갔고, 주위의 벽은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에 충돌한듯 리오를 중심으로 둥글게 패여 나갔다. 와카루는 움찔 하며 리오를 바라보았고, 리오는 눈과 몸에서 푸른색의 빛을 뿜어내며 와카루에게 말했다.
“당신을 분명히 신으로 만들어 주지…소원과는 좀 다르겠지만 귀신 나부랭이로 만들어 주겠어—!!!!”
리오는 그렇게 일갈을 터뜨리며 와카루에게 급속으로 접근했고, 리오는 와카루의 안면을 잡고 몸을 날리며 천정에 와카루를 쳐 올렸다. 그 상태로, 리오는 이오스를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다음 차례는 당신이야…대가에다 이자까지 충분히 쳐서 지금의 이 기분을 보답해 주지!! 하앗—!!!!”
쿠우웅—!!!!!
와카루를 천정에 쳐 올린 상태에서, 리오는 와카루를 잡은 손에 기를 폭발시켰고 엄청난 폭음과 함께 와카루는 천정을 뚫고 위로 솟구쳐 올랐다. 리오는 곧바로 그를 따라 천정에 생긴 구멍을 향해 날아 올랐고, 곧 방 안엔 세이아와 이오스만이 남게 되었다. 이오스는 자신의 옆에 묶여 있는 세이아의 은발을 매만져주며 조용히 말했다.
“…후훗, 보이는구나. 너와 저 가즈 나이트 사이에 이어진 운명의 실이…. 저 가즈 나이트는 세개의 운명을 지니고 있지. 하나는 다른 차원에 이어져 있고…또 하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마지막 하나는 너에게 이어져 있단다. 하지만 걱정 말거라…내가 너에게 이어진 것 만큼은 반드시 끊어줄테니…!”
세이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듯 눈을 질끈 감으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눈물과 함께….
“어, 어머니…!!!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