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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69화


“…그러니까, 리오 녀석은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거지?”

지크는 루이체에게 얻어 맞아 부어버린 한쪽 눈을 손으로 가린채 루이체에게 물었고, 루이체는 계속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모르겠어. 리오 오빠가 말 한마디도 없이 가버린건 이번이 처음이라….”

지크는 루이체의 말을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녀석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걸 염두하고 루이체가 가족이 된 이후부터 언제나 이녀석에게 차원 좌표를 말하고 돌아다니니까.’

“…쳇, 알았어. 그럼 리오 녀석이 돌아오는대로 우리집에 잠깐 들려달라고 말해줘. 알았지?”

지크는 천천히 일어나며 루이체에게 당부했고, 루이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나서는 지크를 배웅해 주었다.

“아 참…아까 오빠 때린거 미안해, 헤헷…. 이해하지?”

“…헷, 너무 이해가 돼서 눈이 쓰릴 정도지. 자, 나중에 또 보자구.”

지크는 루이체의 머리를 약간 거칠게 매만진 후 천천히 차원 이동의 문으로 향했다. 그때, 차원문 앞에서 지크는 우연히도 슈렌과 카루펠을 만날 수 있었고, 꽤 오래간만에 지크를 다시 보게된 카루펠은 허리를 굽혀 지크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 주인님!”

“옷, 슈렌하고 카루펠 아니야? 너희들은 왜 여기있어?”

헝겊을 감은 자신의 창을 어깨에 기대어 놓고 있는 슈렌은 지크를 조용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임무 때문에.”

“흠, 그렇군. 어련하시겠어. 그런 그렇고…카루펠은 아직 내거라구. 빌려쓰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슈렌 형제님.”

“…갑자기 강조하는 이유는 뭐지.”

슈렌은 한숨을 내 쉬며 지크에게 물었고,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넘어가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슈렌, 카루펠과 헤어진 지크는 곧바로 자신의 세계로 돌아왔고, 시간이 2초가 지난 것을 확인한 지크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집안으로 돌아갔다. 집안에선, 지크의 어머니 레니가 불안한 표정을 지은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엇?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아, 돌아왔구나 지크. 네가 나간 다음에 곧바로 처크 삼촌에게 전화가 왔단다. 그분 답지 않게 급한 목소리였으니 어서 본부로 가보렴.”

“예? 할아버지께서요? 시에, 잠깐 뉴스좀 틀어볼래?”

리모콘을 사용할줄 모르는 시에는 직접 TV앞으로 뛰어가 채널을 바꿨고, 지크의 예상대로 뉴스 채널에선 긴급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보 내용인 즉, 다수의 바이오 버그들이 시청앞광장에 나타나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크는 피곤하다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걸쳐두었던 자신의 자켓을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저 가볼테니 다시 전화가 오면 현장으로 간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티베와 마키가 돌아오면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씀해 주시고요. 그럼, 다녀올께요.”

지크의 얼굴이 오래간만에 진지한 것을 본 레니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가 나간 직후, 속보가 흘러나오던 TV화면은 갑자기 치직거리며 심한 노이즈가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게 되었고, 다른 채널들 역시 마찬가지로 나오지 않았다. 레니는 불안한 마음에 무선 전화를 들어 BSP본부에 연락을 하려 했으나 전화 역시 불통이었다. 레니는 설마 하는 마음에 코드 전화를 들었고, 다행스럽게도 코드에 의한 전화는 통화가 가능했다. 그녀는 즉시 BSP본부에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

“…뭐지, 이 느낌은…?”

꽃이 만발한 강변을 한 여성과 함께 한가로이 거닐고있던 리오는 순간 뇌를 스치는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파란 하늘은 구름과 새들만이 떠 있을 뿐, 별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 그러시나요 리오님?”

리오의 옆에 같이 있던 레이는 리오가 갑자기 굳은 표정을 지은채 주위를 둘러보자 불안한 기분이 들었는지 그에게 물었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주위를 둘러보던 리오는 곧 고개를 저으며 레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음, 아니야…. 기분탓이겠지. 레이에겐 미안하지만 성으로 그만 돌아가는게 좋겠어. 바래다주지.”

“네, 그럼 그러세요.”

레이는 자신의 어깨를 리오의 몸에 살며시 기대며 멀리 보이는 성을 향해 그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리오의 얼굴은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내 시간으로는 2년이 지났는데…휀이 말한 그 ‘미심쩍은 부분’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건가. 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제 가셔도 괜찮습니다 리오님….”

한참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하던 그때, 몸을 기대고 있던 레이가 갑자기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오자, 리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레이를 바라보았다. 레이는 고개를 푹 숙인채 리오에게 말했다.

“…저와 같은 여자가 리오님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겠지요. …리오님과 함께한 1년 반…정말 소중한 나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레이? 난 아직….”

그러나, 리오는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리오의 앞으로 돌아선 레이는 리오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약간이나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가즈 나이트…. 그리고 전 일국의 공주이기 이전에 보통의 여자일 뿐입니다. 절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한사람 뿐이겠지만,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수천, 수만…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답니다. …이제 그분들에게 돌아가 주세요.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 당신이라는 분과 1년 이상 같이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쁘답니다.”

“….”

리오는 말 없이 레이를 안아줄 따름이었다.

“…리오님의 얘기…반드시 후세의 아이들에게 전해주겠습니다. 한 사람이 아닌, 신을 모시며 다른 이들을 돕는 신의 기사 리오님과…다른 분들의 얘기를….”

“…미안해…그리고, 고마워….”


※※※

“젠장, 그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아직 500m나 남았는데 이정도 소리라면 아무리 나라도 지원을 기다려야 하겠는걸?”

지크는 통행이 중지된 도로에서 홀로 오토바이를 달리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이상하게도 집에서 나온 직후 모든 무선 통신이 끊어진 상태여서 본부와의 연락 두절은 물론 정지위성 레이더와의 교신도 할 수가 없어 바이오 버그의 숫자를 감각적으로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지크는 시청 앞 대로에 도착할 수 있었고, 광장을 비롯한 자신의 앞 100미터 이후의 모든 도로가 바이오 버그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며 지크는 한숨을 쉬는 수 외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는 결국 무명도를 들고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자기 자신의 긴장을 풀려는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쳇, 바이오 버그 대통령 후보가 유세라도 하는 것 같군. 헤헷…지역 감정이 꽤 쎈데?”

지크는 도로를 점거한 E급 바이오 버그 다수 외에도 C급, B급 이상의 대형 바이오 버그들이 시청앞 광장에 있는 것을 보고 제발 자신이 쓴 고글에 문제가 있길 바랬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바이오 버그들이 지크에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쳇, 하여튼, 오늘은 너희들의 합동 영결식이 펼쳐지는 날이다—!!!”

지크는 곧바로 무명도를 빼어든 후 고속으로 바이오 버그들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바이오 버그들의 대열은 양 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광장까지 한순간에 길이 뚫리자 지크는 공격하려던 것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이오 버그들은 여전히 살의를 띄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지크에게 길을 안내하려는듯 사람 키보다 작은 바이오 버그 한마리가 지크의 앞에 나타나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오너라…강한 인간…. [FATHER]께서 너를 기다리신다….」

“바, 바이오 버그가 인간의 말을!?”

지크는 놀라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A급 이상의 바이오 버그들을 실제로 본 일이 없는 그였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A급 이상의 바이오 버그들을 만난 BSP대원들의 일지를 살펴보면, 인간 이상의 초 지능과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전투력을 가진 존재라는 기록이 적지 않게 나타나 있었다. 지크는 불안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그 바이오 버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헤이 친구, MOTHER는 알겠는데, FATHER는 또 뭐하는 작자야?”

그 바이오 버그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지크의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우리들의 창조주이신 MOTHER와 동격의 존재…아니, 더욱 강한 존재시다. MOTHER께서 잠시 힘을 잃으신 동안, FATHER께서 나타나 MOTHER와 함께 우리 모두를 살리셨다…. 자,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춰라, 인간의 전사여….!」

“…쳇, 시끄러.”

지크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채 광장 중앙에 마련된 괴기스런 의자에 앉아 있는 작은 존재를 바라보았다. 지크는 자신에게 예를 갖추라고 손짓하는 바이오 버그를 발로 멀리 차버린 후, 의자에 앉은 존재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헤이, 할아버지 어디서 많이 본 듯 한데…?”

지크의 말에, 의자에 앉은 그 존재는 자신의 위를 보호하고 있는 B급 대형 바이오 버그들에게 물러서라는 손짓을 했고, 바이오 버그들이 물러서자 그는 천천히 의자에서 내려와 지크의 앞에 섰다.

“…허허헛, 당연하다네 젊은이. 한달 전에 좀 감정이 있었지 아마? 허허허헛….”

지크는 믿을 수 없었다.

리오의 일격에 전신이 날아가 버렸어야 할 작은 몸집의 옛 과학자, 닥터 와카루가 미소를 지은채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호, 호오…? 이게 어찌된 영문이지? 할아범은 그때 힘을 모두 흡수한 후 젊어진 상태로 리오 녀석과 싸웠다고 들었는데…?”

와카루는 수염이 듬성듬성 난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땐 잠시 연극을 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네. 괜히 세상을 멸망시켜봤자 나에게 이득이 되는건 없었거든. 날 조종하려한 그 여신을 제거한 후에 내 계획을 실행시켜도 별 문제 없겠다는 생각에 잠시 사라져 주었지. 허허허허헛…. 자, 오래간만에 악수나 함세 젊은이.”

와카루는 주름이 잡힌 자신의 손을 지크에게 내밀었고, 지크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채 와카루와 악수를 나누었다. 와카루는 곧 눈을 번쩍 뜨며 엄청난 살기를 내 뿜기 시작했고, 지크는 즉시 손을 떼며 뒤로 멀찌감치 물러섰다.

“하, 하하…이거 왜이러시나 할아범? 내가 악수하는 방식이 좀 맘에 안들었나?”

그러자, 와카루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오른손을 뻗었다.

“아니…자네의 힘이 의외로 강력해서…. 내가 리오군과 직접 싸웠을땐 전투에 대한 지식이 없었는데…지금 자네의 지식을 얻고 나니 갑자기 즐거워 지더군. 허허허허허헛…. 자네의 도검술(刀劍術)…잘 익혔네.”

그 말이 끝남과 함께, 와카루의 손에선 검은색의 긴 도검이 손바닥 피부를 뚫고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악수를 한번 한 것 가지고 자신의 모든 기술이 저 노인에게 흡수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와카루는 자신의 손에서 생성시킨 도검을 손에 쥔 후, 만족한 미소를 띄우며 지크에게 말했다.

“자아…증명을 할 시간인가? 뭐가 좋을까…음…배운게 하도 많아서…. 아, 이것이 좋겠군. 헛헛헛헛…육백 칠이식, 일광(日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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