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57화


교회에 도착한 리오 일행은 뜻밖의 환영 인파에 어리둥절했다. 건강해진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두 나와 그들을 반겨주었고 리오는 그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미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결국 키세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감사의 인사를 한 몸에 받아야만 했고 굳은 표정은 더 이상 짓지 못하였다.

클루토는 맨 먼저 리카가 있는 병실로 뛰어갔고 머셀은 할 일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수녀들과 우연치 않게 놀 수 있게 되었다. 노을이 질 무렵 사람들은 돌아가고 수도원에는 다시 정숙이 깃들게 되었다. 그들이 떠난 동안에 리카는 옛날처럼 건강해져 있었고 클루토는 다시금 리카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심부름을 해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클루토의 얼굴에선 오히려 그게 좋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리오는 침대에 누워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고 키세레는 수녀 복장으로 갈아입고서 예배당에서 기도를 올렸다.


다음 날.

“자, 머셀, 클루토! 일어나라, 이제 떠나야지.”

리오는 아직도 자고 있는 두 소년을 흔들면서 옷을 입었다. 두 소년은 머리를 흔들면서 잠자리에서 일어섰고 곧바로 세면장으로 갔다. 리오는 그들이 나간 사이에 방안에서 간단히 몸을 풀며 떠날 준비를 했다.

“그들이 떠난다고요?”

키세레는 리오 일행이 떠난다는 말을 듣고서 덤덤히 그 소식을 들고 온 수녀에게 물었다. 키세레의 무감각한 반응에 수녀는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 이유는 수도원 사람들 사이에서 밤사이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잘되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사람들 이었는데. 자, 더 할 얘기가 없다면 가서 일을 보세요.”

키세레는 말을 마치고 뒤로 돌아 그동안 쌓였던 일을 보기 시작했다. 조금 후 원장이 그녀에게 뭔가를 물으러 그녀에게 다가왔다.

“키세레 수녀. 물어볼 것이 있는데…”

원장에게서 언제나 나는 허브 냄새를 맡은 키세레는 흠칫 놀라며 가지고 있던 깃털펜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나서 원장에게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장은 어리둥절한 채 자신의 질문을 잊었다.

“원장님, 꿈속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나요?”

원장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 글쎄요… 아마 못 맡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들은 키세레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혼이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원장은 그녀의 어깨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키세레 수녀! 무슨 일입니까, 키세레 수녀!”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리오 일행은 원장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원장실 앞으로 향했다. 원장실의 앞에선 키세레 수녀와 원장이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리오는 들을 수 있었지만 인격을 존중해 주는 터라 듣지 않고 아이들과 잡담을 하며 걸었다. 리오가 다가오자 키세레는 원장의 뒤로 돌아섰고 원장은 웃으며 리오에게 다가왔다.

“원장님, 저희는 이제 떠나볼까 합니다. 일정도 많이 늦었고 해서, 어쨌든 지금까지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리오와 일행들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였다.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리오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드려야 할 건 저희들입니다. 리오님이 안 오셨다면 아마도 악마에게 우리의 자식들을 빼앗겼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리오는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아, 그리고 리오님과 단둘이 할 얘기가 있습니다만….”

원장은 리오와 함께 원장실로 들어갔다. 리오가 들어가자 키세레는 자신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손에 쥐고서 가만히 기도를 했다. 그녀에게 클루토와 머셀, 리카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즐거웠습니다 키세레 수녀님. 더 많은 나날을 같이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리카는 클루토의 말을 비꼬았다.

“어머머, 네가 웬일이니. 그런 말을 할 줄도 알고… 그렇지 않니 뾰족귀?”

“뾰족귀…?”

머셀은 자신의 귀를 매만지며 리카의 말을 되뇌었다.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수녀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클루토는 리카의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당겼다. 리카도 그제서야 인사를 했고 머셀은 엘프족의 이별 풍습대로 그녀에게 수신호를 해 보였다.

“너희들…!”

키세레는 십자가를 놓고 세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목이 메여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그러나 키세레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아쉬움 말고 또 있었다.

원장실 안에서 리오는 손을 내저으며 전혀 그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닙니다 원장님! 제가 키세레 수녀님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원장은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젊은 남녀 둘이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신께서도 아마 벌을 주시지는 않으실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리오는 기가 막힌 듯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키세레의 체온이 너무 낮아져 있어서 급하다 못해 극단적인 방법을 쓴 것뿐이라는, 그리고 그 이상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원장은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다는 듯 계속 말을 했다.

“아, 그 정도면 키세레 수녀가 아무리 애정결핍증이라 해도 사랑을 느낄 수 있었겠군요. 허허허….”

리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속으로만 앓는 수 이외에는 없었다.

이 사람… 성직자 맞나?

원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키세레 수녀는 일이 이상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답니다. 그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군요. 키세레 수녀에게는 임무가 있다는 핑계로 당신을 따라가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무쪼록 키세레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리오는 혹이 하나 더 붙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리오는 원장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았습니다 원장님.”

리오의 결심에 원장은 기뻐했다. 그러나 리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대신 이것만은 믿어주세요!”

“뭡니까?”

리오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원장실의 문을 열고서 나온 리오의 표정을 본 아이들은 모두 놀랐다.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

“리오, 왜 그래요?”

리오는 클루토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아직 알 거 없어. 알았니?”

클루토는 리오의 표정을 보고서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리오는 키세레를 바라보았다. 리오의 시선을 느낀 키세레는 표정을 굳히고 돌아섰다. 리오는 키세레의 눈이 약간 부어있는 것을 보고 움찔했다.

“저………….”

리오는 키세레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답답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쳇, 원장님께 당신의 임무를 들었습니다. 젠장, 식객이 늘었군!”

리오는 투덜대며 등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키세레는 자신의 방으로 가기 위해 돌아섰다.

“어이, 수녀님.”

리오의 부름에 키세레는 슬쩍 얼굴을 돌렸다.

“수녀복은 마음에 안 들어요. 어제까지 입었던 그 옷 마음에 들던데…”

키세레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방으로 향하였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리오는 벽을 후려치며 분개 아닌 분개를 했다.

“젠자아앙!”

리오는 씩씩대면서 밖으로 나갔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소곤대며 그 뒤를 따랐다.


밖에서 키세레를 기다리던 일행은 조금 후 키세레가 나오자 옷을 털며 일어섰다. 리오는 계속 나무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수도원 사람들이 키세레를 마중하며 나와주었고 키세레는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수도원 사람들에게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해주었다. 인사를 끝낸 키세레가 다가오자 리오는 팔짱을 풀고 수도원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후 다시금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잘 있어요… 모두들.

키세레는 수도원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배낭 속에는 수녀복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