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80화
제4장 [잃어버린 친구]
“음, 날 찾았다고 루이체에게 들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마침 집에서 리오를 만난 지크는 자신의 앞에 안경을 쓰고 머리도 말끔히 빗어 뒤로 묶어 내린 리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헛기침을 하며 용건을 말했다.
“흠…와카루 할아범이 아직 살아있다구.”
그러자, 안경 뒤의 리오의 눈은 순간 꿈틀 거렸으나 그의 입은 아직 닫힌 상태였다. 지크는 이때쯤 돼면 리오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생각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음, 그리고 요즘 바이오 버그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구. 와카루의 머리가 가세해서 그런지 좀 더 조직적으로 우리들을 공격하고 있지. 최근엔 사이보그들까지 같이 날뛰는 바람에 더 고생이고 말이야.”
말을 거기까지 들은 리오는 팔짱을 낀채 눈을 감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이 세계의 일엔 더이상 낄 수 없어.”
“으윽!? 왜! 믿을 녀석은 너 하나 뿐인데!!!”
지크는 순간 기대가 무너진듯 눈을 휘둥그래 뜨며 리오에게 따지기 시작했고, 리오는 덤덤히 지크에게 말했다.
“…이 세계의 성격상 그래. 이 세계는 다른 어떤 세계보다 문명이 발달해 있고 인구가 많지. 한마디로, 마법과 대형 검술을 사용하는 나의 경우엔 이 세계에 입히는 피해가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배치가 되지 않아. 너의 경우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를 대인 전투법에 의존하기 때문에 고작 잘라봐야 건물 하나, 다리 하나니까 별로 상관은 없지. 그래서 이번 일은 너 스스로 처리하는게 좋을거야.”
결국, 와카루의 생존이란 카드가 무용지물이 된 것을 깨달은 지크는 결국 최후의 카드를 내게 되었다.
“잠깐!!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
“음?”
지크는 리오의 팔을 잡고 그를 창가로 데려가기 시작했고, 리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안경을 접어 셔츠의 포켓에 넣으며 지크와 함께 창가로 갔다. 지크는 곧 창문을 열고 똑똑히 보라는듯 옆집을 가리켰고,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자, 뭔가 보이는게 있지!!”
“…불이 꺼진 집하고…이불 빨래가 보이는군. 저게 뭐?”
“말고 말고!! 그래, 저기 오는 두사람 말이야!! 여자 두명!!!”
리오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리오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고 지크는 이제 됐다는듯 킥킥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세이아와…라이아?”
그렇게 중얼거리는 리오에게, 지크는 더욱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래! 하지만 저 둘은 나를 포함해서 예전에 같이 생활했던 모두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 자, 그러니 나에게 협력을 하란 말이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핫—!!!!”
집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는 세이아와 라이아의 모습을 지켜보던 리오는 곧 씁쓸히 웃으며 지크에게 중얼거렸다.
“…후, 왠지 협박조로 나오는군. 하지만…아까와 마찬가지로 난 이 일에 끼어들 수 없어.”
“무, 무어라!?”
지크의 표정은 다시 울상으로 바뀌었고, 리오는 미안하다는듯 지크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미안해. 그 대신 세이아와 라이아를 잘 보호해줘. 만에 하나 이곳에 대한 임무가 떨어지면 반드시 돌아올테니 말이야. 그럼, 난 이만 가도록….”
“잠깐!!! 아직 하나 남아있단 말이야!!! 제발!! 제발!! 제발!!”
지크는 리오의 팔을 붙잡고 매달리다시피 하며 애원했고, 리오는 또 뭐냐는듯 고개를 흔들며 지크를 바라보았다.
“아니, 또 뭐야. 말이나 한번 들어보지.”
지크는 속으로 기도를 올리며 리오에게 천천히 말했다.
“바이칼 녀석이 널 찾고 있어. 덕분에 나와 그녀석 쌍방이 피해를 입긴 했지만 말이야. 나중에 다시 온다고 했으니(사실은 아님) 여기서 잠깐만이라도 날 도와주면서 바이칼 얘기나 들어보자구. 나도 그녀석이 왜 널 찾고 있는지 듣지는 못했으니까(역시 아님).”
결국, 리오는 졌다는듯 한숨을 길게 내 쉬며 소파에 앉았고, 지크는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리모콘으로 TV의 전원을 켜던 리오는 잠시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지크를 흘끔 돌아보며 그에게 물었다.
“아, 아까 말했던 그 ‘쌍방의 피해’라는게 뭐야? 서로 싸우기라도 한건가?”
“…읍!”
순간, 지크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버렸고 그는 밀려오는 구토감을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굳게 막았다. 그 모습을 본 리오는 흠칫 놀라며 알겠다는듯 손을 저었다.
“아, 알았어. 나중에 바이칼을 만나면 물어보도록 하지. 서로 키스라도 한 것 처럼 행동하는군.”
“…!!!”
지크의 얼굴은 더욱 파랗게 질려 버렸으나, 지크의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리오는 머리를 푼 후 손으로 쓸어 넘기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음…내 기억으로는 바이칼 녀석 아직 아무하고도 키스해본 일이 없을텐데…. 뭐, 설마 아니겠지. 술이라도 마셨다면 모를까. 후훗….”
쿵!
그때, 리오는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움찔하며 뒤를 바라보았고, 그는 지크가 정면으로 바닥에 쓰러진 것을 보고 더욱 놀라며 쓰러진 지크에게 다가갔다.
“이, 이봐!! 이녀석 갑자기 왜그래!!!”
“…….”
지크는 사실 기절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그 이상의 상태가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리오가 아무리 흔들어대도 지크는 일어나기를 거부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 . . . . . . . . ……………..
“어머, 리오씨이—!! 너무 오래간만이에요!!!”
레니와 함께 시장에 다녀온 티베는 리오가 집에 있는 것을 보고 그의 팔을 안으며 기뻐했고, 리오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티베에게 인사를 했다.
“예, 오래간만이군요 티베양. 그동안 더 예뻐지셨는데요.”
리오는 티베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를 하며 답례를 했고, 그 모습을 본 마키는 흠칫 놀라며 손을 뒤로 돌린채 리오에게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 마키양도 정말 오래간만이군요. 음…예전엔 반말을 했지만 지금은 어엿한 직업인이시니 예의를갖추죠. 후훗….”
리오는 키가 작은 편인 마키와 시선을 맞추며 그렇게 말했고, 마키는 얼굴이 붉어진채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곧, 뒤늦게 들어온 레니와 시에도 리오를 보고 상당히 반가워했다. 집에 남자라고는 지크 하나 뿐이여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어머, 리오씨 오셨군요.”
“예, 안녕하셨습니까 어머님. 그리고 시에도 안녕?”
“와아—!! 리오!!!!”
레니의 손을 잡고 들어왔던 시에는 리오가 인사함과 동시에 그의 정면으로 뛰어 올라 리오의 볼에 자신의 볼을 부비며 기뻐했고, 리오는 시에의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녀를 귀여워해 주었다.
“음, 그래 그래. 시에도 많이 컷구…나, 하하하하….”
리오가 왠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면서 얘기를 해도, 시에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듯 여전히 즐겁게 자신의 볼을 부비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지크는 여전히 시체에 가까운 몰골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리오에게 들은 말이 그에겐 너무도 충격적인 말인듯 했다.